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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 소발의 첫 번째 논술

노파 2026. 3. 13. 00:02

 

욥- 소발의 첫 번째 논술

장지원

 

 

나아마 사람 소발¹이 대답하여 가로되

말이 많으니² 어찌 대답이 없으랴

입이 부푼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함을 얻겠느냐

네 자랑하는 말³이 어떻게 사람으로 잠잠하게 하겠으며

네가 비웃으면 어찌 너를 부끄럽게 할 사람이 없겠느냐

네 말이 내 도⁴는 정결하고 나는 주의 목전에 깨끗하다⁵ 하는구나

하나님은 말씀을 내시며⁶ 너를 향하여 입을 여시고

지혜의 오묘로 네게 보이시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의 지식이 광대하심이라⁷

너는 알라 하나님의 벌하심이 네 죄보다 경하니라⁸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⁹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

하늘보다 높으시니¹⁰ 네가 어찌 하겠으며

음부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

그 도량은 땅보다 크고¹¹ 바다보다 넓으니라

하나님이 두루 다니시며¹² 사람을 잡아 가두시고 개정하시면¹³ 누가 능히 막을소냐

하나님은 허망한 사람¹⁴을 아시나니

악한 일은 상관치 않으시는 듯하나 다 보시느니라

허망한 사람은 지각이 없나니

그 출생함이 들나귀 새끼¹⁵ 같으니라

 

<노트> 구약성서 욥기 11장 1-12절은 지혜로운 소발은 마치 선생이 학생을 가르치듯 차근차근 설명해 나간다. 그는 인간의 지혜로는 결코 하나님의 지혜를 알 수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소발은 욥의 죄에 관해서 하나님만이 알고 계시는 그 무엇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감추시고 있는 그것을 벗기시면, 욥은 자기가 당하고 있는 이유를 깨닫게 될 것이라고 피력한다. 결국 소발은 욥이 하나님께 호소한 소송을 무시하고서, 하나님은 죄 없는 자를 결코 벌하시지 않는다고 강변하고 있다. 따라서 소발 역시, 욥의 고통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의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다.

소발¹: 엘리바스도 말했고(4, 5장), 빌닷도 말했다(8장). 두 사람은 자신들의 심정을 토로했으나, 두 사람 다 욥의 고통이 그의 죄악 때문에 이르러왔다는 철학을 고수했다. 이제 소발이 말한다. 그의 발언에는 그의 친구들이 표명한 사상 이외에 새로운 것이 거의 추가되지 않는다. 그는 동정과 친절과 섬세함이 없다는 것을 드러내는데, 어쩌면 다른 두 발언자들보다 더한 것 같다. 소발이 감정을 터트린 것은 욥이 자기 잘못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비난하는 데서 촉발되었다. 소발의 발언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 욥에게 자기 죄를 깨닫도록 할 하나님의 선언이 있기를 소원하는 표현(2~6절). (2) 욥에게 하나님의 높은 지식을 알려주기 위해 묘사된 부분으로, 그분은 그 지식으로 각 사람의 죄악을 견책함(7~12절). (3) 욥의 이전 번영을 회복하기 위한 유일한 조건으로 회개의 필요성을 강조함(13~20절).

말이 많으니²: 소발은 욥의 긴 말 때문에 성이 났던 것으로 보인다. 동방 사람들은 간결한 말을 훌륭한 미덕으로 간주했다(참조 잠 10:19; 전 5:2).

자랑하는 말³: 히브리어 밧딤(baddim), “실없는 말”(참조 사 16:6; 렘 48:30; 50:36). 소발은 욥의 발언을 무익한 소리와 웃음거리로 간주한다. 욥은 자기의 원망할 권리를 주장했다(욥 10:1). 소발은 그런 종류의 발언에 대하여 자기가 답변할 권리를 가졌다고 주장한다.

도(道)⁴: 히브리어 레카흐(leqah.), “교훈”, “가르침.” 이 단어는 욥기에서는 여기에만 나오며, 다른 곳에서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여기서 소발은 욥이 10:7에서 말한 그 진술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소발은 욥이 전에 한 말을 꼭 그대로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욥의 주장을 요약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나는…깨끗하다⁵: 소발은 욥이 자기의 “도”와 자기의 행위를 옹호하고 있음을 비난한다. 어떤 면에서 욥은 실제로 그런 행동을 했다. 그러나 욥은 전혀 죄가 없음을 주장하지는 않았다. 그는 친구들이 비난하는 그런 죄인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 절은 욥과 그 친구들 사이의 핵심이 되는 논쟁을 되풀이한다. 욥은 자기 양심의 증거를 받아들였으나 그의 친구들은 그가 고통당하는 이유에 대한 증거를 오해했다.

하나님은 말씀을 내시며⁶: 욥은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원했다(6:24). 이제 소발도 똑같은 소원을 반복하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셔야 한다면 욥의 잘못을 보여 주시기 위해 말씀하실 것이라고 확신한다.

광대하심이라⁷: 이 구절의 히브리어는 뜻이 모호하다. 70인역에서 이 구절은 “그것은 너에게 있는 것보다 갑절이 되리라”고 되어 있다. 분명히 그런 개념은 하나님의 지혜의 완벽한 특성과 심오한 성격을 지적한다.

하나님의 벌하심이…경하니라⁸: 사실상 소발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만일 네가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를 깨닫는다면, 너는 하나님이 네 죄악의 일부분을 망각하게 하셨음을 알게 될 것이다. 네가 원망하는 것처럼 너를 가혹하게 처우하시는 대신, 그분은 결코 네가 마땅히 받아야 할 재난들을 모두 내리지 않으셨다.” 이것은 욥에게 했던 비난 가운데 가장 지나친 것으로 보인다.

어찌 능히 측량하며⁹: 문자적으로 이 구절의 독법은 다음 같다. “네가 하나님에 대하여 탐구함으로 찾아낼 수 있는 것들이 있느냐?” 이 질문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위대하심과 이해할 수 없음에 대한 개념을 나타낸다.

하늘보다 높으시니¹⁰: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묘사하기 위하여 똑같이 네 가지 차원을 이용한 엡 3:18과 비교하라. 소발이 하나님에 대한 이 장엄한 묘사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질문들은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대조되는 인간의 무가치함을 욥의 마음에 각인시키고자 의도된 것이다.

땅보다 크고¹¹: 욥 당시에 이 예증들은 훨씬 더 인상적인 것이었다. 우리는 대양을 횡단했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우리는 땅의 먼 구석들까지 탐사했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러한 위업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두루 다니시며¹²: 문자적으로 “빨리 지나가다”, “쓸어버리다.”

개정하시면¹³: 또는 재판을 위하여 “집회를 소집하다.” 소발이 주장하는 내용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미루어 볼 때, 만일 그분이 한 사람을 대적하기로 마음먹고 그를 투옥하여 재판에 회부한다면 누가 그분을 막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분명히 욥은 자기를 대적하는 하나님의 행위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할 권리가 없었다.

허망한 사람¹⁴: 소발은 욥에게 하나님은 무가치하고 악한 사람들을 알아볼 수 있는 분이심을 상기시켜 준다.

들나귀 새끼¹⁵: 이 구절은 난해하다. 달리 번역하자면 “허망한 사람도 총명을 얻을 수 있고 들나귀 새끼도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은 들나귀처럼 다루기 어렵고 길들여지지 않고 완고한 사람도 진실한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번역이 암시하는 또 다른 해석은 “그러나 들나귀 새끼가 사람으로 태어날 때에는 어리석은 사람도 총명을 얻을 것이라”이다(개정표준역(RSV)). 이 말에 따르면 들나귀가 인간 후손을 낳을 희망이 없는 것처럼, 허망한 사람에게 지혜를 나누어 줄 수 있는 가망성도 없다. 그러나 이렇게 해석하면 11장의 두 번째 부분으로 적절하게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 소발은 욥의 경우를 전혀 가망성 없는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2026.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