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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멸망-유다에 총독으로 그달리야를 임명함/장지원

노파 2026. 1. 9. 00:02

 

예루살렘의 멸망-유다에 총독으로 그달리야를 임명함

장지원

 

 

유다 땅에 머물러 있는 백성¹은

곧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남긴 자라

왕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달리야²로 관할하게 하였더라

모든 군대 장관³과 그 좇는 자가

바벨론 왕이 그달리야로 방백을 삼았다 함을 듣고

이에 느다니야의 아들 이스마엘⁴과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⁵과 느도바 사람⁶ 단후멧의 아들 스라야와 마아가 사람의 아들 야아사니야⁷와 그 좇는 사람이 모두

미스바⁸로 가서 그

달리야에게 나아가매

그달리야가

저희와 그 좇는 자들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너희는 갈대아 신복을 인하여 두려워 말고

이 땅에 거하여

바벨론 왕을 섬기라⁹

그리하면 너희가 평안하리라 하니라

칠월에¹⁰ 왕족 엘리사마의 손자 느다니야의 아들 이스마엘이 십 인을 거느리고 와서 그달리야를 쳐서 죽이고¹¹

또 저와 함께 미스바에 있는 유다 사람과 갈대아 사람을 죽인지라

대소 백성과 군대 장관들이 다 일어나서

애굽으로 갔으니¹²

이는 갈대아 사람을 두려워함이었더라

 

<노트> 구약성서 열왕기하 25장 22-27절은, 바벨론 왕은 유다의 남은 자들을 관할하기 위해 그달리야를 총독으로 임명했다. 그달리야는 미스바에 본부를 정하고, 흩어졌던 유대인들을 다시 모았다. 그들은 대부분 반바벨론주위자들이었다. 그달리야는 그들에게 바벨론에 충성하자고 권면하였다. 그러자 그들의 두목인 이스마엘은 그달야의 초대를 받고 식사를 나누던 도중, 그달야를 죽이고 그를 따르던 자들까지 죽였다(렘 41:1-7). 후에 이스마엘은 요하난에게 죽임을 당했으나, 요하난과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의 보복이 두려워서 애굽으로 건너갔다. 이때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다 백성들이 애굽으로 건너가는 것을 극구 만류했다(렘 42:10-22).

백성¹: 자세한 내용을 보려면 렘 40~44장을 참조하라. 현명한 통지자인 느부갓네살은 남아 있는 백성들을 주의 깊게 배려하였고 그들을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

그달리야²: 느부갓네살은 외교적인 목적을 갖고 바벨론의 통제 아래에 있는 그 땅의 통치자를 유대인 중에서 선택하였다. 그달리야는 높은 가문 출신이었다. 그의 아버지 아히감은 요시야가 왕이었을 때 신뢰받는 방백이었고(22:12), 예레미야에게 죽음을 면케 해 줄 만큼 여호야김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렘 26:24). 그달리야는 분명히 예레미야처럼 온건 정책을 지지했을 것이다. “집을 관할하는 그달리아후에게 속함”(Belonging to Gedaliahu, who is over the house)이라고 찍힌 날인(捺印)이 라기스에서 발견되었다. 참조 렘 40:9.

모든 군대장관³: 이런 사람들 중 많은 이가 왕과 함께 도망갔다가 나라 전역으로 흩어졌다(4, 5절). 이제 그들은 숨었던 곳에서 나와 그달리야에게로 향하였다(렘 40:7, 8).

이스마엘⁴: 왕의 서기관이었던(렘 36:12, 20) 엘리사마의 손자(25절)로, 왕의 혈통이었다(왕하 25:25; 렘 36:12; 41:1). 그가 왕족이었다는 것은 그달리야에 대한 태도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요하난⁵: 참조 렘 40:8. 요하난은 후에 그달리야에게 이스마엘이 가졌던 반역 의도를 경고하고 자신이 이스마엘을 처단할 수 있도록 요청했으나, 그달리야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렘 40:13~16). 후에 요하난은 이스마엘에게 등을 돌렸고, 애굽으로 도망한 유대인들의 지도자가 되었으며, 예레미야를 억지로 자신들과 동행하도록 강요하였다(렘 41:14, 15; 42:1, 2; 43:2~7).

느도바 사람⁶: 베들레헴 북동쪽에 위치한 느도바는 지금의 키르베트 벳드 팔루(Khirbet Bedd Fa-lu^h.)와 같은 지역이다(스 2:21~23; 느 7:26, 27).

야아사니야⁷: “왕의 신하 야아사니아후(Jaazaniahu)에게 속함”이라고 적힌 야아사니야의 도장이 텔 엔-나츠베(Tell en-Nas.beh)에서 발견되었다.

미스바⁸: 라마 근처에 있는 베냐민 지파의 성읍(수 18:25, 26; 왕상 15:22).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어떤 이들은(참조 제3권, 435) 예루살렘 북서쪽 8킬로미터 지점에 있었다고 하고, 다른 이들은 북쪽으로 12킬로미터 지점에 있었다고 한다. 이 주석은 후자의 장소를 텔 엔-나츠베(Tell en-Nas.beh)로 보는 주장을 받아들여, 지도에도 그렇게 표시했다. 이 땅은 제2권, 505 옆에 있는 중부 팔레스타인 컬러지도에서 아타로트(Ataroth)로 나타나 있는 곳이다. 사사 시대 후기에 지파들이 회의를 하기 위해 이곳에 모이곤 하였다(삿 20:1~3; 21:1, 5, 8). 사무엘은 이곳에 지파들을 소집하였고 이곳에서 이스라엘을 재판하였다(삼상 7:5~17). 사울 역시 이곳에서 왕으로 선택되었다(삼상 10:17~25). 아사는 이곳을 북방 이스라엘을 방비하기 위해 요새로 만들었다(왕상 15:22; 대하 16:6). 이러한 배경과 예루살렘에서 매우 가깝다는 이유로 미스바는 새로운 정치를 위한 중심지로 적당한 장소가 되었다.

바벨론 왕을 섬기라⁹: 도망자들은 이웃 나라인 모암과 암몬 그리고 에돔으로 도망하였고(참조 렘 40:11), 의심할 바 없이 여전히 바벨론에 저항하고자 하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었다. 그달리야는 그들이 갈대아인들을 주인으로 섬긴다면 그들을 면죄하여 주겠다고 지금 그들에게 약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들에게 다시 돌아와서 정착하여 그 땅의 소산을 함께 나누도록 초청하였다(렘 40:9~12).

칠월에¹⁰: 아마도 예루살렘이 파괴된 지 두 달 후이거나(8~12절), 1년 후일 가능성도 있다(참조 선지자와 왕, 460).

그달리야를 쳐서 죽이고¹¹: 이스마엘은 그달리야를 죽이기 위해 암몬 왕 바알리스가 보낸 사람이었다(렘 40:14). 그달리야가 좀 더 경계하였고 요하난의 경고(렘 40:13~16)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암살은 피할 수 있었다. 그달리야는 이스마엘과 그의 부하들을 환대하여 우정어린 식사를 나눈 후에 배반으로 죽임을 당했다(렘 41:1~3).

애굽으로 갔으니¹²: 좀 더 자세한 내용을 보려면 렘 41~43장을 참조하라. 예레미야는 애굽으로 도망하지 말라고 강권하였으나 소용이 없었다. 요하난은 이스마엘에게 등을 돌려 그를 암몬 땅으로 피신하라고 강요한 것으로 보이며(렘 41:15), 야아사니야와 함께 애굽으로 피난한 유대인들의 지도자가 되어 예레미야에게 자신들과 동행하라고 강요하였다.

 

202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