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스더-와스디의 폐위
장지원
이 일은 아하수에¹로 왕 때에 된 것이니
아하수에로는² 인도로 구스까지 일백이십칠 도를 치리하는 왕이라
당시에 아하수에로 왕이 수산 궁에서 즉위하고³
위에 있은지 삼년에⁴
그 모든 방백⁵과 신복⁶을 위하여 잔치⁷를 베푸니
바사와 메대⁸의 장수⁹와 각 도의 귀족¹⁰과 방백¹¹들이 다 왕 앞에 있는지라
왕이 여러 날 곧 일백팔십 일¹³ 동안에
그 영화로운 나라의 부함과 위엄의 혁혁함을 나타내니라¹²
이 날이 다하매 왕이 또 도성 수산 대소 인민을 위하여 왕궁 후원 뜰¹⁵에서 칠 일 동안 잔치¹⁴를 베풀새
백색, 녹색, 청색 휘장¹⁶을 자색 가는 베줄¹⁷로 대리석 기둥¹⁸ 은고리에 매고 금과 은으로 만든 걸상을 화반석, 백석, 운모석, 흑석을 깐¹⁹ 땅에 진설하고
금잔²⁰으로 마시게 하니
잔의 식양이 각기 다르고²¹
왕의 풍부한 대로 어주²²가 한이 없으며
마시는 것도 규모가 있어²³
사람으로 억지로 하지 않게 하니
이는 왕이 모든 궁내 관리에게 명하여
각 사람으로 마음대로 하게 함이더라
왕후 와스디²⁴도
아하수에로 왕궁에서 부녀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니라
<노트> 구약성서 에스더 1장 1-9절, 페르시야 제국의 영화와 위세를 과시하는 두 번에 걸친 호화판 잔치가 벌어진다. 초두에 일어난 이러한 잔치는 결론 부분의 부림절 축제(에 9:17-19)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1 에스더 서론
(1) 표제.
에스더서는 그 명칭을 이야기의 여주인공의 이름에서 따왔다. 그녀의 히브리 본명은 하닷사(참조 2:7)였으나, 그녀가 메대 바사의 왕인 아하수에로(크세르크세스, BC 486~465)와 결혼할 때쯤 에스더라고 알려진 듯 하다(참조 선지자와 왕, 598). 그녀의 히브리 이름인 “하닷사”는 “도금양”(桃金孃) 또는 “은매화”(銀梅花)를 뜻하는 반면에, 에스더는 “별”을 뜻하는 바사어 이름일 것이다. 자기 사촌인 하닷사를 딸로 입양한 모르드개가 그녀에게 국적을 알리지 말라고 당부할 때에 그녀에게 에스더라는 바사 이름을 준 것 같다(참조 2:10).
(2) 저자.
에스더서의 저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민족적인 위기에 처했을 때 유대 백성의 복리를 위하여 나타낸 저자의 심오한 관심은 저자가 그 민족 중의 한 사람임을 지적해 준다. 에스더의 저자는 아닥사스다 I세 제7년(BC 457)에 예루살렘 귀환 여행단을 이끌었던 에스라일 가능성이 있다. 에스라는 유대인의 율법에 통달한 권위자였으며(참조 스 7:1~14), 왕실 사무관, 어쩌면 왕의 법률 고문으로 일했을지 모른다(참조 선지자와 왕, 607). 어떠한 상황 하에서도 아닥사스다는 그를 매우 신임했음이 분명하다(참조 스 7:25~28). 하만 때문에 닥친 위기는 아마도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떠나기 16~17년 전인 BC 474/473년에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므로 에스라가 그 이야기를 기록할 수 있을 만큼 상세한 내용을 충분히 알고 있었으리라는 생각은 타당한 것이다.
<역사적 배경>
다리오 I세(히스타스페스 또는 “대왕”)가 죽은 BC 486년에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가 왕위에 올라 BC 465년에 죽을 때까지 통치했고, 이어서 그의 아들 아닥사스다가 왕위를 계승했다. 그러므로 성경의 아하수에로는 역사에 나오는 크세르크세스이다. 아하수에로(Ahasuerus)라는 이름은 바벨론어 아흐쉬야르슈(Achshiyarshu)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하쉬웨로쉬(’Ah.as∨-weros∨)를 라틴어로 음역한 것이다. 70인역의 번역자들은 아하수에로와 아닥사스다를 혼동했다. 에스라서와 에스더서에 나오는 아하수에로는 메대의 다리오의 부친인 단 9:1에 나오는 아하수에로가 아니다.
다리오 히스타스페스의 통치 말년과, 그의 아들이자 계승자인 크세르크세스(아하수에로)의 통치 초기에 바사 제국은 권세의 절정에 있었다. 에 1:1에 의하면 아하수에로의 영토는 북서쪽으로는 인도의 국경에서, 서쪽으로는 구스의 북쪽 경계까지 확장되었다. 동쪽에서 서쪽까지 그 길이는 약 4,800킬로미터이고, 그 폭은 800~2,400킬로미터로 다양했다. 그 면적은 약 3,200,000평방킬로미터였다. 수산(수사)은 바사 제국의 수도 가운데 하나였으며, 악메다 및 페르세폴리스와 영예를 함께 누렸다. 바사인은 인도-유럽 종족의 한 분파로, 사실상 그 종족 중에서는 세계를 첫 번째로 다스렸다.
<주제>
에스더서의 종교적 성격과 도덕적 교훈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1. 이 책 전체에 하나님의 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그분의 섭리는 전체를 통해 나타난다. 하나님을 불신하는 사람이 이 책을 기록할 수는 없었을 것이며, 따라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고 믿음이 강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기록자는 구원을 하나님에 대한 살아 있는 믿음의 결과로 제시한다.
2. 에스더서는 하나의 중요한 유대인 국경일인 부림절이 유래된 내력을 제공해 주는데, 이 절기를 지금도 매년 즐겁게 지킨다.
3. 이 이야기 속에는 중요한 도덕적 교훈이 배어 있다. 인기를 누렸던 하만의 짧은 날이 지나가면서, 세상 권세와 번영이 덧없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당신께 의지하는 자를 높이신다.
4. 하나님의 섭리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하나님의 능력이 인간의 노력과 연합된다. 사용된 도구는 인간이지만, 구원 자체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아하수에로¹: 히브리어 아하쉬웨로쉬(’Ah.a-s∨weros∨)는 바사어 크샤야르샤(Khsha-ya^rsha^)의 음역이다. 몇몇 바벨론어 서판에는 그 철자가 아흐쉬야르슈(Achshiyarshu)로 나온다. 엘레판티네 파피루스의 자음 글자에는 이 이름이 H.s∨y’rs∨와 H.s∨yrs∨로 나온다. 이 이름이 무슨 뜻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크샤야르샤는 헬라어로 크세르크세스(Xerxes)가 되었고, 라틴어로는 앗수에루스(Assuerus)가 되었다. 그러므로 크세르크세스와 아하수에로는 동일인의 이름으로, 크세르크세스는 헬라어를 거쳐, 아하수에로는 바사어에서 히브리어와 라틴어를 거쳐 유래했다(참조 선지자와 왕, 598).
아하수에로는²: 에스더서의 기자는 아하수에로라는 이름을 가진 통치자를 두 사람 이상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에스더서의 아하수에로를, 반세기(半世紀) 전에 살았던 단 9:1의 아하수에로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스 4:6에 나오는 아하수로에로에 대해서는 스 4장에 대한 추가적 설명을 참조하라.2. 수산 궁. 수산은 엘람 도에 있었으며(참조 단 8:2), 페르시아만의 고대 해안선에서 북쪽으로 약 160킬로미터, 바벨론에서 동쪽으로 320킬로미터 조금 더 되는 곳에 있었다. 에스더 당시보다 몇 세기 전에 본디 엘람의 수도였던 이 도성은 힛데겔 골짜기의 동쪽 가장자리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거기서부터 점점 솟아올라 이란 고원으로 이어진다. 약 5평방킬로미터가 넘는 광활한 폐허 가운데서, 에스더서의 많은 극적인 이야기가 일어났던 드넓은 왕궁의 유적을 볼 수 있다. 이전에 엘람 사람들의 성터였던 곳에 세워진 이 궁전은, 본래 크세르크세스의 선왕(先王) 다리오 히스타스페스가 건설했다. 수산에 관한 간단한 설명은 5, 6절 주석을 참조하라.
즉위하고³: 바사 왕은 연중 얼마 동안은 엑바타나에 거주했고, 어떤 때는 직무상 페르세폴리스와 바벨론에 가기도 했지만, 당시의 행정 중심지는 수산(수사)이었다(참조 단 8:2; 에 9:12).
삼 년에⁴: 이 해는 대략 BC 483년 4월 14일에 시작되어 BC 482년 4월 2일에 끝났다. 여섯 달 동안 계속된 그 “잔치”는 우기가 지나 여행하기가 더 쉽고 더욱 쾌적한 그 해의 이른봄에 시작되었을 것이다.
방백⁵: 또는 “[임명된] 관리들.”
신복⁶: 즉 왕의 “조신(朝臣)들.”
잔치⁷: 이 단어는 원래 “주연”(酒宴)을 의미했다. 아하수에로가 헬라를 침공하기 위해 1, 2년 후에 수산을 떠난 사실로 보아(참조 에스더서 서론), 전국 각지의 방백들과 총독들과 군대 장관들을 모두 참석시켜, 훌륭하고 성공적인 원정이 되기를 기대하며 계획하기 위하여 그 잔치를 배설한 것으로 추정된다. 헤로도투스(vii. 8)는 크세르크세스가 그러한 회의를 소집했다고 기록한다. 여러 관리들은 여섯 달에 걸친 기간 중에 교대로 소집되었을 것이며, 각각 원정과 관련된 자기의 특별한 임무를 왕과 의논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이때처럼 특별히 정치적이거나 군사적인 논의를 하는 때가 아닌 경우, 그 광대한 제국의 모든 관리가 함께 동시에 모였다고 보기는 극히 어렵다.
바사와 메대⁸: 이것은 다니엘서에 나오는 순서(단 5:28; 6:8, 12, 15; 8:20)와는 반대이며 에스더서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데(1:3, 14, 18, 19), 그것은 이 이야기가 두 연합 제국 가운데서 바사가 메대를 대신하여 주도적인 역할을 하던 당시에 속한 것임을 시사한다(참조 단 7:5; 8:3). 에 10:2에는 그 본래의 순서가 제시되는데, 그 이유는 “열왕의 일기” 가운데서 메대의 왕들이 먼저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장수⁹: 히브리어 하일(h.ayil). “군대”(출 14:4, 9), “호기 있는 [자]”(삼상 16:18) 등으로 번역되었다. 앞에서 추정한 것처럼, 그 잔치의 목적이 다가오는 헬라 원정을 위해 계획을 세우는 것이었다면 아하수에로는 분명히 자기 군장들을 포함시켰을 것이다.
귀족¹⁰: 바사어에서 히브리어로 차용된 단어인데, “으뜸가는 [사람들]”을 뜻한다.
각 도의…방백¹¹: 즉 정복한 영토를 관할하고 있는 총독 곧 지방장관을 말한다. 역사는 참혹했던 헬라 원정이 있기 전에 수산에서 총독들의 대규모 집회가 있었음을 입증해 준다.
부함…을 나타내니라¹²: 과시는 크세르크세스 특유의 성격이었다. 헛된 과시는 그가 헬라를 침공할 때에 동원한 거대한 군대에서 뚜렷이 나타났다. 바사의 전설적인 부(富)를 여러 나라의 동시대 저술가들이 언급했다. 바사 왕궁의 자랑거리 중에는 금으로 싼 벽들, 대리석 기둥들과 족자들, 황금으로 만든 버짐나무와 포도나무 등이 있었다. 수사(수산)가 발굴됨으로써 에스더서의 기자가 왕궁과 바사의 궁중 풍습과 규례를 잘 알고 있었음이 입증되었는데, 그가 하는 설명이 모든 상세한 점에 이르기까지 고고학적인 조사 결과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에 깊은 인상을 받은 학자들은, 왕궁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던 사람이거나, 왕궁에 대하여 잘 아는 사람을 아는 사람만이 그 이야기의 정확한 배경을 기록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일백팔십 일¹³: 전 기간 동안 같은 사람들이 대접을 받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각 도의 모든 관리들이 동시에 자기 지역을 떠나서 그렇게 오랜 기간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안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하수에로는 “잔치”가 계속되는 여섯 달 동안 손님들을 접대했을 것이다.
잔치¹⁴: 아하수에로가 잔치를 베푼 목적은 그가 헬라에 원정하여 부재 기간이 길어지는 동안 수도 성읍 백성의 충성을 확보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정말 그랬다면 그것은 눈치 빠른 정치적 행보였다. 여자들을 위해서는 왕후 와스디가 별도의 연회를 제공했기 때문에(9절), 이 잔치에는 물론 남자들만 포함되어 있었다(9절).
후원 뜰¹⁵: 크세르크세스의 왕궁 옛터는 부분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만큼 매우 잘 보존되어 있다. 모르드개가 앉아 있던 왕의 문, 에스더가 명령을 받지 않았는데도 나타났던 뜰 등과 기타 왕궁의 다른 부분의 위치가 확인되었다.
왕궁 지역은 사면이 각각 약 270미터 되는 정방형이다. 정문은 남쪽에 자리잡고 있다.
아름다운 왕궁 북동쪽에는 드넓은 아파다나(apada^na), 즉 보좌가 놓인 대강당이 있었다. 이 거대한 건물은 한쪽의 길이가 99미터이며, 엄청난 면적을 차지하는 계단으로 올라갔을 것이다. 가운데 부분의 평평한 지붕은 기둥머리가 조각된 가늘고도 세로줄이 파인 36개의 기둥이 받쳤는데, 한 줄에 여섯 기둥이 여섯 줄로 배열되어 있었다. 건물의 앞쪽은 트여 있었던 것 같고, 반면 뒤와 옆의 벽은 에나멜 처리된 벽돌로 되어 있었다. 보좌가 놓인 대궐을 장식하기 위하여 금, 은, 보석들이 아낌없이 사용되었다. 헬라의 기록자들은 이 강당에 있던 황금 버짐나무와 황금포도나무에 대하여 말한다. 그 아름다운 왕궁의 북서쪽에는 “뜰” 즉 공원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에스더서에 기록된 많은 사건들은 이 아파다나 안과 주변에서 일어났다.
백색, 녹색, 청색 휘장¹⁶: 문자적으로 “흰 솜과 보라색 [재료].” 제임스왕역(KJV)에서 “녹색”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솜”을 가리키는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했다. “휘장”이라는 단어가 첨부된 것을 주목하라. 이 “휘장” 곧 천막은 흰색과 보라색 면직물로 만들었을 것이다.
자색 가는 베줄¹⁷: 어떤 이들이 생각한 것처럼, 만일 그 천막을 중앙의 기둥들로 받쳐진 강당에서 거의 18미터 되는 모자이크로 포장된 뜰을 가로질러 쳤을 경우, 그 천막을 지탱하려면 강한 “줄”이 필요했을 것이다.
대리석 기둥¹⁸: 수산 궁의 기둥들은 암청색의 석회암이었다. “대리석”이라고 번역된 히브리 단어 셰쉬(s∨es∨)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대리석”이라기보다는 이 석회암이나 설화 석고(雪化石膏)를 가리킬 것이다.
깐¹⁹: “자색”, “청색”, “녹색”, “흑”색이라고 번역된 네 가지 히브리어 단어는 색깔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모자이크 바닥 포장에 사용된 여러 종류의 돌들과 다른 재료들을 가리킨다. 암청색 석회석은 기둥뿐 아니라 바닥 포장에도 사용된 것으로 언급한다.
금잔²⁰: 상당히 많은 금잔이 플라태아(Plataea) 부근에 있는 바사인 진영에서, 승리한 헬라인들에 의하여 발견되었다.
잔의 식양이 각기 다르고²¹: 이런 상세한 내용은 목격자나, 목격자로부터 잔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 전해준 것임에 틀림없다.
어주²²: 또는 “왕국의 포도주” 즉 왕실의 저장고에서 가져온 것이다.
규모가 있어²³: 왕은 주연(酒宴)에서 손님들이 다른 이들과 경쟁하기보다는 각자 자기가 원하는 만큼 술을 마시도록 명령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왕후 와스디²⁴: 헬라인들이 기록으로 남긴 크세르크세스의 유일한 아내는 아메스트리스(Amestris)이다. 크세르크세스는 왕위에 오르기 전, 결혼할 만한 나이가 되었을 때에 그녀와 결혼했다. 헤로도투스(Herodotus)와 크테시아스(Ctesias)는 그녀의 잔인성과 방종한 습관에 대하여 말한다. 그러나 아메스트리스와 와스디가 동일인임을 입증할 수는 없다. 에스더처럼(참조 2:7), 왕후는 둘 이상의 이름으로 알려질 수 있었을 것이다.
202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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