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 속에 위인전> 유다 왕 여호람의 통치
장지원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들 요람 제오년¹에
유다 왕 여호사밧이 오히려 위에 있을 때에
그 아들 여호람²이 왕이 되니라
여호람이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삼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팔 년³을 치리하니라
저가
이스라엘 왕들⁴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⁵이 그 아내가 되었음이라
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⁶
여호와께서
그 종 다윗을 위하여⁷ 유다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저와 그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허하셨음이더라
여호람 때에
에돔이 배반하여⁸
유다의 수하에서 벗어나
자기 위에 왕을 세운고로⁹
여호람¹⁰이 모든 병거¹¹를 거느리고
사일¹²로 갔더니 밤에 일어나
자기를 에워싼 에돔 사람과 그 병거의 장관들을 치니¹³
이에 백성이 도망하여 각각 그 장막으로¹⁴ 돌아갔더라
이와 같이 에돔이 배반하여
유다의 수하에서 벗어났더니 오늘날까지¹⁵ 그러하였으며
그 때에 립나¹⁶도 배반하였더라
여호람의 남은 사적과 그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여호람이 그 열조와 함께 자매¹⁷
그 열조들과 함께 다윗 성에¹⁸ 장사되고
그 아들 아하시야¹⁹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노트> 구약성서 열왕기하 8장 16-24절은 유다 왕 여호람의 악정惡政에 대한 기록이다. 여호람의 아내는 북왕국 아합의 딸인 아달랴였다. 그는 아달랴에게 설복을 당해, 유다의 여러 산에 우상을 위한 산당을 세우고 바알 숭배를 장려하였다. 에돔과 립나의 배반은 여호람의 이와 같은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었다.여호람이 북왕국의 왕들과 똑같은 죄악을 저질렀지만 북왕국 왕들처럼 그 가문이 진멸되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과 다윗 사이에 맺은 언약(삼상 7:12-17) 때문이었다.
요람 제오년¹: 이스라엘의 요람의 치세 연대를 보려면 79쪽; 제3권, 111, 112을 참조하라.
여호람²: 아버지 여호사밧과 유다의 여호람의 공동 통치에 대해서는 1:17; 3:1 주석을 참조하라. 남방 유다 왕국의 역사는 여호사밧의 죽음이 언급된 왕상 22:50에서 중단되었다가 여기서 다시 시작된다.
팔 년³: 이 기간과 연대 계산 방법에 대해서는 82쪽을 참조하라.
이스라엘 왕들⁴: 이때 유다가 이스라엘과 밀접하게 제휴하여 북쪽 이웃의 길을 따라 갔다는 여러 암시가 있다. 연대를 계산할 때도 이스라엘의 방법을 채택한 것으로 보이는 암시가 있다(참조 9:29 주석).
아합의 딸⁵: 이 여인은 아달랴였다(26절). 아합과 이세벨의 딸 아달랴와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의 혼인은 두 나라 사이의 동맹을 보증하는 데 도왔다(대하 18:1). 상호 동맹에 들어간 나라들의 통치 가문 사이의 이런 혼인은 고대 동방에서 흔히 있었다. 유다가 이 혼인과 동맹을 통해 얻은 것은 고통밖에는 없었다. 아달랴는 부모와 같은 기질을 가진 여인이었으며 죽기 전까지 유다에 많은 고통을 안겨 주었다. 이 두 나라의 동맹 아래서 여호사밧은 아람과 전쟁을 하는 아합에게 협력했다(왕상 22:4, 29). 또한 에시온게벨에서 배를 만들 때에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와 함께했고(대하 20:35, 36), 여호람이 모압과 전쟁할 때도 가담했다(왕하 3:7).
저가…악을 행하였으나⁶: 이 구절은 이제까지의 이스라엘 왕들에게 주어진 기록이다. 그러나 지금 유다도 북쪽 이웃의 악한 길로 행하고 있었다. 여호람은 왕위에 올랐을 때, 아버지가 은금과 보물과 견고한 성읍들을 선물로 준(대하 21:3, 4) 형제들을 모두 죽였으며 온갖 형태의 우상을 받아들였다(대하 21:11).
다윗을 위하여⁷: 참조 왕상 11:36 주석. 하나님이 다윗에게 준 빛이 그의 후손을 통하여 모든 시대에 걸쳐 계속 비쳐나가야 했다. 여호람 같은 사악한 후예가 그 빛을 거의 소멸시켰다.
에돔이 배반하여⁸: 여호와는 이때 유다 나라가 망하도록 허락하지 않았으며 또한 다윗 왕조가 종말을 고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배교로 인하여, 유다는 어느 정도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150년 동안 유다의 지배를 받은 에돔인들은 여호람의 치세 동안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애를 썼다. 하나님은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을 세웠을 때 종국에는 예루살렘이 온 세상의 수도가 되도록 계획했다. 이 세상은 하나의 나라와 백성이 될 것이며, 연합하고 행복하며 평화로운 형제 관계로 하나 되어 하늘의 하나님을 경배할 것이다(참조 실물교훈, 290; 시대의 소망, 577). 그러나 그들은 진리의 빛을 다른 이들 앞에 비추기는커녕 자신들 주변 나라들의 어둠에 마음을 빼앗겼다.
왕을 세운 고로⁹: 에돔인들은 유다로부터 왕권을 부여받은 선왕의 정부를 전복시키고, 유다에 공물 바치는 것을 그치게 한 독립적인 새 군주를 자신들을 위해 선택한 것이 분명하다. 에돔을 속국으로 만든 사람은 다윗이었다(삼하 8:14). 솔로몬이 에돔의 남쪽 변방 에시온게벨에 해군을 두었던 점으로 보아(왕상 9:26), 솔로몬 때에도 에돔은 계속 예속 상태에 있었음이 분명하며, 이러한 상황은 여호사밧의 치세 내내 계속되었다(왕상 22:47).
여호람¹⁰: 축약형은 “요람”(Joram)이다. 참조 23, 24절.
모든 병거¹¹: 병거로 구성된 대규모 병력으로 에돔 지역을 깊숙이 침투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여호람은 어쩔 수 없이 에돔 반군이 모여 있는 에돔의 변경 남쪽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사일¹²: 이 명칭은 성경에서 오직 이곳에만 언급된다. 오늘날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는다.
에돔 사람…을 치니¹³: 이 절의 히브리어를 번역하는 데 몇 가지 어려움이 있다. 왕과 그의 병거들이 에워싼 에돔 사람들을 쳤다는 의미로 보인다. 야음을 틈타 에돔 사람들이 유다 군대를 향해 진격했고, 마침내 그들을 포위했다. 이를 알아챘기 때문에 병거들은 적진을 뚫고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었다.
각각 그 장막으로¹⁴: 즉, 그들은 집으로 도망갔다. “장막으로” 돌아가다라는 표현의 의미에 대해서는 삼하 20:1; 왕상 8:66을 참조하라. 히브리인들에게 그것은 패배였으며, 그들은 적에게 패하여 도주했고 반역을 잠재우려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 반역으로 에돔은 독립을 얻는 데 성공했다.
오늘날까지¹⁵: 이 구절이 기록될 때까지, 유다는 에돔을 다시 통제 아래 두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에돔은 한 번 더 그들을 예속시킨 요한 히르카누스 시대(BC 134~104년)까지 독립된 상태를 계속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립나¹⁶: 라기스(수 10:29~31) 북쪽 약 15킬로미터 지점의 성읍으로, 예루살렘 남서쪽 약 38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 텔 엣-차피(tell es.-S.a^. i-)와 동일한 곳일 것이다. 이때 블레셋이 유다를 친 것이 립나 주민들의 반란에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대하 21:16, 17).
여호람이…자매¹⁷: 그가 죽을 때의 상황에 대해서는 대하 21:12~19을 참조하라.
다윗 성에¹⁸: 대하 21:20에는 그가 다윗 성에 장사되었으나 열왕의 묘실에는 두지 않았다고 언급되어 있다. 왕의 묘실은 여호람의 사악한 행위 때문에 그의 매장을 거부한 일단의 충실한 제사장들의 통제 아래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아하시야¹⁹: “여호와가 취하셨다” 혹은 “여호와의 소유”를 의미한다. 이름의 각 부분을 재배열하면 여호아하스가 되며, 아하시야가 그렇게 불리기도 한다(대하 21:17). 대하 22:6에는 그 이름이 아사랴로 되어 있지만, 여러 히브리어 필사본에는 그 절에서 아하시야라는 이름이 그대로 사용된다.
2025.9.19
'테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성경 속에 위인전> 반란을 일으키는 예후/장지원 (1) | 2025.09.23 |
|---|---|
| <성경 속에 위인전> 예후의 기름 부음/장지원 (0) | 2025.09.22 |
| <성경 속에 위인전> 아람 왕이 된 하사엘/장지원 (1) | 2025.09.18 |
| <성경 속에 위인전> 땅을 돌려받은 수넴 여인/장지원 (1) | 2025.09.17 |
| <성경 속에 위인전> 기쁜 소식을 전한 네 문둥병자/장지원 (2) | 2025.09.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