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호야김의 통치와 느부간네살의 침략
장지원
여호야김이
은과 금을 바로에게 주니라¹
저가
바로느고의 명령대로
그에게
그 돈을 주기 위하여 나라에 부과하되 국민 각 사람의² 힘대로 액수를 정하고 은금을 늑봉하였더라
여호야김이 왕이 될 때에 나이 이십오 세³라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스비다라 루마 브다야의 딸이더라
여호야김이 그 열조의 모든 행한 일을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⁴ 행하였더라
여호야김 시대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⁵이 올라오매
여호야김이 삼 년을 섬기다가 돌이켜 저를 배반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그 종 선지자들로 하신 말씀과 같이⁶
갈대아의 부대와 아람의 부대와 모압의 부대와 암몬자손의 부대를 여호야김에게로 보내어
유다를 쳐 멸하려 하시니
이 일이 유다에 임함은
곧 여호와의 명하신바로⁷
저희를 자기 앞에서 물리치고자 하심이니
이는 므낫세의 지은 모든 죄로⁸ 인함이며
또 저가 무죄한 자의 피⁹를 흘려
그 피로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사하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니라¹⁰
여호야김의 남은 사적¹¹과 모든 행한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여호야김이 그 열조와 함께 자매
그 아들 여호야긴¹¹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애굽 왕이
다시는 그 나라에서 나오지 못하였으니¹²
이는 바벨론 왕이
애굽 하수에서부터¹³ 유브라데 하수까지 애굽 왕에게 속한 땅을 다 취하였음이더라
<노트> 구약성서 열왕기하 23장 35-24장 7절은 두루마리를 태운 극악한 왕 여호야김에 대한 기록이다. 그는 애굽의 곡두각시 노릇을 하고 또 우상을 섬기다가 바벨론의 침공을 당한다.
은과 금을 바로에게 주니라¹: 참조 33절 “바로느고가 저를 하맛 땅 립나에 가두어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지 못하게 하고 또 그 나라로 은 일백 달란트와 금 한 달란트를 벌금으로 내게 하고”
각 사람의²: 바로가 강요한 돈은 왕이 아닌 백성들의 소유 중에서 거두었다. 앗수르가 므나헴에게 은 1,000달란트를 요구했을 때, 그 돈을 모두 부자들에게 징수하여 채웠다(15:19, 20). 그러나 이번에는 부자나 가난한 자를 막론하고 모든 자에게 세금이 부과된 것으로 보인다.
이십오 세³: 여호아하스는 이때 23세밖에 되지 않았으므로(31절), 여호야김이 나이가 더 많았다. 요시야가 왕이 될 때 8세였고 31년간 통치했다(22:1). 따라서 요시야가 죽었을 때 그는 39세였으며, 여호야김은 25세였다. 그러므로 요시야는 불과 14세 또는 15세에 여호야김을 낳은 것이다. 히브리 왕은 어린 나이에 결혼했는데, 동방에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이 풍속을 따르고 있다.
악을⁴: 여호야김의 악한 행동들이 여기에는 구체적으로 열거되어 있지 않다. 예레미야에 따르면, 그는 사치를 좋아하고 탐욕스러우며 가혹하고 공의롭지 못하며 불경스럽고 잔인한 사람이었다(렘 22:13~17; 26:20~23; 36:23).
느부갓네살⁵: 단 1:1에 의하면, 느부갓네살은 여호야김 3년에 유다를 치러 왔는데, 그 해는 여호야김 재위 4년과 느부갓네살 재위 1년이 일치한다면 느부갓네살의 즉위년인 BC 605년일 것이다(렘 25:1). 바벨론 연대기의 기록에 따르면, 바벨론의 왕세자였던 느부갓네살은 BC 605년 봄 혹은 초여름에 갈그미스와 하맛 근처에서 애굽 군대를 결정적으로 대파하여, 승승장구하는 바벨론 군대에 수리아와 팔레스타인으로 가는 길목을 열어 주었다. 유다의 여호야김이 바벨론의 봉신(封臣) 왕이 되어 다니엘을 포함한 볼모들을 느부갓네살에게 내준 것이 바로 이때일 것이다. 3년 후에 여호야김은 다시 애굽과 동맹 관계로 돌아선 것으로 보이며, BC 601년에 애굽이 느부갓네살의 군대에 큰 패배를 안겨 주었을 때 애굽이 새롭게 힘을 얻었다고 생각했던 그의 평가는 어느 정도 맞는 것 같다. 그러나 여호야김의 반역은 정치적인 안목이 부족했음을 드러냈는데, 왜냐하면 바벨론인들이 재빨리 그들의 패배를 만회하고 불충한 그 봉신 왕을 벌하기 위해 돌아왔기 때문이다.
말씀과 같이⁶: 참조 렘 4:20~29 “20 패망에 패망이 연속하여 온 땅이 탈취를 당하니 나의 천막은 홀연히 파멸되며 나의 휘장은 잠시간에 열파되도다. 21 내가 저 기호를 보며 나팔소리 듣기를 어느 때까지 할꼬 22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우준한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 23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들을 우러른즉 거기 빛이 없으며 24 내가 산들을 본즉 다 진동하며 작은 산들도 요동하며 25 내가 본즉 사람이 없으며 공중의 새가 다 날아갔으며 26 내가 본즉 좋은 땅이 황무지가 되었으며 그 모든 성읍이 여호와의 앞 그 맹렬한 진노 앞에 무너졌으니
27 이는 여호와의 말씀에 이 온 땅이 황폐할 것이나 내가 진멸하지는 아니할 것이며 28 이로 인하여 땅이 슬퍼할 것이며 위의 하늘이 흑암할 것이라 내가 이미 말하였으며 작정하였고 후회하지 아니하였은즉 또한 돌이키지 아니하리라 하셨음이로다 29 기병과 활 쏘는 자의 훤화로 인하여 모든 성읍이 도망하여 수풀에 들어가고 바위에 기어오르며 각 성읍이 버림을 당하여 거기 거하는 사람이 없나니” 렘 5:15~17 “1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보라 내가 한 나라를 원방에서 너희에게로 오게 하리니 곧 강하고 오랜 나라이라 그 방언을 네가 알지 못하며 그 말을 네가 깨닫지 못하느니라 16 그 전통은 열린 묘실이요 그 사람들은 다 용사라 17 그들이 네 자녀들의 먹을 추수 곡물과 양식을 먹으며 네 양떼와 소떼를 먹으며 네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열매를 먹으며 네가 의뢰하는 견고한 성들을 칼로 파멸하리라: 히 1:6~10 ”6 또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가 저에게 경배할지어다 말씀하시며 7 또 천사들에 관하여는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 하셨으되 8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 9 네가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였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너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네게 부어 네 동류들보다 승하게 하셨도다 하였고
10 또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명하신 바⁷: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심판하시기 위해 주변 나라들을 사용하곤 하셨다(참조 선지자와 왕, 385).
므낫세의 지은 모든 죄로⁸: 므낫세가 저지른 죄악들이 유다의 멸망을 가져온 주요 원인임이 반복하여 언급된다(참조 왕하 21:11, 12; 23:26; 렘 15:4).
무죄한 자의 피⁹: 이사야의 피를 포함하여(선지자와 왕, 382). 이사야는 틀림없이 므낫세의 가증한 행위들을 침묵과 타협으로 그저 쳐다만 보지 않고, 목소리를 높여 왕의 잘못된 행동들을 단호히 책망했을 것이다.
사하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니라¹⁰: 므낫세가 저지른 죄악들은 오랫동안 유다가 걸어온 죄의 길의 절정이었다. 죄악의 잔은 찼으며 심판이 막 임하려 하고 있었다. 요시야의 선한 통치가 그 시기를 조금 유예하였지만, 멸망의 선고를 취소시키지는 못했다. 하나님께서 나라의 죄악을 사하실 수 없는 지경에 도달했다. 그러나 국가적인 범죄와 개인적인 범죄는 항상 구별되어야만 한다(참조 17:20 주석).
남은 사적¹¹: 몇 가지 사실이 불분명하다. 우리는 “느부갓네살이 올라와서 치고 저를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잡아” 갔음을 알고 있다(대하 36:6). 또한 여호야김이 “끌려 예루살렘 문 밖에 던지우고 나귀같이 매장함을 당하”였으며(렘 22:19), “그 시체는 버림을 입어서 낮에는 더위, 밤에는 추위를 당하”게 되었을 것이다(렘 36:30). 위의 두 진술은 여호야김을 바벨론으로 끌고 가려던 계획이 취소되었거나, 그가 갈대아인들의 거친 취급을 견디지 못해 사로잡힌 후에 곧바로 죽었다고 가정한다면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에살핫돈 시대에 므낫세가 그러했던 것처럼(대하 33:11~13; 참조 겔 19:5~9) 여호야김도 바벨론으로 끌려갔다가 후에 풀려났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여호야긴¹¹ 예레미야는 단 한 번(렘 52:31)을 제외하고는 이 왕을 고니야(렘 22:24, 28; 37:1) 또는 여고냐(렘 24:1; 27:20; 28:4; 29:2)로 부른다. 역대기에서 그는 여고냐(대상 3:16, 17)와 여호야긴(대하 36:9)으로 불린다. 스 2:6에 그는 여고냐로 나온다. 여고냐와 여호야긴은 이름을 구성하는 두 요소들의 위치가 서로 바뀌어 있을 뿐, 두 이름 모두 “여호와께서 세우실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고니야는 “여호와께서 세우신다”라는 뜻으로, 미래를 나타내는 동사의 표시가 없는 형태이다.
다시는 그 나라에서 나오지 못하였으니¹²: BC 605년에 갈그미스와 하맛 근처에서 있었던 전투에서 애굽 군은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을 손에 넣었던 느부갓네살에게 결정적으로 패배하였다. BC 601년에 애굽은 느부갓네살 군대에게 큰 손실을 입혔지만, 그 다음부터 그들은 팔레스타인을 통치하는 그에게 제대로 대항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애굽 하수에서부터¹³: 일찍이 투트모세 Ⅰ세 때부터(참조 제1권, 104) 애굽은 팔레스타인과 수리아를 지나 유브라데강까지 정복하였다. 애굽이 아무런 도전 없이 항상 그 지역을 점령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느고는 자신의 통치기간(BC 610~595)에 다시 그곳을 손에 넣고자 노력했다. “애굽 하수”는 아마도 와디 엘-아리쉬(Wadi el-‘Ari-sh)일 것이다(참조 왕상 8:65 주석).
2025.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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