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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왕 요아스의 통치-요아스의 타락과 하나님의 징벌/장지원

노파 2025. 10. 22. 00:02

 

유다 왕 요아스의 통치-요아스의 타락과 하나님의 징벌

장지원

 

 

때에 아람 왕 하사엘이¹ 올라와서

가드²를 쳐서 취하고

예루살렘을 향하여³ 올라오고자 한고로

유다 왕 요아스가

그 열조 유다 왕 여호사밧과 여호람과 아하시야가 구별하여 드린 모든 성물과 자기가 구별하여 드린 성물과 여호와의 전 곳간과 왕궁에 있는 금을 다 취하여 아람 왕 하사엘에게 보내었더니

하사엘이 예루살렘에서 떠나갔더라

 

요아스의 남은 사적과 그 모든 행한 것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요아스의 신복들이 일어나서 모반하여

실라⁴로 내려가는 길 가의 밀로⁵ 궁에서

저를 죽였고⁶

저를 쳐서 죽인 신복은 시므앗의 아들 요사갈⁷과 소멜의 아들 여호사바드⁸이었더라

저는 다윗 성에

그 열조와 함께 장사되고

그 아들 아마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노트> 구약성서 열왕기하 12장 17-21절은 요아스의 타락과 하나님의 징벌에 관한 기록이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여호야다가 죽자 유다의 방백들은 요아스 왕에게 우상을 섬기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는데, 왕은 그 일을 허락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경고하는 스가랴 선지자를 처형했다. 이러한 죄를 징벌하기 위해 하나님은 하사엘로 유다를 침공케 하셨다(대하 24:15-27). 결국 많은 보물을 주어 아람 군대를 되돌려 보냈으나, 요아스 왕은 부하들의 반란으로 살해 되었다.

때에 아람 왕 하사엘이¹: 여기 언급된 사건은 성전 수리를 마친 후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났다. 성전 수리는 요아스 23년에 시작되었으며(6절), 같은 해에 여호아하스가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른다(13:1).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요아스는 죄악에 빠져 결국 하사엘의 손에 크게 상함을 입게 된다(대하 24:15~25).

가드²: 하사엘은 벧산과 이스르엘 골짜기와 해안 평야를 거쳐 이 블레셋인의 성읍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그는 북방 이스라엘을 장악했을 것이다(참조 13:3). 가드는 아람에서 너무 멀기 때문에 곧 블레셋의 손에 다시 들어갔을 것이다. 그 후에 유다의 아사랴(웃시야)가 가드의 성벽을 무너뜨렸다(대하 26:6). 이 성읍의 위치는 불확실하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아라크 엘-멘쉬예(‘Araq el-Menshiye)를 지지한다. 이곳은 지금의 키르야트 가트(Kiryat Gat), 곧 베이트 지브린(Beit Jibrin, 신약 시대의 Eleutheropolis)에서 서쪽으로 약 10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해 있다. 그러나 베이트 지브린과 텔 엣-차피(Tell es.-S.a^i-, 일반적으로 립나와 동일시된다) 역시 가능성 있는 지역으로 제시되어 왔다. 많은 이스라엘 학자들이 지지하는 키르야트 가트(Kiryat Gat)의 바로 북쪽 지역은 텔 셰이크 엘-아레이니(Tell Sheikh El-‘Areini)이며, 베이트 지브린에서 서쪽으로 약 10킬로미터 그리고 헤브론에서 서북서쪽으로 32킬로미터 지점이다.

예루살렘을 향하여³: 하사엘이 가드를 취했을 때 그는 예루살렘의 남서쪽에 있었고, 따라서 예루살렘은 다메섹으로 돌아가는 편리한 길에 있었다. 아람의 군대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이르러 백성 중에서 모든 방백을 멸절한 사건은 바로 이때 벌어진 일이었다(대하 24:23).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의 왕과 그의 방백들은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겼다(대하 24:18).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이러한 범죄에 항변하자 그들은 왕의 명을 좇아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스가랴를 돌로 쳐죽였다(대하 24:21). 그때 하사엘이 예루살렘에 이르렀으며 거기서 심히 큰 군대와 대면했으나, 적은 무리로도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는데 이는 유다 백성들이 여호와를 버렸기 때문이다(대하 24:24).

실라⁴: 이 지역이 어디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밀로⁵: 아마도 다윗이 정복한 고대 여부스인의 도성 북부에 있는 견고하게 요새화된 지역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윗은 이 지역을 강화하기 위해 힘썼으며(삼하 5:9; 대상 11:8), 솔로몬 시대에 중요한 요새로 변모되었다(왕상 11:27). 요아스는 안전을 위하여 주로 밀로의 이 요새에 머물렀던 것으로 보인다.

저를 죽였고⁶: 아람인들은 떠나면서 치명상을 입은 요아스를 버리고 갔다(대하 24:25). 그리고 요아스가 그의 침상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을 때 모반한 자들이 그를 쳐죽였다. 모반은 명백하게 왕의 배도와 연관이 있었다. 그는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죽였다. 요아스의 생명과 왕좌는 신실한 대제사장에게 빚진 것이었다. 은인의 아들을 죽인 것은 실로 배은망덕한 행위였다. 요아스가 죽었을 때 그에 대한 원성은 심각한 지경에 달하여 사람들은 그 시체를 열왕의 묘실에 장사하지 않았다(대하 24:25).

요사갈⁷: 암몬 여인의 아들 사밧이라고 불렸다(대하 24:26). 요사갈은 “여호와께서 기억하셨다”라는 의미이다.

여호사바드⁸: 모압 여인 시므릿의 아들로 불렸다(대하 24:26). 여호사바드는 “여호와께서 주셨다”라는 의미이다. 모반을 꾀한 이 두 사람의 이름과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요아스의 명령으로 돌로 쳐죽임을 당할 때 부르짖은 말 사이에는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스가랴는 죽으면서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대하 24:22)라고 말하는데, 이는 “여호와께서 보시고 심판을 내리소서”라는 의미이다. 요아스 왕은 제사장 여호야다가 그에게 베푼 은혜를 기억하지 못했지만 여호와께서는 기억하시고 심판을 내리셨다.

 

2025.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