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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왕 아하스의 통치-친 앗수르 정책

노파 2025. 11. 13. 00:02

 

유다왕 아하스의 통치-친 앗수르 정책

장지원

 

 

르말랴의 아들 베가 십칠년에

유다 왕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왕이 되니

아하스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을 치리하였으나

그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치 아니하고¹

이스라엘 열왕²의 길로 행하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자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³

또 산당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이 때에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예루살렘에 올라와서⁴ 싸우려 하여

아하스를 에워쌌으나 이기지 못하니라⁵

당시에 아람 왕 르신이 엘랏을 회복하여⁶

아람에 돌리고

유다 사람⁷을 엘랏에서 쫓아내었고

아람 사람이 엘랏에 이르러 거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렀더라

아하스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자를 보내어⁸ 이르되

나는 왕의 신복이요 왕의 아들이라

이제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니 청컨대 올라와서 나를 그 손에서 구원하소서⁹ 하고

여호와의 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¹⁰을 취하여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보내었더니

앗수르 왕이 그 청을 듣고¹¹

곧 올라와서 다메섹을 쳐서 취하여

그 백성을 사로잡아 길¹²로 옮기고 또 르신을 죽였더라

 

<노트> 구약성서 열왕기하 16장 1-9절(B.C 740년경)은 유다왕 아하스는 금송아지와 바알 뿐만 아니라 몰록까지도 섬겼다. 아하스가 친 앗수르 정책을 폈기 때문에, 반 앗수르 국인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연합하여 유다를 공격하였다. 아하스는 앗수르에게 보물을 보내고 도움을 요청했다. 이때 이사야 선지자는 앗수르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께 간청하라고 아하스를 권면하였다(사 7장).

정직히 행치 아니하고¹: 대부분의 유다 왕들은 비교적 정직했다. 그러나 이제부터 악한 왕이 많이 나타난다. 아하스의 통치는 유다의 궁극적인 쇠퇴의 출발점이 되었다. 히스기야와 요시야가 죄악의 조류를 막아보려고 애썼지만 그 결과는 일시적인 것에 불과했다. 정의로움과 훌륭한 지도력을 가지지 못한 채 한 나라가 오래 존재할 수는 없다. 악인들은 어김없이 자신들을 파멸로 이끌어간다.

이스라엘 열왕²: 아하스는 “바알들의 우상을 부어 만들”었는데(대하 28:2), 이것은 이스라엘의 아합과 이세벨의 행위를 모방한 것이었다.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³: “그 자녀를 불사르고”(대하 28:3). 이러한 가증한 행위는 팔레스타인 국가들 사이에 만연해 있었다(신 12:31; 왕하 3:27). 므낫세도 이 같은 무도한 행위를 저질렀다(왕하 21:6). 이러한 행위는 예레미야 시대까지 이어졌다(렘 7:31). 이러한 끔찍한 행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금지되어 있었고 죽음의 형벌에 해당되었다(레 18:21; 20:2).

올라와서⁴: 참조 왕하 15:37; 사 7:1. 이 대담한 침략의 목적은 예루살렘에 새로운 왕조를 건설하고 다윗 왕조를 끝장내려는 것이었다(사 7:6). 만약 앗수르의 자료들에 나오는 “야우다의 아즈리아우”(Azriau o. Iauda)가 유다의 아사랴를 의미한다면(참조 왕하 14:28), 이 자료들은 아사랴가 앗수르를 강하게 견제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이 반(反) 앗수르 정책은 요담의 통치 하에서도 지속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하스의 시대에는 친(親) 앗수르 정책을 채택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과 아람은 이러한 친 앗수르 정책 때문에 아하스를 공격했는지도 모른다.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아하스를 격려하시면서 이스라엘과 아람이 궁극적으로 유다 왕국을 공격하는 일에 실패할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셨다(사 7:4~7; 8:4).

이기지 못하니라⁵: 그러나 이스라엘과 아람은 많은 포로를 잡아가는 데 성공하였다(대하 28:5~8). 북쪽의 이러한 침공과 더불어 남쪽에서는 에돔 족속이, 서쪽에서는 블레셋 족속이 유다를 괴롭혔다(대하 2:17~18). 지중해 연안 국가들은 급부상하는 세력의 침입을 막기 위해 앗수르에 대항하는 연합군을 형성하였는데 아하스가 이에 동참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변국들에게 협공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엘랏을 회복하여⁶: 참조 14:22 “아마샤가 그 열조와 함께 잔 후에 아사랴가 엘랏을 건축하여 유다에 돌렸더라”

유다 사람⁷: 히브리어 예후딤(Yehudim). 야곱의 열두 아들 중 하나인 예후다(Yehuda, 유다)에서 파생된 단어. 성경에서 이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곳이다. 이 용어는 처음에 남방 유다 왕국 백성들에게 적용되었다. 포로 후에는 지파와 관계없이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하여 사용했다(스 4:12; 느 1:2). 그리스도 시대에 이르러 이 이름은 야곱의 모든 자손을 의미하게 되었다(마 2:2).

사자를 보내어⁸: 아하스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권고하는 선지자 이사야의 조언을 거부하는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사 7:7~13; 8:13).

나를…구원하소서⁹: 이러한 외침은 하늘의 하나님께만 드려져야 한다. 디글랏 빌레셀을 향한 탄원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부족했던 아하스의 연약함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여호와께서는 시련의 때에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겠다고 반복해서 약속하셨다. 이사야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만 신뢰하라고 호소하였으나 아하스는 선지자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거절했다.

은금¹⁰: 아하스는 성전의 보물들을 취하여 이방 왕에게 바쳤다. 그는 동맹을 통해 이방 통치자와 연합하려고 하늘의 통치자와 결별하였다.

그 청을 듣고¹¹: 이 동맹 관계의 첫 산물은 앗수르가 블레셋을 공격한 것으로, 앗수르 에포님 캐논(Assyrian Eponym Canon, ) 또는 림무 목록(limmu list)에 따르면 이 일은 BC 734년에 일어났다.

길¹²: 이 성읍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사 22:6에 따르면 이곳은 엘람 지역 근방에 위치했던 것이 분명하다. 엘람은 앗수르 북쪽과 접한 바벨론 동쪽 지역이었다. 앗수르인들은 그들의 제국 전체를 횡단하며 포로들을 운반하곤 했다. 아모스는 아람인들이 길의 포로가 될 것이라고 이미 예언하였다(암 1:5).

 

2025.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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