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욥-유일한 소망을 피력
장지원
나의 날이 지나갔고¹
내 경영, 내 마음의 사모하는 바가 다 끊어졌구나
그들²은 밤으로 낮을 삼고
빛이 어두운데 가깝다 하는구나
내 소망이 음부³로
내 집을 삼음에 있어서 침상을 흑암에 베풀고
무덤더러 너는 내 아비라⁴,
구더기더러 너는 내 어미,
내 자매라 할진대
나의 소망⁵이 어디 있으며
나의 소망을 누가 보겠느냐
흙 속에서 쉴 때는 소망이 음부 문으로 내려갈 뿐이니라⁶
<노트> 구약성서 욥기 17장 11-16절은, 욥이 바라고 있는 유일한 소망은 자기가 죽기 전에 하나님의 법정에 서서 자기의 일을 소상히 밝혀 고통과 두려움과 배신감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나의 날이 지나갔고¹: 실제로 욥은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일이 뭐 그리 중요한가?”라고 질문하고 있다. 그는 회복에 대한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고 느낀다. 그가 하는 짧은 말들은 죽어가는 사람의 헐떡거림을 닮았다.
그들²: 즉 욥의 친구들. 그들은 욥이 회개한다면 그의 날이 밝아질 것이라는 확신을 주고자 노력했다(5:18~26; 8:21, 22; 11:15~19). 그들은 자기네 방식대로 “가장 어두운 시간은 동트기 직전이다”는 견해를 천명한다. 욥은 이런 보증 가운데서 위로를 찾지 못했다. 그들의 말에는 진실성이 결여된 것처럼 보였다.
음부³: 히브리어 셰올(s∨e’ol). 욥은 무덤이 가져올 고통에서의 휴식을 어느 정도 기대하면서 앞을 내다본다.
너는 내 아비라⁴: 죽음을 묘사하는 고도의 비유적인 표현. 여성 명사인 “구더기”와 일치시키기 위하여, “아비”에서 “어미”와 “자매”로 성(性)을 바꾼다.
나의 소망⁵: 그 의문은 풀 수 없는 난제이다. 그의 친구들은 소망을 제시했다. 하지만 무덤이 가까이 보이는데 어디에 소망이 있다는 말인가?
내려갈 뿐이니라⁶: 이 동사에 합당한 주어가 무엇인지 의문스럽다. 문법적으로는 여성 복수형 주어가 필요하지만, 제시된 것이 없고, 문맥상 적당하게 주어질 대상이 없다. 어떤 이들은 남성명사인 “문(빗장)”을 주어로 간주하여 이 구절을 “음부의 빗장이 내려가겠느냐?”라고 번역한다. 다른 사람들은 여성 단수 명사인 “소망”(15절)을 주어로 보아서, 소망이 음부(셰올[s∨e’ol])의 문빗장으로 내려간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욥의 변론은 완전한 절망의 어조로 끝맺는다. 음부만이 그의 소망인 것처럼 보인다.
2026.4.2
'테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욥-빌닷이 주장하는 예정설 (0) | 2026.04.06 |
|---|---|
| 욥-빌닷의 두 번째 논술 (0) | 2026.04.03 |
| 욥-하나님께 호소하는 욥 (0) | 2026.04.01 |
| 욥-욥의 법정적인 호소 (1) | 2026.03.31 |
| 욥-욥의 불평 이면의 모습 (0) | 2026.0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