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3월3일
[시편37-3편] 그 도를 지키라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저는 넘어지나¹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²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³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⁴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악에서 떠나⁵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영영히 거하리니
여호와께서 공의⁶를 사랑하시고 그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저희는 영영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⁷ 거기 영영히⁸ 거하리로다
의인의 입은 지혜를 말하고⁹ 그 혀는 공의를 이르며
그 마음에는¹⁰ 하나님의 법¹¹이 있으니
그 걸음에 실족함이 없으리로다
악인이 의인을 엿보아 살해할 기회를 찾으나
여호와는 저를 그 손에¹²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재판 때에도 정죄치 아니하시리로다¹³
여호와를 바라고¹⁴
그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너를 들어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목도하리로다¹⁵
내가 악인의 큰 세력을 본즉¹⁶
그 본토에 선 푸른 나무¹⁷의 무성함 같으나
사람이 지날 때에 저가¹⁸ 없어졌으니
내가 찾아도 발견치 못하였도다
완전한 사람을 살피고 정직한 자를 볼지어다
화평한 자의 결국¹⁹은 평안이로다
범죄자들은 함께²⁰ 멸망하리니 악인의 결국²¹은 끊어질 것이나
의인의 구원은 여호와께 있으니
그는 환난 때에 저희 산성²²이시로다
여호와께서 저희를 도와 건지시되
악인에게서 건져 구원하심은 그를 의지한 연고로다²³
<노트> 의인의 후손은 절대로 비참한 일이 없고, 의인의 실패는 결코 의인을 완전히 넘어뜨리지 못한다. 동시에 땅을 차지한다. 악인은 반드시 망하며 의인은 주께서 반드시 보호한다.
저는 넘어지나¹: 시인은 여기서 주로 실족하여 불행이나 실망 또는 재난에 빠지는 것을 일컫고 있는 듯하다(참조 34:19 주석). 그는 또한 죄에 빠지는 것을 염두에 두었을 수도 있다. 의인은 죄가 없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잘못을 범했을 때 즉시로 그 잘못을 고치기 위한 조치들을 취한다. “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을 때 우리는 죄에 대한 미각을 잃게 될 것이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일하시는 까닭이다. 우리는 혹 실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로 하여금 질고를 당케 한 죄를 미워할 것이다”(Ellen G. White, RH, Mar. 18, 1890; 청년에게 보내는 기별, 338).
손으로 붙드심이로다²: 문자적으로 “그의 손을 붙드심이로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이 넘어질 때 아주 엎드러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그의 손을 붙드신다(참조 사 41:13; 43:2).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³: 자신의 삶에서 얻은 경험과 주의 깊은 관찰에서 나온 시인 자신의 증언. 이 절은 시인이 이 시를 삶의 만년에 썼음을 지적한다. 이 말은 의인들에게 궁핍함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고통의 시간들을 보낼 때 하나님에게서 버림을 당치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들은 결국에는 번영하게 되는데, 이는 그들의 후손들이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지금 보편적 진리에 관해 말하고 있다. 참신앙은 사람들을 근면하고 자립심이 강하게 만들어서 그들로 생존을 위해 구걸하는 일을 하지 않도록 해 준다. 이와 정반대되는 모습에 관해서는 욥 15:20, 23을 참조하라.
꾸어 주니⁴: 악인들이 빌리러 다니는 것에 반하여(참조 21절 주석).
악에서 떠나⁵: 이 절에서 이 시의 교훈이 나타난다(참조 시 34:14).
공의⁶: 이 지점에서 아인(‘ayin)으로 시작되는 절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아인은 “저희는 영영히 보호를 받으나”로 번역된 히브리어 구절의 두 번째 글자이다(참조 231, 232쪽).
땅을 차지함이여⁷: 참조 3, 9, 11, 22, 34절.
영영히⁸: 이 사상이 반복되고 있음을 주목하라(참조 27~29절).
말하고⁹: 히브리어 하가(hagah), “중얼거리다”, “명상하다”(하가가 “묵상하다”로 번역된 시 1:2 주석을 참조하라). 참조 시 35:28 주석.
그 마음에는¹⁰: 참조 신 6:6; 시 40:8. 새 언약의 경험(참조 히 8:8~13).
법¹¹ 히브리어 토라(torah). 참조 잠 3:1 주석.
그 손에¹²: “그 권세에”를 의미하는 히브리어의 관용구.
정죄치 아니하시리로다¹³: 사람들이 무고히 의인을 정죄할 때 하나님은 그에게 무죄를 선고하실 것이다(참조 고전 4:3, 4).
바라고¹⁴: 참조 시 27:14.
네가 목도하리로다¹⁵: 결국 의는 옹호를 받고, 성도들은 진리가 승리하는 것을 볼 것이다. 시인의 말이 복수심을 나타낸다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 말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궁극적으로 승리할 것을 예상하고 있는 말로 이해해야만 한다(참조 말 4:3).
내가 악인의 큰 세력을 본즉¹⁶: 개인적 관찰을 토대로 한 증언(참조 25절).
푸른 나무¹⁷: 히브리어 에즈라흐 라아난(’ezrah. ra‘anan). 이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 에즈라는 문자적으로 “어떤 곳의 원주민” 또는 “완전한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다(출 12:49; 레 16:29 등). 라아난은 “울창한”, “잎이 많은”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레바논의 백향목”이라는 70인역의 번역이 바른 번역인 듯이 여겨진다. 어떤 사람들은 “한 번도 옮겨 심은 적이 없는 나무”라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기도 한다.
저가¹⁸: 악인(참조 10절 주석; 교회증언, Ⅷ, 127).
결국¹⁹: 히브리어 아하리트(’ah.arit). “어떤 사람에게 이르러 오는 종말”(참조 민 23:10; 잠 1:19 등) 또는 “마지막”, “나머지”, “미래”(잠 23:18; 렘 29:11) 등과 같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 단어. 시인은 지금 의인의 결국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다. 그 결국은 승리인데, 이는 다음 절에 나타나 있는 악인의 결국과는 현저한 대조를 이룬다.
함께²⁰: “모두 함께”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악인의 결국²¹: 곧 “악인의 미래”(참조 37절 주석). 여기서 의인과의 대조가 끝난다.
산성²²: (제임스왕역(KJV)에는 “strength”[힘]으로 되어 있음-역자 주). 또는 “피난처”, “요새.” 외견상으론 악인들이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의인들의 피난처이다. 그를 의뢰한 사람들은 결국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를 의지한 연고로다²³: 참조 3절 주석. 이 시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우리는 이 땅에서의 삶은 내세의 삶을 위해 준비하는 학교이며 또한 영원한 삶의 드라마의 서막에 불과한 것임을 배우게 된다. 결국 의인들은 모두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202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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