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 속에 위인전> 예후의 기름 부음
장지원
선지자 엘리사¹가
선지자의 생도 중 하나²를 불러 이르되
너는 허리를 동이고 이 기름병³을 손에 가지고 길르앗 라못⁴으로 가라
거기 이르거든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⁵를 찾아 들어가서
그 형제⁶ 중에서 일어나게 하고
데리고⁷ 골방⁸으로 들어가서
기름병을 가지고
그 머리에 부으며⁹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노라 하셨느니라 하고 곧 문을 열고 도망하되 지체치 말지니라
그 소년¹¹ 곧 소년 선지자가 드디어 길르앗 라못으로 가니라
저가 이르러 보니
군대 장관들이 앉았는지라¹²
소년이 가로되
장관이여 내가 당신에게 할 말씀이 있나이다
예후가 가로되¹³
우리 모든 사람 중에 뉘게 하려느냐
가로되
장관이여 당신에게니이다
예후가 일어나 집으로 들어가니
소년이
그 머리에 기름을 부으며 이르되
이스라엘¹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¹⁵ 여호와의 백성 곧 이스라엘의 왕을 삼노니
너는
네 주 아합의 집¹⁶을 치라
내가
나의 종 곧 선지자들의 피와 여호와의 종들¹⁷의 피를 이세벨에게¹⁹ 갚아주리라¹⁸
아합의 온 집²⁰이 멸망하리니
이스라엘 중에 매인 자나 놓인 자나 아합에게 속한 모든 남자는
내가 다 멸절하되
아합의 집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과 같게²¹ 하며 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과 같게 할지라
이스르엘 지방에서²² 개들이 이세벨을 먹으리니²³
저를 장사할 사람이 없으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곧 문을 열고 도망하니라
<노트> 구약성서 열왕기하 9장 1-10은 예후가 북왕국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는 모습이다. 예후는 오므리 왕가의 심판 도구로 이미 선택되어 있었다(왕상 19:16). 약 20년 전 엘리야의 예언을 엘리사가 제자를 시켜 집행하였다. 예후가 반란을 일킨 때는 아람과 이스라엘이 ‘길르앗 라못’을 서로 탈취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던 때이다. 예후 왕가는 5대( 예후, 여호아하스, 요아스, 여로보암 2세, 스가랴)에 걸쳐 89년간 통치했다.
선지자 엘리사¹: 엘리사 이야기는 8:16에서 여호람과 아들 아하시야의 유다 통치에 관한 기사로 인해 잠시 중단되었다가, 여기서 다시 돌아간다. “선지자의 사역에 관한 긴 기사가 있은 후에(2:12~8:15) 왜 이야기가 그의 생애 마지막까지 계속되지 않았는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열왕기가 근본적으로 연대순으로 배열된 이스라엘과 유다 왕들의 기록이라는 것이 그 대답이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사건들이 중요하지만 왕들의 기록에 삽입된 것이다. 여기에 기록된 엘리사와 관련된 사건은 아하시야와 요람의 생애 말년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 왕들의 통치에 관한 기록 속에 함께 짜여 있다.
생도 중 하나²: 이제 엘리사는 자신의 많은 책임을 수행하는 데 계속 조력해 왔던 다수의 선지자와 이 “생도 중 하나”를 결부시킨다. 이 사람의 신원은 알려져 있지 않다. 11세기의 유대인 학자 라쉬는, 그 생도가 여로보암 Ⅱ세의 통치 동안 예언적 직무를 수행한 사람으로 14:25에 언급된 요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왜냐하면 여로보암은 그 후 50년이 지나서야 통치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요나가 여기에 관련된 기별자였다는 랍비 라쉬의 가정은 근거가 없다.
기름병³: 참조 삼상 10:1. 당시에 기름이나 향유는 흙이나 돌 혹은 유리로 만든 단지에 담아 가지고 다녔다. 이런 것들이 애굽과 메소보다미아에서 많이 발견된다.
길르앗 라못⁴: 이스라엘 왕은 길르앗 라못을 포위했을 때 상처를 입어 이스르엘로 돌아왔다. 그 포위가 성공적이었는지는 더 이상 언급이 없지만 계속되는 이야기는 성공적이었음을 암시한다.
예후⁵: 성경은 예후가 여호사밧의 손자라는 언급 외에는 그의 조상이나 출신 성읍을 구체적으로 기록하지 않는다. 그는 앗수르 문헌들에 여러 번 등장한다. 살만에셀 III세는 재위 제18년(일반적으로 BC 841년으로 여김)의 연대기 단편-같은 연대 목록에서 하사엘을 멸망시킨 것을 말한다-에서 야와 마르 후므리(Iaua ma^r Humri) 곧 “오므리의 아들 예후”에게 공물을 받은 것을 언급한다. 카르카르 전투에서 아합을 대항해 싸웠던 때, 앗수르 왕 살만에셀 재위 제6년의 명각(참조 제3권, 111, 112)과 위의 명각을 종합하면, 아합 치세의 마지막 해뿐 아니라 이스라엘 왕 요람의 죽음과 예후의 계승 연도를 앗수르의 역사와 대조해서 볼 수 있다.
그 형제⁶: 예후와 함께한 무리 곧 관리들을 나타낸다(참조 5절).
데리고⁷: 문자적으로 “그를 들어가게 하다.” 그 기별자는 예후를 다른 방으로 안내하여, 거기서 그와 은밀하게 이야기를 나누어야만 했다.
골방⁸: 문자적으로 “방안의 방”(참조 왕상 20:30; 22:25). 반드시 밀실을 말하는 것은 아니고, 기별자가 예후와만 개인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방을 말한다.
그 머리에 부으며⁹: 예후를 왕으로 기름 붓는 임무는 본래 엘리야가 엘리사를 후계자로 기름 부으라는 사명을 받았던 때와 동시에 주어졌다(참조 왕상 19:16 주석).
도망하되¹⁰: 모든 처리는 신속하고 은밀하게 수행해야만 했다. 자신의 임무를 완수한 후 즉시 그 젊은 선지자는 출발해야만 했으며, 질문이나 있음직한 보상을 기대해서도 안 되었다.
그 소년¹¹: 70인역과 수리아역에는 이 표현이 한 번만 나온다.
앉았는지라¹²: 다음절에 나온 대로 예후가 그 기별이 자신에게 해당된다는 것을 듣고 “집으로 들어간” 점으로 보아, 뜰에 앉아 있었을 것이다.
예후가 가로되¹³: 분명히 예후는 이 모임을 관할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이제 이스라엘 군대의 사령관이었다. 왕이 길르앗 라못을 떠났을 때, 싸움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도성이 아직 함락되지 않았을 것이다. 왕은 자신의 상처를 구실 삼아 군대에서 이탈해 위험천만하고 힘겨운 싸움을 피하려 했을 것이다. 예후는 포위를 계속 밀어붙여 마침내 도성을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이스라엘 전체에서 그는 국민적 영웅으로 여겨졌다.
이스라엘¹⁴: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 민족을 자신의 소유로 인정했으며, 이제 이스라엘의 정당한 통치자인 그분은 나라의 새로운 왕을 선택했다.
네게 기름을 부어…왕을 삼노니¹⁵: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명백한 임무였다. 오므리 왕조의 죄악을 끝낼 새로운 왕을 위한 때가 다가왔다. 그것은 이제 이스라엘에서 왕권을 차지할 자에게 책임의 시간일 뿐 아니라 기회의 시간이기도 했다.
아합의 집¹⁶: 여호람을 계승하여 왕위에 올랐던 아하시야와 마찬가지로, 요람도 아합의 자손이었다. 아합의 집은 이제 죄악으로 파멸될 것이었다.
종들¹⁷: 이 말은 하나님의 택하신 선지자들 외에 다른 이들도 아합의 집에 의해 참된 하나님의 경배자들에게 자행된 총체적인 박해에 연루되었음을 보여 준다.
피를…갚아주리라¹⁸: 벌받지 않고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릴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여호와는 당신에게 속한 자들을 돌보시며, 따라서 최적의 시기라고 여기는 때에 당신의 방법으로 택한 자의 원수를 갚으실 것이다. 사람은 좁은 시야로 인하여 왜 보응이 지체되는지 항상 이해하지는 못한다. 이런 사람은 성급함으로 인해, 여호와가 잊어버려 행악자들에게 벌받지 않고도 악한 길을 계속 가도록 허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세벨에게¹⁹: 이세벨은 이스라엘에서 박해를 선동한 주모자였으나, 홀로 그 일을 수행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세벨이 하나님 앞에 죄가 있다면, 그녀와 함께했던 사람들 그리고 같은 정신으로 움직였던 자들 역시 죄가 있었다.
온 집²⁰: 아합의 온 집을 파멸로 몰아간 심판이, 단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루는 것과 관련된 어떤 사실들을 염두에 두지 않고 내린 것이라면 심히 가혹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나님이 시내(Sinai)에서 신정국가 이스라엘을 조직하였을 때, 그는 엄한 국가적 형벌을 제정했다. 도덕적으로 올바른 삶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강력한 규율이 필요했다. 군주제로 인하여 새로운 문제가 생겨났다. 왕의 권력이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그 나라에는 왕의 범죄를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권위가 없었다. 이 같은 경우에 하나님은 종종 국가적 형벌의 집행자가 되었다. 왕의 잘못된 행동을 간과하는 것은 국민 한 사람의 사악한 행동을 너그럽게 봐주는 것보다 더 위험했다. 왕이 지닌 높은 지위 때문에 그의 악한 본보기의 영향은 그만큼 컸다. 그렇기 때문에, 아합과 그의 집의 경우 그리고 다윗이 이스라엘을 계수한 죄를 범한 후 70,000명이 죽었을 때(삼하 24장) 나타난 것처럼 주어진 형벌은 때때로 엄격했다. 그러나 고삐 풀린 불법을 저지하는 데 필요한 만큼 혹독한 심판을 명했다.내가 다 멸절하되. 이 표현은 양괄식(兩括式, inclusion)의 끝을 보여 준다. 이 표현은 다윗 시대부터 히브리인들 사이에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삼상 25:22). 이 표현은 여로보암이 악한 길을 걸었을 때 멸절될 그의 자손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왕상 14:10). 바아사의 집이 파멸될 때 이 표현이 다시 사용되었다(왕상 16:11). 그리고 나봇이 죽임을 당하고 그의 포도원을 빼앗겼을 때, 엘리야는 철저히 파멸될 아합의 후손을 가리키는 데 이 표현을 사용했다(왕상 21:21). 이제 선지자는 다시 아합의 집이 비참한 운명을 맞을 것을 나타내기 위해 같은 표현을 사용한다.
여로보암의 집과 같게²¹: 이 두 집 모두 완전히 멸망했다. 바아사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의 집을 칠 때, “여로보암의 온 집을 쳐서 생명 있는 자를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왕상 15:29)였고, 시므리가 바아사의 집을 멸절시킬 때, “그 족속이든지 그 친구든지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왕상 16:11)였다.
이스르엘 지방에서²²: 이세벨이 악행을 저지른 현장 곧 그녀가 엘리야를 파멸시킬 것이라는 위협을 했고(왕상 19:2) 나봇의 포도원을 취하기 위해 그의 무죄한 피를 흘렸던(왕상 21:7~15) 바로 그곳에서 고통을 당하는 것은 지당했다.
개들이 이세벨을 먹으리니²³: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사악한 여왕에게 닥칠 이 처참한 운명을 예언한 적이 있다(왕상 21:23; 왕하 9:36, 37). 아합의 아내의 이름은 죄악과 동의어가 되었다. 하나님의 백성을 가장 부끄러운 형태의 우상숭배와 죄악으로 몰아넣은 자가 바로 그녀였다. 그녀의 행동은 무서운 죄악이었고, 따라서 그녀는 소름끼치는 운명을 맞이해야만 했다. 이세벨에게 주어진 형벌은 잊어버려서는 안 되었고, 행악자들의 마음에 범죄자의 운명이 참혹하다는 사실에 대한 생생한 깨달음을 불러일으켜야만 했다. 동방에는 오늘날에도 굶주린 야생 개가 많이 있는데, 이들은 야외에 버려진 시체의 고기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청소부다.
2025.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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