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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의 개혁-성전 중심의 신앙 확립

노파 2025. 11. 21. 00:02

 

히스기야의 개혁-성전 중심의 신앙 확립

장지원

 

 

이스라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삼년에

유다 왕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¹가 왕이 되니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²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아비라 스가리야의 딸이더라

히스기야가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³

여러 산당을 제하며⁴

주상을 깨뜨리며⁵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⁶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⁷이라 일컬었더라⁸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⁹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¹⁰

곧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¹¹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 하시매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¹²

저가

앗수르 왕을 배척하고¹³ 섬기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사람을 쳐서¹⁴ 가사와 그 사방에 이르고

망대에서부터 견고한 성까지 이르렀더라

 

<노트> 구약성서 열왕기하 18장 1-8절은 선한 왕 히스기야가 남 유다의 왕이 되었다. 그는 부왕 아하스로부터 약화 되고 타락한 정권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그는 굳은 신앙을 바탕으로 통치함으로써 유다 왕국을 강력한 위치로 올려놓았다. 히스기야는 왕위에 오르자, 산당과 모든 우상을 제하여 버리고 성전 중심의 신앙을 확립하였다. 그 당시 유다의 가장 큰 대적은 앗수르였다. 물론 히스기야는 반 앗수르 정책을 폈다.

히스기야¹: 지금부터 등장하는 왕들은 유다의 왕이다. 히스기야가 아버지 아하스의 뒤를 이어(부조와 선지자, 86 150) 보좌에 앉았을 때, 북방 이스라엘은 그 비극적인 역사의 막을 내리려 하고 있었다. 남방 유다는 그보다 150여 년 더 존속하였다. 주변국들과 같은 길을 걸음으로써 백성들은 그 나라들의 희생물이 되었다. 히스기야의 선왕인 아하스는 남방 유다가 이스라엘과 같은 수준으로 전락하도록 이끌었다. 이방 신 숭배가 장려되었고 하나님의 전은 우상숭배의 장으로 바뀌었으며, 앗수르에 조공을 바치는 신세가 되었다. 히스기야는 그의 아버지가 펼쳤던 종교와 정치 문제에 대해 확실하고 신속하게 반전을 시도하였다. 성전은 정결케 되었으며, 거짓 신 숭배는 근절되었고, 앗수르에 바치던 조공은 중단되었으며, 나라는 정의와 하나님께 더욱 가까워졌다.

이십구 년²: 히스기야에 대한 연대기적 기록은 84, 85, 96, 97쪽을 참조하라.

정직히 행하여³: 열왕기는 이어지는 세 장을 히스기야의 통치에 할애하고 있다. 적지 않은 용기가 요구되는 일임에도 히스기야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 그는 시대의 조류에 역행해야 했으며, 나라 안팎에서 반대에 맞닥뜨렸다. 그러나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용기를 얻은 히스기야는 두려움 없이 원칙에 굳게 섰으며, 종교적 개혁을 통해 유다 백성들을 그들의 조상들이 걸었던 길로 행하게 하였고, 주변 나라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안정과 힘을 유지하게 되었다.

산당을 제하며⁴: 유다가 국가로 존재한 이래 이때까지 산당이 완전히 제거된 적은 없었다. 히스기야는 북방 이스라엘이 불순종함으로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았으므로, 자신의 나라가 그와 유사한 운명을 당하지 않도록 결심하였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였고 힘을 다하여 그의 나라에서 우상숭배에 관한 모든 것을 제거하기로 굳게 다짐하였다. 산당은 비록 율법에서는 금하고 있었지만 많은 사람이 예배하기 위해 즐겨 찾았다(왕상 3:2; 14:23; 22:43; 왕하 12:3; 14:4; 15:4, 35). 히스기야 시대까지 산당들은 유다의 왕들에게 용인되어 왔으며, 지금까지도 국가 종교의 일부로 용납되어 왔다.

주상을 깨뜨리며⁵: 이 법령은 히스기야 통치 첫해에 있었던 성전 정결과 유월절?준수 이후에 선포되었다(대하 29:3, 17; 30:1, 15; 31:1).

놋뱀⁶: 참조 민 21:6~9. 모세 이후에 이 뱀에 대해 언급한 것은 이곳이 처음이다. 어떤 이들은 이 뱀은 성막이 존재할 때까지 그 안에 보관되어 오다가 솔로몬 시대에 성전으로 옮겨졌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증명할 자료는 없다. 그러나 이때까지 그것은 거룩한 유물로 여겨졌으며 그 자체에 무슨 효험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백성들은 그 앞에서 분향하면서 오직 하나님께만 돌려야 할 존경을 놋뱀에게 바치고 있었다.

느후스단⁷; 아마도 히브리어 느호셰트(neh.o- s∨et) 즉 “놋”이라는 말과 같은 어원에서 파생된 말로, “놋신[銅神]”을 의미한다. 다른 이들은 느후스단이 나하스(nah.as) 즉 “뱀”에서 파생되었다고 주장한다.

일컬었더라⁸: 70인역의 어떤 판(版)과 수리아역 그리고 타르굼에는 “그들이 일컬었다”로 되어 있다.

하나님 여호와를⁹: 주변 나라들처럼 군사적인 힘에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함.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¹⁰: 이 진술은 유다의 역사가 끝난 다음에 나왔을 것이다. 이것은 23:25에 나오는 요시야에 대한 평가와 모순되지는 않는데, 왜냐하면 거기에는 요시야가 특별히 모세의 율법에 충실했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히스기야의 현저한 특징은 하나님께 대한 신뢰심이었다.

떠나지 아니하고¹¹: 솔로몬(왕상 11:1~11), 요아스(대하 24:17~25), 아마샤(대하 25:14~16) 같은 많은 왕이 처음에는 훌륭하게 출발했으나 통치기간 중에 하나님에게서 돌아섰다. 히스기야 역시 실수한 적이 있었으나(20:12~19), 여호와를 버리지는 않았으며 실수를 보충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형통하였더라¹²: 물질적인 번영에 대해서는 대하 32:23, 27~30을 참조하라.

배척하고¹³: 아하스는 앗수르의 종주권을 받아들이고 조공을 바쳤으나 이제 히스기야는 그것을 거부하였다.

블레셋 사람을 쳐서¹⁴: 이것은 앗수르에 대항한다는 것을 나타내는데, 왜냐하면 사르곤은 블레셋을 정복하여 애굽의 경계까지 이르렀고 가사 왕인 하누누(Hanunu)를 잡았기 때문이다. 사르곤은 재위 11년에 아스돗의 아주루(Azuru)를 폐위시키고 블레셋과 유다, 에돔, 모압에 조공을 바치라고 요구하였다.

 

2025.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