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스기야의 개혁-히스기야 4년에 북 왕국이 멸망
장지원
히스기야 왕 사년
곧 이스라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칠년에
앗수르 왕 살만에셀¹이 사마리아로² 올라와서 에워쌌더라
삼 년 후³에
그 성이 함락되니³
곧 히스기야의 육년이요
이스라엘 왕 호세아의 구년이라
사마리아가 함락되매
앗수르 왕이
이스라엘을 사로잡아
앗수르에 이르러 할라⁴와 고산 하볼 하숫가와 메대 사람의 여러 성읍에 두었으니
이는 저희가
그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준행치 아니하고⁵
그 언약을 배반하고
여호와의 종 모세의 모든 명한 것을 거스려 듣지도 아니하며
행치도 아니하였음이더라
<노트> 구약성서 열왕기하 18장 9-12절은 북왕국 멸망 과정과 그 원인에 대한 기록이다. 북왕국 멸망 당시, 남 왕국과 북왕국의 신앙은 매우 대조적이었다.
살만에셀¹: 앗수르의 15번째 통치자. 그는 BC 727년부터 722년까지 다스렸다.
사마리아로²: 9절부터 12절까지는 17:5~23에 이미 언급한 사마리아의 멸망에 대한 설명을 반복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사마리아의 멸망이 히스기야와 호세야 두 사람의 통치기간에 일어났음을 알려 주며, 그 사건을 히스기야와 연관시켜서 다시 기록하고 있다.
삼 년 후³: 이것은 고대에 일반적이었던 포함식 계산법의 좋은 예이다. 오늘날에는 히스기야의 재위 4년부터 6년까지를 2년의 간격이 있는 것으로 계산하지만 고대에는 4년, 5년, 6년, 즉 3년으로 계산하였다(참조 68, 69쪽).
그 성이 함락되니⁴: (제임스왕역(KJV)에는 “they took it”[그들이 그것을 취했다]으로 되어 있음-역자 주). 복수 “그들”이라는 말이 흥미롭다. 이 말은 일반적으로 앗수르인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그렇게 보기 힘든 이유는 바로 앞 절에는 살만에셀이 사마리아에 올라와 포위한 것으로 언급돼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곳의 “그들”은 살만에셀과 그를 돕는 어떤 사람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살만에셀의 군대장관이요 후계자인 사르곤일 것이다(참조 17:6 주석).
할라⁴: 이 기록은 사마리아 멸망에 관해 앞서 기록한 17:6에서 가져와 반복한 것이다.
준행치 아니하고⁵: 이스라엘의 불순종에 관한 더 광범위한 기록의 요약은 17:7~23에서 찾을 수 있다.
2025.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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