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욥-악인을 멸망시키지 않으심에 대한 탄식
장지원
어찌하여 전능자가 시기를 정하지 아니하셨는고¹
어찌하여 그를 아는 자들이
그의 날을 보지 못하는고²
어떤 사람은 지계표를 옮기며³
양떼를⁴ 빼앗아 기르며
고아⁵의 나귀를 몰아가며
과부의 소를 볼모 잡으며
빈궁한 자를 길에서 몰아내나니⁶ 세상에 가난한 자가 다 스스로 숨는구나
그들은 거친 땅의 들나귀 같아서⁷
나가서 일하며 먹을 것을 부지런히 구하니⁸
광야가 그 자식을 위하여 그에게 식물을 내는구나
밭에서 남의 곡식을 베며
악인의 남겨 둔 포도⁹를 따며
의복이 없어 벗은 몸으로 밤을 지내며
추위에 덮을 것이 없으며
산 중 소나기에 젖으며¹⁰
가리울 것이 없어 바위를 안고 있느니라
어떤 사람은 고아를 어미 품에서 빼앗으며¹¹
가난한 자의 옷을 볼모 잡으므로¹²
그들이 옷이 없어 벌거벗고 다니며
주리면서 곡식 단을 메며¹³
그 사람의 담 안에서 기름을 짜며¹⁴ 목말라하면서 술 틀을 밟느니라
인구 많은 성 중에서¹⁵ 사람들이 신음하며
상한 자가 부르짖으나
하나님이 그 불의를 보지 아니하시느니라
또 광명을 배반하는¹⁶ 사람들은 이러하니
그들은 광명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 첩경에 머물지 아니하는 자라
사람을 죽이는 자는 새벽에 일어나서 가난한 자나 빈궁한 자를 죽이고
밤에는 도적 같이 되며
간음하는 자¹⁷의 눈은 저물기를 바라며
아무 눈도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고 얼굴을 변장하며
밤에 집을 뚫는 자¹⁸는 낮에는 문을 닫고 있은즉¹⁹ 광명을 알지 못하나니
그들은 다 아침을 흑암²⁰ 같이 여기니 흑암의 두려움을 앎이니라
<노트> 구약성서 욥기 24장1-17절은, 본문에서 욥은 하나님이 악인에 대해 보응 하시는 날을 알 수 없다고 탄식한다. 그는 불의한 자들의 죄악상을 열거하면서, 하나님이 고통받는 자들의 비참함을 돌아보시지 않으시고, 악인들을 심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시기를 정하지 아니하셨는고¹: 이 절의 첫째 행(行)은 “어찌하여 시기(時期)가 전능자 편에 간수되지 않았는고?”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이 “시기”는 하나님이 행동으로 자신을 나타내시고, 의인들을 옹호하시며, 죄인들을 심판하시는 특별한 경우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욥은 황당함 가운데 하나님이 보응하시는 시기가 있다는 증거를 보지 못한다.
어찌하여 그를 아는 자들이 그의 날을 보지 못하는고²: 즉 “어찌하여 그분을 아는 자들이 그분의 날들을 보지 못하는가?” 물론 보응의 날들을 의미한다.
지계표³: 욥은 자기 눈에 하나님은 의인들을 포상하지도, 죄인들을 형벌하지도 않으시는 것처럼 보이는 증거에 관하여 하나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지계표는 신 19:14; 27:17; 잠 22:28; 23:10; 호 5:10을 참조하라. 동방에서는 흔히 이웃해 있는 두 토지가 어떤 종류의 울타리로 나누어지지 않았을 경우, 한 사람의 땅과 다른 사람의 땅은 오직 지계표에 의해서만 구분할 수 있었는데, 대개 경계선 상에 띄엄띄엄 놓인 단순한 돌들이었다. 쉬운 형태의 도적질은 이 표지(標識)들을 이웃의 토지 안쪽으로 멀리 옮겨 놓는 것이었다.
양떼를 빼앗아⁴: 그들은 다른 이의 양떼를 훔쳐 자기 초장의 양떼와 함께 기른다.
고아⁵: 참조 삼상 12:3. 고아와 과부들을 불친절하게 대하려는 이기적인 사람들의 타고난 성향과 이런 성향을 억제하기 위해 구상된 단속 규정들은 출 22:22; 신 24:17; 27:19; 시 94:6; 사 1:23; 10:2; 렘 5:28; 슥 7:10을 참조하라. 고아의 나귀와 과부의 멍에 메는 소는 그 불행한 사람들의 매우 소중한 재산이었다.
길에서 몰아 내나니⁶: 악인들은 자기들이 길을 사용하고 있을 때엔 가난한 사람들에게 길을 돌아가게 하거나, 자기들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도록 강요한다. 그런 뜻이 아니라면, 이 말은 악인들이 저희의 폭력으로 큰길을 매우 위험하게 만들기 때문에 빈궁하고 궁지에 몰린 사람들은 안전을 위해 샛길을 찾는다는 뜻일 수도 있다. 이런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찾을 수 있는 은신처이면 어디든지 함께 모인다(참조 30:6).
거친 땅의 들나귀 같아서⁷: 이것은 마치 들나귀떼처럼 광야를 돌아다니는 약탈자들의 무리, 다시 말해 사회에서 쫓겨나 광야에서 살며 들나귀처럼 불확실한 생존을 이어가기 위해 애써야 하는 압제받는 자들과 궁핍한 자들을 가리킬 수 있다.
먹을 것을 부지런히 구하니⁸: 즉 저희 자녀들을 위한 양식으로서. 서민들의 곤경에 대한 욥의 관심은 그의 의로운 성품을 반영해 준다.
포도⁹: 이 본문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1) “그들”이란 생계를 위하여 농작물을 훔쳐 가는 약탈자를 가리킨다(제임스왕역(KJV)에는 이 절에 “그들”이라는 주어가 들어 있음-역자 주). (2) “그들”이란 “악인의 포도원에서 이삭을 줍는”(개정표준역(RSV)) 학대받는 빈민을 가리킨다.
소나기에 젖으며¹⁰: 폭풍우를 피할 은신처를 찾고 있는 집 없는 방랑자를 가리키는 생생한 묘사이다.
고아를 어미 품에서 빼앗으며¹¹: 이것은 아버지의 부채 때문에 그 자녀를 노예로 데려가는 부도덕한 풍습을 가리킨다(참조 느 5:5; 왕하 4:7).
볼모 잡으므로¹²: 참조 욥 22:6 주석. “볼모(담보)”는 보증을 위하여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주는 것이다. 여기에서 욥이 범했다고 고발한 범죄는 그가 정당한 사유 없이 담보물을 강요했다는 것인데, 곧 부채가 없거나 부채를 이미 청산한 경우에 담보물을 요구했거나, 부채 액수를 훨씬 초과하는 담보물을 요구한 경우이다(느 5:2~11). 레위기 법(Levitical code)에 따르면 전당 잡은 옷은 해가 지기 전에 돌려줘야만 했다(출 22:26, 27). 맷돌을 전당 잡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신 24:6). 가난한 자들에게서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일은 각 시대에 나타나는 인간의 일반적인 약점이었다.
엘리바스가 욥을 비난하며 열거하는 범죄들은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자주 범하는 악행들이다. 6~9절에 나오는 동사 대부분은 빈도(頻度)가 높다는 개념을 시사하는 시제(時制)로 되어 있는데, 그것은 엘리바스가 이런 죄악들을 욥의 일상적인 생태(生態)로 나타냈음을 암시한다. 욥이 이러한 죄악들을 범했다는 유일한 증거는 이제까지 알려진 사실에 근거해 본다면 그가 당하는 고통 자체이다. 엘리바스의 철학에 따르면 끔찍한 불행은 중대한 범죄를 암시한다.
곡식 단을 메며¹³: 배고픈 사람이 곡식 단 운반하는 일을 하지만 그 곡식으로 자기의 배고픔을 채우도록 허락받지 못하는 상황은 각 시대의 압제를 보여 주는 생생한 묘사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무자비한 자들을 처벌하기 위하여 개입하지도 않으시고, 막거나 방해하지도 않으심으로써 오히려 그들이 악행을 계속하도록 방관하시는 것처럼 보인다.
기름을 짜며¹⁴: 똑같은 불행한 사람들이 그들을 압제하는 자들의 소유지에 고용되어 감람으로 감람유를 짜고 포도로 포도즙을 짠다. 그들은 끊임없는 갈증에 시달리지만 곁에 있는 생산물로써 그들의 갈망을 채우도록 허용받지 못한다.
성중에서¹⁵: 광야나 농장뿐 아니라 성읍에서도 압제받는 자들의 울부짖음이 들려온다. 욥의 목적은 친구들의 잘못된 주장에 반대하여, 하나님은 서둘러 모든 악행을 처벌하시거나 모든 선인(善人)에게 상을 주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종종 악행이 처벌받지 않고, 선행이 보상받지 않은 채 오랫동안 지속되기 때문에, 사람의 품성을 그의 번영이나 역경을 가지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욥의 친구라고 하는 자들의 철학 속의 근본적인 과오는 바로 여기에 있는데, 그것은 사실상 한 나라로서의 유대인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광명을 배반하는¹⁶: 이 절에서 새로운 단락이 시작되는데, 그것은 13절에서 17절까지 이어지며, 약탈자, 간음하는 자, 도적질하는 자들을 다룬다. 이런 형태의 죄악은 어둠 속에서 은밀하게 번성한다. 그런 범죄에 빠진 자들은 “광명을 배반하는” 자들로서, 낮의 광명뿐 아니라 이성과 양심과 율법의 “광명”까지 배반한다. 그들은 도덕적인 자제를 실행하지 못한다.
간음하는 자¹⁷: 이런 사람들도 자기의 먹이를 찾기 위해 어둠을 기다린다. 그는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몰래 변장한다(참조 잠 7:8, 9).
집을 뚫는 자¹⁸: 고대에는 종종 집을 뚫고 밤 도둑질을 했다. 창문은 거의 없었고, 있다 해도 벽의 높은 곳에 있었다. 문들은 걸쇠와 빗장으로 굳게 잠갔지만, 진흙이나 잡석 또는 햇볕에 말린 벽돌로 만든 벽은 연약해서 쉽게 부술 수 있었다. 참조 겔 12:5, 12.
낮에는 문을 닫고 있은즉¹⁹: 이 문장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낮에는 그들이 자신들을 밀폐하고”가 되는데, 이것은 그들이 방안에 틀어박혀 있다는 뜻이다. 범죄자들은 빛을 싫어하고 어둠을 좋아한다.
흑암²⁰: 즉 “깊은 어둠.” 밤의 가장 깊은 어둠이 시작되면 이 사람들은 저들의 일과에 들어간다. 그들에게 밤이 깊어지는 것은 다른 이들에게 동이 트는 것과 같다. 13절에서 시작된 이 단락, 곧 제6, 7, 8 계명을 범하는 자들이 어둠을 좋아하고 빛을 싫어하는 행습을 강조하는 부분이 이 절에서 마감된다.
2026.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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