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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에 위인전> 아합왕의 아내 이세벨의 죽음/장지원

노파 2025. 9. 26. 00:02

 

<성경 속에 위인전> 아합왕의 아내 이세벨의 죽음

장지원

 

 

예후가 이스르엘에 이르니

이세벨이 듣고¹ 눈을 그리고² 머리를 꾸미고³ 창에서 바라보다가⁴

예후가 문에 들어오매 가로되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평안하냐⁵

예후가 얼굴을 들어 창을 향하고 가로되

내 편이 될 자가 누구냐⁶ 누구냐 하니

두어 내시⁷가 예후를 내다보는지라

가로되

저를 내려던지라⁸ 하니

내려던지매

그 피가 담과 말에게 뛰더라

예후가

그 시체를 밟으니라⁹

예후가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¹⁰ 가로되

가서

이 저주 받은 계집¹¹을 찾아 장사하라

저는 왕의 딸¹²이니라 하매

가서 장사하려 한즉

그 두골과 발과 손바닥 외에는¹³ 찾지 못한지라

돌아와서 고한대

예후가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그 종 디셉 사람 엘리야로 말씀하신바라¹⁴ 이르시기를

이스르엘 토지에서 개들이 이세벨의 고기를 먹을지라

그 시체가 이스르엘 토지에서 거름 같이 밭 면에 있으리니 이것이 이세벨이라고 가리켜 말하지 못하게 되리라¹⁵ 하셨느니라

 

<노트> 구약성서 열왕기하 9장 30-37절은 아합의 아내인 악한 왕비 이세벨의 죽을 다룬 기록이다. 엘리야의 예언대로(왕상 21:23), 그녀의 시체는 개들에게 먹혔다.

이세벨이 듣고¹: 이세벨에게 마지막 운명의 시각이 다가왔고 그녀는 그것을 알았다. 두 왕 곧 그녀의 아들과 손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후 그녀는 자신이 다음 차례가 될 것임을 잘 알았다. 그녀는 이 땅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준비해야만 한다. 이 사악한 여인이 무엇을 준비했겠는가!

눈을 그리고²: 문자적으로 “그녀가 안티몬을 자신의 눈에 바르고.” 아주 초기부터 동방 여인들은 눈썹과 속눈썹을 그리기 위해 화장품을 사용했다(참조 렘 4:30; 겔 23:40).

머리를 꾸미고³: 문자적으로 “머리를 좋게[아름답게] 꾸몄다.” 이세벨은 자신의 머리를 “머리 망사” 곧 머리에 쓰는 것으로 장식했다(참조 사 3:18). 그녀는 마지막까지 반항하였으며 회개하지 않았다. 그녀는 모든 장신구로 화려하게 꾸미고 가장 품위 있는 의복을 입었다. 그러나 그녀의 겉치장은 예후 앞에서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 심판 앞에서 모든 입장이 있는 그대로 드러났다. 분을 바르고 화장을 하는 것이 내적 타락을 덮을 수 없으며, 비단과 공단으로 만든 옷이 영혼에 새겨진 죄의 추한 흔적을 숨길 수 없다. 겉치장을 위한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세벨은 마음이 타락했다. 하나님은 마음을 보시며 외모보다는 마음의 치장을 요구하신다(벧전 3:3, 4). 자신의 어두운 죄의 기록을 고려한다면, 이세벨은 마땅히 베옷을 입고 재 위에 앉아야만 했다. 그러나 그녀의 교만한 정신이 겸손하게 되기를 거부했으며, 돌 같은 그녀의 마음은 꼼짝하지 않았다.

바라보다가⁴: 그 창문은 그녀의 밀실에 있는 것으로, 거기서 안 뜰을 내려다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창문으로 다가가 궁전 문을 막 들어서고 있는 반역자를 모멸에 찬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을 때 취한 태도는 오만하고 방자해 보였을 것이다.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평안하냐⁵: 시므리는 바아사 가문을 몰살시킨 자였다(왕상 16:8~13). 그러나 그는 단지 7일간 통치했다. 그 기간 끝에 그는 자신의 계승자와 싸우다 죽었다. 그에게 평안이란 없었다. 본문에 나타난 그대로 보면, 이세벨이 시므리의 불행한 시도를 마치 예후에 대한 경고인 것처럼 언급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문자적인 번역은 다른 생각을 전달한다. 즉 이세벨이 시므리에게 하듯 조롱하는 투로 예후에게 “평안하뇨? 네 주인을 죽인 자 너 시므리여”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내 편이 될 자가 누구냐 누구냐⁶: 히브리어는 한층 간결하고 더욱 적절하다. 미 잇티 미(mi ’itti mi), “누가 나와 함께, 누가?” 이 간결하고 성급한 표현은 예후 특유의 표현으로 보인다. 그는 궁전 뜰로 들이닥쳤고 이세벨의 조롱하며 모욕하는 인사 소리를 듣자,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자신 앞에 있는 비열한 여인을 채 붙잡기도 전에 곧장 서둘러 모든 일을 끝장내고 싶었다.

내시⁷: 이세벨은 자신과 가장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에게조차도 미움을 받은 여인의 전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순간까지도 내시들은 그녀 앞에서 굴욕적인 두려움으로 굽실거리며 그녀의 온갖 변덕스러운 생각을 즉시 이행할 태세를 갖추는 데 길들여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히 그녀를 존경하지도 사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그녀를 경멸했고, 자신들에게 이익이 될 경우에만 그녀에게 충성했을 것이다. 기회가 생기면, 그들은 이전 폭군에게 등을 돌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아마도 통치권의 변화를 환영했을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하여 새 주인의 호의를 얻기를 바랐을 것이다.

저를 내려 던지라⁸: 그 오만 방자하고 포악한 여인은 자신의 죄로 인해 죽임을 당했다. 이것은 정의의 요구였으며, 또한 하나님의 선고이기도 했다. 그것은 그녀의 오만 방자함에 맞는 합당한 종말이었다. 폭력과 부패에 기초한 왕좌는 오래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 시체를 밟으니라⁹: 그녀가 고통 중에 죽어갈 때 그녀에 대한 그의 철저한 경멸을 보이기 위한 행동이다. 잘 치장되고 화장된 몸이 수치스럽게 창 밖으로 내던져져 난폭한 보복자의 말과 수레바퀴에 짓밟혀 생을 마감했다. 왕족의 피였으나 오염된 그녀의 피는 왕궁 벽에 튀었으며 말의 발에 얼룩졌다. 이세벨은 여왕이 아니라, 스스로가 입증한 대로 경멸받는 짐승 같은 죽음을 맞았다. 그녀는 정의를 미워했고, 따라서 이제 그녀의 국가가 그녀를 미워했다. 그녀는 하나님을 경멸했으며, 따라서 오늘날 세상은 그녀를 공포와 경멸로 되돌아본다.

우리가 이세벨을 정죄한다 해도, 예후가 그녀를 처리할 때 밟았던 야만적인 과정을 침묵으로라도 인정하는 데까지 가서는 안 된다. 그가 그녀에게 심판을 집행한 방법을 참작할 수 있는 길은 그가 광포한 시대에 살았다는 것밖에 없다. 폭력은 폭력을 부른다.

예후가…먹고 마시고¹⁰: 이제는 예후가 왕이기 때문에, 한때 아합의 소유였던 궁전은 이제 더 이상 그의 후손의 소유가 아니었다. 바깥뜰에 있는 여왕의 도막난 시체를 버려 두고 예후는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이 저주받은 계집¹¹: 예후는 이 여인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왕상 21:23)는 것을 상기하고 있었다.

왕의 딸¹²: 예후는 비록 냉혹한 전사였지만, 마음속에는 왕위에 대한 동정과 존경심을 느꼈다. 이세벨은 시돈의 제사장이요 왕이었던 엣바알의 딸로 태어났다(왕상 16:31). 그러나 그녀는 하찮은 존재로 죽음을 맞이했다. 이제 예후는 적어도 한때 공주였던 자에게 걸맞은 장례를 치러 주려 하고 있었다.

그 두골…외에는¹³: 이스르엘의 개들이 이세벨을 위해 자연 그대로의 무덤을 만들었다. 여왕의 시체는 도성 들개들의 먹이가 되었다. 엘리야의 예언은 성취되었고(왕상 21:23), 정의가 충족되었으며, 나봇에 대한 이세벨의 범죄도 앙갚음했다.

여호와께서…말씀하신 바¹⁴: 이것은 축약된 왕상 21:23의 더 완전한 예언인 것 같다.

말하지 못하게 되리라¹⁵: 이것은 이세벨의 몸이 박살나 유해를 알아볼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거나 그녀가 묘가 없이 방치되었음을 의미할 것이다. 만약 후자의 의미라면 그녀의 유해는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졌으며, 미래 세대의 사람들은 그녀의 무덤을 가리켜 바로 저기가 한때 거만한 여왕이 장사된 곳이라고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녀가 죽었을 때 오직 그녀의 사악함에 대한 기억만 남았다.

이세벨의 소름끼치는 최후는 우리에게 인간의 권력과 영광의 무상함과 덧없음을 가르쳐 준다. 이 모든 것은 티끌에서 왔다가 티끌로 돌아갈 것이다. 그녀의 운명은 모든 불법을 행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기별에 귀 기울일 것을 요구한다. “불의로 그 집을 세우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렘 22:13).

이세벨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자신들 가운데 들어오도록 방임하여 자신들을 타락시키고 더럽혀 그에 따른 심판에 대하여 준엄한 경고가 주어지게 한 비열한 죄악의 표상이 되었다(계 2:20~23).

 

2025.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