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시야의 죽음-하나님의 자비
장지원
요시야의 남은 사적¹과 모든 행한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요시야 당시에
애굽 왕 바로느고²가
앗수르 왕을 치고자하여³ 유브라데 하수로 올라가므로⁴
요시야 왕이 나가서 방비하더니⁶
애굽 왕이 요시야를 므깃도⁷에서 만나본 후에 죽인지라
신복들이
그 시체를 병거에⁸ 싣고 므깃도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그 묘실에 장사하니⁹
국민이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¹⁰를 데려다가
저에게 기름을 붓고
그 부친을 대신하여 왕을 삼았더라
<노트> 구약성서 열왕기하 23장 28-30절은 요시야는 애굽의 바르느고와 벌인 전쟁에서 사망했다. 그의 죽음은 재앙이 아니라 여선지자 훌다의 예언대로(*왕하22:20) 하나님의 자비로운 섭리였다. *"그러므로 내가 너로 너의 열조에게 돌아가서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리니 내가 이곳에 내리는 모든 재앙을 네가 눈으로 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사자들이 왕에게 복명하니라" 평안히*: 죽음이 축복이 될 때가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요시야는 유다가 마지막 멸망에 이르기 전에 무덤으로 갈 것이었다. 요시야는 전쟁터에서 죽임을 당했지만(23:29), 죽음으로 그는 몇 년 후에 있을 무서운 재앙을 목도하는 것을 면했다.
남은 사적¹: 요시야의 개혁은 그가 위에 오른 지 제18년에 시작되었다. 요시야는 모두 31년 동안 통치하였다. 그의 치세 후반부 13년 동안의 행적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바로느고²: BC 610년부터 595년까지 왕위에 있던 애굽 26왕조의 유명한 느고 II세.
앗수르 왕을 치고자 하여³: 실상 느고는 앗수르를 도와 바벨론을 치기 위해 북서쪽으로 향하고 있었다(참조 대하 35:20). 이것은 (1) 사해 두루마리에서 자주 그랬던 것처럼 “대적하여”라는 의미인 히브리어 알(‘al)이 “향하여” 또는 “위하여”라는 의미의 엘(’el)로 기록된 것이든지, (2) “앗수르”라는 용어가 전에 앗수르 제국에 속해 있던 영토 대부분을 지금 다스리고 있는 바벨론을 지칭하는 것,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고전 작가들은 “앗수르”를 이런 의미로 사용하기도 하였다(참조 Herodotus i. 178).
올라가므로⁴: 이 당시에 앗수르와 애굽은 바벨론을 대적하기 위해 동맹을 맺고 있었다. 나보폴라사르(BC 626~605)의 통치 아래 바벨론은 앗수르를 대신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지닌 나라가 되었다. 니느웨는 BC 612년에 함락되었고 앗수르인의 적은 무리들이 하란에서 몇 년 동안 버티고 있었다. 그들은 신속하게 온 세상에 뻗어나가는 바벨론의 점증하는 세력을 막기 위해 애굽에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유브라데: 느고가 하란을 치는 데 앗수르를 돕기 위해 메소보다미아로 올라가는 도중에 갈그미스를 쳤음이 분명하다(대하 35:20). 갈그미스는 바벨론 연대기에 나오는 대로 느부갓네살이 BC 605년에 그곳에서 애굽을 물리칠 때까지 여러 해 동안 애굽의 요새가 되었다.)
요시야 왕이 나가서 방비하더니⁶: 이때 느고는 요시야와 싸울 의도가 없었고(대하 35:21), 단지 바벨론 군대와 싸우기 위해 유브라데로 가고자 했을 뿐이다.
므깃도⁷: 에스드랠론(Esdraelon) 평야 남부에 위치한 중요한 요새로, 애굽과 수리아 북부를 오가는 대상로(隊商路)가 이곳을 지난다. 요시야는 아마도 애굽인들이 산길에서 나올 때 공격하기 위해 길이 평야로 이어지는 지역에 진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병거에⁸: 요시야는 므깃도에서 치명상을 입었다. 아합이 목숨을 잃었던 수리아와의 전투에서처럼(왕상 22:30) 요시야는 왕이 아닌 것처럼 변장하고 전투에 참여했다(대하 35:22). 화살에 맞았을 때 그는 자신이 입은 부상의 심각성을 감지하고 다른 병거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달려갔지만, 예루살렘에서 혹은 가는 도중에 죽고 말았다(참조 대하 35:24 주석).
장사하니⁹: 역대기의 기자는 “온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이 요시야를 슬퍼하고 예레미야는 저를 위하여 애가를 지었“(대하 35:24, 25)다고 덧붙인다. 요시야의 죽음을 인해 큰 애곡이 있었던 반면, 그의 악한 아들들의 종말을 위해서는 전혀 애곡하지 못하게 될 것이었다(렘 22:10, 18).
여호아하스¹⁰: 여호아하스는 살룸이라고도 불렸다(대상 3:15; 렘 22:11). 여호아하스가 아닌 여호야김이 요시야의 장남이었으므로 정상대로라면 그가 왕이 되었어야 했다(31절; 참조 36절). 그러나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백성들이 개입하여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삼았다. 그 당시 유다에는 친애굽파와 반애굽파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론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호야김은 친애굽파였고, 여호야하스는 반애굽파였던 것 같다. 반애굽파들이 득세하여 여호아하스를 왕위에 앉혔다. 이 기간에 느고는 북쪽에 있었고 유브라데에서 바벨론과 전쟁 중이었음이 분명하다.
2025.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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