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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왕 요담의 통치

노파 2025. 11. 12. 00:02

 

유다왕 요담의 통치

장지원

 

 

이스라엘 왕 르말랴의 아들 베가 이년에¹

유다 왕 웃시야의 아들 요담이 왕이 되니²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³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여루사라

사독의 딸이더라

요담이

그 부친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⁴ 행하였으나

오직 산당을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요담이

여호와의 전의 윗문⁵을 건축하니라

요담의 남은 사적⁶과 그 모든 행한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그 때에 여호와께서 비로소

아람 왕 르신⁷과 르말랴의 아들 베가를 보내어

유다를 치게 하셨더라

요담이 그 열조와 함께 자매

그 조상 다윗 성에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

그 아들 아하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노트> 구약성서 열왕기하 15장 32-38절은 요담은 부왕 웃시야의 좋은 점을 본받아 선정을 베풀었다. 그러나 물질적 번영으로 인한 백성들의 신앙적 타락을 바로잡지는 못하였다. 이와 같이 유다가 신앙적으로 탁락의 길을 걷자, 하나님께서는 아람과 북왕국을 보내어 유다를 쳤다.

이 년에¹: 아사랴의 통치 기록 후에 성경은 계속해서 이스라엘의 다섯 왕의 통치에 대하여 기록한다. 그들은 모두 아사랴 통치기간 중에 왕위에 올랐다. 그 마지막 왕은 베가인데, 그는 아사랴 제52년부터 통치를 시작하였으며(27절) 그 해에 아사랴는 죽음을 맞이한다(2절). 따라서 이제 기록은 유다 나라와 요담의 통치 시대로 되돌아간다. 요담은 아버지 아사랴(웃시야)의 왕위를 계승하였다.

왕이 되니²: 요담은 웃시야가 문둥병에 걸려 별궁에 거하게 되었을 때(5절)부터 나라의 짐을 짊어지기 시작하였다.

십육 년³: 이 진술과 요담 제20년에 호세아가 왕위를 계승했다는 기록(30절)을 비교하기 원하면 84, 85쪽을 참조하라.

정직히⁴: 이스라엘의 왕들이 암살로 왕위를 계승하고 그들의 통치를 악으로 물들이고 있는 동안, 유다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께 충성을 다하는 다윗 혈통의 자손들 때문에 전반적으로 축복을 받았다.

윗문⁵: “여호와의 집 베냐민의 윗문”(렘 20:2)과 같은 문일 것이다. 에스겔은 “여섯 사람이 북향한 윗문 길로 좇아오는데 각 사람의 손에 살육하는 기계를 잡았”다(겔 9:2)고 기록하였다.

남은 사적⁶: 이 남은 사적의 일부가 대하 27:3~6에 기록되어 있다.

아람 왕 르신⁷: 요담의 치세에 시작된 르신과 베가의 동맹 관계는 지속되어 아하스의 치세에 절정을 이루었다(16:7~9; 사 7:1). 유다와 이스라엘 그리고 주변 국가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지중해 연안에서 이루어지는 앗수르의 활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디글랏 빌레셀은 매우 공격적이었으며 서쪽의 모든 지역을 자신의 지배 아래 두기로 결심했을 것이다. 르신은 디글랏 빌레셀의 명각에서 다메섹의 라히아누(Rahianu)라는 이름으로 나타난다.

 

2025.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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