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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의 함락과 포로가된 이스라엘

노파 2025. 11. 18. 00:02

 

사마리아의 함락과 포로가된 이스라엘

장지원

 

 

이 일은¹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사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신

그 하나님 여호와께 죄를 범하고² 또 다른 신들을 경외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³

이방 사람의 규례와

이스라엘 여러 왕의⁴ 세운 율례를 행하였음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가만히 불의를 행하여⁵

그 하나님 여호와를 배역하여

모든 성읍에 망대로부터 견고한 성에⁶ 이르도록 산당⁷을 세우고

모든 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목상⁷과 아세라상⁸을 세우고

또 여호와께서

저희 앞에서 물리치신 이방 사람같이

그곳 모든 산당에서 분향하며 또 악을 행하여

여호와를 격노케 하였으며⁹

또 우상¹⁰을 섬겼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행치 말라 명하신 일이라

여호와께서 각 선지자와 각 선견자로

이스라엘과 유다를 경계하여 이르시기를¹¹

너희는 돌이켜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¹²

나의 명령과 율례를 지키되

내가 너희 열조에게 명하고 또 나의 종 선지자들로 너희에게 전한 모든 율법대로 행하라 하셨으나

저희가 듣지 아니하고

그 목을 굳게 하기를¹³

그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던¹⁴ 저희 열조의 목 같이 하여

여호와의 율례와 여호와께서 그 열조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과 경계하신 말씀을 버리고 허무한 것을 좇아¹⁵ 허망하며 또 여호와께서 명하사 본받지 말라 하신 사면 이방 사람을 본받아

그 하나님 여호와의 모든 명령¹⁶을 버리고

자기를 위하여 두 송아지 형상을 부어 만들고¹⁷ 또 아세라 목상을 만들고 하늘의 일월성신을 숭배하며 또 바알을 섬기고

자기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¹⁸ 복술¹⁹과 사술²⁰을 행하고 스스로 팔려²¹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그 노를 격발케 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심히 노하사²²

그 앞에서 제하시니 유다 지파 외에는 남은 자가 없으니라

 

<노트> 구약성서 열왕기하 17장 7-18절은 북왕국의 멸망이 기록되어 있다. 북왕국은 초기부터 왕조가 끝날 때까지 금송아지 우상을 섬겼다. 혁명으로 왕조가 바뀌었을 때에도 금송아지 숭배는 계속되었다. 뿐만 아니ㄹ, 바알, 아세라, 몰록 숭배 외에도 일월성신 숭배와 복술, 사술 등을 행하였다. 단적으로 말해 선민인 북왕국이 이방 나라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어진 것이다. 또한 북왕국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그들을 배척하였다.

이 일은¹: 성경 기자는 계속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수들에게 공격을 당하고 포로로 잡혀가도록 허락하신 다양한 이유들을 설명한다.

이스라엘 자손이…죄를 범하고²: 이것은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죄는 우리의 첫 조상이 에덴에서 추방당한 원인이며, 인류에게 이르러온 모든 비극의 이유이기도 하다. 인류에게 죄보다 더 큰 원수는 없다. 그것은 개인이나 국가 그리고 세계 등, 그것과 접촉하는 모든 것을 파괴한다.

(인도하여 내사: 일반적인 예의에 따랐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베푸신 그토록 큰 은혜에 대해 존경심을 나타냈을 것이다. 하나님의 자비와 선하심을 잊는 것보다 더 심각한 배은망덕은 없다. 히브리인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다른 백성들이 그렇게 하는 것보다 더 큰 죄에 연루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방인들은 제한된 빛을 받았으며 하나님께서 그의 택하신 백성에게만 주시는 아름다운 축복들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하나님은 자비하시며 인애가 많으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있었는데도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 거짓 신들을 섬겼다.)

여호와께서…쫓아내신³: 가나안 본토인들은 그들의 가증한 관습과 야만적인 부도덕함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겨났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동일한 행위에 빠진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팔레스타인의 거주민들은 그들의 악한 행위로 인해 파멸에 이르렀으며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스라엘 여러 왕의⁴: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은 자신의 백성들을 죄로 이끈 책임을 져야 한다. 그들은 바알과 같은 거짓 신들을 백성들에게 소개하고 또 섬기도록 장려하였으며, 백성들을 이끌어 여호와를 경배하는 것에서 떠나 가장 타락한 형태의 예배에 참여하도록 했다. 그렇다 해도 백성들 역시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사람은 자기 행위에 대하여 개인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지도자들의 잘못이 동일한 죄의 길을 따라간 백성들에게 핑계거리가 되진 못한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로 말로 전해 오는 교훈에 의존하고 있었다. 율법이 필사되는 경우는 드문 것이었으며 혹시 필사본을 만든다 해도 성경을 집에 보관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린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지식을 제사장이나 종교지도자들을 통해 들을 수밖에 없었다. 만일 이러한 영적 지도자들이 악한 일을 가르치고 또 그렇게 행한다면 그들의 책임 하에 있는 추종자들이 같은 행위의 과정을 거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가 될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 대부분은 개인적인 종교적 체험이 매우 약한 상태에 있었다. 대중의 종교는 위에 있는 권세자들이 만들어낸 예배 제도를 따르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오늘날 상황은 완전히 반전되었다. 세계적으로 성경 필사본을 구하는 일이 용이해졌다. 사람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이제는 진리를 스스로 공부해야 하며 개인적인 연구를 통해 확증하고, 영감의 말씀이 지지하지 않는 어떤 가르침도 받아들이지 말라는 권면을 받는다. 이렇듯 새로운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은 여전히 종교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신조나 행위에 따라 자신의 행동 양식을 결정한다. 이러한 길에는 심각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인간의 표준을 따르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다. 그들이 잃어버린 바 된다면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그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한 책임이 있는 사람들도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은 것이다. 다른 이들이 그들을 따르려는 경향이 있음을 고려해 볼 때 그들의 삶이 여러 면에서 많은 이의 모본이 되어야 하며, 모든 사람이 스스로 신앙적인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유일하고 완전한 우리의 모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지도하는 것 또한 그들의 책임이다.

가만히 불의를 행하여⁵: 이스라엘 사람들은 딴 마음을 품고 은밀하게 불의를 행했다. 그들은 표면적으로는 신앙심과 경외심을 나타내 보였으나 위선의 두루마기로 마음의 동기와 부도덕한 행위들을 가리고 있었다. 여호와께 경배하는 척하면서도 실제로는 하나님 나라의 원칙과 정반대 되는 일들을 저지르고 있었다.

망대로부터 견고한 성에⁶: 이 표현은 나라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를 의미한다(참조 18:8). 들판 저 멀리 가장 외딴 곳에는 침입을 막기 위한 파수꾼의 망대들이 있었으며, 다른 곳에는 벽으로 둘러싸인 커다란 성읍들도 있었다. 이것은 외딴 시골 지역이나 인구가 밀집해 있는 중심지를 막론하고 산당들이 어느 곳에나 세워졌음을 의미한다.

산당⁷: 이런 예배의 중심지에서 야만스러운 형태의 부도덕이 우상숭배와 더불어 자행되었다(신 12:2, 3; 사 57:5~7; 렘 2:20; 3:2). 그 땅의 토속적인 다산 의식들은 예배자들을 매우 음란한 행습에 휘말리게 했다.

목상⁸: 히브리어 맛체보트(mas.s.ebot). 참조 신 16:22 주석.

아세라상⁹: (제임스왕역(KJV)에는 아세라상이 “작은 숲”[grove]으로 되어 있음-역자 주). 히브리어 아셰림(’as∨erim). 참조 삿 3:7 주석. “작은 숲”은 오해하기 쉬운 번역인데 왜냐하면 그것이 “모든 푸른 나무 아래”(왕상 14:23) 세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기둥들로, 아세라 여신의 의식적 상징물이었다.

여호와를 격노케 하였으며⁹: 하나님은 사람처럼 격노하는 분이 아니다(참조 13:3). 그분은 죄는 미워하지만 죄인은 사랑하신다(정로의 계단, 59). 심판은 두려운 일이지만 지혜롭고 자비한 목적이 있다(선지자와 왕, 292).

우상¹⁰: 히브리어 길룰림(gillulim), “통나무”, “돌”, “형태가 없는 물건.” 구약에는 “우상”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가 12개 있다. 각각 거짓 신을 다른 측면에서 본다. 예를 들어 헛된 존재, 무(無), 공포와 슬픔의 원인 등이다. 길룰림은 우상들을 그 모양과 관련하여 묘사한다(신 29:17; 왕상 15:12; 21:26; 왕하 23:24; 겔 6:9; 16:36).

이르시기를¹¹: 히브리어 우드(‘ud). 이 단어는 “엄숙하게 권고하다”, “되풀이하다”, “명령하다”로 번역할 수 있다. 경고는 매우 엄했다. 그러나 그 목적은 백성들이 악한 길의 위험을 감지하고 죄에서 돌이키도록 돕는 것이었다. 만일 그들이 돌이키지 않는다면 최소한 그들의 운명에 대하여 하나님만을 비난할 수는 없게 될 것이다. 포로들 중 누구도 ‘나의 죄로 인한 결과가 이럴 줄 알았다면 개혁을 단행하였을 것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다루실 때 하나의 중요한 요소인 하나님의 공의는 온전히 옹호될 것이었다. 하늘로부터 온 증언들도 오늘날 유사한 기능을 한다. 하나님께서 지금보다 더 강력하게 자기 백성을 지도하고 엄숙하게 경고하신 적은 없다(참조 계 3:14~22). 실패하는 자들은 변명할 수 없을 것이다.

너희는 돌이켜…떠나¹²: 이것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위하여 해 주실 수 없는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초청하고 호소하며 권유하고 강권할 수 있지만 결코 강요할 수는 없으시다. 만일 사람이 의지를 굴복시키지 않는다면 그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실 수 있는 일을 모두 하셨다.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사 5:4). 다음 단계는 백성들의 몫이었다.

목을 굳게 하기를¹³: 이것은 굽히지 않는 고집과 완고한 자기 의지를 묘사한 일반적인 히브리어 표현이다(신 10:16; 대하 30:8; 36:13; 느 9:16, 17, 29; 잠 29:1; 렘 7:26; 17:23; 19:15).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주 “목이 곧은 백성”이라 불렸다(출 32:9; 33:3, 5; 34:9; 신 9:6, 13). 이러한 비뚤어짐과 완고함은 결국 파멸을 불렀다.

믿지 아니하던¹⁴: 이것은 행위에 큰 강조점을 둔 것으로 보이는 기록 가운데 들어 있는 흥미 있는 표현이다. 많은 사람은 구약 시대의 종교는 믿음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이런 은혜에 대한 경험이 전체적으로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계획하셨던 것이 아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이전 시대에도 믿음은 진정한 종교적 경험에 필수였다. 많은 사람이 믿음과 행함의 진정한 관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믿음과 행함을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계획의 목적은 인간의 품성을 에덴 동산에서 아담이 가졌던 본래의 완벽함으로 완전하게 회복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믿음과 행함의 조화를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 그러므로 행함을 배제한 채 믿음만 강조하는 종교는 믿음의 목적을 부정하는 것이며, 인간에게 다른 어떤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행함은 구원을 주지 못하지만 구원받은 사람은 선한 행위를 하게 될 것이다.

성숙한 믿음을 계발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하기만 했다면 하나님께서는 신약 시대에 발견되는 믿음의 경지로 그들을 인도하셨을 것이다. 백성들은 “믿지 아니하”여 실패하였다. “그 들은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히 4:2).

허무한 것을 좇아¹⁵: 인간이 율법과 하나님의 견책을 거부할 때 그는 자신이 지혜롭지 못하고 어리석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하늘의 가장 큰 보물을 허무하고 헛된 것과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하나님과 그의 법을 거절하고 악한 길로 행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인식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들은 한줌의 바람을 거머쥐기 위해 행복과 평화에 대한 모든 희망과 자신들의 왕국을 던져 버렸다. 그들은 허무한 것을 좇다가 허무하게 멸망당했다.

모든 명령¹⁶: 죄는 암처럼 자라난다. 사람이 하나님의 한 가지 계명에 불순종하기 시작하면 곧 불순종의 수렁으로 더 깊이 빠져들어 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에게서 돌아서서 우상을 숭배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곧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범하고 있는 자신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같은 시대의 선지자는 그들의 타락상을 이렇게 비판하였다.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사위와 살인과 투절과 간음뿐이요 강포하여 피가 피를 뒤대임이라”(호 4:1, 2).

형상을 부어 만들고¹⁷: 이 구절에는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숭배하던 다양한 형태의 우상이 열거돼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시 팔레스타인에서 숭배되고 있던 거의 모든 신을 숭배하고 있었다. 단과 벧엘에 있던 여로보암의 금송아지에 대해서는 왕상 12:28~30을 참조하라. 또 아합이 만든 아세라(히브리어 아셰라[’as∨erah]) 목상에 대해서는 왕상 16:33을 참조하라.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¹⁸: 당시에는 아이들을 불에 태우는 제사 의식이 있었다(신 18:10; 32:17; 왕하 16:3). 남방 유다를 고발한 내용도 이와 유사하였다(렘 19:5).

복술¹⁹: 이것은 신들의 뜻을 확인하거나 신들에게 은밀한 정보를 알아내려는 다양한 형태의 인간적인 방법들을 의미한다.

사술²⁰: 이것은 다양한 형태의 점술과 마술로 구성되어 있다.

스스로 팔려²¹: 이러한 가증한 행습에 참여한 사람들은 초자연적이고 신비한 의식의 배후에 있는 악한 세력의 종들이 되어 버렸다. 그런 후에 그들은 하나님의 종이 되는 대신에 사단의 노예들이 되었다. 그들은 그 악한 자가 전혀 자비로운 주인이 아님을 깨달았다(참조 왕상 21:20).

심히 노하사²²: 참조 13: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노를 발하사 늘 아람 왕 하사엘의 손과 그 아들 벤하닷의 손에 붙이셨더니”

 

2025.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