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유다의 아달랴-요아스가 왕이 됨/장지원

노파 2025. 10. 15. 00:02

 

유다의 아달랴-요아스가 왕이 됨

장지원

 

 

제칠년에¹ 여호야다²가 보내어

가리 사람의 백부장들과 호위병의 백부장들³을 불러 데리고

여호와의 전으로 들어가서

저희와 언약을 세우고

저희로

여호와의 전에서 맹세케 한 후에

왕자⁴를 보이고

명하여 가로되⁵

너희의 행할 것이 이러하니

안식일에⁶ 입번한 너희 중 삼분 일은 왕궁을⁷ 주의하여 지키고

삼분 일은 수르문⁸에 있고

삼분 일은 호위대 뒤에 있는 문⁹에 있어서 이와 같이 왕궁을 주의하여 지켜 방어하고¹⁰

안식일에 출번하는¹¹ 너희 중 두 대는

여호와의 전을 주의하여 지켜 왕을 호위하되¹²

너희는 각각 손에 병기를 잡고

왕을 호위하며

무릇 너희 반열을 침범하는 자는 죽이고¹³

왕의 출입할 때에 시위할지니라

 

백부장들이 이에

제사장 여호야다의 모든 명대로 행하여

각기 관할하는바

안식일에 입번할 자와 출번할 자를 거느리고

제사장 여호야다에게 나아오매

제사장이 여호와의 전에 있는 다윗 왕의 창과 방패¹⁴를 백부장들에게 주니

호위병이 각각 손에 병기를 잡고¹⁵

왕을 호위하되 전 우편¹⁶에서부터 전 좌편까지 단과 전 곁에¹⁷ 서고

여호야다가

왕자¹⁸를 인도하여 내어 면류관을 씌우며

율법책¹⁹을 주고 기름을 부어 왕을 삼으매

무리가 박수하며 왕의 만세를 부르니라²⁰

 

<노트> 구약성서 열왕기하 11장 4-12절은 고모 여호세바의 손에서 몰래 키워진 요아스가 7세 되던 해에, 여호야다 제사장은 반란을 일으켰다. 이 반란은 모든 족장과 군대 지휘관들과 레위 사람들의 호응을 얻어 성공하였으며, 다윗의 후손인 요아스가 남 유다의 왕이 되었다.

제칠년에¹: 아달랴의 치세 “제칠년”임이 분명하다. 이것은 아달랴의 통치에 종언을 고한 혁명이 “제칠년”에 일어났다고 언급된 점과 그녀의 뒤를 이어 요아스가 예후 제7년에 통치를 시작했다(12:1)는 기록을 볼 때 분명해진다.

여호야다²: 당시의 대제사장 여호야다는 100세 가량 된 존경받는 어른이었을 것이다. 그는 임종을 맞이할 당시 130세였다. 그는 40년 동안 다스린 요아스(왕하 12:1)가 통치를 마치기 전에 죽었다(대하 24:15, 17). 선왕들의 통치기간에 비춰볼 때 여호야다는 르호보암의 초기 통치기간 이후에 태어났다고 보기는 어려울 듯하며, 아마도 솔로몬의 통치기간 중에 태어났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나라에서 일어난 파란만장한 역사를 겪으며 살아왔다.

가리 사람의 백부장들과 호위병의 백부장들³: 대하 23:1에는 이들 중 다섯 명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다. 가리 사람들은 아마도 그렛 사람들처럼(삼상 30:14; 삼하 8:18; 15:18; 20:7, 23; 왕상 1:38, 44; 대상 18:17) 왕실 경호를 위해 고용된 외국 용병대였을 것이다. 고대 동방에서는 외국 용병을 고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여호야다가 비밀 회의에 소집했던 백부장들은 궁정 호위병들의 지휘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호야다는 이러한 과감한 조치를 통해 자신이 하려는 일을 확고하게 하고자 했다. 왜냐하면 왕을 보호하는 임무를 띤 지휘관들이 그의 편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왕자⁴: 호위병의 대장들은 비로소 아하시야의 아들을 보게 되었는데, 그 아이는 유다의 합법적인 왕이며 대장들과 호위병들이 호위해야 할 자였다.

명하여 가로되⁵: 여호야다는 왕의 보호자로서 자신의 재량권 안에 있는 왕궁 호위대에게 명령을 내렸다.

안식일에⁶: 새로운 정부가 발족하는 날로 안식일을 선택했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다른 면으로 본다면 안식일이 언급된 것은 단지 안식일마다 해왔던 호위병들의 임무를 배분하는 구조가 현재의 임무를 분배하여 주는 데 편리한 체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왕궁을⁷: 한 부대는 왕궁 본체를 경계해야 했다.

수르문⁸: “기초문”(대하 23:5)이라고도 불린다. 이 문이 어느 문을 가리키는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이 문은 성전으로 가는 길에 있는 궁문(宮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호위대 뒤에 있는 문⁹: 이 문 역시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왕궁 뒤쪽에 위치한 대문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 문을 지키는 목적은 왕궁을 완벽하게 장악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왕궁에서 정규적으로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위치를 지키라는 명령을 내려 조치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들이 거기에 있다고 해서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방어하고¹⁰: 히브리어 맛사흐(massah.). 이 단어는 유일하게 이곳에만 나타나는데 의미가 모호하다. 70인역은 이 단어를 번역하지 않는다. 많은 유대인 주석자들은 “방심하지 말고”라고 번역한다.

출번하는¹¹: 평소대로라면 안식일에 비번인 사람들을 말한다.

왕을 호위하되¹²: 평소에는 안식일에 왕궁에서 특정 임무를 맡지 않던 호위병들에게 성전 안에 있으면서 어린 왕을 지키도록 하였다.

침범하는 자는 죽이고¹³: 누구든지 왕을 지키는 호위병들의 대열에 접근하려고 시도하는 자는 즉시 죽임을 당할 것이었다. 이제 곧 벌이려고 하는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어린 왕의 생명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아달랴의 파당들이 어린 왕을 죽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다윗 왕의 창과 방패¹⁴: 오래된 다윗의 창과 방패는 당시에 분명히 성스러운 유물로 여겨져, 호위병들은 더 이상 그것을 무기로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날 성전에 있으면서 새로운 왕을 지키던 호위병들은 전혀 무장하지 않고 성전에 왔다는 사실이 여기에 암시되어 있다. 이 때문에 의심을 사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이 혁명이 안식일에 수행되도록 계획되었다면(참조 5절 주석) 그 사람들은 성전에서 특별한 목적으로 드리는 예배가 있으니 참석하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안식일을 준수하는 사람들이었으므로 이러한 일은 어떤 의심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안식일에 비번인 자들에게 무장을 하고 성전에 오라고 했다면 비밀은 곧 들통이 났을 것이며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을 것이다.

각각 손에 병기를 잡고¹⁵: 이들은 즉시 행동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었다. 오래된 다윗의 무기들은 이러한 용감한 임무를 여러 차례 맡았었지만 이날 그들에게 주어진 것만큼 중요한 책임을 맡아본 적은 거의 없었다. 어린 소년의 생명을 안전하게 지키는 일은 다윗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에 비춰볼 때 극적인 부분이 있었다(참조 왕상 2:4; 8:25). 그는 왕위에 오를 모든 자격을 갖춘 유일한 생존자였다.

우편¹⁶: 동쪽을 바라보고 선 위치를 기준으로 “우편.” 성전의 우편은 남쪽이었으며 좌편은 북쪽이었다.

단과 전 곁에¹⁷: 번제단은 성전의 입구 바로 앞에 있었다. 왕이 위치해 있던 곳은 바로 성전 입구였다. 그는 성전 뜰에 있는 예배자를 모두 볼 수 있었다. 군사들은 성전의 앞쪽에 여러 줄로 정렬하여 누구든지 그곳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 “제사장과 수종드는 레위 사람은 거룩한즉 여호와의 전에 들어오려니와 그 외의 다른 사람은 들어오지 못할 것이니”라(대하 23:6)는 명령이 분명하게 내려졌다.

왕자¹⁸: 어린 왕자는 성전 안에 숨겨 있었으며 호위병들이 제 위치에 배치된 후에야 왕의 즉위식을 위해 인도되어 나왔다. 그는 성전문 기둥 곁에 섰다(대하 23:13). 이것은 평범한 행사가 아니었으며, 따라서 그 중요성에 걸맞도록 가능한 모든 준비를 갖추었다. 레위인들은 전국에서 모여들었으며 “이스라엘의 족장들”(대하 23:2)도 모였다.

율법책¹⁹: 히브리어 하에두트(ha‘edut). 이 용어는 일반적으로 십계명에 사용되었다. “율법책”은 말 그대로 율법이 기록된 책이었을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즉위식(卽位式)에서 이 율법을 사용한 것 자체가 여호와의 율법에 대한 왕의 충성을 표현한 것이다. 왕은 이 율법에 따라 자신의 삶을 제어하고 그의 백성들을 다스릴 것이었다. 이 성경절은 영국에서 즉위식이 진행되는 동안 왕들의 손에 성경을 쥐어 주는 관습의 기초가 되기도 했다.

왕의 만세를 부르니라²⁰: 문자적으로는 “왕으로 살게 하소서.” 이 표현은 사울(삼상 10:24), 압살롬(삼하 16:16), 아도니야(왕상 1:25), 솔로몬(왕상 1:39) 등의 즉위식에서도 사용되었다. 지금 이 외침은 형식적인 예의를 갖추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다윗 왕조의 운명은 실로 이 아이의 생명을 보존하는 일에 달려 있었다. 어린 왕은 많은 원수과 맞닥뜨릴 것이었다. 그가 죽임을 당한다면 다윗 가문의 혈통은 끊어지고 말 것이다. “왕으로 살게 하소서”라는 외침은 많은 염려와 열렬한 기도 그리고 기쁨의 곡조와 함께 하늘로 올라갔다. 아달랴가 왕족을 모두 진멸하는 데 성공했다고 널리 알려져 있었다(11:1). 왕자 가운데 한 명이 보존되어 이제 왕이 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승리의 함성은 도성 전역에 울려 퍼졌을 것이다.

 

2025.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