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다의 아달랴-아달랴의 집권
장지원
아하시야의 모친 아달랴¹가
그 아들의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왕의 씨²를 진멸하였으나
요람 왕의 딸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³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자들의 죽임을 당하는⁴ 중에서 도적하여 내고
저와 그 유모를 침실에⁵ 숨겨
아달랴를 피하여 죽임을 당치 않게 한지라
요아스가 저와 함께
여호와의 전에 육 년을 숨어 있는 동안에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렸더라⁶
<노트> 구약성서 열왕기하 11장 1-3은 아하시야가 예후에게 실해 되자, 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가 남 유다의 정권을 장악하였다. 아달랴의 집권으로 다윗 계통의 왕가가 끊기는 위기를 맞게 되었다. 아달랴는 이세벨처럼 바알 숭배자였으며, 남편 여호람과 아들 아하시야를 자기 마음대로 조정하여 유다 왕국에 바알 숭배를 확산시킨 인물이었다.
아달랴¹: 아하시야가 예후의 손에 죽임을 당한 일은 이스라엘 왕 요람이 사망한 지 얼마 후에 있었다(9:24, 27). 하지만 예후의 통치는, 며칠 혹은 몇 주 정도밖에 안 되지만 아달랴의 통치보다 앞서 시작되었다. 예후가 왕위를 계승한 것(9:12, 13)이 아달랴보다 앞섰다는 사실에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판가름하기는 어렵다(참조 79쪽). 예후가 왕위를 계승한 사건(9:1~11)을 스스로 주도한 것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열왕기하의 저자가 예후의 왕위 계승 선언을 먼저 기록하여 내용 전체의 연속성을 유지하고자 했음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참조 창 25:19; 27:1; 35:29; 출 16:33, 35; 18:25 주석). 아달랴를 먼저 소개했다면 기록의 연속성이 흐트러졌을 것이다.
왕의 씨²: 아달랴는 모친 이세벨의 모질고 잔혹한 정신을 물려받은 것으로 보인다. 여호람의 아내요 아하시야의 어머니로서 그녀는 두 사람의 통치기간에 유다의 정책을 좌지우지(左之右之)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스라엘의 영향력은 이 시기 동안 유다에 강한 인상을 남겨주었다(8:18, 27). 이제 아달랴는 자신의 권력으로 일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에 있는 모든 친족이 죽임을 당한 것은 그녀에게 견딜 수 없는 충격이었다. 유다에서 그녀를 대항하는 어떤 계획들이 수립되기 전에 그녀가 선수(先手)를 쳤다. 그녀는 다윗의 후손을 완전히 근절(根絶)했다고 생각했다.
여호세바³: 아마도 여호람의 딸 아하시야의 이복누이로, 아달랴가 아닌 다른 부인의 소생일 것이다. 그녀는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부인이었다(대하 22:11).
죽임을 당하는⁴: 요아스는, 이미 죽은 시체 중에서가 아니라(참조 제임스왕역(KJV)) 죽을 운명에 처해 있는 왕자들 중에서 구해냄을 받았다.
침실에⁵: 왕궁이 아니라 성전에 있는 제사장 구역에서. 여호세바는 아이를, 모든 것이 왕비의 감시 아래 있는 왕궁에 숨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전 구역에서는 상당한 감독권을 행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렸더라⁶: 아달랴의 통치에 관한 기록은 매우 간단하다. 히브리 기록자들이 그녀의 통치 성향에 관하여 자세한 기록을 남기지 않을 만큼 그녀는 경멸을 당하였다. 그러나 왕하 12:5~14과 왕하 11:18; 대하 24:7을 비교해 볼 때 아달랴가 여호와 경배를 끝내고 반역적인 바알 숭배를 정착시키려고 애썼던 것이 분명하다. 성전봉사는 중단되었고 성전 자체도 수리되지 않은 상태로 내버려 두었던 것 같다. 여호와께 경배하기 위하여 공식적으로 사용되던 성전의 거룩한 기명(器皿)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바알의 사제들에게 넘겨졌다.
2025.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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