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다 왕 요아스의 통치-특징
장지원
예후의 칠년에¹
요아스가 위에 올라 예루살렘에서 사십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시비아라 브엘세바 사람이더라
요아스가
제사장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을² 동안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되
오직 산당을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³
백성이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였더라
<노트> 구약성서 열왕기하 12장 1-3절은 요아스 통치의 일반적 특징이다. 여호야다 제사장이 살아 있는 동안에, 요아스는 유다를 영적으로 부흥시켰다. 그러나 여호야다가 죽자 바알을 숭배하고 포학한 정치를 베풀었다.
예후 칠 년에¹: 요아스의 통치 기록은 다시 일반적인 형식을 따른다.
교훈을 받을²: 참조 대하 24:2 “제사장 여호야다가 세상에 사는 모든 날에 요아스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며”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³: 이 상황은 아사(왕상 15:14)와 여호사밧(왕상 22:43) 그리고 그 후대의 왕들인 여호람, 아하시야, 아달랴의 통치기간에도 계속되었다. 같은 상태가 아마샤(왕하 14:4), 아사랴(15:4), 요담(15:35), 아하스(16:4) 등의 치세에도 지속되었다. 히스기야 시대가 되어서야 산당들이 마침내 제거되었다(18:4). 그러나 그가 죽은 후에 므낫세가 산당들을 다시 세웠다(21:3). 그러므로 유다를 다스렸던 많은 선한 왕들의 통치기간 중에도 산당 제사는 남방 왕국의 역사 전반에 걸쳐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산당들이 꼭 우상숭배를 위한 제단이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솔로몬 성전이 건설되기 전에는 산당에서 희생을 드리는 것이 관례였다(왕상 3:2). 요시야가 산당들을 파괴할 때 그곳에서 제사했던 “산당의 제사장들은 예루살렘 여호와의 단에 올라가지 못하고 다만 그 형제 중에서 무교병을 먹을 뿐이었”다(왕하 23:9). 므낫세의 시대에는 “백성이 그 하나님 여호와께만 제사를 드렸으나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다(대하 33:17). 그러나 이러한 산당들 중 상당수가 부패와 우상숭배의 온상이 되었을 것이다(레 26:30; 민 22:41; 33:52; 왕상 13:33; 왕하 17:29; 대하 14:3; 34:3, 4).
202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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