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욥-계속 말씀하시는 하나님
장지원
네가 암사자¹를 위하여 식물을 사냥하겠느냐
젊은 사자의 식량을 채우겠느냐
그것들이 굴에 엎드리며 삼림에 누워서 기다리는 때에니라
까마귀 새끼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먹을 것이 없어서 오락가락 할 때에
그것을 위하여 먹을 것을 예비하는 자가 누구냐
산 염소²가 새끼 치는 때를 네가 아느냐³
암사슴⁴의 새끼 낳을 기한을 네가 알 수 있느냐
그것이 몇 달만에 만삭되는지 아느냐⁵ 그 낳을 때를 아느냐
그것들은 몸을 구푸리고 새끼를 낳아
그 괴로움을 지내어 버리며
그 새끼⁶는 강하여져서 빈 들에서 길리우다가⁷ 나가고는 다시 돌아오지 아니하느니라
누가 들나귀⁸를 놓아 자유하게 하였느냐
누가 빠른 나귀의 매인 것을 풀었느냐
내가 들로 그 집을, 짠 땅⁹으로 그 사는 처소를 삼았느니라
들나귀는 성읍의 지꺼리는 것을 업신여기니
어거하는 자의 지르는 소리¹⁰가 그것에게 들리지 아니하며
초장¹¹이 된 산으로 두루 다니며 여러 가지 푸른 것을 찾느니라
들소¹²가 어찌 즐겨 네게 복종하며¹³: 네 외양간에 머물겠느냐¹⁴
네가 능히 줄로 들소를 매어 이랑을 갈게 하겠느냐
그것이 어찌 골짜기에서 너를 따라 쓰레를 끌겠느냐
그것의 힘이 많다고 네가 그것을 의지하겠느냐¹⁵
네 수고하는 일을 그것에게 맡기겠느냐
그것이 네 곡식을 집으로 실어오며¹⁶
네 타작 마당에 곡식 모으기를 그것에게 의탁하겠느냐
타조¹⁷는 즐거이 그 날개를 친다마는 그 깃과 털이 인자를 베푸느냐
그것이 알을 땅에 버려두어¹⁸ 모래에서 더워지게 하고
발에 깨어질 것이나
들짐승에게 밟힐 것을 생각지 아니하고¹⁹
그 새끼에게 무정함이²⁰
제 새끼가 아닌 것처럼 하며
그 구로한 것이 헛되게 될지라도²¹ 괘념치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 내가 지혜를 품부하지 아니하고²² 총명을 주지 아니함이니라
그러나 그 몸을 떨쳐 뛰어갈 때에는
말과 그 탄 자를 경히 여기느니라²³
말²⁴의 힘을 네가 주었느냐
그 목에 흩날리는 갈기²⁵를 네가 입혔느냐
네가 그것으로 메뚜기처럼 뛰게 하였느냐
그 위엄스러운 콧소리가 두려우니라
그것이 골짜기에서 허위고²⁶ 힘 있음을 기뻐하며 앞으로 나아가서 군사들²⁷을 맞되
두려움을 비웃고²⁸ 놀라지 아니하며
칼을 당할지라도 물러나지 아니하니
그 위에서는 전동과 빛난 작은 창과 큰 창이 쟁쟁하며
땅을 삼킬듯이²⁹ 맹렬히 성내며 나팔 소리를 들으면 머물러 서지 아니하고
나팔 소리 나는 대로 소소히 울며³⁰ 멀리서 싸움 냄새를 맡고 장관의 호령³¹과 떠드는 소리를 듣느니라
매³²가 떠올라서 날개를 펼쳐 남방으로 향하는 것이 어찌 네 지혜로 말미암음이냐
독수리가 공중에 떠서 높은 곳에³³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 어찌 네 명령을 의지함이냐
그것이 낭떠러지에³⁴ 집을 지으며 뾰족한 바위 끝이나 험준한 데 거하며
거기서³⁵ 움킬만한 것을 살피나니 그 눈이 멀리 봄이며
그 새끼들도 피를 빠나니 살륙 당한 자 있는 곳에는 그것도 거기 있느니라³⁶
<노트> 구약성서 욥기 38장 39-39장 30절은, 하나님은 동물들을 창조하여 서로 균형이 있게 살아가도록 하신 지혜에 대해 말씀하시고 있다. 하나님의 사역 가운데는 인간이 도저히 제어할 수 없는, 동물들의 우스꽝스러운 생태와 기괴한 행동과 본능적인 지혜가 숨어 있다. 여호와께서는 욥에게, 균형을 맞추어서 다스려 나가는 지혜를 알 수 있는 통찰력이 있느냐고 역설적인 질문을 하신다. 사실, 자연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으로부터 욥이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란, 다만 그가 개인적으로 습득한 지식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무죄한 자가 아무런 까닭 없이 고통당하고 있는 이유를 인간이 알아내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 문제 역시 하나님의 계획 안에 숨어 있는 역설적인 부분에 속한 것이다.
암사자¹: 또다시 장면이 바뀐다. 논리적으로는 동물의 세계에 대하여 변론하는 39장이 여기에서 시작돼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사자 가족을 먹여 살리는 책임이 주어진다면 그 일을 잘 할 수 있을지 묻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심어주신 본능이 동물로 하여금 사람은 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한 일을 할 수 있게 한다.
산 염소²: 이들은 아주 사나운 동물로, 궁벽하고 바위가 많은 지역에 서식한다. 그들의 본성은 사람들이 그들의 습성과 친숙해질 수 없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그들에 관한 상세한 내용까지도 모두 아신다.
네가 아느냐³: 하나님은 욥에게 38:39에서 시작한 동물계의 놀라운 일들에 관한 신적인 설명을 계속하신다. “네가 아느냐”와 같은 표현은 하나님의 지혜와 욥의 무지함을 대조하여 강조한다. 사람은 하나님이 어떤 일들을 창조하실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조차 없다.
암사슴⁴: 참조 시 29:9. 이 용어는 산 염소 종류의 암컷을 가리킬 수도 있는데, 따라서 본문의 둘째 행은 첫째 행의 반복이거나, 사슴에게 적용된다.
몇 달 만에 만삭이 되는지⁵: 들사슴 같은 동물들은 사람이 집에서 키울 수도 없고 자세히 관찰할 수도 없기 때문에 임신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잘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야생 동물이라 해도 출산은 창조주의 생명을 주시는 능력을 증거한다.
새끼⁶: 야생 동물 새끼의 자립 능력은 대단하다. “강하여져서”라는 말은 건강하고 튼튼함을 의미한다.
빈들에서 길리우다가⁷: 이 어린 동물들은 넓은 들에서 자라나 곧 어미 곁을 떠난다. 이런 놀라운 현상은 전혀 사람의 지혜나 계획에 의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은 지성적이고 자애로우신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나타내 준다.
들나귀⁸: 참조 11:12 주석. 기질과 힘과 민첩성과 생김새가 집에서 기르는 나귀라는 동물과는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야생 상태에서 나귀는 사람의 영향력을 전혀 받지 않는다. 이런 동물의 습성을 관찰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 매력과 명민함과 자립 능력을 갖게 만든 창의적인 지식에 경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욥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교훈으로 보인다.
짠 땅⁹: (제임스왕역(KJV)에는 “불모지”로 되어 있음-역자 주). 히브리어 믈레하(meleh.ah). 문자적으로 “소금기”, “불모.” 믈레하는 렘 17:6에서 “건건한 땅”이라고 번역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들나귀가 사람이나 사람이 길들인 동물들은 거의 생존할 수 없는 메마르고 수목이 없는 황무지에서도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창조하셨다.
어거하는 자의 지르는 소리¹⁰: 길들인 나귀는 사람의 지시에 따르지만, 나무 없는 평지 태생인 들나귀에게는 나귀 모는 자의 명령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 놈은 무제한의 자유를 억제당하지 않을 것이다.
초장¹¹ 들나귀에게 바위 많은 지역은 먹이의 원천이다. 그 놈은 다른 동물들이 굶어 죽을 곳에서도 생존한다. 이 짐승은 그 비범한 능력을 어디에서 받았는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았다.
들소¹²: 히브리어 렘(rem). 구약에 9회 나오며, 다른 곳에서는 레엠(re’em)으로 되어 있다. 이 동물에 대한 다양한 묘사를 감안해 볼 때 들소(제임스왕역(KJV)에는 “unicorn”)를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참조 민 23:22; 24:8; 신 33:17; 시 22:21; 29:6; 92:10). 앗수르인의 유물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들소는 리무(ri^mu)라고 알려져 있다. 이 동물은 카이사르(Caesar)가 갈리아(Gaul)에서 발견했는데, 다음과 같이 묘사한 동물과 유사한 것 같다. “이 들소(urus, 오록스[aurochs]라고도 불리는 고대 유럽산 들소-역자 주)는 크기가 거의 코끼리만하지만 기질이나 색깔이나 모양은 황소와 같았다. 그 놈들의 힘과 속력은 대단하다. 그 놈들은 사람이든 짐승이든 눈에 띄었다 하면 살려두지 않는다.…그 놈들은 어릴 때라도 사람에게 길들여지거나 유순해지는 법이 없다. 그들의 뿔은 크기와 모양이 우리가 보는 소와는 아주 다르다”(De bello Gallico vi. 28). 일반적으로 9~12절에 나오는 들소와 집에서 기르는 소의 대비는, 5~8절에 나오는 들나귀와 집에서 기르는 나귀의 대비와 유사한 것으로 여겨진다.
네게 복종하며¹³: 길들인 소는 쟁기를 끌게 할 수 있지만, 들소는 그런 목적에 쓸 수 없다.
네 외양간에 머물겠느냐¹⁴: 들소는 사육 환경에 가두어둘 수 없다. 그 놈은 성질이 달랐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 놈의 길들인 동료와 비슷한데도, 누가 들소에게 그토록 다른 특성들을 부여하셨는가? 그 대답은 하나님이다.
네가 그것을 의지하겠느냐¹⁵: 들소는 의지할 수 없는 놈이다. 그 놈의 힘은 사람의 목적을 위해 이용할 수가 없다. 그것의 저돌적인 기질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바꾸어 보려는 모든 노력에 저항한다.
네 곡식을 집으로 실어 오며¹⁶: 길들인 소에 대한 신뢰성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욥은 이런 면에서 들소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욥이 그런 차이가 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러한 지식은 그의 이해를 초월한다.
타조¹⁷: (제임스왕역(KJV)에는 “공작”으로 되어 있음-역자 주). 히브리어에서 이 절은 번역하기가 어렵다. 일반적으로 공작보다는 타조를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한다. 욥이 사는 지역에서 타조는 흔히 볼 수 있었다.
제임스왕역(KJV)의 난외주에, 두 번째 구절에 대한 다른 독법으로 “황새와 타조의 깃털들”이 제시되었는데, 어떤 이들은 그 내용을 근거로 하나님께서 길들인 나귀와 들나귀, 길들인 소와 들소를 대조하신 것처럼 여기에서는 황새와 타조를 대조한다고 결론지었다. 황새는 힘들이지 않고 우아하게 날 수 있는 새이다. 타조는 큰 날개가 있어서 뛸 때에는 날갯짓을 하지만, 그 날개로 무거운 몸을 땅에서 들어 올릴 수 없다. 또한 두 새의 습성도 현저하게 다르다. 황새는 그 새끼에게 애정을 나타내지만 타조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이런 특징이 이 장의 그 다음절에서 전개된다. 하나님께서 섭리 가운데 다양한 피조물에게 다양한 특성을 부여하셨다는 내용인 것 같다. 사람은 이런 차이를 설명하거나 통제할 수 없다.
다른 이들은 의미가 극히 모호한 후반부를 다음과 같이 번역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그것들이 사랑의 날개털과 깃털이겠느냐?”(개정표준역(RSV)) 또는 “그러나 그 어미의 날개털과 깃털이 따뜻하겠느냐?”(개정역(RV)).
그것이 알을 땅에 버려 두어¹⁸: 타조는 그 알들을 모래 위에 낳고 햇볕에 데워지도록 한다. 한 무리의 암컷들은 한 둥지를 사용하며, 낮에는 그중 하나가 알과 함께 있고 나머지는 먹이를 찾아 돌아다닌다. 밤에는 수컷이 알을 품는다.
생각지 아니하고¹⁹: 암컷은 자기 알에 무관심한 채 돌아다닌다. 나중에 모든 새끼들은 무리 전체와 함께 뛰어다닌다. 이 때문에 어미가 새끼들에게 냉담하다고 여겨질 것이다.
무정함이²⁰: 타조는 자기 새끼들에게 관심을 보여 줄 만큼 지능이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참조 애 4:3).
헛되게 될지라도²¹: 알이 깨지거나 새끼가 없어져도 어미는 무관심하다.
지혜를 품부하지 아니하고²²: 타조를 창조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제한된 지능을 주시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신 것이 분명하다. 그분은 그렇게 하신 이유를 제시하지 않으시며, 사람은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아랍 속담 중에 “타조 같은 바보”라는 말이 있다.
이곳에서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3인칭으로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강조하기 위함인 것 같다(개역한글판에는 이 문장의 주어가 1인칭으로 되어 있음-역자 주).
말과 그 탄 자를 경히 여기느니라²³: 타조는 어리석고 자기 새끼에 대한 관심도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주셨다. 타조가 가장 빠른 말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말²⁴: 19~25절은 군마(軍馬)를 묘사한다. 이와 유사하게 생생한 표현이 다음에 인용하는 베르길리우스(Virgil)의 시에도 나온다.
“그러나 병기들이 부딪칠 때
멀리서도 그의 귀는 세미한 소리를 감지하고 전쟁터로 뛰어가고픈 마음에 설렌다.
양쪽 콧구멍에서는 불꽃 같은 콧김을 시내처럼 뿜어대고
쉬지 않고 요동하는 사지(四肢)는 번쩍인다.
신이 나서 천지를 돌아다니노라면 오른쪽 어깨 위엔
짙은 갈기가 흩날리고 화려한 털이 펄럭인다.
두 겹 등뼈는 기민하게 움직이고
땅을 파는 단단한 발굽의 소리가 주변 땅에 울려 퍼진다.”
흩날리는 갈기²⁵: (제임스왕역(KJV)에는 “thunder”[천둥]으로 되어 있음-역자 주). 히브리어 라마(ra‘mah). 이 말의 의미는 분명하지 않다. 어떤 이들은 이 단어가 말의 갈기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았다. 라마(ra‘mah)는 25절에서 “호령”(제임스왕역(KJV)에는 “thunder”[천둥])으로 번역된 단어의 여성형이지만, 여성형이 남성형과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여기서 묘사하는 것은 군마(軍馬)가 싸움터로 돌격하면서 흥분과 갈망 가운데 목을 반원형으로 세운 모습이다.
그것이 골짜기에서 허위고²⁶: 말이 전쟁터로 달려가기를 간절히 원하면서 앞발로 땅을 치는 모습.
군사들²⁷: 문자적으로 “장비”, “무기들”, “병기고.”
두려움을 비웃고²⁸: 말 탄 자는 무서워할 수도 있지만 말은 그렇지 않다. 말은 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땅을 삼킬 듯이²⁹: 훈련받은 군마(軍馬)가 땅 위를 질주하는 모습을 생생히 묘사함.
소소히 울며³⁰: (제임스왕역(KJV)에는 “하하!”로 되어 있음-역자 주). 말의 거센 콧김이나 울음소리를 묘사한 것 같으며, 그것이 아니라면 전쟁 나팔소리를 듣고 만족하여 우는 말을 비유적으로 묘사하는 표현일 수도 있다.
호령³¹: 참조 사 5:28~30. 랑에(Lange)는 아랍인의 말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아랍인의 암말은 양처럼 온순하고 굴레 외에 안내자가 필요 없지만, 아랍 족속의 전쟁의 함성을 듣고 자기 등에 탄 주인의 흔들리는 창을 보면, 눈이 불처럼 번쩍이고 피처럼 붉은 콧구멍이 크게 열리며, 그 목은 당당하게 반원 모양이 되고 꼬리와 갈기를 치켜올려 바람에 펼친다.”
매³²: 하나님께서는 욥의 주의를 돌진하는 군마(軍馬)에서 철따라 이주하는 매(hawk)에게로 돌리신다. 그 새에게 겨울이면 더 따뜻한 기후를 찾아가도록 하는 본능을 욥이 심어주었던가? 다시금 욥은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지혜에 대한 예증을 본다.
높은 곳에³³: 독수리는 언제나 매우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이름이 나 있었다. 욥이 이 새들에게 집을 높은 봉우리에 지으라고 지시했던가?
낭떠러지에³⁴: 아무리 험하고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라도 독수리는 그곳에 집을 짓고 살 수 있다.
거기서³⁵: 시력이 예리하기로 이름난 독수리들은 아주 먼 곳에서도 먹이가 있음을 감지하고, 그 먹이를 잡기 위해 높은 둥지에서 내리 덮친다. 누가 그 새들에게 사람의 지식을 완전히 초월하는 놀라운 본능을 주었는가?
그 새도 거기 있느니라³⁶ 참조 마 24:28; 눅 17:37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지니라”,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어디오니이까 가라사대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하시니라“
여기에 언급된 현상들은 하나님의 권능과 선하심을 설명해 준다. 욥 당시부터 지금까지 인간이 자연에 관해 발견한 모든 것들은 그와 같은 권능과 선하심을 실증해 줄 뿐이다.
2026.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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