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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의 개혁-앗수르의 침공

노파 2025. 11. 25. 00:02

 

히스기야의 개혁-앗수르의 침공

장지원

 

 

히스기야 왕 십사년¹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들²을 쳐서 취하매

유다 왕 히스기야가

라기스³로 보내어

앗수르 왕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⁴ 나를 떠나 돌아가소서

왕이

내게 지우시는 것을

내가 당하리이다 하였더니

앗수르 왕이 곧 은 삼백 달란트⁵와 금 삼십 달란트를 정하여

유다 왕 히스기야로 내게 한지라

히스기야가 이에

여호와의 전⁶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 주었고

또 그 때에

유다 왕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전 문의 금과 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힌 금을 벗겨⁷

모두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라

 

<노트> 구약성서 열왕기하 18장 13-16절은 북왕국을 정복한 앗수르는 그 여세를 몰아 남왕국까지 침공하였다. 그 당시 히스기야 왕은 주변 국가들과 더블어 반앗수르 동맹을 맺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앗수르가 침공하자 히스기야는 비굴하게 공물을 바치고 타협해 버렸다.이때 이사야 선지자는 히스기야에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싸우라고 충고하였다(사 10:24-26).

십사 년¹: 이것은 산헤립이 히스기야를 침공한 첫 번째 사건이다. 이 이야기는 18:3부터 19:37까지 계속된다. 사실상 이것과 거의 같은 표현으로 기록된 기사가 사 36장과 에 나타난다. 이것은 이사야가 열왕기하의 이 부분의 저자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대하 32:1~22에 나타나 간략한 역사적 기록은 히스기야가 전쟁을 위해 준비한 내용을 상세하게 보여 준다.

이 이야기가 한번의 전쟁에 관한 것인지 혹은 두 번의 전쟁에 관한 것인지는 학자들 간에 의견이 분분하다. 현대의 주석자들은 대부분 이 이야기가 한번의 전쟁을 기술하고 있으며, 모든 사건이 히스기야 14년 곧 BC 701년에 일어난 것으로 생각한다. 다른 이들은 이 이야기는 두 번의 전쟁에 대한 기록들이 섞여 있는 것인데, 첫 번째 것은 성벽이 있는 유다의 성읍들이 침공당했던 히스기야 14년에 있었던 것이고, 두 번째는 히스기야 통치 후반에 있었던 것으로, 앗수르 군대의 많은 군사가 죽임을 당했던 것(19:35)이라고 주장한다. 성경에 나타난 이야기가 단절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실은 전자의 견해를 지지한다. 더욱이 기록이 불완전하거나 산헤립이 의도적으로 자신의 패배에 대한 기록을 역사서에서 삭제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앗수르의 자료들은 일반적으로 산헤립의 유다 침공이 BC 701년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을 뿐 그 후의 침공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언급하지 않는다. BC 701년에 있었던 전쟁에 관해서 산헤립은 “히스기야를 새장의 새처럼” 가두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것은 예루살렘에 결정적 위협을 가했을 뿐 아니라 성벽으로 둘린 유다의 성읍들을 점령했던 전쟁과 매우 일치하는 기록이다.

히스기야의 광범위한 방어 준비(참조 대하 32:2~6)는 두 전쟁 사이에 어느 정도의 시간 간격이 있었을 것임을 암시한다. 또한 성경의 내용은 산헤립이 예루살렘 공격을 실패한 직후에 살해되었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에 BC 701년에 있었던 전쟁밖에 없었다면 그에 대한 암살은 그가 앗수르로 돌아간 지 약 20년 후에 일어난 것이 된다. 더욱이 형제와 함께 공동왕이 되었을 때인 BC 690년에 자신의 나이가 20세라고 기록해 놓은 디르하가(19:9)의 명각은 그가 BC 709년경에 태어났음을 가리킨다. 이것은 위에서 언급된 사건들이 BC 701년에 일어났다면 그가 거기에서 어떤 역할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했음을 보여 준다. 그가 BC 690년경에 애굽의 왕이 되기 전이었을지라도 군대장관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이미 제기되었다. 만약에 나이에 관한 디르하가의 기록이 사실이라면 이것과 19:9의 기록을 조화시킬 수 있는 단 한 가지 길은 히스기야의 말년쯤에 두 번째 전쟁이 있었다고 추정하는 것이다(참조 선지자와 왕, 330). 첫 번째 전쟁에서 성벽이 있는 성읍들이 점령되고 조공을 바치게 되었으며, 두 번째 전쟁에서는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통해 예루살렘이 구원함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이 기록이 연대기적인 개요를 제공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분을 찾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풍성한 보호하심을 나타내기 위해 기록된 사건이기 때문에, 이 부분이 이야기의 어디에 위치하는지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이 있다고 해서 신경 쓸 필요는 없다.

견고한 성읍들²: 산헤립은 유다에서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읍 46개를 정복했다고 주장한다.

라기스³: 그의 “헷 족속의 땅”을 정복하기 위한 세 번째 전쟁 기록에서 산헤립은 먼저 돈을 언급하고 후에 블레셋의 성읍들을 언급한다. 그리고 그는 내륙의 라기스로 향했다. 라기스는 아스글론에서 남동쪽으로 약 31킬로미터,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약 4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라기스의 함락에 대해서 앗수르의 한 부조물(浮彫物)에 묘사되어 있다(참조 제3권, 89).

내가 범죄하였나이다⁴: 이때에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히스기야가 항복은 하지만 예루살렘을 넘겨 주지는 않았다. 그는 많은 배상금을 지불하고서 산헤립을 돌려보내려고 했다.

삼백 달란트⁵: 산헤립은 수많은 보석과 상아로 만든 침상, 값진 나무들 그리고 “모든 값진 보물”과 함께 “금 30달란트와 은 800달란트”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여호와의 전⁶: 히스기야가 산헤립에게 항복하여 불행히도 성전이 고통을 당해야만 했다.

금을 벗겨⁷: 바로 얼마 전에 아하스가 디글랏 빌레셀에게 도움을 얻기 위해 성전에서 보물들을 취하였다(16:8). 그러므로 히스기야는 산헤립이 요구한 금액을 채우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25.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