
욥- 여호와께서 모년暮年에 복을 주었더라
정자원
<욥의 회개>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¹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²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³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⁴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⁵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말하겠사오니⁶ 주여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⁷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⁸
<변론에서 승리한 욥>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⁹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그런즉 너희는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을 취하여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¹⁰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의 우매한 대로¹¹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¹²
<욥이 다시 받은 축복>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¹³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이에 그의 모든 형제¹⁴와 자매와 및 전에 알던 자들이 다 와서
그 집에서 그와 함께 식물을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대하여 그
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금¹⁵ 한 조각과 금고리¹⁶ 하나씩 주었더라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¹⁷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았으며
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하였고 셋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으며
전국 중에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 아비가 그들에게
그 오라비처럼 산업을 주었더라
그 후에 욥이 일백사십 년을 살며¹⁸ 아들과 손자 사대를 보았고
나이 늙고 기한이 차서 죽었더라
<노트> 구약성서 욥기 42장 1-17절은, 여호와께서는 욥이 왜 고통당하는지를 말씀하지 않았으며, 욥이 의인으로서 고통을 받게 되었다고 공식적으로 선포하시지도 않으셨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욥에게 나타나심으로써, 이 문제는 자연히 해결되었다. 전에 욥은 하나님이 법정에서 나타나 주기를 바랐었는데, 그 기대는 현실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래서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한 소송은 더 이상 소용없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결국, 욥은 하나님이 완전하신 분임을 체험적으로 알게 되었고, 자신을 끝까지 변호하려 했던 교만을 부끄럽게 여겼다. 이렇게 함으로써, 욥의 고백으로 견지되었다.
<욥의 회개>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¹: 욥은 절망에서 믿음에 이르는 긴 사닥다리를 꾸준히 올라가고 있었다. 그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경험하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 하나님은 천연계 가운데서 취한 비유를 들어 그에게 말씀하셨다. 욥은 이제 자기가 사랑하고 신뢰할 수 있는 분임을 알게 된 그분의 음성을 들었다. 이제 욥이 말할 차례가 되었다. 그가 하는 말이 2~6절에 기록되어 있다.
2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²: 욥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인정한다.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³: 욥은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인정한다(참조 시 44:21; 139:2).
누구니이까⁴: 이 질문은 38:2에서 하신 하나님의 질문을 거의 똑같은 말로 되풀이하는 것이다. 그것이 엘리후에게 하신 질문이었는지, 아니면 욥에게 하신 것이었는지는 분명히 입증할 수 없다(참조 38:2 주석). 욥은 이제 그 질문을 자기에게 적용시킨다. 그는 제일 먼저 지식의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다. 그가 내린 결론들은 무지함에 근거한 것이었으므로, 비록 그가 정직하게 행하였을지라도 그는 잘못한 것이었다.
스스로 깨달을 수 없고⁵: 부분적인 지식은 더 위대한 진리의 빛이 그 위에 비칠 때에 얼마나 부적절하게 보이는가! 욥은 원망을 할 때는 자기 변론이 논박할 여지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기 태도가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좀 더 충분히 이해하게 되었을 때, 전에 가지고 있던 그의 논거는 설득력을 잃고 말았다. 인간의 이론은 종종 그 자체가 오류일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오늘은 위대한 지혜인 것처럼 보이는 사상이 내일에는 완전히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다.
욥이 기꺼이 자기의 무지함을 인정한 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다. 그는 자신을 변명하거나 자기 입장을 변호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는 변론할 때처럼, 잘못을 자백할 때에도 솔직하다. 이런 특질은 이 책의 서두부터 욥이 순전하다고 말하는(1:1) 이유의 일부이다.
내가 말하겠사오니⁶: 3절에서 욥이 38:2의 질문을 되풀이한 것처럼, 여기서는 38:3의 질문을 반복한다. 그는 하나님의 질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는 말할 준비가 되어 있다. 드디어 그는 자기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를 알게 된다.
이제는⁷: 욥은 이전에 자기가 하나님에 관하여 알고 있던 지식은 풍문에 근거한 것이었음을 인정한다. 이제 그는 체험을 통한 지식을 갖게 되었다. 욥기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은 이 구절 가운데 있다. 이 진술 가운데서 욥은 전승에 의하여 형성된 신앙 경험에서 벗어나,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교제에 근거한 신앙 경험으로 도약함을 나타내 준다. 그의 성장 배경이 된 전승에 따르면, 의인은 고통을 당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욥은 어릴 때부터 하나님은 현세의 모든 재앙에서 의인을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그는 고통을 당하게 되었을 때 혼란에 빠졌는데, 그것은 자기가 하나님에 대하여 들은 내용과 모순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혼란은 친구들의 태도로 인하여 더욱 증가되었다. 이제 욥은 하나님을 보았다. 그는 하나님이 무한한 능력과 자비를 소유하고 계시며, 자기가 고통을 당할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안다. 하나님께서는 왜 자기가 고통을 당하는지 설명해 주시려고 하지 않았으나, 그는 그 이유가 무엇이든 불안해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욥의 경험은 그에게 믿음의 의미를 가르쳐 주었다. 하나님을 친히 봄으로써 그는 이제 하나님의 뜻에 굴복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하나님께 대한 그의 헌신은 자기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게 되었다. 그는 더 이상 하늘의 은총을 받은 증거로 세속적인 축복을 기대하지 않는다. 하나님에 대한 그의 관계는 이제 이전보다 더욱 확고하고 신뢰할 만한 기초 위에서 이루어진다. 욥이 하나님은 사람들이 그분에 관하여 만들어 놓은 전승들에 의하여 제한을 받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그는 자기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발견한다. 욥이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고 말하면서 나타내는 이러한 폭넓은 이해는, 성경 전체 특히 요한복음과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매우 힘있게 강조되는 믿음의 경험과 유사하다(요 1:12~17; 롬 8:1~8; 갈 4:3~7).
회개하나이다⁸: 욥은 처음 질병에 걸렸을 때에 앉았던 잿더미 위에 그대로 앉아 있었을 것이다(2:8). 그의 친구들은 그에게 회개하라고 재촉했지만, 그들의 호소는 실상 그가 죄악을 범하지 않았으나 그는 죄악을 범했을 것이라는 그들의 추정에 근거한 것이었다. 결국 그의 회개는 하나님께 대한 자기의 잘못된 태도에 관한 것이었다. 욥의 회개를 베드로(눅 5:8), 이사야(사 6:5)의 회개와 비교해 보라. 각각의 경우, 하나님의 나타나심은 인간의 전승에 기초한 그 어떤 변론도 이룰 수 없는 일을 달성했다.
<변론에서 승리함>
욥은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속성과 사역과 주권에 대하여 진솔하게 진술하는 반면, 욥의 세 친구들은 전통적인 틀 안에서만 하나님을 인식하는, 곧 지식으로만 하나님을 아는 잘못을 범하였다.
내가…노하노니⁹: 이 절에서 이 책을 마무리하는 산문체 부분이 시작된다. 하나님께서는 욥의 세 친구에게로 시선을 돌리시고, 분명히 세 사람 가운데 지도자인 엘리바스에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욥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음을 인하여 질책했으나, 그 친구들에게는 그들이 “정당”한 말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진노를 나타냈다. 이것은 욥의 잘못과 그의 친구들의 잘못의 차이점이 무엇인지에 대한 흥미로운 의문을 제기한다. 한 가지 분석은 욥이 고통과 압박과 실망과 절망 때문에 잘못했음을 드러내 준다. 그는 자기도 이해할 수 없는 비참한 상황의 희생자였다. 그의 진술이 어떤 때는 앵돌아졌고, 어떤 때는 거의 신성 모독적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항상 그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었다. 그의 친구들은 욥처럼 고통을 당하지는 않았다. 그들의 잘못된 말은 거짓된 철학의 표현이었다. 그들은 전승 때문에 동정심이 빛을 잃도록 허용했다. 그들은 가혹함을 나타내면서도 정당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가진 하나님에 대한 개념은 그러한 태도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현대에도 엘리바스나 그의 친구들과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은 훌륭한 사람들이기는 하지만 양심에 매임을 느껴 그러한 잘못된 개념을 변호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욥은 과오를 범했으나, 그의 친구들과 비교해 볼 때 그는 “정당”한 말을 한 셈이었다. 그의 가련한 절망의 외침은 그의 친구들의 냉정한 논리보다 하나님께 더 기쁨이 되었다.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¹⁰ 중보 기도의 한 가지 본보기(참조 약 5:16; 요일 5:16). 때때로 하나님은 중보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당신의 용서와 축복 베푸시기를 합당하게 여기신다. 이 경우에는 욥이 자기를 공정하거나 친절하게 대하지 않은 자들을 위하여 기도한다는 사실 때문에 그러한 기도의 중요성은 높이 평가된다.
우매한 대로¹¹ 하나님께서는 그 친구들의 변론을 이처럼 평가하신다. 사람의 전승과 좋아하는 사상들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얼마나 어리석은지! 그런 식으로 하나님을 옹호하노라고 했음을 깨달았을 때 엘리바스와 그의 친구들은 얼마나 놀랐을까! 사람들은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을 그분의 성품 그대로 나타냄으로써 그분을 가장 잘 옹호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욥을…받으셨더라¹²: 그들이 바로 잡아주려고 애썼던 그 사람이 그들의 구원과 회개를 위한 중보자가 되었다. 이것은 극적인 대조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한 욥의 기도를 받으셨다. 이 세 친구가 하나님이 그들에게 가르치고자 애쓰시던 의도와 조화되게 그들의 삶의 철학을 교정했는지 그 여부를 알 수 있다면 그것은 흥미 있는 일일 것이다.
<욥이 다시 받은 축복>
욥은 사람들과의 교제를 통하여 사회적 관계를 회복하게 되었으며, 갑절의 재산과 자손에 대한 축복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섭리 때문에 허락된 삶을 다시 살게 되었다. 따라서 욥의 회복은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축복이며, 결코 그의 순전함에 대한 보상으로 준 것이 아니다.
곤경을 돌이키시고¹³: 신약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정도에 비례하여 하나님의 용서가 주어진다고 가르친다(마 6:12, 14, 15; 18:32~35). 이런 원칙은 욥의 경험에서도 예상되었던 그것으로 보인다. 그가 친구들을 위해 기도할 때 그의 운명이 바뀐다. 중보 기도가 아무리 진실하다 하더라도, 그것이 물질적인 번영을 보증해 준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욥기는 전체적으로 그런 추론을 반증해 준다. 이 경험은 자기를 악의로 이용한 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인정해 주신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형제¹⁴: 욥의 친족들은 그를 잊고 저버리고 그를 대적해 돌아섰다(19:13, 14, 19). 이제 욥의 운명은 역전되었고, 그들은 그에게 와서 축제를 거행하도록 도와준다. 그들은 만사가 올바로 되어 간다는 증거를 보기까지는 동정을 나타내려고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이런 특성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인 약점을 드러낸다.
금¹⁵ (제임스왕역(KJV)에는 “돈”으로 되어 있음-역자 주). 히브리어 크시타(qesit.ah)로서, 이곳과 창 33:19과 수 24:32에만 나온다. 크시타는 무게의 단위였던 것 같다. 이 말은 욥기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암시한다.
고리¹⁶ (제임스왕역(KJV)에는 “귀고리”로 되어 있음-역자 주). 히브리어 네젬(nezem). 귀고리뿐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고리들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참조 창 24:47; 35:4; 삿 8:24, 25; 잠 11:22; 25:12; 사 3:21; 호 2:13).
여호와께서…복을 주사¹⁷: 세 친구 모두 욥이 회개하면 복을 받을 것이라고 예언했었다(5:18~26; 8:20, 21; 11:13~19). 그들의 예언은 성취되었으나, 욥의 회개는 그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었으며, 그들은 저희의 그릇된 의견과 행위를 회개하도록 요구받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욥이…살며¹⁸: 무덤이 바로 자기 앞에 있다고 확신했던 그 사람이 거의 한 세기 반 동안을 더 살다니! 말라죽은 것처럼 보이던 생명이 전보다 더욱 찬란하게 개화했다. 영원히 지나간 것처럼 보이던 축복이 어느 때보다도 더 놀랍게 돌아왔다. 재물과 가족과 친구와 명성이 다시 그의 것이 되었다. 그러나 이런 복들보다 더 큰 축복은, 그가 하나님을 면대하여 물질적인 재산보다 더 값진 교훈을 배운 경험에 대한 기억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섭리 가운데 이런 교훈을 모든 인류와 함께 나누는 것이 합당하다고 여겨, 욥기를 오랜 과거에서 위대한 영적 유산의 하나로 보존하셨다. 욥의 경험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확신하는 교훈을 배우는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2026.5.29.
<고> 여기까지 동행해 주신 고운 걸음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기도합니다. 하보우아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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