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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빌닷이 주장하는 예정설

노파 2026. 4. 6. 00:02

 

욥-빌닷이 주장하는 예정설

장지원

 

 

악인의 빛은 꺼지고¹ 그 불꽃은 빛나지 않을 것이요

그 장막 안의 빛은 어두워지고 그 위의 등불²은 꺼질 것이요

그 강한 걸음이 곤하여지고³ 그 베푼 꾀⁴에 스스로 빠질 것이니

이는 그 발이 스스로 그물⁵에 들어가고 얽는 줄을 밟음이며

그 발뒤꿈치는 창애⁶에 치이고 그 몸은 올무⁷에 얽힐 것이며

그를 동일 줄⁸이 땅에 숨겼고 그를 빠뜨릴 함정이 길에 베풀렸으며

무서운 것이 사방에서 그를 놀래고 그 뒤를 쫓아 올 것이며

그 힘은 기근을 인하여 쇠하고⁹ 그 곁에는 재앙이 기다릴 것이며

그의 백체¹⁰가 먹히리니 곧 사망의 장자¹¹가 그 지체를 먹을 것이며

그가 그 의뢰하던 장막에서 뽑혀서¹² 무서움의 왕¹³에게로 잡혀가고

그에게 속하지 않은 자가 그 장막에 거하리니¹⁴ 유황¹⁵이 그 처소에 뿌려질 것이며

아래서는 그 뿌리가 마르고¹⁶ 위에서는 그 가지가 찍힐 것이며

그의 기념¹⁷이 땅에서 없어지고 그의 이름이 거리에서¹⁸ 전함이 없을 것이며

그는 광명 중에서 흑암으로 몰려 들어가며¹⁹ 세상에서 쫓겨날 것이며

그는 그 백성 가운데서 아들도 없고 손자도 없을 것이며²⁰ 그의 거하던 곳에는 한 사람도 남은 자가 없을 것이라

그의 날을 인하여 뒤에 오는 자²¹가 앞선 자의 두려워 하던 것 같이 놀라리라

불의한 자의 집이 이러하고²²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처소도 그러하니라

 

<노트> 구약성서 욥기 18장 5-21절은, 빌닷은 악인들의 길이 이미 죽음의 길로 정해져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들의 멸망은 하나님께서 직접 내려오는 벌에 의해 초래되는 것이 아니라, 처음 그들이 획책하는 순간부터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빌닷은 이전과는 달리(욥 8:20-22), 소망의 말은 전혀 하지 않는다. 단, 빌닷은 두 가지 영역, 곧 빛의 영역과 어둠의 영역이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하나님과 의인은 전자에 소하며, 악한 자는 후자에 속해 있다고 한다. 물론, 욥은 후자에 거주할 것이다.

악인의 빛은 꺼지고¹: 이 절부터는, 악인에겐 확실히 재난이 닥친다는 사실을 보여 주려는 듯한 일련의 속담들이 시작된다. 여기 나온 말은 나그네와 손님을 위해 항상 불을 밝혀 놓는 아랍 사람의 손님 접대 풍습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참조 잠 13:9; 24:20).

그 위의 등불²: 동방 사람들에게 등불을 끈다는 말은 완전한 황폐를 상징한다. 집안에서 타고 있는 등불과 화로에서 타고 있는 불은 그 주인의 행운이 손상되지 않고 여전함을 상징한다. 그런 행운이 깨질 때 불빛은 꺼진다(참조 21:17).

곤하여지고³: 그의 행동 반경이 좁아지고, 그의 활동이 제한되며, 그의 능력이 한정될 것임을 뜻하는 상징적인 표현.

그 베푼 꾀⁴: 참조 욥 5:13; 시 7:14~16; 9:16; 10:2; 호 10:6.

어떤 이들은 사냥에 쓰이는 다양한 기술과 방법이 7~13절에 암시되어 있다고 보았다. 7절에서는, 여러 사람이 숲 속에 널리 퍼져 그들 앞의 사냥감을 몰아, 넓은 기슭에서 좁은 지점으로 공간을 좁혀간다. 8~10절은 사냥감을 잡기 위해 준비한 그물, 덫, 함정들을 묘사한다. 그 주장에 따르면, 11절은 사냥감을 무자비하게 몰아대며 짖는 개들을 암시한다. 12, 13절은 마침내 그 사냥감들을 포획하는 모습을 묘사한다. 이런 해석은 상당히 상상력이 풍부한 것처럼 보인다. 빌닷은 결국 잡힐 수밖에 없음을 강조하는 비유들을 나열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그물⁵: 참조 시 7:15; 9:15; 35:8; 57:6; 잠 26:27. 악인들은 다른 사람들을 파멸시키려고 음모하는 동안에 저들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창애⁶: 새[鳥] 덫.

올무⁷: (제임스왕역(KJV)에는 “강도”[robber]로 되어 있음-역자 주). 도둑을 붙잡거나 가둬두기 위해서 설치한 “덫”이 더 맞다.

동일 줄⁸: 빌닷은 덫을 놓는 기술을 묘사하기 위해 자기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말을 열거한다. 고대 문서 가운데서 덫을 놓기 위한 매우 다양한 장치들을 볼 수 있다.

기근을 인하여 쇠하고⁹: 악인이 당하는 여러 가지 재앙 가운데 배고픔의 고통이 더해질 것이다.

백체¹⁰: 문자적으로 “그의 피부의 부분들.” 즉 사지나 몸의 일부를 가리킨다.

사망의 장자¹¹: 질병들을 가리켜 사망의 아들들, 곧 죽음을 초래하는 아들들이라고 언급하는 것 같다. 이 경우에 “사망의 장자”는 특히 고통을 주는 질병을 가리킬 것이다. 어쩌면 욥과 그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말일 수도 있다.

장막에서 뽑혀서¹²: 그 집은 안전함을 상실한다.

무서움의 왕¹³: 죽음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 장막에 거하리니¹⁴: 의미가 모호한 구절이다. 자기 집에 거하는 나그네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유황¹⁵: 평원에 있는 성읍들의 멸망을 가리킬 수도 있고(창 19:24), 소위 “하나님의 불”(욥 1:16)이 욥의 재산을 파멸시킨 것을 암시할 수도 있으며, 단순히 황폐함을 상징하기 위하여 언급한 유황일 수도 있다.

뿌리가 마르고¹⁶: 참조 14:8. 완전한 황폐를 나타내는 또 다른 표현.

기념¹⁷: 악인이 죽을 때 세상은 아무런 상실감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참조 시 34:16; 109:13).

거리에서¹⁸: 즉 바깥 세상에서.

흑암으로 몰려 들어가며¹⁹: 욥이 기꺼이 물러가고자 하는 곳, 가고 싶은 피난처로 제시하는 곳(참조 10:21, 22; 17:16)을, 빌닷은 욥이 자기 죄 때문에 쫓겨나게 될 유배지로 묘사한다.

아들도 없고 손자도 없을 것이며²⁰: 악인은 집 없이 이곳저곳에서 머무는 방랑자가 될 것이다. 자기 백성 중에서나 자기의 임시 거처 가운데서 그는 후손을 남기지 못할 것이다. 빌닷은 아마도 욥의 자녀들이 몰사한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뒤에 오는 자²¹: 이 구절은 “후손”을 뜻하는 말로 해석되어 왔다. 평행 구절인 “앞선 자”는 “앞에 있다”, “직면하고 있다”는 의미를 가질 수 있는 히브리어 카담(qadam)에서 파생되었으며, 따라서 “동시대인들”로 해석한다. 어떤 이들은 이 두 구절을 “서방에서 온 자들”과 “동방에서 온 자들”로 번역한다. 그런 번역도 가능하긴 하지만, 그렇게 번역된 형용사들이 서방이나 동방 거주자들에게 사용된 사례를 다른 곳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불의한 자의 집이 이러하고²²: 빌닷은 이 장에서 쏟아 놓는 비난 가운데 놀랍거나 새로운 것을 전혀 추가하지 못한다. 그는 새로운 격정을 가지고 욥의 재난은 죄의 결과라는 자기 생각을 표현한다. 빌닷이 더욱 격렬하게 욥을 공격한 이유는 어떤 면에서 자기가 전에 했던 충고들이 쇠 귀에 경 읽기가 되었다는 사실로 인해 느낀 좌절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빌닷은 논리가 바닥이 났으므로 그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격정에 의존한 것으로 보인다.

 

2026.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