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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소발에 대한 두 번째 답변

노파 2026. 4. 10. 00:02

 

욥-소발에 대한 두 번째 답변

장지원

 

 

욥이 대답하여 가로되¹

너희는 내 말을 자세히 들으라 이것이 너희의 위로²가 될 것이니라

나를 용납하여³ 말하게 하라

내가 말한 후에 또 조롱할지니라⁴

나의 원망이⁵ 사람을 향하여 하는 것이냐

내가 어찌 초급하지 아니하겠느냐⁶

너희는 나를 보아라, 놀라라⁷, 손으로 입을 가리우라

내가 추억하기만 하여도, 답답하고 두려움이 내 몸을 잡는구나⁸

어찌하여 ⁹악인이 살고 수를 누리고¹⁰ 세력이 강하냐

씨가 그들의 앞에서 그들과 함께 굳게 서고¹¹ 자손이 그들의 목전에서 그러하구나

그 집이 평안하여 두려움이 없고¹²

하나님의 매가 그 위에 임하지 아니하며

그 수소는 영락없이 새끼를 배게 하고 그 암소는 새끼를 낳고 낙태하지 않는구나

그들은 아이들을 내어보냄이 양떼 같고 그 자녀들은 춤추는구나¹³

그들이 소고와 수금으로 노래하고 피리¹⁴ 불어 즐기며

그 날을 형통하게 지내다가 경각간에¹⁵ 음부에 내려가느니라

그러할지라도 그들은 하나님께 말하기를

우리를 떠나소서¹⁶

우리가 주의 도리 알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나이다

전능자가 누구기에 우리가 섬기며

우리가 그에게 기도한들 무슨 이익을 얻으랴 하는구나

그들의 복록이 그들의 손으로¹⁷ 말미암은 것이 아니니라

악인의 계획¹⁸은 나와 판이하니라

 

악인의 등불이 꺼짐이나

재앙이 그들에게 임함이나

하나님이 진노하사 그들을 곤고케 하심이나¹⁹

그들이 바람 앞에 검불²⁰ 같이, 폭풍에 불려가는 겨 같이 되는 일이 몇 번이나 있었느냐²¹

하나님이 그의 죄악을 쌓아 두셨다가 그 자손에게²² 갚으신다 하거니와

그 몸에 갚으셔서²³ 그로 깨닫게 하셔야 할 것이라

자기의 멸망을 자기의 눈으로²⁴ 보게 하시며

전능자의 진노²⁵를 마시게 하셔야 할 것이니라

그의 달 수가 진하면

자기 집에 대하여²⁶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

그러나 하나님은 높은 자들을 심판하시나니

누가 능히 하나님께 지식을 가르치겠느냐²⁷

어떤 사람은 죽도록²⁸ 기운이 충실하여 평강하며 안일하고

그 그릇²⁹에는 젖이 가득하며

그 골수는 윤택하였고

어떤 사람은 죽도록 마음에 고통하고³⁰

복을 맛보지 못하였어도

이 둘이 일반으로³¹ 흙 속에 눕고 그 위에 구더기가 덮이는구나

 

내가 너희의 생각을 알고

너희가 나를 해하려는 궤휼³²도 아노라

너희의 말이 왕후의 집³³이 어디 있으며

악인의 거하던 장막이 어디 있느뇨 하는구나

너희가 길 가는 사람들³⁴에게 묻지 아니하였느냐

들의 증거를 알지 못하느냐

악인은 남기워서³⁵ 멸망의 날을 기다리움이 되고

멸망의 날을 맞으러³⁶ 끌려 나감이 된다 하느니라

누가 능히 그의 행위를 면박하며³⁷

누가 능히 그의 소위를 보응하랴마는

그를 무덤으로 메어 가고³⁸ 사람이 그 무덤을 지키리라

그는 골짜기의 흙덩이를 달게 여기고³⁹

그 앞선 자가 무수함 같이⁴⁰ 모든 사람이 그 뒤를 좇으리라

이러한즉 너희의 위로가 헛되지 아니하냐⁴¹ 너희의 대답은 거짓뿐이니라

 

<노트> 구약성서 욥기 21장은, 욥의 논리 핵심은 하나님의 법칙을 공박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욥이 나타내고자 하는 요점은, 친구들이 악인의 운명과 지금 당하고 있는 자신의 운명을 동일시할 수 없다는 점이다. 곧 욥의 형편을 악인의 운명과 맞추어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욥이 대답하여 가로되¹: 여기서부터 세 번째 주기(週期)의 변론(21~31장)이 시작되는데, 여기엔 욥의 변론이 세 번, 엘리바스의 변론이 한 번, 빌닷의 변론이 한 번 포함된다. 소발의 변론은 이번 주기에 빠져 있다.

위로²: 엘리바스는 자신의 말을 하나님의 위로라고 했다(15:11). 여기에서 욥은 경청하는 특권 가운데 위로를 찾는다. 때때로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영혼을 치료하는 데 더 효과가 있다.

나를 용납하여³: 즉 나를 허락하여. 첫째 줄의 “나”는 강조형이다. 욥은 상대방들이 자기에게 변론에 참여할 수 있는 공정한 기회를 허락하지 않는다고 암시하는 것 같은데, 그것은 정당성을 찾기 어려운 비난이다. 대화가 시작된 후로 욥은 자기 위로자들보다 더 많은 말을 했다.

조롱할지니라⁴: 이 말은 특히 직전에 했던 변론에서 틀림없이 욥의 마음을 슬프게 했을 소발에게 한 것으로 보이는데, 욥이 이 답변을 한 다음에 소발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나의 원망⁵: 욥은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생긴 어떤 일에 대하여 자기가 원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초급하지 아니하겠느냐⁶: 자기에게 벌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 그가 어찌 무관심할 수 있겠는가?

놀라라⁷: 욥은 이제 악인들이 길고도 평안하며, 번영하는 삶을 산다는 주장을 하려고 한다. 이런 혁명적인 사상이 자기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 혐오감과 의분을 일으킬 것을 알고 그는 그들이 충격을 받지 않도록 대비시킨다.

두려움이 내 몸을 잡는구나⁸: 욥도 자기가 하려는 말의 의미를 생각할 때 두려움으로 가득 찬다. 동시대인들의 생각과 조화되지 않는 철학적 사상을 표현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어찌하여⁹: 앞의 절들은 욥이 단순히 논란을 하기 위해 이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님을 나타내 준다. 그는 진심으로 이 문제에 관심이 있다. 그는 악인들이 성공하고 번영하는 것을 보았다. 자기 친구들과는 달리 그는 이런 이상한 현상을 기꺼이 인정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인정한다 해도, 그는 그 사실과 자기 자신을 조화시키기가 어렵다는 걸 깨닫는다. 이런 혼란스런 문제의 해답을 얻고자 했던 사람이 욥만은 아니다.

수를 누리고¹⁰: 소발은 악인의 기쁨이 짧다고 주장했다(20:5). 더 큰 통찰력을 통하여 욥은 악인의 번영이 저들의 평생 동안 지속될 수 있음을 안다.

씨가…굳게 서고¹¹: 욥의 친구들은 악인들의 자손이 끊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18:19). 이런 견해에 대하여 욥은 이의를 제기한다.

평안하여 두려움이 없고¹²: 욥의 친구들은 정반대되는 주장을 폈다(15:21~24; 20:27, 28).

그 자녀들은 춤추는구나¹³: 걱정 없는 행복과 번영의 모습이다.

소고…수금…피리¹⁴: “소고”는 작은 손북(hand drum)이었다. 수금은 나무로 만든 몸체를 가로질러 네 개에서 일곱 가닥의 줄을 팽팽하게 매어 놓은 단순한 악기였다. 피리는 대[竹]로 만든 단순한 관악기였다. 이 악기들은 최초의 세 가지 악기, 곧 타악기, 현악기, 관악기를 대표하는 것으로 보인다.

경각간에¹⁵: 악인들은 번영하고, 근심 없는 삶을 살며, 고통이나 고질병 없이 죽는다. 악인의 경험이 항상 그렇다고 욥이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평생 동안 충분히 관찰했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흔히 있음을 안다. 삶에 대한 이런 상황 묘사는, 악인들은 반드시 양심의 고통을 당하고(15:20), 자손이 없으며(18:19), 비극적인 죽음을 당한다(20:24)는 욥의 친구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다.

우리를 떠나소서¹⁶: 이 말은 각 시대의 불신 철학을 나타낸다. 자아 만족에 빠진 사람은 하나님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지 않는다. 그는 전능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에게 직접적인 유익을 약속하는 것이 아니면 무엇에든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들의 손으로¹⁷: 어떤 이들은 이 구절을 “그들의 손에 그들의 복록이 있지 아니하냐?”라는 의문형으로 번역한다.

계획¹⁸: 이 구절은 “악인의 모략이 내게서 멀어질지로다!”라고 번역할 수 있다. 사단은 욥이 현세의 상급을 위하여 하나님을 섬긴다고 비난했다. 욥은 하나님의 길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분께 매달림으로써 사단의 비난을 논박했다. 이제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악인들은 번영하고 자기는 그렇지 않음을 알지만 자기의 운명을 악인들과 함께하기를 거절한다.

그들을 곤고케 하심이나¹⁹: 이 행은 앞의 두 행과 유사한 질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럴 경우 “하나님이 당신의 진노 가운데 슬픔을 주시는 일이 얼마나 자주 있느냐?”라는 뜻이 된다.

검불²⁰: 이 절은 앞절에서 시작된 여러 질문의 일부로서 이어져야 할 것이며, “그들이 검불과 같을 때가 얼마나 자주 있느냐?”라고 이해해야 한다.

몇 번이나 있었느냐²¹: 빌닷은 “악인의 빛은 꺼”질 것이라고 말했다(18:5). 욥은 이제 그런 일이 실제로 얼마나 자주 일어나느냐고 묻는다.

그 자손에게²²: 욥은 자기 주장에 대해 상대방이 다음과 같은 반론을 펼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 같다. “너는 ‘하나님이 악인의 자손을 벌하심으로써 악인을 벌하신다’고 말하는구나.”

그 몸에 갚으셔서²³: 이 절의 이 부분은 욥의 대답으로 보인다. “그분이 그것을 그들 자신에게 갚으셔서 그들로 깨닫게 하셔야 할 것이라”(개정표준역(RSV)). 욥은 죄인들의 자손이 아닌 죄인들 스스로가 악행의 충격을 느끼게 되길 바란다.

자기의 눈으로²⁴: 이 절은 앞절의 사상을 이어 주며, “그들 자신의 눈으로”라고 해석할 수 있다. 욥은 악인들이 번영하고 외견상 은총을 받다가 죽는 것을 보아 왔으나,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는 악행이 이생에서 보응을 받는다는 자기 친구들의 주장이 진실이기를 바라지만, 경험은 그들의 견해가 옳지 않음을 그에게 가르쳐 주었다.

진노²⁵: “그들이 마시게 하라”(참조 신 32:33; 사 51:17, 22; 렘 25:15; 계 14:8).

자기 집에 대하여²⁶: 욥의 친구들은 악인들의 자손이 벌을 받게 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던 것 같다(참조 19절 주석). 욥은 악인들이 그들 자신이 범한 죄악 때문에 고통을 받아야 한다고 대답하는데, 그것은 사실상 악인들이 저희 사후(死後)에 그들 집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얼마나 걱정을 하겠느냐고 말하는 셈이다. 참조 겔 18:1~23.

하나님께 지식을 가르치겠느냐²⁷: 욥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없음을 지적하면서,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추측하거나 변경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임을 인정한다. 이것은 아주 심오한 사상이다.

어떤 사람은 죽도록²⁸: 다시금 욥은 고통을 받거나 고통에서 해방되는 일에 대한 이유를 밝혀줄 수 있는 믿을 만한 규범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릇²⁹: (제임스왕역(KJV)에는 “breasts”[가슴들]로 되어 있음-역자 주). 히브리어 아티님(‘at.inim). 구약에서 이곳에만 나오며 그 뜻은 분명치 않다. 현대 히브리어에서 아탄(‘at.an)은 감람(橄欖) 같은 것을 그릇에 “집어넣다”는 뜻이다. 이로부터 어떤 이들은 “들통”(pails)이라는 의미를 이끌어낸다(참조 제임스왕역(KJV) 난외주). 70인역은 “창자”로, 수리아역은 “측면” 즉 “옆구리”로 번역한다. 개정표준역(RSV)은 이것을 “그의 몸은 기름이 가득 하고”라고 번역한다. 어떤 것이 바른 번역이든지, 이 구절은 분명히 번영을 나타낸다.

마음에 고통하고³⁰: 어떤 이들은 번영하는 데 비하여 다른 이들은 비참한 삶 후에 고통 가운데 죽는다. 욥은 이러한 삶의 변칙적인 사례들을 설명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일반으로³¹: 죽은 후에는 양편의 상황이 똑같다(참조 3:20 주석).

궤휼³²: 욥은 친구들이 자기를 매우 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안다. 그는 그들이 자기를 동정하지 않는 것도 안다.

집³³: 욥의 친구들은 악인들의 집이 파멸될 것이라고 주장했다(8:15, 22; 15:34; 18:15, 21). 그들은 자기들의 이론을 고수했다. 또한 불행을 당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악하다고 판정했기 때문에, 그들의 결론은 그들 자신의 견해로 말미암아 신뢰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길 가는 사람들³⁴: 욥은 자기 친구들에게, 여러 나라를 다니며 많은 사람을 관찰해 본 여행자들에게 물어서 그들이 자기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지 알아보라고 요청한다. 욥은 그런 사람들의 관찰은 많은 선인(善人)이 고통을 당하고 많은 악인이 번영하는 것을 나타내 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남기워서³⁵: 히브리어 예하세크(yeh.asek). “보류하다”(withhold)는 의미의 하사크(h.asak)에서 파생되었다(참조 창 20:6; 22:12, 16). 이 단어는 때때로 “면하게 하다”(to spare)로 번역되기도 했다(참조 왕하 5:20; 시 78:50). 이 문장은 악인들이 장차 이를 심판에서 형벌받게 될 것을 고려해 이생의 괴로움을 면제받는다는 의미로 보인다. 이런 소견은 베드로의 진술과 조화된다(벧후 2:9).

멸망의 날을 맞으러³⁶: 어떤 이들은 이 구절을 “멸망의 날에”로 번역한다. 그들은 “진노의 날까지”를 “진노의 날에”로 번역한다. 이런 일은 히브리어 전치사 르(le)의 의미를 왜곡하기 때문에 생기는데, 르(le)의 적절한 의미는 “~까지” 또는 “~을 위하여”이다. 이렇게 의미를 바꾸는 것은 이 구절의 내용을 문맥과 조화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생기는데, 왜냐하면 욥이 지금까지도 여전히 악인은 괴로움을 면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가 능히…면박하며³⁷: 악인이 권세를 가지고 있는 동안에는 아무도 감히 그의 면전에서 그를 정죄하거나, 그의 사악함을 인하여 그를 형벌하지 못한다.

무덤으로 메어 가고³⁸: “메어 가고”로 번역된 단어는 열을 지어 가듯이 “호송하다”, “데려가다”라는 의미이다. 이곳의 개념은 존경을 크게 받던 악인이 죽어 조객들의 행렬 가운데 자기 무덤으로 옮겨지는 모습인 것 같다.

달게 여기고³⁹: 비유적인 표현으로, 죽은 자에게도 의식이 있음을 가르치는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참조 시 146:4 주석).

무수함같이⁴⁰: 가인의 살인 이후로 무덤의 문들은 끊임없이 열리고 닫히는 일을 반복했다. 오직 에녹과 엘리야 두 사람만이 예외였다. 잔인한 추수꾼인 죽음의 신(Grim Reaper)은 결국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고전 15:54) 될 때까지는 그의 조종(弔鐘) 울리는 일을 계속할 것이다.

헛되지 아니하냐⁴¹: 욥은 자기 친구들에게 그들의 철학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이생에서 하나님이 보응하신다는 생각은 인간의 경험적인 사실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너희가 진리를 말하지 않기 때문에 너희의 말에는 위로가 없다.” 이 장은 “반대자들에 대한 욥의 승리”라고 부를 수 있다. 그는 처음과 같이 흥분하지 않는다. 그의 진술은 개인적인 면이 줄어들고 더욱 심오해진다. 이 말은 진지함과 확신과 위엄이 특색을 이룬다.

 

2026.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