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 호세아의 통치
장지원
유다 왕 아하스 십이 년에
엘라의 아들 호세아¹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구 년을 치리하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그 전 이스라엘 여러 왕들과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더라²
앗수르 왕 살만에셀³이 올라와서
호세아를 친고로 호세아가 신복하여⁴ 조공을 드리더니
저가 애굽 왕 소⁵에게 사자들을 보내고
해마다 하던 대로 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드리지 아니하매⁶
앗수르 왕이 호세아의 배반함을 보고⁷
저를 옥에 금고하여 두고
올라와서 그 온 땅에 두루 다니고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삼 년을 에워쌌더라⁸
호세아 구년에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취하고⁹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끌어다가 할라와 고산 하볼¹⁰ 하숫가와 메대 사람¹¹의 여러 고을에 두었더라
<노트> 구약성서 열왕기하 17장 1-6절은 북완국 최후의 왕 호세아에 대한 기록이다.호세아는 앗수르의 후원을 받아 반앗수르 파인 베가를 제거하고 왕이 되었다. 그러나앗수르의 왕 디글랏 빌레셀이 죽자, 앗수르에서 벗어나려고 애굽과 동맹을 맺었다. 앗수르의 살만에셀은 북 이스라엘로 침공하여 3년 동안 사마리아 성을 포위하였다. 결국 호세아 9년에 사마리아는 함락되고 북 왕국의 역사는 완전히 끝나고말았다. 북왕국은 여로보암에서 호세아까지 209년 간(B.C. 931-722년 간) 지속되었으며, 아홉 왕조에서 나온 19인의 왕들이 통치하였다. 왕조가 바뀔 때마다 반드시 피 흘리는 혁명이 있었다.
호세아¹: 호세아의 통치 연대에 대해서는 84, 85쪽을 참조하라. 디글랏 빌레셀 III세는 이스라엘 백성에 의해 베가가 폐위된 후 호세아를 왕좌에 앉혔으며, 금 10달란트와 은 1,000달란트를 조공으로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분명히 호세아가 베가를 폐위시킨 후 앗수르 왕과 평화 협정을 맺었으며 그의 권위를 인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디글랏 빌레셀은 그 당시 서쪽에서 일련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BC 734년에는 블레셋과, BC 733년에는 다메섹과 치렀다). 유다의 아하스가 최근에 디글랏 빌레셀에게 사신을 보내 베가와 르신을 대항하기 위해 그의 원조를 요청했고(16:7~9), 따라서 호세아는 앗수르가 왕위를 빼앗아 가기 전에 앗수르를 종주국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가 베가를 반역한 일은 앗수르 왕의 묵인과 지원으로 가능했을 것이다.
왕들과 같이 아니하였더라²: 호세아는 이전의 왕들이 하던 것처럼 악한 일을 위해 스스로 나서지는 않았다. 그가 적극적인 개혁을 감행했다면 국가는 그의 만년에 구원을 경험했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며 오래 참으신다. 그러나 죄악이 어느 정도의 한계를 넘어서고 하나님의 경고가 반복적으로 무시될 때는 심판이 임한다. 호세아는 심판의 도래를 막기 위하여 아무 일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살만에셀³: 살만에셀 V세는 BC 727년부터 통치를 시작했다. 그에 관한 기록은 손상된 상태이기 때문에 통치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신복하여⁴: 호세아는 디글랏 빌레셀을 자신의 종주로 인정하여 그에게 조공을 바쳤다. 살만에셀이 왕위에 올랐을 때도 이 정책을 유지하였다.
애굽 왕 소⁵: 애굽의 제23왕조 시대로, 국가가 쇠약하여 여러 군주들이 나라의 다양한 지역에서 동시에 다스리고 있었다. 애굽의 통치자 “소”(So)는 사르곤이 “애굽의 다르단(tartan, 참조 18:17)”이라고 지칭한 시부(Sib’u)일 것이다. 베를린 박물관에 있는 애굽인의 물건(우셉티[ushebti])에는 스부(sb’u)라는 이름에 왕을 표시하는 카르투쉬(car- touche, 명각이나 문서 등에 고대 애굽의 왕이나 신의 이름을 둘러싼 타원형의 테두리-역자 주)가 있는데, 이것은 당시 애굽에 이러한 이름으로 불린 왕이 얼마 동안 존재했음을 나타낸다.
조공을 드리지 아니하매⁶: 불행하게도 호세아는 국제 정세를 잘못 판단했다. 이 당시에 앗수르는 세계적인 강대국이었고 따라서 더 강해질 것이었다. 애굽은 사실상 이름만 남아 있었으며 마지막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조공을 바치지 않음으로 호세아는 그에 따르는 가혹한 징벌을 받게 되었다.
배반함을 보고⁷: 동시대의 선지자 호세아는 어떤 때는 앗수르를, 어떤 때는 애굽을 의지하는 이스라엘의 변덕스러운 대외정책을 비판하였다(호 5:13; 7:8, 11, 16; 8:9; 11:5; 12:1; 14:3).
에워쌌더라⁸: 살만에셀은 3년 동안 지속된 포위 공격을 시작하였다(참조 18:9, 10).
사마리아를 취하고⁹: 성경은 살만에셀이 포위를 시작했다고 기록하지만 성을 취한 왕이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는다. 바벨론 연대기에 따르면 샤마라인(Shamarain, 사마리아를 가리킬 것임) 성은 살만에셀의 통치기간 중에 몰락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계승자 사르곤 II세는 그의 통치 말년의 문서를 통해 자신의 통치 초기에 사마리아 성을 취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고 가정한다면 그는 왕이 아니라 군대장관으로서 그 성을 취하는 데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볼 수도 있다. 역사학자마다 의견이 다르지만 그 성은 살만에셀의 말년에 함락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참조 부조와 선지자, 63 85, 160)
하볼¹⁰: 니느웨 서쪽 약 209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유브라데강의 큰 지류인 카부르(Khabur) 강 지역. 하볼과 할라는 대상 5:26에서 디글랏 빌레셀이 자신의 포로들을 정착시킨 장소로 언급된다. 고산은 구자누(Guzanu)와 같은 지역으로 카부르 북부에 위치한 장소이다. 이 장소는 현재 텔 할라프(Tell Halaf)라 불리며 독일인들이 발굴하였는데 중요한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 할라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메대 사람¹¹: 메대는 앗수르의 북동쪽에 위치해 있다. 바로 얼마 전 앗수르는 메대 사람들과 전쟁을 치렀다. BC 737년에 있었던 원정은 메대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202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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