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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에 위인전> 아람 군대/장지원

노파 2025. 9. 12. 00:02

 

<성경 속에 위인전> 엘리사와 아람 군대

장지원

 

 

때에 아람 왕이

이스라엘로 더불어 싸우며¹

그 신복들과 의논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아무데 아무데² 진을 치리라³ 하였더니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기별하여⁴ 가로되

왕은 삼가 아무 곳으로 지나가지 마소서

아람 사람이 그곳으로 나오나이다⁵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의 사람의 자기에게 고하여 경계한 곳으로

사람을 보내어 방비하기가⁶ 한두 번이 아닌지라

이러므로 아람 왕의 마음이 번뇌하여⁷

그 신복들을 불러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⁸

이스라엘 왕의 내응이 된 것을 내게 고하지 아니하느냐

그 신복 중에 하나가 가로되

우리 주 왕이여 아니로소이다

오직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⁹ 하신 말씀이라도 이스라엘 왕에게 고하나이다

왕이 가로되

너희는 가서 엘리사가 어디 있나 보라

내가 보내어 잡으리라

혹이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엘리사가 도단¹⁰에 있나이다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¹¹

저희가 밤에 가서 그 성을 에워쌌더라

하나님의 사람의 수종드는 자¹³:가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을 에워쌌는지라

그 사환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아아¹⁴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¹⁵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¹⁶ 하고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¹⁷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¹⁸ 엘리사를 둘렀더라

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원컨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¹⁹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

엘리사가 저희에게 이르되

이는 그 길이 아니요

이는 그 성도 아니니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의 찾는 사람에게로 나아가리라 하고

저희를 인도하여 사마리아에 이르니라

 

사마리아에 들어갈 때에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여 이 무리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저희의 눈을 여시매

저희가 보니

자기가 사마리아 가운데 있더라

이스라엘 왕이

저희를 보고

엘리사에게²⁰ 이르되

내 아버지여²¹

내가 치리이까²² 내가 치리이까

대답하되

치지 마소서²³

칼과 활로 사로잡은 자인들 어찌 치리이까

떡과 물을 그 앞에 두어²⁴ 먹고 마시게 하고

그 주인에게로 돌려 보내소서

왕이 위하여 식물²⁵을 많이 베풀고

저희가 먹고 마시매 놓아보내니

저희가 그 주인에게로 돌아가니라²⁶

이로부터 아람 군사의 부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니라²⁷

 

<노트> 엘리사가 아람 군대의 모든 전략을 미리 알아내 이스라엘 왕에게 고햇기 때문에, 아람 왕은 번번이 이스라엘에게 패하고 말았다. 그래서 아람 왕은 엘리사를 잡으려고 군대를 보내어 엘리사가 거주하는 도단 성을 포위하였다. 성을 포위한 아람 군을 보고 사환이 두려워 하자, 엘리사는 사환의 눈을 열어 하나님의 군대가 더 강함을 보게 해주었다. 엘리사는 아람 군대의 눈을 어둡게 한 후, 사마리아 성으로 인도하여 모두 포로로 잡아들였다. 이 일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보여 주심으로써 이스라엘로 하여금 두려움을 느껴 회개케 하기 위한 사건이었으며, 또한 군사적인 힘으로는 도저히 하나님의 능력을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을 아람 백성들이 깨닫도록 하기 위한 사건이다.

아람 왕이…싸우며¹: 이스라엘과 아람은 이때 거의 끊임없는 전쟁 상태에 있었다. 만약 공개적인 전쟁이 아니었다면, 국경 분쟁이었을 것이다. 아합이 죽음을 맞이한 때에, 이스라엘 군대는 요단 저편 길르앗 라못을 탈환하기 위해 아람에 대항하였다(왕상 22:3, 4). 아합의 죽음 후에 이스라엘에 우세를 보인 것은 아람이었다. 그리고 그 군대가 다시 한 번 이스라엘 땅에 있었다. 벤하닷 Ⅱ세가 여전히 아람의 왕이었다(6:24).

아무데 아무데²: 특정한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 한때는 그것이 어떤 장소에 있었고, 그 다음에는 다시 다른 장소에 있었을 것이다.

진을 치리라³: 여기서 의미하는 것은 공개된 상설 진영 이상이다. 왜냐하면 곧 전 지역이 위치한 장소를 알 것이었으며, 선지자 없이도 왕에게 그것이 알려질 수 있을 것이었다. 아마도 이 모호한 히브리어 단어가 가리킬 수 있는 것은 다른 곳에서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급습을 위한 매복지 곧 몰래 기습할 수 있는 요소가 숨겨진 곳을 말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이…기별하여⁴: 아람 왕이 은밀하게 자신의 신복들과 나눴던 주의 깊은 의논이 엘리사에게 알려졌고, 다음에는 그가 이스라엘 왕에게 그 정보를 가지고 갔다.

나오나이다⁵: 더 정확히 말하면 “나오는 중입니다” 혹은 “나오려고 합니다.” 엘리사가 알려 준 것은 아람이 의도하고 있었던 계획에 대한 정보였다. 미리 그러한 전술적인 계획을 알게 됨으로, 이스라엘 왕은 아람인들에 대항하기 위해 연루된 장소들에 그들의 도착 시간에 맞추어 충분한 군대를 보낼 수 있었다.

방비하기가⁶: 그것은 자신과 나라를 위해 사태에 대비한 것이다. 적의 계획을 알게 됨으로, 그는 적의 함정에 빠지는 것에 대비하였다.

번뇌하여⁷: 어떤 계획이 극비로 보관될 때마다 적이 그 세부 사항을 알곤 하였다. 만약 이러한 일이 한두 번 발생했다면 그것은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정규적인 것이 되었을 때, 아람 왕은 번민하였고 원인을 알고자 결심하였다.

우리 중에 누가⁸: 벤하닷에게는 오직 한 가지 원인 곧 진영 안의 반역자로 생각되었다. 그는 아람보다는 이스라엘에 더 호의적인 어떤 사람이나 혹은 자신의 조국보다는 적을 위해 일하도록 매수당한 자를 통하여 정보가 새나간다고 확신하였다. 그들 중에 어떤 자가 반역자로 드러나지 않겠는가?

침실에서⁹: 동방의 궁전에서 가장 경호가 잘되어 있고 가장 접근하기 힘든 장소. 거기에서 나누는 말들은 참으로 비밀이 되었으며, 왕의 가장 절친한 친구들조차도 들을 수가 없었다.

도단¹⁰: 길르앗과 애굽 사이에 있는 정기 대상로(隊商路) 상의 성읍으로, 이스르엘 평원 가까이 있으며 사마리아 고원 지대로 이어지는 통로. 세겜 북동쪽 약 23킬로미터, 사마리아 북동쪽 16킬로미터 지점이었다. 길르앗에서 애굽까지 이르는 도중에 이스마엘 사람들이 요셉을 산 곳이 바로 여기였다(창 37:17~28). 이 위치는 오늘날 텔 도타(Tell Do^tha-)로 알려진다.

왕이…말과…보내매¹¹: 도단이 정기 대상로 상에 있음으로, 말과 병거로 무장된 큰 군대가 실제로 접근할 수 있었다.

수종드는 자¹²: 히브리어 므샤레트(mes∨aret). 참조 4:43 주석. 이 수종드는 자는 게하시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죄로 인하여 무서운 저주 아래 있었다(5:27). 아마도 도단으로 갈 때 엘리사 선지자와 동행했던 제자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이렇게 선지자와 연합하여 일함으로, 이 젊은이들은 귀중한 경험을 얻었을 것이다.

아아¹⁴: 내 주여. 젊은이들은 주인에 대한 믿음도, 경험의 결과로 오는 힘과 용기도 없었다.

두려워하지 말라¹⁵: 얼마나 자주 여호와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이렇게 마음 든든한 말씀을 하시는가!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주 그들을 불확실성과 두려움에 처하도록 하는 상황에 처한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시며 용기와 희망을 주는 말씀을 하신다(참조 창 15:1; 46:3; 출 14:13; 민 14:9; 신 1:21; 사 43:1; 눅 12:32). 이 땅에 있는 동안 하나님의 백성들은 문제에 봉착할 것이고 위험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단은 의인들이 의심과 두려움에 굴복하도록 전력을 다할 것이다. 그러나 불확실성과 의심의 안개를 뚫고 여호와의 음성은 여전히 우리에게 분명하고 확신있게 울려 퍼진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보다 많으니라¹⁶: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적들에게 포위될 때, 그는 항상 그와 함께하는 세력이 적의 세력보다 무한히 더 많다는 보증을 받는다. 산헤립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여 항복을 요구했을 때, 히스기야는 백성들에게 이와 유사하게 용기를 주는 기별을 전했다(대하 32:7, 8). 이 땅에서 홀로 버려진 듯이 보이는 하나님의 가장 연약한 자녀라도 적들이 자신을 대적하여 보내는 어떤 세력도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의 편에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그는 가장 강력한 악의 무리들보다 더 우세하다.

저의 눈을 열어서¹⁷: 가장 위대한 실재들은 육안으로는 볼 수 없다.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은 여호와의 도움이 없다면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다. 육안으로는 단지 물리적인 사물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영적인 사물들은 영적으로 식별된다. 눈이 열려 하나님과 그분의 왕국의 지극히 중요한 사물들을 볼 수 있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필요이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의 눈을 열지 않는다면, 우리는 눈먼 자로 인생을 보내게 될 것이며 여호와의 사물들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고 의의 지극히 중요한 것을 볼 수 없을 것이며 거룩함의 중요성을 이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 우리의 눈이 열려, 이 땅에서 가장 소중한 사물들의 중요성을 보기 시작한다.

산에 가득하여¹⁸: 하나님의 천사들은 의인들의 영원한 동료이다. 하늘에서 온 수호 사자(使者)들이 의인을 둘러 진치는데, 만약 성도들이 하늘의 보호를 거절하기로 선택하지만 않는다면 악의 천사들이 그들의 대열을 뚫고 들어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호와의 도움이 함께하는 한 사람이 이 땅의 가장 강력한 힘도 능가한다(참조 시 3:6; 27:1, 3; 34:7). 엘리사를 둘러선 말과 병거는 당신의 종을 지키도록 하나님이 보낸 무수히 많은 강력한 천사들이었다.

눈을 어둡게¹⁹: 히브리어 산웨림(san-werim). 이 단어는 여기(두 번)와 창 19:11에 언급된다. 이 단어의 어원은 불확실하다. 어떤 이들은 이 말이 완전히 육체적으로 눈먼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사물을 실제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는 환각 상태라고 생각했다(참조 창 19:11 주석). 두 가지 문제가 대두된다. (1) 만약 그 무리들이 완전히 눈이 멀었다면 어떻게 엘리사가 일단의 사람들을 약 18킬로미터나 되는 산악 지역을 넘어 사마리아까지 인도할 수 있었을까? (2) 시력이 없이는 이러한 시도가 허사로 돌아갈 것을 알면서도 왜 사람들이 엘리사를 체포하려는 그들의 목적을 고집했을까? 만약 눈이 완전히 멀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 사람들이 “이중으로 눈멀게” 되었다는 사실로 설명될 수 있다(참조 부조와 선지자, 159,). 하나님의 치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영적으로 눈멀어 자신들의 악의 행로를 고집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 기적은 육체적 눈멂의 고통을 넘어, 엘리사가 자신을 억류하려는 그들의 목적을 유지시키는 것뿐 아니라 이들을 사마리아로 이끌 수 있도록 한 데까지 확대되었다.

(이는 그 길이 아니요. 여호와의 적들로 잘못된 결론에 이르게 하여 그들을 패하게 한 유사한 경우는, 예컨대 (1) 기드온이 자신의 용사 300명을 미디안 사람들에게 압도하는 병력으로 보이게 한 것(삿 7:19~21), (2) 모압 사람과의 싸움에서 물을 피로 보이게 한 것(왕하 3:22, 23), (3) 아람 군대가 헷과 애굽 군대가 몰려오는 것으로 여기도록 한 소리(왕하 7:6) 등이다. 참조 수 8:15.)

엘리사에게²⁰: 지시를 받기 위해 선지자가 왕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왕이 선지자를 바라보았다. 왕은 보위에 있었으나 선지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했다. 요람은 이스라엘의 군대를 지휘했지만, 천사의 무리는 엘리사의 지휘 아래 놓여 있었다.

내 아버지여²¹: 이 구절을 사용한 것은 부자 관계가 아니라, 엘리사를 향한 왕의 존경심을 나타낸다.

내가 치리이까²²: 이 구절을 반복한 것은, 선지자가 힘이 미칠 수 있는 데까지 끌고 온 아람 사람들을 죽이려는 요람의 열망을 나타낸다.

치지 마소서²³: 요람에게 포로를 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기적의 목적은 아람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그들의 눈을 열어 하나님의 선지자에게 대항하는 어떤 시도도 완전히 헛된 일임을 보게 하는 것이었다. 나아만에게 수종들던 포로로 잡혀온 히브리 소녀를 통하여, 아람 사람들은 여호와의 자비와 권능을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과 저항할 수 없는 능력에 대하여 그들에게 더 많은 교훈을 주기 원하셨다. 만약 사로잡힌 아람 사람들이 고국으로 돌아가서 있었던 일을 동포들에게 말하지 않았다면, 이 기적을 통해 여호와의 목적이 실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어찌 치리이까: 이스라엘 왕이 싸움에서 사로잡은 포로들을 냉혹하게 살해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였을 것이다. 엘리사는 요람에게, 이 사람들은 전쟁 포로이며 그렇게 대우 받아야 할 권리가 있음을 분명히 한다. 일상적인 상황 아래서조차도 왕이 자신의 손에 들어온 죄수를 죽이는 것은 범죄였을 것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그 범죄는 더욱더 비난받을 만하며, 아람 백성들에게 이스라엘과 하나님에 대한 전혀 잘못된 이해를 주었을 것이다.

떡과 물을…두어²⁴: 즉 그들을 포로가 아니라 손님으로 대우하여. 사람들을 자비롭고 친절하게 대함으로, 아람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종교의 힘에 대한 실물 교훈을 주어야 했다(참조 잠 25:21, 22; 마 5:44).)

식물²⁵: 히브리어 케라(kerah), “잔치” 혹은 “향연.” 아람 사람들에게 준 것은 평범한 음식이 아니라, 특별한 경우를 위하여 준비된 음식이다. 사막지역의 불문율에 의하면, 장막에서 음식을 대접받은 사람은 친구가 되며 보호받아야 한다.

저희가 그 주인에게로 돌아가니라²⁶: 아람 사람들은 자신들의 나라로 돌아갔을 때, 이스라엘을 침입했을 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무리들이 되었다. 그들은 적에서 친구로 바뀌었다. 그들이 먹은 음식은 그들의 육체뿐 아니라 영혼까지 살찌웠다. 그들은 쉽게 잊을 수 없는 한 교훈을 배웠다.

들어오지 못하니라²⁷: 이것은 요람이 포로들에게 베푼 정중한 대우에서 나온 당연한 결과였다. 당분간 아람이 이스라엘을 침입하지 않았다. 요람은 무력으로 이룰 수 없었던 것을 잔치를 통하여 이루었다. 친절이 검보다 더 강력한 무기임이 입증되었다. 적에게 선을 베푸는 것은 곧 자신에게 선을 베푸는 것이다. 하나님은 의인뿐 아니라 악인에게도 친절하시다.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신다(마 5:45). 그러므로 사람은 원수를 사랑하며 자신을 해하는 자들에게도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 오직 이러한 정신을 통해서만 사람들 사이에 있는 시련과 투쟁을 몰아낼 수 있다.

 

2025.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