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루살렘의 멸망-예루살렘 성의 폐허
장지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십구년¹ 오월 칠일에
바벨론 왕의 신하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전과 왕궁을 사르고²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시위대 장관을 좇는 갈대아 온 군대가
예루살렘 사면 성벽을 헐었으며³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⁴와
무리의 남은 자⁵는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다 사로잡아 가고
빈천한 국민⁶을
그 땅에 남겨두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
<노트> 구약성서 열왕기하 25장 8-12절은 예루살렘 성이 폐허화 되는 구체적인 모습이다. 바벨론의 ‘제3차 포로들’이 이때 끌려갔다(B.C. 586년).
십구 년¹: 느부갓네살에 대한 연대기적 기록들은 매우 많기 때문에, 이 구절과 비교하면 유다 역사가 끝난 날짜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참조 87쪽). 시드기야의 마지막 해인 재위 11년이 느부갓네살 재위 19년과 일치하는 것은 렘 32:1과 조화를 이루는데, 거기에는 시드기야 10년과 느부갓네살 18년이 같은 해임을 보여 준다.
여호와의 전과 왕궁을 사르고²: 이 일로 솔로몬 성전은 최후를 맞는다. 성전 외에 왕궁과 예루살렘의 다른 많은 건축이 불살라졌다. 이 성읍은 파괴되어 폐허로 남아 죄가 가져온 멸망을 보여 주는 인상적인 전시물이 되었다. 그 큰 재앙은 아무 경고도 없이 임하지 않았다(렘 21:10; 32:29; 34:2; 37:8, 10; 38:18, 23).
헐었으며³: 성벽은 고레스가 재위 1년에 중건 명령(대하 36:22, 23; 스 1:1~11)을 내리고 나서도 오랜 후 에스라(스 1:1~4; 7:6~9; 9:9)와 느헤미야(느 3장; )가 복원할 때까지 파괴된 채로 있었다.
항복한 자⁴: 이들은 포위되어 있던 기간에 미리 바벨론 군대로 도망쳤던 백성들이다. 예레미야는 여러 번 바벨론에 항복할 것을 촉구하였고(렘 27:12; 38:2~4, 17~23), 변절하여 바벨론에 항복했다고 무고(誣告)되었다(렘 37:13, 14).
남은 자⁵: 이 단어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포함되어 있는데 (1)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사람들, (2) 바벨론 군대에 항복했던 사람들, (3) 예루살렘 지역 밖의 시골에 사는 많은 “무리.” 그러나 다음 구절은 마지막 부류의 사람들 모두가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것은 아님을 보여 준다.
빈천한 국민⁶: 참조 왕하 24:14; 렘 39:10; 40:7; 52:16. 빈천한 국민 중 남은 자만이 시골지역에 남겨졌으며 그들에게 경작할 토지가 주어졌다. 그들이 유대인으로서 바벨론에 충성하는 핵심적인 사람들이 되기를 기대하였다.
20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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