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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아하스의 통치-아람과의 관계/장지원

노파 2025. 10. 23. 00:02

 

여호아하스의 통치-아람과의 관계

장지원

 

 

유다 왕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의 이십삼 년에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¹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칠 년을 치리하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좇고 떠나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노를 발하사²

늘 아람 왕 하사엘의 손³과 그 아들 벤하닷의 손에 붙이셨더니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학대하므로

여호아하스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셨으니⁴ 이는 저희의 학대 받음을 보셨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에 구원자⁵를 이스라엘에게 주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아람 사람의 손에서 벗어나

전과 같이 자기 장막⁶에 거하였으나

저희가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여로보암 집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좇아 행하며 또 사마리아에 아세라 목상⁷을 그저 두었더라

아람 왕이

여호아하스의 백성을 진멸하여 타작마당의 티끌같이⁸ 되게 하고 마병 오십⁹과 병거 십 승과 보병 일만 외에는 여호아하스에게 남겨두지 아니하였더라

여호아하스의 남은 사적과 모든 행한 것과 그 권력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여호아하스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그 아들 요아스¹⁰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노트> 구약성서 열왕기하 13장 1-9절은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의 북왕국 통치에 대한 기록이다. 여호아하스도 선왕처럼 금송아지 우상을 섬겼으며, 더 나아가서 아세라 목상까지 남겨두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통치 기간 내내 아람의 계속적인 침공을 허락하셧다. 아람은 이스라엘을 자기 예속국으로 삼고 이스라엘의 군사력까지 제한시켜다.이때 여호아하스는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여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다.

여호아하스¹: 예후의 죽음과 여호아하스의 왕위 계승에 관한 기록은 10:35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여호아하스의 통치에 관한 기록은 이곳에 이르러서야 나타난다. 열왕기는 통치 기록들을 일반적으로 통치자가 왕위에 오른 순서에 따라 정리해 놓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예후가 이스라엘에서 통치를 시작한 후 며칠이 되지 않아 아달랴가 유다의 왕위를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고 나서 예후 7년에 어린 요아스가 유다를 다스린 40년간의 긴 통치가 시작되었다. 세 왕의 통치가 열왕기에서는 위에 언급된 대로 예후, 아달랴, 요아스의 순으로 나타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이어서 유다 왕 요아스가 왕위에 있는 동안에 왕위에 올랐던 이스라엘의 여호아하스와 그의 계승자인 요아스 두 사람에 대한 내용으로 넘어가고, 그 후 이야기는 다시 요아스의 뒤를 이은 아마샤의 통치에 관한 기록으로 이어진다.

여호와께서…노를 발하사²: 인간의 분노는 비이성적이며 잔인하고 자기 방어적이다. 하나님의 분노는 전혀 다른 감정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당신의 성품을 묘사할 때 인간의 언어에 제한을 받으신다. 하나님은 성경의 기자들이 필요에 따라 그분의 뜻에 가장 근접한 표현들을 사용하도록 허락하신다. 비록 그것이 그 사상을 온전히 전달하지 못하는 표현이라 해도 그렇게 하신다. 여기서 사용된 “노”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을 묘사한다. 하나님께 “노”라는 단어를 적용시킬 때 이를 이해하기 위해 자극에 대한 인간의 반응과 관련된 요소들을 구체적으로 그분께 적용한다면, 이는 성경의 용어에 대한 모독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측량할 수 없다(욥 11:7). 인간의 언어가 부분적으로 부적절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때가 차매(갈 4:4)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 그분 자신의 생각을 보고 듣게 하셨다. 인간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희미한 개념밖에는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을 세상에 드러내셨다.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요 14:9)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노를 더욱 본질적으로 이해하려면 그러한 감정을 일으킬 만한 상황에서 예수께서 어떻게 반응하셨는지를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성전을 정결하게 하실 때(요 2:13~17) 나타내셨던 분노와 권위와 능력의 모습을 주의 깊게 살펴 보라. 눈물을 머금은 목소리로(ST 13)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는 그분을 바라보라(마 23장). 유대인들을 향한 고뇌에 찬 울음을 눈여겨보라(/19/41e; 시대의 소망, 575, 587,). 그리고 여호아하스 시대에 이스라엘의 운명을 지적하시는 분이 바로 그분임을 기억하라. 아람의 침공은 이러한 단련을 통해 이스라엘 사람들이 올바른 이성과 하나님께 돌아오게 되기를 바라시는 그분의 사랑과 기대에서 허락되었다.

하사엘의 손³: 여호와의 보호하시는 손길이 이스라엘에게서 거두어졌으며 하나님은 하사엘의 손이 여호아하스를 대항하여 전쟁을 벌여 승리를 거두도록 허락하셨다. 이러한 상황은 하사엘 시대에 지속되었을 뿐 아니라 그의 아들 벤하닷 III세의 치세 중에도 일부 지속되었다.

여호와께서 들으셨으니⁴: 여호와는 선하고 인자하신 하나님이다. 그분은 언제나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기꺼이 용서하신다. 여호아하스가 하나님께 돌아갔을 때 여호와께서는 자비롭게도 이스라엘에 구원을 베푸시기 위하여 사건들을 인도하셨다.

구원자⁵: 이것은 아마도 아다드-니라리 III세(Adad-nirari III)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앗수르 에포님 캐논(Assyrian Eponym Canon) 또는 림무 목록(limmu list)(참조 89~91쪽)에 따르면, 그는 BC 810~782년까지 앗수르를 통치하였다. 그의 통치 제5년 곧 BC 806년에 아다드-니라리 III세는 지중해 지역을 향한 대 원정에 관해 말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아람은 앗수르의 속국이 되어 무거운 조공을 바치게 되었다. 아람이 앗수르의 발아래 굴복함으로 이스라엘 침입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자기 장막⁶: 그들의 집이나 가정들(참조 왕상 8:66).

아세라 목상⁷: 히브리어 아셰라(’as∨erah). 예후는 이 이교적 상징물을 사마리아에 남겨 두도록 허락하였다. 아세라는 성스러운 나무로 다산의 상징이었으며, 동방의 다산 숭배 신앙에서 매우 중요한 존재였다(참조 출 34:13).

티끌같이⁸: 아람의 잔인성을 극단적으로 나타내는 비유적 표현. “저희가 철 타작기로 타작하듯 길르앗을 압박하였”(암 1:3)던 그 잔인성으로 인해 선지자 아모스는 얼마 있지 않아 다메섹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을 선고한다(암 1:4, 5).

마병 오십⁹: 앗수르인들의 기록에 따르면, 카르카르(Qarqar) 전투 당시 아합은 병거 2,000승과 보병 10,000명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람과의 지속적인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사실상 거의 모든 병거(兵車)와 기병(騎兵)을 잃었다. 사실상 이것은 무장해제와 동일한 상황이었으며 이스라엘은 방어능력이 전혀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요아스¹⁰: 그가 유다의 요아스 통치기간 중에 태어났다는 사실은 그의 이름이 그 통치자를 따라 지어졌을 수도 있음을 말해 준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두 국가가 매우 우호적인 관계 가운데 있던 시기임을 의미할 것이다.

 

2025.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