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3월5일
[시편38-2편] 내 죄악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
주의 진노로 인하여 내 살에 성한 곳¹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인하여² 내 뼈에 평안함³이 없나이다
내 죄악이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감당할 수 없나이다⁵
내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오니⁶
나의 우매한 연고로소이다
내가 아프고 심히 구부러졌으며
종일토록 슬픈 중에 다니나이다⁷
내 허리에 열기⁸가 가득하고
내 살에 성한 곳⁹이 없나이다
내가 피곤하고¹⁰ 심히 상하였으매
마음이 불안하여 신음하나이다¹¹
주여 나의 모든 소원이 주의 앞에¹² 있사오며
나의 탄식이 주의 앞에 감추이지 아니하나이다
내 심장이 뛰고¹³
내 기력이 쇠하여
내 눈의 빛도 나를 떠났나이다
<노트> 시인은 자신의 고통이 죄의 결과로 인한 불가항력적인 형벌임을 고백한다.
성한 곳¹: 참조 사 1:6. 여기에 묘사된 증상들과 환자의 친구들이 그를 홀로 내버려 둔 사실로 미루어 볼 때(참조 7, 11절) 이 병은 몹시 혐오스런 질병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나의 죄로 인하여²: 시인은 자신이 당하는 고통을 자기가 범한 죄의 형벌로 생각한다. 모든 고통은 죄가 이 우주 가운데로 들어온 결과이다. 또한 범죄의 직접적인 결과로 개인이 고통을 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하나님은 사람들이 자연 법칙을 범한 결과로 당하는 고통에서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적을 행하지는 않으신다(식생활과 음식물에 관한 권면, 29). 만일 사람들이 자신들이 범한 죄의 비참한 결과에서 보호를 받는다면 죄인들은 죄악을 범하는 일에 크게 담대해질 것이다.
그러나 고통이 전부 다 고통당하는 사람의 개인적 범죄의 직접적인 결과는 아니다. 고대의 많은 사람은 모든 고통을, 고통당하는 당사자나 그의 부모가 범한 죄의 결과로 여겼다(참조 요 9:2). 그들은 이것을 거꾸로 생각해서 사람이 당하는 고통의 양을 근거로 그 사람의 죄의 정도를 판단하였다. “죄와 죄의 모든 결과의 장본인인 사단은 사람들로 하여금 질병과 죽음은 죄 때문에 당하는 독단적인 형벌로서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으로 생각하게 하였다“(시대의 소망, 471). 이런 잘못된 생각 때문에 그들은 하늘 아버지를 엄격하고 가혹한 공의의 집행자로 생각하였다.
그리스도인들 중 상당수도 이와 동일한 오해를 하고 있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은 욥기의 교훈들과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교훈들(참조 눅 13:16; 행 10:38; 고전 5:5; 고후 12:7)이 있는데도 하나님을 질병을 초래하는 분으로 여긴다.
다음의 말씀에서 고통의 참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고통은 사단이 가한 것이며 자비의 목적을 위해 하나님에게 역이용되었”다(시대의 소망, 471).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을 질병과 고통에서 항상 지켜 주는 것은 아니다. 이는 만일 그가 그렇게 하신다면 사단이 욥의 경우에 그렇게 했던 것처럼 하나님을 향해서 공정치 못하게 그의 종의 주변을 산울로 두르신다는 비난의 말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욥 1:10). 하나님은 사단에게 의인들을 괴롭힐 기회를 허락해야만 하는데, 이는 그 결과로 하나님이 불공정하다는 모든 비난이 결국 아무 근거가 없는 것임이 드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통당하는 사람은 비록 “사단의 사자”가 친다 할지라도(참조 고후 12:7) 하나님이 자비의 목적으로 그것을 역이용하시며 또한 그 고난을 바꾸어 행복이 되게 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위로받을 수 있다(참조 롬 8:28).
평안함³: 히브리어 샬롬(s∨alom), “평화.” 즉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함.
내 죄악⁴: 3절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음.
감당할 수 없나이다⁵: 죄를 바다 물결처럼 머리에 넘쳐나는 것으로 여겼다가 갑자기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으로 그 비유를 바꾼 것은 질병으로 인해 생각이 혼미해졌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참조 8, 10절 주석).
악취가 나오니⁶: 문자적으로 “곪다”, “썩다.”
슬픈 중에 다니나이다⁷: 참조 욥 1:20; 2:8; 시 35:14.
열기⁸: (제임스왕역(KJV)에는 “loathsome disease”[혐오스런 질병]으로 되어 있음-역자 주). 병의 증상으로 보아 심한 열을 동반한 혐오스런 질병인 것으로 보인다.
성한 곳⁹: 참조 3절 주석.
내가 피곤하고¹⁰: 곧 “내가 감각을 잃고.”
신음하나이다¹¹: 참조 시 22:1. 영혼의 깊은 고뇌를 토해내는 소리이다. 시인은 이 절에서 자신이 당하는 고통의 신체적 증상을 기술한 부분을 마무리한다.
주의 앞에¹² 시인은 하나님이 용서와 치료에 대한 자신의 열망을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반복해서 기도를 드릴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는 자신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겨 두어야만 한다. 하늘은 가장 연약한 기도까지라도 다 들으신다. 말을 많이 한다고 기도가 응답되는 것은 아니다. 기도의 응답은 우리가 마음에 품은 목적과 헌신의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 “진실한 기도는 심령에 활력을 보증해 주고 생애에 영향을 준다”(교회증언, Ⅳ, 535).
이 절은 1~14절에서 발견되는 유일한 위로의 광선이다. 시인에게는 그를 알고 돌보아주는 하나님께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음을 깨달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내 심장이 뛰고¹³: 합병증으로 심장이 뛰고, 몸이 약해지고, 부분적 실명(失明)이 왔다. 이 환자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뇌로 체력이 다 소진되어 사실상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다.
202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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