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루살렘의 멸망-마지막 포로들이 처형됨
장지원
시위대 장관¹이
대제사장 스라야²와 부제사장 스바냐³와 전 문지기 세 사람을 잡고
또 성중에서 사람을 잡았으니
곧 군사를 거느린 내시⁴ 하나와
또 성중에서 만난바 왕의 시종 다섯 사람⁵과 국민을 초모하는 장관의 서기관⁶ 하나와 성중에서 만난바 국민 육십 명⁷이라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저희를 잡아가지고
립나 바벨론 왕에게 나아가매
바벨론 왕이 하맛 땅 립나에서 다 쳐 죽였더라
이와 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토에서 떠났더라⁸
<노트> 구약성서 열왕기하 25장 18-21절은, 바벨론 장군 느브사라단은 예루살렘 성 안에 남아 있던 반바벨론파 인물들을 립나로 끌고 가 처형했다. 하맛 땅 립나에는 바벨론 군의 주둔 사령부가 있었다.
장관¹: 느부사라단(8, 11, 20절). 그는 품위 있는 인격을 소유하였으며 건전한 판단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렘 40:2~5). 그는 본보기로 벌을 주기 위해 많은 사람을 찾아냈다.
스라야²: 포로로 잡혀갔던 여호사닥의 아버지(대상 6:14, 15)이며 에스라의 조상(스 7:1)임.
스바냐³: 높은 직책의 제사장으로, 대제사장 대리인일 것이다(참조 렘 21:1; 29:25, 29; 37:3).
내시⁴: 수비대를 지휘하는 왕궁 관리일 것이다. 그 지역 최고 관리들의 이름이 적힌 BC 570년의 바벨론 왕궁 연대기에, 느부사라단은 나부-제리-잇디남(Nabu-ze^ri-iddinam)으로 나온다. 당시 그의 직함은 “떡 맡은 관원”(chie. baker)이었는데, 이것은 히브리 용어로 “푸줏간 담당관”(chie. butcher)에 해당되며, 오늘날의 “재무장관”(lord o. chancellor)과 같은 직책이다.
다섯 사람⁵: 분명히 그들은 왕의 자문위원으로, 현재 그 나라가 당하는 위기를 몰고 온 정책들에 상당한 책임이 있는 자들이었을 것이다.
서기관⁶: 일반 신하들 중 중요한 관리.
육십 명⁷: 반역의 주모자로 드러난 사람들일 것이다.
떠났더라⁸: 바벨론으로 잡혀간 것은 단 1년 사이에 모두 이뤄진 일이 아니다. 여호야김 3년이었던 BC 605년에 벌써 많은 히브리인이 포로로 잡혀갔다(단 1:1~7). 느부갓네살 7년이었던 598년(렘 52:28)과 느부갓네살 8년인 597년(24:12~16), 대규모 포로 이동이 있었던 느부갓네살 19년인 586년(25:8~11) 그리고 느부갓네살 23년인 582년(렘 52:30)에 포로들이 끌려갔다.
202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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