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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에 위인전> 포위된 사마리아/장지원

노파 2025. 9. 15. 00:02

 

<성경 속에 위인전> 포위된 사마리아

장지원

 

이후에¹ 아람 왕 벤하닷²이

그 온 군대를 모아 올라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니³

아람 사람이 사마리아를 에워싸므로

성중이 크게 주려서⁴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⁵이요

합분태 사분 일 갑⁶에 은 다섯 세겔이라

이스라엘 왕이

성 위로⁷ 통과할 때에

한 여인이 외쳐 가로되

나의 주 왕이여 도우소서

왕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시면

내가 무엇으로

너를 도우랴⁸

타작마당으로 말미암아⁹ 하겠느냐 포도주 틀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또 가로되

무슨 일이냐¹⁰

여인이 대답하되

이 여인이 내게 이르기를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오늘날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자 하매

우리가 드디어 내 아들을 삶아¹¹ 먹었더니

이튿날에 내가 이르되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먹으리라 하나

저가 그 아들을 숨겼나이다¹²

왕이

그 여인의 말을 듣고 자기 옷을 찢으니라¹³

저가 성 위로 지나갈 때에

백성이 본즉

그 속살에 굵은 베¹⁴를 입었더라

왕이 가로되

사밧의 아들 엘리사의 머리¹⁵가 오늘날 그 몸에 붙어 있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실지로다 하니라

그 때에 엘리사가 그 집에 앉았고 장로들이 저와 함께 앉았는데¹⁶

왕이 자기 처소에서 사람을 보내었더니

그 사자가 이르기 전에¹⁷

엘리사가 장로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이 살인한 자의 자식¹⁸이

내 머리를 취하려고 사람을 보내는 것을¹⁹ 보느냐

너희는 보다가 사자가 오거든 문을 닫고 문 안에 들이지 말라²⁰

그 주인의 발소리가 그 뒤에서²¹ 나지 아니하느냐 하고

무리와 말씀할 때에 그 사자가 이르니라

왕이 가로되²²

이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²³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²⁴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²⁵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²⁶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셨느니라

그 때에 한 장관²⁷ 곧 왕이 그 손에 의지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²⁸ 가로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엘리사가 가로되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²⁹ 하니라

 

<노트> 구약성서 열왕기하6장 24-7장 2절은 사마리아가 아람에게 포위되어 굶주림에비참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굶주림으로 자식을 잡아먹은 일은 언약적인 성격의 저주이다(레 26:29). 곧 우상 숭배와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이다. 멸망 직전에 놓인 사마리아 성에 대하여 엘리사는기적적인 예언을 선포하였다. 이때 왕의 장관 한 사람이 불신앙적인 태도로 엘리사를 조롱하였다. 이 장관의 태도는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대변해 주는 것이었다. 그동안 여러번의 이적을 보여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계속 불신하였다.

이 후에¹: 요람이 이스라엘을 침략한 아람 군대를 위해 잔치를 베푼 때부터 벤하닷이 사마리아를 포위한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두 나라 사이에 옛날의 적개심이 되살아난 점으로 보아 여러 해가 지났을 것이다. 어떤 이유로 이스라엘과 아람 사이에 새로운 싸움이 있게 되었는지는 나타나지 않는다.

벤하닷²: 벤하닷 II세를 말한다. 벤하닷 I세는 아사와 동시대에 속했다(왕상 15:18~20). 벤하닷 II세는 아합이 두 번이나 물리친 바로 그 왕으로, 아합이 그에게 적절하지 않은 아량을 베풀어 예언자의 질책을 받았다(왕상 20:1~42). 아합이 목숨을 잃은 것은 바로 3년 후에 같은 왕과의 싸움에서였다(왕상 22:1~37). 벤하닷은 앗수르의 살만에셀 III세의 기록에 여러 번 언급되는데, 설형문자 문서에서 앗두-이드리(Addu-’idri) 혹은 비르-이드리(Bir-’idri)로 읽을 수 있는 형태로 나타난다. 앗수르학 연구자들은 후자를 더 선호한다. 하맛에서 나온 아람어 명각에서, 그는 바르-하다드(Bar-hadad)로 불린다. 앗수르 사람들은 바르(Bar)가 바벨론의 신 비르(Bir)를 나타낸다고 생각했을 것이며, 또한 아람어 문자에서 ㄷ(d)와 ㄹ(r)이 쉽게 혼동될 수 있기 때문에 하다드(Hadad)를 하다르(Hadar)로 잘못 읽었다. 두 이름 사이에 생긴 차이점의 기원에 대한 올바른 설명이 무엇이든, 성경의 벤-하닷과 아람어 명각의 바르-하다드(Bar-hadad) 그리고 앗수르 문서의 비르-이드리(Bir-’idri)는 같은 사람을 가리키는 데 의심할 여지가 없다. 히브리어 벤-하다드(Ben-hadad)는 “하닷의 아들”을 의미한다. 하닷은 서부 셈족의 폭풍 신으로 잘 알려진 이름이다. 비르-이드리(Bir-’idri)는 앗수르어 명각에서 살만에셀 재위 14년에 아람 왕으로 나타나는데, 그때 앗수르 왕은 그 아람 왕과 그의 동맹국에 큰 승리를 얻었다고 주장한다.

사마리아를 에워싸니³: 이것은 소규모의 국경 침입이 아니라 심각한 격전(激戰)이었다. 벤하닷은 살만에셀이 진행 중인 지중해 지역 정벌에 참여하지 않은 때를 틈탔을 것이다.

크게 주려서⁴: 이스라엘에서 기근은 보기 드문 일은 아니었다. 엘리야 시대에 3년 반 동안 지속된 가뭄(왕상 17:1~18:1; 눅 4:25; 약 5:17)이 있었다. 그리고 엘리사 시대에도 7년 동안 기근이 있었다(왕하 8:1). 그렇지만 지금은 포위 때문에 생긴 기근이었다.

은 팔십 세겔⁵: 나귀 머리 하나에 은 80세겔(912그램, 트로이형[衡]으로 약 2.5파운드)이다. 히브리인들에게 나귀는 부정한 것이어서 최후의 수단이 아니면 먹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귀 머리는 질이 가장 나쁘고 값이 가장 싼 부분이었다. 플루타르코스는, 보통 때는 나귀 전체를 30드라크마에 살 수 있었지만 아닥사스다 므네몬 치세의 기근의 때에는 나귀 머리가 60드라크마에 팔렸다고 기록한다. 그리고 플리니우스는 카살리눔의 포위 기간에 쥐 한 마리가 200데나리온에 팔렸다고 언급한다.

사분 일 갑⁶: 한 갑은 건량으로 약 1.2리터에 해당했다. 은 다섯 개는 은 다섯 세겔(57그램, 트로이형으로 1.8온스)을 말한다. 사람이 이렇게 먹지 못할 음식을 먹을 만큼 고통스러운 궁지에 내몰릴 수 있었다는 것을 믿기 어렵지만, 요세푸스는 티투스가 예루살렘을 포위한 기간에 “어떤 사람들은 공동 하수도나 가축들의 오래된 똥더미를 찾아 헤매고 거기서 얻은 똥을 먹을 만큼 지독한 고통으로 내몰렸다”(War v. 13. 7)고 언급한다. 근래의 해석자들은, “합분태”라는 표현에서 매우 값싸고 바람직하지 못한 형태의 채소 곧 음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천한 채소를 가리키는 의미를 찾고자 한다. 이렇게 보는 것은 입증될 수 없다.

성 위로⁷: 요새화된 고대 도성들의 성벽에는 꼭대기의 바깥 가장자리가 성가퀴로 둘러쳐진 넓은 공간이 있어서, 거기에 주요 방어군이 주둔하여 적에게 돌을 던지거나 화살을 쏘았다. 왕은 그의 군대에 용기를 주고 친히 포위의 진행 상황을 알기 위해 이 방어물을 순시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래 거리에서 혹은 성벽 가까이 있는 지붕에서 한 여인이 왕을 보고 도움을 호소했을 것이다.

내가 무엇으로 너를 도우랴⁸: 왕이 도울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요람은 자신의 능력으로는 그 여인의 고통을 덜어줄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기꺼이 인정했다. 만약 여호와께서 그녀를 돕지 않았다면, 이 처절한 궁지에서 왕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었겠는가?

타작마당으로 말미암아⁹: 절망의 반어법을 통해, 요람은 그녀가 이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한 사실 곧 모든 식량이 종자까지 바닥난 지 오래되었다는 사실에 주의를 환기시킨다.

무슨 일이냐¹⁰: 왕은 처음에 그 여인이 그에게 식량을 호소하는 것으로 추측하였다. 이제 그는 그것이 아니라 그녀가 다른 요구를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아마도 그는 많은 주민과 도성 방어군들을 의식한 나머지 그녀에게 너무나 거칠게 대답했다고 느꼈던 것 같다. 어쨌든 그는 여전히 왕이었고 어떤 시민이든 최종적인 호소를 위해 그에게 올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그는 그녀의 탄원에 귀를 기울이기로 하였다.

29 우리가…내 아들을 삶아¹¹: 이스라엘은 모세를 통하여, 만약 그들이 하나님을 떠난다면 바로 이러한 곤경에 빠지게 될 것이고 부모가 자기 자녀의 고기를 먹을 것이라는 경고를 받았다(레 26:29; 신 28:53). 이 예언은 이제 그 두려운 성취에 직면하였다. 하나님은 마침내 있게 될 범죄의 두려운 결과를 정확히 예견하였다. 그리고 그는 신적인 사랑과 인내로 이 같은 상태로 다가올 사태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했다. 모세의 예언은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애 4:10) 그리고 티투스가 마지막으로 성을 포위했을 때(Jose- phus War vi. 3. 4) 또 다른 성취를 보았다.

그 아들을 숨겼나이다¹²: 이보다 애처롭고도 소름끼치는 불평을 상상하기는 힘들 것이다. 극심한 곤경 중에, 두 어머니는 충격적인 계약을 맺었다. 한 아들은 이미 먹혔고, 두 번째 어머니는 거래에서 자신의 몫을 이행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구하기 위해 숨겼고, 이제 첫 번째 여자는 왕에게 호소하여 그 아이를 강제로 내놓게 하려 했다. 왕이 이 같은 경우에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자기 옷을 찢으니라¹³: 이런 상황 아래서 왕이 보일 수 있는 유일한 반응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 여인에게 아들을 내놓아 먹을 수 있도록 하라고 명할 수도 없었고, 이 지독한 고통을 끝낼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처럼 슬픔과 회개(왕상 21:27) 때문이 아니라 공포와 놀람으로 옷을 찢은 것이다.

그 속살에 굵은 베¹⁴: 요람은 겉에 굵은 베를 입지 않고, 겉옷 속에 이 애통의 옷을 입어 완전히 드러나지는 않았다. 이러한 방책을 통해 그는 여호와의 진노를 달래고자 했을 것이다. 백성들은 굵은 베에서 고통 중에 있는 자신들을 향한 왕의 동정의 표현을 보았다.

엘리사의 머리¹⁵: 엘리사는 백성들에게 회개하라고 호소하였으며, 만약 그들이 자신들의 죄를 버리고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지 않으면 고통과 시련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밝혔다. 왕은 선지자를 신랄하게 비판했고, 이제 계속되는 포위와 기근에 대한 책임까지 그에게 씌우려고 하였다. 그렇게 함으로 그는 자기 형제 아하시야와 아버지 아합이 했던 것과 같은 과정을 따랐다(참조 1:10 주석). 진심으로 통회한 사람이었다면 굵은 베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어 입었을 것이고, 하나님의 선지자를 적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참수(斬首)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일반적 형태의 형벌이 아니었으나, 앗수르와 다른 이웃 나라들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었다. 괴로움과 분노로 가득하여, 요람은 이제 이 소름끼치는 형태의 극형으로 엘리사를 위협했다.

장로들이…앉았는데¹⁶: 아마도 여기에는 도성의 지도자들뿐 아니라 나라 전체의 귀족과 족장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그들은 나라에서 가장 존경받고 영향력 있는 시민이었다. 이 위기의 때에 그들은 분명 조언과 원조를 얻기 위해 엘리사의 집으로 갔다. 임박한 위험 때문에 그들은 여호와의 권능을 인정하고, 그의 선지자에게 도움을 구하게 되었다. 후에 예루살렘 거민들이 유사한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예레미야에게 찾아가 여호와의 뜻에 관한 교훈과 지도를 구하였다(렘 21:1, 2; 38:14).

그 사자가 이르기 전에¹⁷: 요람은 엘리사의 목숨을 취하기 위해, 선지자의 목을 베라는 명령을 주어 한 사람을 보냈다. 그러나 그가 도착하기 전에 여호와가 엘리사에게 왕의 의도를 미리 알려 주어, 그 문제가 나라의 지도자들 앞에 분명하게 제시되었다.

이 살인한 자의 자식¹⁸: 요람의 아버지 아합은 나봇의 피에 대한 죄뿐 아니라 자신이 전적으로 동의하여 이세벨에게 죽임을 당한 선지자들에 대한 죄도 있었다. 그의 충성스런 종 오바댜조차도, 엘리야에 관한 소식을 가지고 그에게 가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아합에게 죽임을 당할까봐 두려워했다(왕상 18:9). 살인한 자의 자식 요람도 아버지와 같은 사악한 기질을 소유했다.

보내는 것을¹⁹: 살인을 집행하려는 자가 이미 오는 도중이었으나 엘리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여호와의 선지자였고 자신의 목숨이 사악한 자들에게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알았다.

문 안에 들이지 말라²⁰: 문자적으로 “문에서 그를 밀쳐내라.” 문을 잠그고 그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굳게 붙들라는 말이다. 선지자는 죽임을 당할 만한 어떤 일도 하지 않았으며 어떤 죄에 대해서도 유죄가 입증되지 않았다. 하늘의 사자로서 그는, 비록 왕의 명령에 반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행한 지시들을 명할 완전한 권리가 있었다. 청렴하고 법을 준수하는 시민을 박해하는 것이 아니라 보호하는 것이 통치자의 책임이다. 살인은 나라의 평범한 개인에게만큼이나 왕에게도 옳지 못한 일이다.

그 뒤에서²¹: 자신의 명령이 수행되었는지 보기 위해, 왕이 살인 집행자의 발뒤꿈치를 바싹 따라왔다.

왕이 가로되²²: (제임스왕역(KJV)에는 단순히 “그가 가로되”로 되어 있음-역자 주). 이것이 사자(使者)의 말인지 왕의 말인지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이때에 왕이 도착했든 도착하지 않았든, 이 말은 왕에게 비롯되었음이 분명하다. 사자에게는 자신의 이름으로 이렇게 말할 권리가 없었을 것이다. 만약 그가 이 말을 했다 해도, 왕의 이름으로 말하도록 파송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왕이 지금 막 도착하여, 친히 이 말을 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성경의 기록은 여기서나 이어지는 성경절들에서 그가 실제로 도착했다고 언급하지 않지만, 엘리사가 왕이 사자의 뒤를 바싹 뒤쫓았다고 말한 점으로 보아 오래 지체되지 않아 왕이 도착했을 것이다. 이제 한 말들은 왕의 마음을 반영한다. 왕은 선지자와 그가 나타내는 하나님에게 분노한다. 그는 나라가 겪고 있는 이런 고통이 모두 하나님에게서 나왔으며, 따라서 그분이 책임져야만 한다고 선언한다. 요람은 하나님에게 분노를 터뜨릴 수 없어서, 지금 그분의 선지자에게 터뜨리려고 한다.

어찌…기다리리요²³: 요람은 왜 자신이 하나님과 타협해야만 하는지를 묻는다. 그는 여호와가 이 재앙을 사마리아에 일으킨 것은 독단이며 따라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재난에 대한 책임이 그분에게 있다고 믿는다. 선지자를 향한 이 갑작스런 행동은 왕에게 호소했던 여인(참조 26절)에 대한 그의 응답이다. 병사들과 백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험을 받음으로, 진퇴양난에 처한 왕은 어떤 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었고, 하나님과 엘리사를 거역하는 결정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하나님이 이 포위를 불러왔으므로 그분은 그것을 끝내기 위해 어떤 것도 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스스로 확신하려 했던 것처럼 요람의 유일한 방도는 하나님께로부터 돌아서서 손수 조치를 취하는 것이었다. 그는 엘리사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림으로써 지금 이를 행하려는 참이었다.

여호와의 말씀²⁴: 이스라엘 왕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였고, 이제 엘리사는 하나님의 뜻을 나타낼 것이었다. 이 지점에서 6장과 7장을 구분한 것이 인위적이라는 점에 특히 주의해야만 한다. 본 이야기가 시작된 6:24에서 구분해야 적절할 것이다. 엘리사는 이제 왕의 도전에 응하여 여호와가 바야흐로 하려고 하는 것을 언급한다. 백성들이 훤히 보는 앞에서 요람은 당면한 위기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에게 돌렸으며, 여호와를 배반한 후 이제 몇 가지 구조 수단을 발견할 것이라는 희망에서 문제를 자기 스스로 처리하겠다고 제안하였다. 엘리사는 구원을 베풀 자가 왕이 아니라 하나님임을 제시한다.

사마리아 성문²⁵: 성벽으로 난 문을 통해 접근할 수 있었던 동방의 도성들에서, 성문은 북적거리고 번창하는 시장이 된다. 음식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사마리아의 성문 중 하나가 분배 센터가 되었을 것이다.

스아²⁶: 히브리어 스아(se’ah). 여섯 갑은 한 스아에 해당하고, 세 스아는 한 에바와 같았다. 스아는 건량으로 약 6.4리터였다(참조 제2권, 110, 111). 어떤 날은 “합분태 사분 일 갑”이 “은 다섯 세겔”에 팔렸다(6:25). 그러나 다음날에는 24배의 밀이 1/5의 가격에 팔릴 것이었다. 달리 말하면, 기근 동안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게 해 준 가장 값이 싸고 질이 좋지 않은 농산물의 아주 적은 양을 살 수 있는 금액으로 다음날에는 가장 좋은 밀가루를 120배나 살 수 있었다.

한 장관²⁷: 히브리어 핫샬리쉬(has∨s∨alis∨), 문자적으로 “세 번째 [사람].” 원래 이 단어는 헷 족속들 사이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마차 위에 탄 세 번째 사람을 나타냈을 것이다. 앗수르인들은 마차들에 각각 두 사람만을 할당하였다. 후에 그것은 동방의 궁정에서 중요한 관리의 칭호가 되었다. 예후가 요람을 살해했을 때, 왕의 시체를 처리하라는 명령을 받은 사람이 예후의 샬리쉬(s∨alis∨) 빗갈이었다(9:24, 25). 이 관리가 “왕이 그 손에 의지하는” 자로 묘사된 사실은 그가 상당히 중요한 사람으로 왕의 개인 수행원이었으며 때때로 중요한 책임이 그에게 부과되었을 것임을 나타낸다. 이튿날, 팔기 위해 식량을 내어놓는 사마리아 성문을 지키는 자로 세움을 받은 자가 바로 이 관리였다(7:16~18). 이 관리가 이때에 엘리사의 집에 있었다는 사실은 왕도 거기에 함께 있었음을 암시한다(참조 6:33 주석).

대답하여²⁸: 관리는 엘리사가 지금 한 진술이 얼마나 어리석고 전혀 불가능한 일인지를 보여 주려 했다. 이렇게 함으로 그는 왕이 여호와를 불신하는 태도를 취했던 바로 그 입장에서 왕을 옹호하려 했다.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²⁹: 그 조롱자가 엘리사의 예언 성취에 대한 개인적인 증인이 될 것이었으나 불신 때문에 그는 이르러 올 축복에 참여하도록 하락되지는 않을 것이었다.

 

2025.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