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바벨론의 사절

노파 2025. 12. 11. 00:02

 

바벨론의 사절

장지원

 

 

그 때에 발라단의 아들¹

바벨론 왕 부로닥발라단²이

히스기야가 병들었다 함을 듣고

편지와 예물을 저에게 보낸지라³

히스기야가 사자의 말을 듣고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 군기고와 내탕고의 모든 것⁴을 다 사자에게 보였는데 무릇 왕궁과 그 나라 안에 있는 것을 저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으니라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나아와서⁵ 이르되

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였으며

어디서부터 왕에게 왔나이까

히스기야가 가로되 먼 지방⁶ 바벨론⁷에서 왔나이다

이사야가 가로되

저희가 왕궁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⁸

히스기야가 대답하되

내 궁에 있는 것을 저희가 다 보았나니 나의 내탕고에서⁹ 하나도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나이다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여호와의 말씀이

날이 이르리니

무릇 왕궁의 모든 것과 왕의 열조가 오늘까지 쌓아 두었던 것을 바벨론으로 옮긴바 되고¹⁰ 하나도 남지 아니할 것이요

또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¹¹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이르되

당신의 전한바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¹² 하고 또 가로되 만일 나의 사는 날에 태평과 진실¹³이 있을진대 어찌 선하지 아니하리요 하니라

히스기야의 남은 사적과 그 모든 권력과 못¹⁴과 수도를 만들어 물을 성중으로 인도하여 들인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히스기야가 그 열조와 함께 자고¹⁵

그 아들 므낫세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노트> 구역성서 열왕기하 20장 12-21절은 바벨론은 유다와 동맹을 맺고 앗수르를 대항하고자 유다에 사신을 보냈다. 히스기야는 그 사신들에게 모든 군기고와 보물을 공개하여 그의 부강함을 자랑하엿다. 이는 히스기야가 여호와 대신 자신의 군사력을 더욱 신뢰하는 행동이었다. 이사야 선지자는 세속의 힘을 의지하는 히스기야를 책망하고, 후일에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당할 것을 예언하였다. 이 사건은 다윗이 실시한 인구 조사와 그 성질을 같이하는 죄이다.

발라단의 아들¹: 앗수르 명각들에는 그가 아홉 번째 왕인 야킨(Yakin)의 아들로 언급되어 있는데, 야킨의 후손들 모두가 각자 자기 자신을 “야킨의 아들”로 언급한다. 아들이란 아마도 앗수르의 명각에서처럼 자손을 나타내는 것 같은데, 예후도 “오므리의 아들”이라고 불린다. 므로닥발라단의 선조들 중에 야긴과 발라단이라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부로닥발라단²: 이는 사 39:1에 므로닥발라단으로 기록된 사람임에 틀림없다. 이 왕은 마르둑-압파-잇디나(Marduk-appa-iddina)와 동일인으로 알려져 왔는데, 프톨레마이오스의 캐논(Ptolemy’s Canon)에 의하면, 그는 BC 721년부터 709년까지 바벨론의 왕이었다. 본 주석에서 사용된 왕들의 연대에 따르면 므로닥발라단은 유배당한 왕으로, 앗수르에 적대적이면서 앗수르에 맞서는 자신을 도와줄 동맹국들을 찾고 있었다. 비록 추방되었지만 그를 적법한 왕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바벨론 왕”으로 불렀을 것이다. 히스기야는 분명히 그를 그렇게 인정했을 것이다.

편지와 예물을 저에게 보낸지라³: 바벨론의 점성술사들은 놀라운 해시계의 기적이 일어났음을 알게 되었다(참조 대하 32:31). 므로닥발라단은 이것이 일어난 원인을 듣고 사절단을 예루살렘에 보내 히스기야에게 축하하고, 이런 기적들을 일으키신 하나님에 대하여 더 배우고자 하였다(참조 선지자와 왕, 344). 이 사절들은 또한 히스기야가 용감하게 앗수르에 대항하였던 것을 축하하는 행사를 갖고자 했을 수도 있다. 동시에 므로닥발라단은 공동의 적에 대항하기 위해 히스기야와 공식적인 동맹을 맺고자 했을 수도 있다.

모든 것⁴: 의심할 여지없이 히스기야는 “바벨론 왕”이 자신을 주목한 사실에 우쭐해졌다. 바벨론에서 온 사절들에게 그가 가진 모든 보물과 재원을 보여 줌으로, 히스기야는 이 욕심 많은 이방인들의 탐욕에 미끼를 던져 준 형국이 되었고, 결국 100년도 채 되기 전에 그들은 이 보물들을 탈취하여 바벨론으로 가져가 버렸다.

선지자 이사야가 히스기야 왕에게 나아와서⁵: 히스기야는 나라의 안전을 위협하는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고, 선지자는 이것에 대해 그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보냄을 받았다.

먼 지방⁶: 히스기야가 므로닥발라단과 어떤 공식적인 협정을 체결했다면 그는 이렇게 말하여 이런 조약의 심각성을 감소시키려 했다고 볼 수 있다. 여호수아는 기브온 사람들이 “심히 먼 지방에서” 왔다고 생각하여 그들과 동맹을 맺는 것은 괜찮다고 여겼다(수 9:9~15). 히스기야 역시 유다에서 바벨론까지의 거리가 므로닥발라단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이사야를 통하여 그분의 백성들이 이방 세력들과 연합하지 말고 하나님께 믿음을 두라고 촉구했었다(사 8:9~13; 30:1~7; 31:1~5).

바벨론⁷: 바벨론 나라를 말한다. 성경은 수도와 나라에 동일한 용어를 사용한다. 바벨론 남쪽에 있는 갈대아 지방 사람이었던 므로닥발라단은 이때에 바벨론 도성을 차지하지는 못하였는데, 앗수르인들이 다른 봉신(封臣) 왕을 그곳에 세워 두었기 때문이었다. 이 당시에 앗수르의 속국이었던 바벨론은 매우 약했고 대수롭지 않은 나라였으며 매우 멀리 떨어져 있었으므로,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바벨론은 이미 선지자들의 예언에서 중요한 주제가 되어가고 있었다(JM1V=사 13장S=Isaiah/13/1; 14:1~23; 43:14; 46:1, 2; 47:1~15; 미 4:10). 머지않아 앗수르가 아닌 바벨론이 큰 적이 되고 궁극적으로 유다를 멸망에 이르게 하는 세력이 될 것이었다.

저희가 왕궁에서 무엇을 보았나이까⁸: 그들은 히스기야가 보여 주려고 한 것만 보았다.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얼마나 좋은 기회였던가! 하나님께서 그를 죽을 병에서 고쳐 주셨다. 해시계의 그림자에 일어난 놀라운 이적이 광범위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놀라운 자비와 능력에 관하여 증거할 수 있었을 것이며, 므로닥발라단의 사절들로 하나님께서 지상에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위해 무엇을 하실 수 있으며 또한 하시는지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그들의 고국으로 돌아가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완전히 실패했다. 히스기야에게 주어졌던 똑같은 질문이 오늘 우리에게도 주어진다. 여호와께서는 사람들이 우리의 가정과 생활에서 무엇을 보는지 질문하신다.

나의 내탕고에서⁹: 히스기야는 세상의 보물들에 너무나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가 하늘 보물의 가치를 바르게 평가하고, 이 바벨론 사절들에게 그 값진 진주를 어렴풋하게나마 보여 주었다면 훨씬 더 좋을 뻔했다.

바벨론으로 옮긴 바 되고¹⁰: 약 100년도 안 되어서 이 예언은 성취되었다. 느부갓네살의 군대는 예루살렘의 보물들을 바벨론으로 옮겨갔다(24, 25장)

왕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서¹¹: 히브리어에서 “아들”은 종종 단순히 후손을 의미한다. 히스기야의 아들인 므낫세는 앗수르에 의해서 바벨론으로 끌려갔다(대하 33:11). 느부갓네살 때에는 많은 왕족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왕하 24:12; 25:6, 7). 이것은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의 경우에서 성취되었다(참조 단 1:3~7).

여호와의 말씀이 선하니이다¹²: 히스기야는 이사야의 말이 여호와의 말씀임을 인정하였고, 이 말씀이 선하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이 책망을 받을 만하다는 것을 알았다.

태평과 진실¹³: 더 정확히 말하면, “태평과 안정.” 여기서 “진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확증하다”, “지지하다”라는 의미의 어근 아만(’aman, 영어에서 “아멘”으로 채용됨)에서 나왔다. 히스기야는 특별히 두려운 심판이 자신의 시대에 임하지 않고, 자신의 통치기간 중에는 번영과 평안이 계속될 것임에 대하여 만족스러워 하였다. 그것은 자연스럽기는 하지만 이기적인 반응이었다. 히스기야는 자신의 경솔한 행동이 후손들에게 가져올 고통에 대해 관심을 가졌어야 했다.

못¹⁴: 이 연못은 옛 다윗 성 남서쪽에 위치한 실로암 안쪽 연못이며 수도는 유명한 실로암 터널이라고 생각된다. 물은 기드론 골짜기에 있는 기혼에서 끌어들였다. 터널은 “보냄을 받은” 또는 “인도함을 받은”이라는 의미를 가진 실로아 또는 실로암이라고 불렸으며, 물을 모아 놓은 곳이 실로암 연못이었다(요 9:7). 그 터널의 길이는 533미터였다. 1880년에 히브리어로 기록된 한 흥미있는 명각이 이 터널의 벽에서 발견되었는데, 히스기야 시대의 것이라고 여겨진다. 거기에는 일꾼들이 어떻게 양쪽에서 시작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파들어 갔는지 그리고 마침내 중앙에서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언급한다. 히스기야의 기술공들이 이루어 놓은 것은 놀라운 시설로, 성이 포위당했을 때 그곳을 통해 물이 거민들에게 안전하게 공급되었다. 게셀과 므깃도에서도 유사한 터널들을 볼 수 있다. 실로암 명각의 내용은 제3권, 119을 참조하라.

히스기야가 그 열조와 함께 자고¹⁵: 히스기야의 장례는 특별히 영예롭게 치렀는데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이 저를 다윗 자손의 묘실 중 높은 곳에 장사하여 저의 죽음에 존경함을 표하였”다(대하 32:33).

 

2025.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