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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사람은 교만을 버려야 함

노파 2026. 5. 12. 00:02

 

욥-사람은 교만을 버려야 함

장지원

 

 

누가 하나님께 아뢰기를¹

내가 징계를 받았사오니 다시는 범죄치 아니하겠나이다

나의 깨닫지 못하는 것을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악을 행하였으면 다시는 아니하겠나이다 한 자가 있느냐

하나님이 네 뜻대로² 갚으셔야 하겠다고 네가 그것을 싫어하느냐

그러면 네가 스스로 택할 것이요

내가 할 것이 아니니 너는 아는 대로 말하라

총명한 자³와 내 말을 듣는 모든 지혜 있는 자가 필연 내게 이르기를

욥이 무식하게⁴ 말하니

그 말이 지혜 없다 하리라

욥이 끝까지 시험받기를 내가 원하노니

이는 그 대답이 악인과 같음이라⁵

그가 그 죄 위에 패역을 더하며

우리 중에서 손뼉을 치며⁶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을 많이 하는구나

 

<노트> 구약성서 욥기 34장 31-37절은, 하나님의 공의는 그분에게 속해 있는 고유한 주권 섭리의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곧 의인이 고난이 닥치는 것이나 악인이 번영하는 그것은 모두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는 공의인 것이다. 하나님은 심판을 하시는 감찰 자도 되시지만, 고난 중에 있는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감찰 자도 되신다. 따라서 엘리후 역시, 욥의 세 친구처럼 하나님을 이론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차원에 머물러 있음을 볼 수 있다.

31 누가 하나님께 아뢰기를¹: 이 절에서 새로운 개념이 전개되기 시작한다. 그 목적은 욥에게 겸손한 태도를 고무시키기 위함인 것 같다. 엘리후가 생각하는 고통에 대한 이상적인 반응이 고통받는 자의 네 마디 진술에 요약되어 있다(31, 32절). 엘리후는 욥이 자기를 변호하고 자기의 무죄함을 고집하는 대신, 그와 같이 진술하기를 원한다. 엘리후가 주창하는 의견은 고상한 것이며, 고통을 징계로 보는 그의 개념과 조화된다. 하지만 그는 욥이 당하는 고통의 진정한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네 뜻대로²: 이 구절의 의미로서 제안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이 너의 소원대로 갚아 주셔야만 하겠느냐? 하나님이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하시겠느냐? 이것은 너에 관한 문제이지 나의 문제는 아니로되, 너는 결정하고 너의 견해를 표명해야 한다.” 이 절의 목적은 욥이 결심을 하도록 호소하려는 것 같다. 엘리후가 앞에서 한 말에 비추어 판단해 볼 때, 그가 촉구하고 있는 결심은 욥이 자기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의 심판이 정당함을 인정하며, 자기의 고통을 징계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제까지 욥은 그와 같은 자백을 함으로써 자기가 무죄하다는 내적인 의식과 타협하기를 거부했다.

총명한 자³: 이 절은 35절에서 인용하는 내용의 서론인 것 같다. 이 본문은 “총명한 사람들이 나에게 말할 것이요, 참으로 내 말을 듣는 모든 지혜로운 자가 말할 것이라”라고 번역할 수 있다.

무식하게⁴: 엘리후는 지혜 있는 자들이 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상기시켜 줌으로써 욥에게 굴욕감을 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저명한 사람들에게 졸렬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극도로 괴로운 일이다.

이는 그 대답이 악인과 같음이라⁵: (제임스왕역(KJV)에는 “악인들을 위한 그의 대답 때문에”로 되어 있음-역자 주). 두 가지 히브리어 필사본에 근거하여 이 구절은, “악한 사람들[의 것]과 같은 대답 때문에”라고 번역할 수 있다. 엘리후는 욥이 가졌다고 여기는 악한 사상을 일소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고통을 당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 말은 가혹하면서 세 친구의 표현 방식과 잘 조화를 이룬다.

그가…손뼉을 치며⁶: 의분이나 조롱 또는 비웃음의 표시(참조 민 24:10; 욥 27:23).

 

2026.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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