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욥-하나님은 의로우심

노파 2026. 5. 14. 00:02

 

욥-하나님은 의로우심

장지원

 

 

엘리후가 말을 이어 가로되¹

나를 잠간 용납하라

내가 네게 보이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² 오히려 할 말이 있음이라

내가 먼 데서³ 지식을 취하고

나를 지으신 자에게 의를 돌려 보내리라

진실로 내 말이 거짓이 아니라 지식이 구비한 자가 너와 함께 있느니라⁴

하나님은 전능하시나⁵

아무도 멸시치 아니하시며

그 지능이 무궁하사

악인을 살려 두지 않으시며⁶

고난 받는 자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그 눈을 의인에게서 돌이키지 아니하시고⁷

그를 왕과 함께 영원히 위에 앉히사 존귀하게 하시며

혹시 그들이 누설에 매이거나⁸

환난의 줄에 얽혔으면

그들의 소행과 허물을 보이사⁹

그 교만한 행위를 알게 하시고

그들의 귀를 열어¹⁰ 교훈을 듣게 하시며

명하여¹¹ 죄악에서 돌아오게 하시나니

만일 그들이 청종하여¹² 섬기면 형통히 날을 보내며 즐거이 해를 지낼 것이요

만일 그들이 청종치 아니하면¹³ 칼에 망하며 지식 없이 죽을 것이니라

마음이 사곡한 자들은 분노를 쌓으며

하나님께 속박을 받을지라도 도우심을 구하지 아니하나니

그들은 젊어서 죽으며¹⁴

그 생명이 남창¹⁵과 함께 망하려니와

하나님은 곤고한 자를 그 곤고할 즈음에¹⁶ 구원하시며

학대 당할 즈음에 그 귀를 여시나니¹⁷

그러므로 하나님이 너를 곤고함에서 이끌어 내사 좁지 않고 넓은 곳으로 옮기려 하셨은즉¹⁸ 무릇 네 상에 차린 것은 살진 것이 되었으리라

 

<노트> 구약성서 욥기 36장 1-16절은, 엘리후는 고난에 대한 자기의 견해를 피력해 나간다. 그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지혜와 능력의 크심을 전제하면서, 욥이 격는 고난은 욥 자신의 행위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역설한다.

엘리후가 말을 이어 가로되¹: 36장과 37장은 하나의 이야기를 이룬다. 이것은 욥에게 하나님 앞에서 복종하고 인내하라는 마지막 호소에 속한다.

하나님을 위하여²: 엘리후는 자기가 변론을 계속하는 이유가, 하나님을 변호하기 위하여 자기가 말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들이 더 있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엘리후는 자기가 하나님과 욥 사이의 대결에서 하나님의 변호자라고 생각한다.

먼 데서³: 엘리후가 진부한 변론을 되풀이하겠다는 뜻으로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그들의 관심에서 벗어난 사물의 영역에서 자기의 지식을 가져오고 싶어한다. 엘리후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변호하기 위하여 역사와 자연의 넓은 영역에서 논리를 도출하려고 계획한다(참조 8:8).

너와 함께 있느니라.⁴: 이 말은 거만하게 들리긴 하지만, 엘리후가 그런 식으로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욥은 친구들이 하나님을 옹호하는 가운데 불합리한 논리를 사용한다고 비난했다(참조 13:7, 8). 여기서 엘리후는 자기 말이 틀림없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그는 자기가 생각하기에 편견이 아닌 완전한 지식에 근거하여 진술하려고 한다.

전능하시나⁵: 이 절은 엘리후의 변론의 주제인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의 서론이 된다.

살려 두지 않으시며⁶: 엘리후는 본질적으로 욥의 세 친구와 같은 논리를 주장한다. 그는 이생에서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는 사람의 품성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는다. 욥은 악인들이 재난으로부터 보호받는 것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21:7).

돌이키지 아니하시고⁷: 엘리후는 비록 의인들이 고난을 받기는 하지만 버림받지는 않는다는 입장을 취한다. 그들이 왕좌에 앉았거나 토굴 속에 갇혔거나 간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지켜보신다(8절). 욥은 하나님이 자기를 버리셨다고 시사했다(29:2). 엘리후는 그 말을 부정한다(참조 시 34:15). 그는 의인들이 높임받을 것을 굳게 믿는다.

누설에 매이거나⁸: 참조 창 39:20; 렘 40:1; 단 3:21; 마 14:3; 행 12:1~6; 16:24; 24:27.

그들의 소행과 허물을 보이사⁹: 엘리후는 단언하기를, 의인에게 고난이 닥치는 것은 그들의 품성의 약점과 범죄의 속성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이라고 말한다.

열어¹⁰: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고난이 닥치도록 허락하심으로써, 기꺼이 배우고 듣게 하신다고 주장한다. 욥도 그런 경우라고 그는 말한다.

명하여¹¹: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고통은,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는 명령이다. 엘리후는 여기에서 고통은 형벌이 아니라 징계라는 자기의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욥의 세 친구들처럼 욥이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보응을 받는다고 보는 대신, 그는 욥이 자기 잘못 때문에 사랑의 벌을 받고 있다고 여긴다.

만일 그들이 청종하여¹²: 엘리후는 징계를 받는 자들이 올바른 반응을 보인다면 이생에서 번영과 기쁨이 따르게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참조 욥 33:23~28; 렘 7:23; 26:13). 그는 욥의 번영이 회복될지 여부는 자기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여부에 달려 있다고 단언한다. 욥은 징계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의인들은 박해와 핍박을 예상해야 한다(참조 요 16:33; 행 14:22; 딤후 3:12; 히 12:1~11; 벧전 4:12, 13).

청종치 아니하면¹³: 이 절은 11절의 대안(對案)을 제시한다. 불순종하면 죽는다는 것이 그 개념이다. 엘리후의 견해에도 진리의 요소들은 있다.

그들은 젊어서 죽으며¹⁴: 엘리후는 악인들이 일찍 죽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대인들은 장수(長壽)를 매우 존중했으며, 요절을 큰 비극으로 간주했다.

남창¹⁵: (제임스왕역(KJV)에는 “unclean”[부정한]으로 되어 있음-역자 주). 히브리어 크데쉼(qedes∨im), “성전 창기.” 같은 히브리어 단어가 신 23:18; 왕상 14:24; 15:12; 22:46; 왕하 23:7에도 나온다. 이 단어의 개념은 불경한 자들이 인간 중에서 가장 방탕하고 타락한 자들과 그 운명을 같이 하게 된다는 의미인 것 같다. 그들의 신앙 고백이 그들을 형벌에서 보호해 주지는 못할 것이다.

그 곤고할 즈음에¹⁶: 또는 “그의 고통으로 말미암아.” 이 사상은 하나님께서 의인을 구원하기 위한 방편으로 고통을 사용하신다는 뜻인 것 같다(참조 시 119:67, 71).

그 귀를 여시나니¹⁷: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던 귀가 역경의 결과로 민감해진다.

옮기려 하셨은즉¹⁸: 엘리후는 욥이 올바른 심령으로 자기의 고통을 받아들이고, 그것들이 그에게 가르치고자 했던 교훈을 배운다면 그 역시 구원을 받고 자기의 번영을 회복할 것임을 말하고 있다.

 

2026.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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