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드기야의 통치
장지원
바벨론 왕이
또 여호야긴의 아자비 맛다니야¹로 대신하여 왕을 삼고
그 이름을 고쳐 시드기야²라 하였더라
시드기야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일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³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하무달⁴이라 립나 예레미야의 딸이더라
시드기야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⁵ 행한지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를 진노하심이
저희를 그 앞에서 쫓아내실 때까지 이르렀더라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하니라⁶
<노트> 구약성서 열왕기하 24장 17-20절은, 여호야긴을 사로잡아 간 바벨론 왕은 여호야긴의 숙부 여호야긴을 왕으로 세웠다. 그러나 엄격한 의미에서 그는 왕이 아니라 섭정자였으므로 유다 최후의 왕은 여호야긴으로 보는 것이 옳다(왕하 25:27, 겔 1:2). 시드기야 역시 이러한 위기 속에서 혼합주의적인 우상 숭배의 길을 답습하였다(왕하24:19). 무능했던 그는 예레미야의 충고를 무시한 채(렘 34:1-5, 38:14-23). 바벨론을 배반하고 친애굽 정책을 택하였다. 결국 이 정책은 바벨론 군대를 예루살렘으로 불러들이는 결과를 낳았다.
맛다니야¹: 여호야김의 형제요 요시야의 아들이다. 따라서 그는 요시야의 아들 중 유다의 왕좌에 오른 세 번째 아들이다(참조 대상 3:15).
시드기야²: 문자적으로 “여호와의 의” 또는 “여호와는 의이시다.” 아마도 히브리인들은 그들의 종주국 왕이 지어 준 이름들에 이의를 제기한 것 같은데, 왜냐하면 느부갓네살이 이런 이름을 택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십일 년³: BC 597년부터 586년까지.
하무달⁴: 그러므로 시드기야는 여호아하스와 동복(同腹) 형제이며(참조 23:31), 여호야김과는 이복(異腹) 형제이다(23:36).
악을⁵: 시드기야는 도덕적으로 나약한 사람이었다(참조 대하 36:12~16; 렘 37:1, 2; 38:5; 52:2; 겔 17:13~19; 21:25). 때때로 그는 선한 일을 하고자 노력하였으나, 자신의 확신에 따라 살 수 있는 용기가 부족하였다(렘 34:8~16; 37:2~21; 38:4~28).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하니라⁶: 이 구절은 25장의 사건들을 도입하는 말로, 25장의 시작 부분에 두는 것이 더 적당할 것 같다. 24장은 “이르렀더라”라는 말로 끝나는 것이 적절하다. 시드기야가 바벨론에 반역함으로 느부갓네살이 또다시 유다를 치러 왔고, 따라서 그 나라는 멸망을 맞았다. 시드기야의 치세 초기에 거짓 선지자들이 조장한 일반적인 기대감, 즉 바벨론에 유배되었던 사람들이 곧 돌아올 것이며 바벨론의 속박에서 머지않아 풀려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렘 27:16; 28:1~4, 10, 11). 시드기야가 바벨론에 사절단을 보낸 것(렘 29:3)과, 그의 재위 4년에 직접 바벨론을 방문한 것(렘 51:59)은 아마도 이런 기대감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예레미야는 끊임없이 이런 정서를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반역하기보다는 계속 복종하라고 충고하였다(렘 27:5~22; 28:5~17; 29:1~32). 그러나 시드기야는 바벨론의 멍에를 벗기 위해 끊임없이 활동하였고, 마침내 애굽에 도움을 청하였다(겔 17:15; 참조 렘 37:5; 44:30). 이웃해 있는 에돔, 모압, 암몬, 두로, 시돈 사람들 또한 바벨론의 멍에에서 벗어나고자 몹시 갈망하고 있었으므로, 사절을 유다로 보내 총체적인 반역을 제안하기도 했다(렘 27:3~11).
2026.1.2
'테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예루살렘의 멸망-바벨론의 침공/장지원 (0) | 2026.01.05 |
|---|---|
| 사도 바울의 선교여행 지도 (0) | 2026.01.03 |
| 여호야긴의 통치와 포로됨 (1) | 2025.12.31 |
| 여호야김의 통치와 느부간네살의 침략 (2) | 2025.12.30 |
| 요시야의 죽음-왕위를 계승하는 요시야의 아들들 (0) | 2025.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