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욥-욥의 문제를 말하는 엘리후

노파 2026. 5. 8. 00:02

 

욥-욥의 문제를 말하는 엘리후

장지원

 

 

엘리후가 말을 이어 가로되

지혜 있는 자들아¹ 내 말을 들으며

지식 있는 자들아 내게 귀를 기울이라

입이 식물의 맛을 변별함 같이 귀가 말을 분별하나니²

우리가 스스로 옳은 것은 택하고³ 무엇이 선한가 우리끼리 알아보자

욥이 말하기를⁴ 내가 의로우나

하나님이 내 의를 제하셨고

내가 정직하나 거짓말장이가 되었고⁵

나는 허물이 없으나 내 상처⁶가 낫지 못하게 되었노라 하니

어느 사람이⁷ 욥과 같으랴

욥이 훼방하기를 물마시듯 하며

악한 일을 하는 자들⁸과 사귀며 악인과 함께 다니면서 이르기를⁹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하나 무익하다 하는구나

 

<노트> 구약성서 욥기 34장 1-9절은, 엘리후는 욥의 말을 상기시키면서, 욥의 주장을 반박해 나간다. 그러나 그는 욥의 문제를 공정하게 판단하고 자기의 권위로 누루지 않겠다고 장담했지만, 그 역시 욥의 주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그가 인용하고 있는 욥의 말은 욥이 직접 한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혜 있는 자들아¹: 이 시점에서 엘리후는 욥에게 하던 말을, 자기가 “지혜로운 자들” 또는 “총명한 자들”(11절)이라고 칭하는 자들에게로 돌린다. 토론하는 무리 가운데는 세 친구 외에 다른 이들도 더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 토론을 듣기 위해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 상당수 모였을 가능성도 있다.

말을 분별하나니²: 12:11과 비교하라. 엘리후는 청중들의 영적인 식별력에 호소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그들이 자기 주장을 욥의 입장과 비교해 보기를 바라며, 자기에게는 매우 탁월하다고 여겨지는 견해를 그들도 인식하게 되기를 원한다.

택하고³: 이 절은 지금까지 제시된 상반된 의견과 취지 가운데서 진정한 진리를 찾고자 하는 엘리후 측의 호소이다.

욥이 말하기를⁴: 5~9절은 하나님께 대한 욥의 비난을 살펴본다. 엘리후는 욥이 자기는 의롭지만 하나님께서 자기를 괴롭히신다고 비난했음을 진술한다. 사실 그것은 욥이 안고 있는 문제의 본질이었다. 그는 자기가 의롭게 살았다는 의식과 자기가 당하는 불행을 조화시킬 수 없었다.

거짓말쟁이가 되었고⁵: 이 절에서 엘리후는 계속하여 욥의 말을 인용한다. “내가 의로운 삶을 살았지만, 내 자신을 변호할 때 거짓말쟁이로 취급을 받는구나. 나는 죄악을 범치 않았으나 악행자의 형벌을 당하는구나.”

상처⁶: 문자적으로 “화살.” 하나님이 쏜 화살에 입은 상처를 나타내는 은유적 표현. 하나님은 욥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셨으나, 그는 아직도 자기 편의 죄악을 깨닫지 못한다.

어느 사람이⁷: 엘리후는 욥의 불경한 태도를 자기가 매우 혐오한다는 표현을 구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엘리후는 사람이 물을 마시듯 욥이 제 마음대로 불손과 비난에 탐닉했다고 평가한다(참조 15:16).

악한 일을 하는 자들과⁸: 이 절에서 엘리후는 욥의 불손함에 대한 혐오감을 계속 표현하며, 욥의 행위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태도를 반영한다. 하나님의 징계에 대한 엘리후의 철학은 욥이 틀림없는 죄인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그의 생각은 세 친구의 생각과 다를 것이 없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욥의 불행이 징계이든 형벌이든 그는 그런 것을 당해 마땅한 어떤 일을 행했음이 틀림없다.

이르기를⁹: 참조 9:22. 이 절에서 욥에 대한 엘리후의 혐오감이 절정에 이른다. 엘리후는 충성스럽게 봉사해도 하나님의 은총이 자동적으로 따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실제로 이 인용문은 욥의 입장을 정확하게 진술하지 않는다. 욥은 올바른 행위에 대한 상급은 없다고까지 말한 적은 없었다. 그는 의인들이 항상 복을 받는 것은 아니며, 악인들이 항상 즉각적인 응보를 받는 것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엘리후의 단정은 그와 같은 수많은 진술처럼 욥의 진정한 태도를 왜곡한다(참조 17:9; 21:9; 28:28).

 

2026.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