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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자신의 처지를 절망적으로 생각하는 욥

노파 2026. 3. 10. 00:02

 

욥-자신의 처지를 절망적으로 생각하는 욥

장지원

 

 

나의 날이 체부보다 빠르니¹ 달려가므로 복을 볼 수 없구나

그 지나가는 것이 빠른 배² 같고

움킬 것에 날아내리는 독수리³와도 같구나

가령 내가 말하기를

내 원통함을 잊고 얼굴 빛⁴을 고쳐 즐거운 모양을 하자 할지라도

오히려 내 모든 고통을 두려워하오니⁵

주께서 나를 무죄히 여기지 않으실 줄을 아나이다

내가 정죄하심을 입을진대⁶

어찌 헛되이 수고하리이까⁷

내가 눈 녹은 물⁸로 몸을 씻고 잿물로 손을 깨끗이 할지라도⁹

주께서 나를 개천에¹⁰ 빠지게 하시리니

내 옷¹⁰이라도 나를 싫어하리이다

하나님은 나처럼 사람이 아니신즉¹¹

내가 그에게 대답함도 불가하고

대질하여 재판할 수도 없고

양척 사이에 손을 얹을¹² 판결자¹³도 없구나

주께서 그 막대기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¹⁴

그 위엄으로 나를 두렵게 하지 아니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리하시면 내가 두려움 없이 말하리라

나는 본래 그런 자가 아니니라

 

<노트> 구약성서 욥기 9장 25-35절은, 욥은 자신의 처지가 절망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① 세월이 빨리 지나가고 ② 자신이 무엇을 하든지 그 일과 관계 없이 하나님이 자신을 죄인처럼 취급하시고 ③ 자신의 처지를 중재할 사람이 없다는 점 때문이다.

나의 날이…빠르니¹: 세 가지 예증을 가지고 욥은 자기의 삶이 종말을 향하여 빠르게 돌진함을 설명한다.

(체부: 빨리 달리는 우체부 또는 특사.)

빠른 배²: 또는 “갈대로 만든 배들.” 견고하게가 아니라, 가볍고 빨리 가도록 만든 배들.

독수리³: 욥은 땅 위에서 가장 빠른 것과 물 위에서 가장 빠른 것을 지적했으므로 이제는 공중에서 가장 빠른 것을 지적한다. 그는 이런 것들을 종착지를 향해 빨리 다가가고 있는 자기 생명과 비교한다.

얼굴빛⁴: 문자적으로 “나의 얼굴” 또는 “나의 모습” 즉 욥이 띠고 있었던 슬픈 표정. 그는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버티고 일어나 기쁨을 찾으려고 애써 보지만 그런 시도가 헛됨을 암시한다.

두려워하오니⁵: 욥의 고통은 하나님이 자기를 정죄하실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증폭되었다. 좌절감, 의심, 두려움은 그의 육체적인 고통 못지 않게 욥을 괴롭혔다.

내가 정죄하심을 입을진대⁶: 문자적으로 “나는 악하다” 또는 “내가 죄를 범했다.” 즉 욥은 자기가 고통을 당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자기를 정죄하는 증거라고 믿는다.

어찌…수고하리이까⁷: 패배주의적인 태도가 욥의 생각을 점하고 있었다. 고통당하는 수많은 다른 사람들처럼 그는 사실상 “이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고 말한다.

눈 녹은 물⁸: 철저한 청결을 상징한다.

잿물로…할지라도⁸⁹: 이 구절은 문자적으로 “내 손들을 잿물[가성 칼륨]로 깨끗하게 하다”가 된다.

개천에¹⁰: “내가 아무리 나 자신을 깨끗하고 순결하게 하려고 애쓸지라도 소용없어. 하나님은 나를 다시 더러운 진창에 빠뜨리실 거야”라고 욥은 말한다.

옷¹¹: 욥의 옷을 의인화(擬人化)하여, 그를 싫어하는 것으로 표현했다.

사람이 아니신즉¹¹: 욥은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있는 장벽 때문에, 하나님을 이해하게 되리라는 희망을 찾지 못한다. 하나님은 무한하시지만, 욥은 자기가 유한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절감한다.

손을 얹을¹²: 이것은 어떤 이유로 인하여 심판자나 중재자가 법적인 분쟁에서 양쪽 당사자에게 손을 얹었던 고대의 의식을 언급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것은 심판자가 양편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음을 의미하는데, 적당한 한계 내에서 그들을 규제하고, 부적합한 표현들을 제지하고, 논쟁이 양편에게 공평히 수행되었는지 살피는 것은 그의 임무였다. 이런 예증은 물론 당사자의 한편인 하나님께 적용될 수는 없지만, 욥의 개념 속에서는 적용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판결자¹³: 또는 “심판자.” 욥은 하나님과의 논쟁에서 자기의 중재자로 바라볼 수 있는 자가 없음을 느낀다. 그는 오직 두 가지 조건 중의 하나라면 자기와 하나님 사이의 다툼이 더욱 대등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1) 만일 하나님이 당신의 모든 신적인 속성들을 벗어버리고 인간이 된다면. 그리고 (2) 만일 이 다툼을 판결해 줄 어떤 심판자나 중재자를 찾을 수 있다면. 그러나 욥은 두 가지 조건이 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복음은 이 두 가지 조건을 채워 준다. “스스로 있는 자(I AM)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Daysman)로서, 양편을 붙들고 계시는 분이다”(시대의 소망, 25). 우리는 예수님을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논쟁을 해결하시는 분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인간에게 하나님을 대표하는 분이시요, 그분을 통해 인간이 하나님을 이해하고 가까이 할 수 있는 자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참조 히 2:17, 18.

그 막대기를…떠나게 하시고¹⁴: 욥은 하나님의 징벌 앞에서 몸을 움츠린다. 그는 겁에 질렸다. 그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가하는 고통을 멈추신다면 자신을 변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느낀다.

 

2026.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