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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에 위인전> 도끼를 떠오르게 함/장지원

노파 2025. 9. 11. 00:02

 

<성경 속에 위인전> 도끼를 떠오르게 함

장지원

 

 

선지자의 생도¹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한 곳²이 우리에게는 좁으니³

우리가 요단으로 가서⁴ 거기서 각각 한 재목을 취하여 그곳에 우리의 거할 처소를 세우사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가라⁵

그 하나가 가로되

청컨대⁶ 당신도 종들과 함께 하소서

엘리사가 가로되

내가 가리라⁷ 하고

드디어 저희와 함께 가니라

무리가 요단에 이르러 나무를 베더니

한 사람이 나무를 벨 때에 도끼⁸가 자루에서 빠져 물에 떨어진지라

이에 외쳐 가로되

아아 내 주여 이는 빌어온 것이니이다⁹

하나님의 사람이 가로되

어디 빠졌느냐¹⁰ 하매

그곳을 보이는지라

엘리사가 나무가지¹¹를 베어 물에 던져서 도끼로 떠오르게 하고¹²

가로되 너는 취하라¹³

그 사람이 손을 내밀어 취하니라

 

<노트> 요단 강 근처에 세워진 여리고 선지 학교의 학생 수가 점차 증가하였다. 그래서 새로운 거처를 증축하기 위해 엘리사와 생도들이 요단 계곡으로 벌목하러 나갔다. 벌목 도중, 한 생도가 빌러 온 도끼가 강물에 빠졌다. 이때 엘리사는 도끼가 다시 떠오르게 하는 이적을 베풀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광범위하고 개인적인 일일지라도, 자기 백성들의 신앙 성장을 위하여 필요하다면 이적을 베풀어 그들의 위기를 모면케 해 주시는 분이시다(고전 10:13).

선지자의 생도¹: 재목을 얻으러 요단으로 갔던 점으로 보아(2절), 이들은 선지자 학교들 중 하나인 여리고에 있던 학교의 학생이었을 것이다.

우리가…거한 곳²: 문자적으로 “우리가 당신 앞에 앉아 있는 곳.” 그들이 선지자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 그의 지도 아래 모였던 장소일 것이다. 엘리사는 이 학교에 자신의 가정을 두어 상주하지 않고, 다만 여러 학교를 순회하는 동안 때때로 그곳을 방문했다. 여기에 언급된 곳이, 학생들이 교사의 발치에 앉아 모였던 공동 집회장이었던 것 같다.

좁으니³: 이 학교에 출석하는 학생들이 너무 많아져 사용 중인 거처로는 그들을 더 이상 수용할 수 없게 되었다. 이는 엘리야와 엘리사가 육성한 올바른 교육에 대한 관심이 널리 퍼져 있었음을 나타낸다.

우리가…가서⁴: 이것은 엘리사가 아니라 학생들에게서 나온 제안이다. 이 젊은이들은 일을 꺼려하지 않았다. 선지자 학교의 목표 가운데 하나가 학생들에게 삶을 위한 실제적인 훈련을 시키는 것이었다. 젊은이들은 그들 주변에 있는 사람들처럼 일하도록 훈련을 받았다. 왜냐하면 그들이 섬길 책임이 있는 사람에게서 자신들을 격리시켜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손을 훈련시키는 것은 정신과 마음을 훈련시키는 것과 완전히 조화되었다.

가라⁵: 엘리사에게 허락을 구했다는 점과 그 계획을 진행하도록 지시를 내린 사람도 그였다는 사실은, 선지자가 그의 책임 하에 여러 학교에 대한 감독권을 지닌 권위 있는 사람이었음을 보여 준다.

청컨대⁶: (제임스왕역(KJV)에는 “be content”[만족하신다면]라는 구절이 들어 있음-역자 주). 즉 우리와 함께 가는 것이 “좋으시면” 혹은 그것에 “기꺼이 동의한다면.” 먼저 그들은 가서 그 일을 그들 스스로 하게 해 달라는 허락을 구했고, 이제는 엘리사에게 그들과 함께 가자고 초청했다.

내가 가리라⁷: 엘리사도 백성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왕이나 장군들뿐 아니라 매일 수고하는 노동자들과도 한결같이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결코 엘리사는 자신을 홀로 두지 않았으며, 봉사할 기회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자신을 환영하는 곳이면 어디든 함께 있기를 원하였다. 지도자가 위대하면 위대할수록 기꺼이 봉사하려는 마음도 크다.

도끼⁸: 유대인들은 매우 초기부터 쇠를 도끼 날로 사용하였다. 그 당시의 도끼 날은 오늘날의 도끼처럼 안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모세의 율법이 어떤 사람이 벌목하는 중에 도끼 날이 자루에서 빠진 경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신 19:5).

이는 빌려온 것이니이다⁹: 나무를 베고 있던 젊은이에게 터져 나온 무의식적인 외침이다. 선지자에게 도끼를 되찾는 데 하나님의 도움을 호소하려는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이 외침은 빌려온 것을 잃어버린 불운에 처해 있는 양심적인 젊은이, 십중팔구 너무 가난하여 잃어버린 것을 보상할 수 없는 젊은이에게 나온 것이다.

어디 빠졌느냐¹⁰: 엘리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죽은 자를 일으켰으며, 다른 사람의 마음에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선지자였다. 그러나 도끼가 물에 빠졌을 때 어디에 빠졌는지 알지 못했다. 하나님의 기별이 주어지지 않으면, 선지자들도 그들의 동료와 마찬가지로 지식을 구한다. 하나님은 필요한 일을 만들 뿐 아니라 그것을 밝혀줄 수 있는 적절한 상황도 만들어 준다. 하나님은 도끼가 빠진 사실이나 어디에 빠졌는지 엘리사에게 알리기 위해 기적을 행하지 않았다. 그것은 기적이 필요하지 않은 일이었으며, 따라서 이런 문제를 위해서는 기적을 행하지 않는다.

나뭇가지¹¹: 절차의 중요성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나님이 어떤 일들을 왜 혹은 어떻게 행하는지 항상 말씀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여호와의 방법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떠오르게 하고¹²: 도끼는 선지자의 생도의 손이 미치지 않는 맨 밑바닥에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개입으로, 그것이 수면으로 떠올라 머물렀다.

이와 같은 기적에는 하찮은 것이 있으며, 따라서 그것을 행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좁은 시각에 갇혀 있는 사람은 단지 큰 일에서만 신적인 개입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슬픔이나 아픔이 없다 할지라도 곤궁에 처해 있는 자에게는 아버지 하나님의 크신 동정심이 동한다. 하나님의 마음은 여전히 인간 자녀들의 필요에 반응하신다. 그리고 하늘은 여전히 그들을 위해 활동한다. 여호와는 자신을 찾는 사람들의 관심에 개입하여 그들의 필요를 채우지 않고 지나가는 날은 하루도 없다. 기적의 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엘리사와 같은 사람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은 당신을 믿는 자녀들을 위하여 당신 자신의 방법으로 일하신다.

너는 취하라¹³: 만약 젊은이가 도끼를 되찾기 원한다면, 그는 또한 한 역할을 담당해야 했다. 하나님은 도끼가 떠오르도록 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자루를 원래 위치로 돌아오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여호와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위해서는 기적을 행하지 않는다. 젊은이는 충분히 물로 손을 뻗을 수 있었으며, 떠오른 도끼를 취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도록 지시를 받았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취하도록 요구하실 때, 우리가 받기 위해 손을 뻗는다면, 그의 선물은 우리 것이 될 것이다. 불순종과 불신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축복들 중에 많은 것을 받지 못하게 한다.

 

2025.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