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심

[시편44-2편] 주께서 주의 백성을 무료로 파심이여

노파 2026. 3. 19. 00:01

 

2026년3월19일

[시편44-2편] 주께서 주의 백성을 무료로 파심이여

 

 

그러나¹ 이제는 주께서 우리를 버려² 욕을 당케 하시고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우리를 대적에게서 돌아서게 하시니

우리를 미워하는 자가 자기를 위하여 탈취하였나이다

주께서 우리로 먹힐 양³ 같게 하시고 열방⁴ 중에 흩으셨나이다

주께서 주의 백성을 무료로⁵ 파심이여

저희 값으로 이익을 얻지 못하셨나이다⁶

주께서 우리로 이웃에게 욕⁷을 당케 하시니

둘러 있는 자가 조소하고 조롱하나이다

주께서 우리로 열방 중에 말거리⁸가 되게 하시며

민족 중에서 머리 흔듦을 당케 하셨나이다

나의 능욕⁹이 종일 내 앞에 있으며

수치가 내 얼굴을 덮었으니¹⁰

나를 비방하고 후욕하는 소리를 인함이요

나의 원수와 보수자의 연고니이다¹¹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나

우리가 주를 잊지 아니하며¹²

주의 언약¹³을 어기지 아니하였나이다

우리 마음이 퇴축지 아니하고

우리 걸음도 주의 길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나

주께서 우리를 시랑¹⁴의 처소에서 심히 상해하시고

우리를 사망의 그늘¹⁵로 덮으셨나이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렸거나

우리 손을 이방 신에게 향하여 폈더면¹⁶

하나님이 이를 더듬어 내지 아니하셨으리이까

대저 주는 마음의¹⁸ 비밀을 아시나이다¹⁷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¹⁹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노트> 신앙과 현실 사이의 모순을 잘 대비시킨다. 하나님이 과거에는 그들을 보호하셨지만, 이제는 그들이 말할 수 없는 수치와 곤욕을 당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은 조금도 변하거나 타락하지 않았다. 그들은 고난을 주를 위한 고난으로 이해했다.

그러나¹: 하나님의 강한 손길 아래에서의 초기 이스라엘의 승리와 현재 그 나라가 빠져있는 비참한 처지 사이에 나타난 극명한 대조. 여기서 시인은 성경 기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어법, 곧 하나님이 저지하지 않은 일들을 그가 행한 것으로 묘사하는 어법을 사용하고 있다(참조 대하 18:18 주석). 이 같은 묘사가 옳은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어법은 영감의 계시 전체에 비추어 이해해야만 한다. 고통과 죽음은 죄의 결과로 이 세상에 들어왔기 때문에 그것들이 존재하게 된 책임은 사단에게 있는 것이지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리셨으나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렸”다(마 13:24, 25).

때로는 하나님이 재난에 대하여 좀 더 직접적으로 간여하는 것도 사실인 듯이 생각된다. 악이 존재하는 세상에서는 악으로 치우치는 사람의 마음을 억제하기 위하여 죄에 형벌을 가하는 일이 꼭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은 개인들에 대한 국가의 형벌을 정하였고 또한 범국가적인 범죄들에 대해서는 그것들이 그 나라에 재난을 가져오도록 했다(참조 대하 22:8 주석). 이스라엘이 당하는 재난들 중에는 그들이 지은 범죄의 결과로 당하는,이 같은 범주에 속하는 재난들도 있었고 또한 원수가 인간 가족 전체에게 가하는 고난의 일부인, 일반적 범주에 속하는 것들도 있었다. 이 같은 경우에는 하나님께 그것들에 대한 책임을 돌려서는 안 된다. 고통당하는 사람이 항상 자신의 고난의 원인이 무엇인지 즉시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그 해답을 찾는 동안에 “어리석게”(욥 1:22) 하나님을 비난하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한다.

버려²: 참조 시 43:2.

먹힐 양³: 문자적으로 “음식의 양.” 이는 곧 음식이 되기 위해 도살당할 운명에 처해 있는 양을 의미한다(참조 22절).

열방⁴: (제임스왕역(KJV)에는 “heathen”[이방]으로 되어 있음-역자 주). 나라들(참조 2절 주석).

무료로⁵: 문자적으로 “재물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을 전혀 가치가 없는 물건처럼 거저 주어 버린 것을 나타낸다.

이익을 얻지 못하셨나이다⁶: (제임스왕역(KJV)에는 “재물을 증가시키지 못하셨나이다”로 되어 있음-역자 주). 곧 “그들을 판 값으로 이익을 남기지 못하셨나이다.” 어떤 사람들은 “저들에 대하여 비싼 값을 요구하지 않으셨나이다”(개정표준역(RSV))로 번역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욕⁷: 참조 시 39:8.

말거리⁸: 히브리어 마샬(mas∨al), “비유”, “잠언”, “비유로 된 예언적 이야기” 혹은 이곳과 신 28:37; 왕상 9:7에서처럼 “조롱의 노래” 등 여러 의미를 지닌 단어.

능욕⁹: (제임스왕역(KJV)에는 “confusion”[혼란]으로 되어 있음-역자 주). 또는 “모욕.”

내 얼굴을 덮었으니¹⁰: 참조 시 69:7.

연고니이다¹¹: 문자적으로 “~의 얼굴 때문이니이다.” 이 절은 이스라엘 나라의 절망적인 상태에 대한 묘사로 끝을 맺는다.

주를 잊지 아니하며¹²: 시인은 이스라엘에 내린 재앙의 원인을 그 나라가 하나님을 떠난 데에서 찾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그 나라가 계속 신실히 행하였음에도 형벌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친다.

주의 언약¹³: 이스라엘이 계속 하나님을 떠났음에도 시인이 어떻게 그 나라의 지속적인 신실성을 주장할 수 있었는지 이해하기 매우 어렵다. 아마도 그의 말은 비록 개인들(혹 대다수의 개인들이라 해도)은 언약을 깨뜨렸지만 그 나라가 하나의 국가로서는 공식적으로 언약을 깨뜨린 적이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혹은 그가 동방의 관습을 따라 극한 슬픔 중에 과장법을 써서 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시랑¹⁴: (제임스왕역(KJV)에는 “dragon”[용]으로 되어 있음-역자 주). 히브리어 탄님(tannim), “재칼.” “바다 괴물”이라는 의미의 탄닌(tannin, 창 1:21; 시 148:7) 또는 “뱀”(출 7:9, 10)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시랑의 처소”는 그 같은 동물들이 자주 출몰하는 황량한 들판을 의미한다. 시인은 히브리 나라가 약탈을 당하여서 들짐승들이 살기에 적합한 곳이 되었다고 주장한다(참조 렘 9:11; 10:22). 이것은 설득력있는 과장법이다.

사망의 그늘¹⁵: 참조 시 23:4 주석; 욥 3:5.

우리 손을 이방신에게 향하여 폈더면¹⁶: 참조 왕상 8:22; 대하 6:12, 13.

주는 마음의 비밀을 아시나이다¹⁷: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하나님이 그것을 아실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지성(全知性)을 향한 엄숙한 탄원이다.

마음의¹⁸: 참조 히 4:12.

주를 위하여¹⁹: 시인은 자기 백성이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고통을 당한다고 주장한다. 바울은 이 절을 그리스도인의 고난을 묘사하는 데 인용한다(참조 롬 8:36).

 

2026.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