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욥-자신의 고통은 하나님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는 욥
장지원
내가 포학을 당한다고 부르짖으나¹ 응답이 없고
간구할지라도 신원함이 없구나
그가 내 길을 막아 지나지 못하게 하시고
내 첩경에 흑암³을 두셨으며
나의 영광을 벗기시며 나의 면류관⁴을 머리에서 취하시고
사면으로 나를 헐으시니⁵ 나는 죽었구나
내 소망을 나무 뽑듯 뽑으시고⁶
나를 향하여 진노하시고 원수 같이 보시는구나⁷
그 군대⁸가 일제히 나아와서 길을 수축하고 나를 치며
내 장막을 둘러 진 쳤구나
나의 형제들⁹로 나를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내게 외인이 되었구나
내 친척¹⁰은 나를 버리며
가까운 친구¹¹는 나를 잊었구나
내 집에 우거한 자¹²와 내 계집종들은 나를 외인으로 여기니
내가 그들 앞에서 타국 사람이 되었구나¹³
내가 내 종을 불러도 대답지 아니하니¹⁴
내 입으로 그에게 청하여야 하겠구나
내 숨을 내 아내¹⁶가 싫어하며¹⁵
내 동포들¹⁷도 혐의하는구나
어린 아이들¹⁸이라도 나를 업신여기고
내가 일어나면 나를 조롱하는구나
나의 가까운 친구들¹⁹이 나를 미워하며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²⁰이 돌이켜 나의 대적이 되었구나
내 피부와 살이 뼈에 붙었고²¹ 남은 것은 겨우 잇꺼풀뿐이로구나²²
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기라²³ 나를 불쌍히 여기라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처럼 나를 핍박하느냐²⁴
내 살을 먹고도 부족하냐²⁵
나의 말이 곧 기록되었으면²⁶, 책²⁷에 씌어졌으면²⁸,
철필과 연으로 영영히 돌에 새겨졌으면²⁹ 좋겠노라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³⁰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내가 친히 그를 보리니³¹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외인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³²이 초급하구나
너희가 만일 이르기를³³ 우리가 그를 어떻게 칠꼬 하며
또 이르기를 일의 뿌리가 그에게 있다 할진대
너희는 칼을 두려워할지니라 분노는 칼의 형벌을 부르나니
너희가 심판이 있는 줄을 알게 되리라
<노트> 구약성서 욥기 19장 7-29절은, 욥은 그의 고통의 원인이 전적으로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또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배척하는 까닭도,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불공정한 타격을 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욥이 하나님에게 말함이 아니고, 그의 고통의 발원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욥은 자신의 고통은 악인이 받는 고통과는 별개의 것이라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욥은 자신의 구속자를 환상이 아닌 눔으로 직접 보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그가 자기를 위해 반드시 변호해 줄 것으로 믿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심판의 때가 반드시 있음을 선언한다.
내가 포학을 당한다고 부르짖으나¹: 욥은 처음부터 자기가 부당한 취급을 받았다고 외쳤다(참조 욥 3:26; 6:29; 9:17, 22; 10:3; 렘 20:8; 합 1:2). 아직까지 그는 하나님의 답변을 듣지 못했다.
내 길을 막아²: 참조 욥 3:23; 13:27; 애 3:7, 9; 호 2:6. 이것은 길이 막혀서 앞으로 나갈 수 없는 한 나그네를 예로 든 이야기 같다. 욥은 자기가 가는 길이 방해를 받는다고 느낀다.
흑암³: 욥은 자기를, 어디로 가고 있는지 볼 수 없는 사람처럼 생각한다.
영광…면류관⁴: 위엄과 영예(참조 잠 17:6; 애 5:16; 스 16:12).
나를 헐으시고⁵: 욥은 자기 자신을 성읍에 비유하는 것 같은데, 그 성벽은 사방의 공격을 받아서 무너져 내렸다.
나무 뽑듯 뽑으시고⁶: 또는 “나무처럼 뽑아내시고.” 욥의 소망은 자기가 나이 들어 원숙한 품위를 지닌 채 무덤으로 내려가기까지 친척들과 친구들에 둘러싸여 평온하고 경건한 삶을 이끌어 가는 것이었다.
원수같이 보시는구나⁷: 욥의 말은 자기와 하나님이 원수지간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를 원수처럼 대하시는데, 자기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뜻이다.
군대⁸: 욥은 포위당한 성읍의 비유로 돌아가서, 자기를 공격하는 자들을, 자기를 에워싸려고 둑을 쌓거나 자기의 방어 시설을 파괴하려고 작은 언덕을 쌓는 자들로 나타낸다.
형제들⁹: 욥이 자기의 실제적인 형제들을 가리키는지(42:11), 아니면 이 말을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하여 가까운 친구들이나 비슷한 삶을 사는 계층에게 적용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 절은 욥이 자기 친구들과 친척들 그리고 자기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묘사하는 일련의 표현 가운데 첫 번째 것이다. 19:13~19에서 다음과 같은 표현들이 나온다. “형제들”, “나를 아는 모든 사람”, “친척”, “가까운 친구”, “내 집에 우거한 자”, “계집종들”, “종”, “아내”, “어린아이들”, “가까운 친구들”,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
친척¹⁰: 문자적으로 “가까운 사람들.” 이 단어는 혈육이나 애정이나 거처 등이 가까운 것을 나타낸다.
가까운 친구¹¹: 참조 시 41:9 “나의 신뢰하는바 내 떡을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 발꿈치를 들었나이다”
우거한 자¹²: 히브리어 가림(garim), 문자적으로 “체류자들.” 이 말은 손님, 나그네, 종, 소작인들을 나타낼 수 있다. 본질적인 개념은 그들이 얼마 동안 집에 살기는 하지만 영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타국 사람이 되었구나¹³: 즉 그들이 나를 가장(家長)으로 대우하지 않는구나.
대답지 아니하니¹⁴: 욥은 자기 종들의 순종에 익숙해져 있었다. 이제 그들은 자기를 무시한다.
내 숨을…싫어하며¹⁵: 그의 질병 때문에 혐오스럽게 여겼을 것이다.
내 아내¹⁶: 욥기 전체를 통하여 욥의 아내는 한 사람만 언급되는데, 그가 분명히 일부다처제가 보편화 된 시대에 살았던 점을 감안하면 그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내 동포들¹⁷: (제임스왕역(KJV)에는 이 구절이 “though I entreated for the children’s sake of mine own body”[내가 내 몸의 자녀들을 위하여 탄원하였건만]으로 되어 있음-역자 주). 문자적으로 “나의 태.” 즉 자기 어머니의 태(참조 3:10). 욥이 말하는 자녀들이란 자기 형제 자매들인 것이 분명하다.
어린아이들¹⁸: 히브리어 아윌림(‘awilim). 여기와 21:11에서처럼 “어린아이들” 또는 16:11에서처럼 “경건치 않은 자들”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아이들이 욥의 나이에 합당한 존경심을 나타내지 않는 것으로 묘사된다.
나의 가까운 친구들¹⁹: 문자적으로 “나의 모든 조언자들.”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²⁰: 참조 시 41:9; 55:12~14; 렘 20:10. 가까운 친구들과 멀어지는 것은 생애의 가장 쓰라린 경험이다.
내 피부와 살이 뼈에 붙었고²¹: 그의 질병 때문에 심히 초췌해진 상태를 가리키는 말.
남은 것은 겨우 잇꺼풀뿐이로구나²²: 욥이 겨우 살아 있음을 나타내는 속담 투의 표현. 질병은 그가 야위고 쇠약해질 때까지 그를 괴롭혔다.
불쌍히 여기라²³: 이 구절은 욥기에 나오는 가장 애처로운 호소이다. 욥은 자기가 의지할 데 없고 얼마나 외로운지를 나타낸다. 그는 자기의 참상을 가장 웅변적으로 묘사했다. 이제 그는 자기 친구들에게 동정해 줄 것을 애원한다.
나를 핍박하느냐²⁴: 너희는 왜 아무런 이유도 알리지 않고 나를 핍박하느냐? 너희는 왜 내가 범하지도 않은 죄를 가지고 나를 비난하느냐?
내 살을 먹고도 부족하냐²⁵: “너는 왜 항상 나를 중상모략하느냐?”는 뜻을 가진 동방의 관용구. 단 3:8에서 “참소하니라”로 번역된 이 단어는 문자적으로 “~의 조각들을 먹었다”이다. 중상하는 자나 비난하는 자를 가리켜 그 피해자의 살을 탐식(貪食)하는 자로 비유하여 묘사한다.
곧 기록되었으면²⁶: 이것은 바로 뒤에 나오는 말들을 가리킬 것이다. 이 성경절은 욥기에 나오는 가장 중요한 구절 중의 하나를 도입한다.
책²⁷: 히브리어 세페르(seper). 반드시 분량이 많은 문서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이 단어는 왕들의 역사(왕상 11:41)처럼 방대한 기록뿐 아니라, 이혼 증서(신 24:1, 3), 매매 증서(렘 32:11, 12), 일반적인 기록부(창 5:1), 율법책(출 24:7) 등을 가리키는 데도 사용된다.
쓰여졌으면²⁸: (제임스왕역(KJV)에는 “printed”[인쇄되었으면]로 되어 있음-역자 주). 문자적으로 “새기다.” 욥 당시에는 인쇄술이 알려지지 않았으므로 “인쇄되었다”는 말은 잘못된 개념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돌에 새겨졌으면²⁹: 욥은 자기의 글을 쇠로 만든 정(iron chisel)으로 바위에 깊이 파고, 정으로 파낸 홈에 납을 채우기 원한다. 바로 이런 관습을 고대에 시행했다는 사실이 오늘날 알려지고 있는데, 예를 들어서 베히스툰(Behistun) 명각(銘刻)과 같은 것이다(참조 76쪽 사진; 제1권, 108, 122).
나의 구속자³⁰: 이것은 욥기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본문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 구절은 욥이 절망에서 확신과 소망으로 상당히 전진하고 향상했음을 나타낸다. “욥은 실망과 낙담의 깊은 구덩이에서 하나님의 자비와 구원하시는 능력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높은 경지로 올라갔다”(선지자와 왕, 163). “구속자”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고엘(go’el)은 “보수할 자”나 “보수하는 자”(민 35:12, 19, 21, 24, 25, 27) 또는 혈족이나 기업을 무를 자(룻 2:20; 3:9, 12; 4:1, 3, 6, 8, 14; 참조 룻 2:20 주석)라고도 번역된다. 하나님은 사람의 권리를 옹호하고 다른 사람의 지배 아래 있는 자들을 구속하신다는 의미에서 종종 고엘이라 불린다(사 41:14; 43:14; 44:24; 47:4 등). 욥은 이미 자기와 하나님 사이에 “판결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표시했다(9:32~35). 16:19에서 그는 자기 “증인이 하늘에 계”시다는 확신을 천명했다. 16:21에서 그는 하나님께 자기의 소송을 진정(陳情)해 줄 대변자를 갈망한다. 17:3에서는 그가 하나님께 자기를 위해 보증인이 되어 달라고 요청한다. 하나님을 “판결자”, 증인, 대변자, 보증인으로 인정한 그가 이제 하나님을 자기의 구속자로 인정하는 것은 지극히 논리적이다. 이 본문은 하나님을 인간의 구속주로 나타내는 구약의 계시들 가운데 하나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명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완전히 계시된 심오한 진리이다.
(후일에: 이 말은 욥이 아무리 오랫동안 고통을 받는다 해도, 재난이 아무리 연장된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결국 자기의 결백을 입증해 주실 것임을 온전히 확신한다는 뜻이다. 25, 26절의 어법은, 하나님이 “땅 위에 서”시고 욥이 “하나님을 볼” 때에 그분께서 그를 옹호해 주실 것임을 시사한다. 이것은 분명히 그가 부활을 어렴풋하게나마 감지했음을 뜻한다.)
육체 밖에서³¹: 이 본문은 번역상 여러 가지 어려움을 제시한다. 히브리어 본문에는 “벌레들”이나 “육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제임스왕역(KJV)에는 이 절이 “And though after my skin worms destroy this body, yet in my flesh shall I see God.”[비록 내 피부의 벌레들이 이 몸을 멸한 후에라도 나는 내 육체 안에서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상이한 영어 역본들에는 본문이나 난외주(欄外註)에 흥미롭고도 다양한 번역이 나온다. 개정역(RV)(RV)의 난외주에서 볼 수 있는 번역(교육, 156쪽에 인용됨)은 히브리어를 매우 문자적으로 제시한다. “또한 내 피부가 멸한 후에 심지어 나의 육체로부터 내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 어떤 이들은 “나의 육체로부터” 대신에, “나의 육체 밖에서” 또는 “나의 육체를 떠나서”라고 번역한다.
이런 차이는 히브리어 전치사 민(min)을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기 때문에 생기는데, “~안에”(제임스왕역(KJV)), “~로부터”(개정역(RV)), “~밖에서”(개정표준역(RSV)) 등 다양하게 번역했다. 민(min)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다. (1) “~로부터”(from). “모세가 산에서 내려”(출 19:14)의 경우처럼 이동을 나타낸다. (2) “~에서 떨어져”(away from). “회중이 알지 못하게”[문자적으로 “회중의 눈 밖에서”]의 경우처럼 분리의 개념을 지닌다. (3) “물에서”(출 2:10)처럼 “~에서 밖으로”(out of). (4)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의미들도 있다. “~를 벗어나서”(off), “~의 곁에”(on the side of), “~의 위에”(on), “~의 결과로서”(in consequence of), “~에”(at), “~으로 인하여”(by). 이 전치사가 나올 때마다 문맥에 비추어 어떤 의미인가를 선택하여 결정해야 한다.
지금 살펴보고 있는 본문의 경우, 여러 가지 의미 가운데 어떤 것을 수용하더라도 육체적인 부활을 믿는다는 암시가 있으며, 적어도 육체적인 부활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나의 육체 안에서”나, “나의 육체로부터”라는 번역은 그와 같은 믿음을 분명히 나타내는 진술이다. “나의 육체 밖에서” 또는 “나의 육체로부터 떨어져”라는 의미를 지지하는 번역은, 욥이 현재의 육체가 아닌 부활한 육체로 하나님을 볼 것을 기대했다는 개념을 제시하는 견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런 견해는 고전 15:36~50에서 바울이 한 진술과 근본적으로 같다. 만일 욥이 그런 의도로 이 말을 했다면, 그는 언젠가 질병에 시달리고 고통받는 육체에서 해방될 것이며, 영광스러운 새 육체 가운데서 하나님을 보는 특권을 얻을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하고 있는 셈이다(참조 빌 3:21; 각 시대의 대쟁투 644, 645,).
내가 친히 그를 보리니³¹: “욥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를 바라보면서 ‘내가 친히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외인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였다”(실물교훈, 421). 욥은 부활 시에 자기의 인격적 실체를 유지할 것이라고 시사한다.
내 마음³²: 히브리어 본문에는 “비록”(though)이 없다(제임스왕역(KJV)에는 이 부분이 “though my reins be consumed within me”[비록 내 신장(腎臟)이 내 속에서 소멸된다 해도]로 되어 있음-역자 주). 이 문장은 앞의 문장과 별도의 것이다. 신장은 확고한 감정의 원천으로 여겨졌으며, 욥은 여기서 자기가 방금 말한 영광스러운 사건들이 성취되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있음을 표현하는 것 같다.
너희가 만일 이르기를³³: 욥은 친구들을 협박한다. 사실상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만일 내가 말한 다음에도 너희가 계속해서 나를 대적하여 괴롭히고, 나를 핍박하는 최악의 방법을 의논하며 내가 잘못했다고 추정한다면, 너희는 두려워해야 한다.” 욥의 친구들은 그에게 거듭거듭 심판을 선고했다. 이제 욥은 더 큰 확신을 가지고, 도리어 자기 친구들이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을 받을 것이라고 협박한다.
202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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