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 속에 위인전> 게하시의 죄와 그 형벌
장지원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¹가 스스로 이르되
내 주인이
이 아람 사람 나아만에게 면하여 주고²
그 가지고 온 것을
그 손에서 받지 아니하였도다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³
내가 저를 쫓아가서 무엇이든지
그에게서 취하리라 하고
나아만의 뒤를 쫓아가니
나아만이 자기 뒤에 달려옴을 보고 수레에 내려서⁴ 맞아 가로되 평안이냐⁵
저가 가로되 평안이니이다
우리 주인께서 나를 보내시며⁶ 말씀하시기를
지금 선지자의 생도 중에 두 소년⁷이 에브라임 산지에서부터⁸ 내게 왔으니
청컨대 당신은
저희에게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라 하시더이다
나아만이 가로되
바라건대⁹ 두 달란트를 받으라 하고
저를 억제하여 은 두 달란트를 두 전대에 넣어 매고 옷 두 벌을 아울러 두 사환에게 지우매 저희가
게하시 앞에서 지고 가니라
언덕에¹⁰ 이르러는
게하시가 그 물건을 두 사환의 손에서 취하여
집에 감추고
저희를 보내어 가게 한 후
들어가서 그 주인 앞에 서니
엘리사가 이르되
게하시야 네가 어디서 오느냐
대답하되 종이 아무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¹¹
엘리사가 이르되
그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을 때에
내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¹²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¹³
옷을 받으며
감람원¹⁴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
그러므로 나아만의 문둥병이
네게 들어¹⁵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¹⁶ 이르리라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 나오매
문둥병이 발하여 눈 같이 되었더라¹⁷
<노트>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는 나아만아 준비했던 선물로 인해 탐심이 일어났다. 결국 그는 탐심을 채우기 위하여 거짓말을 했으며, 그로 인하여 저주를 받게 되었다. 게하시 사건은 아간의 사건과 초대 교회의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처럼, 우리에게 탐심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준다.
게하시¹: 성경 기자는 아람의 중요 관리가 문둥병을 고침받고 심령이 변화되어 마음에 기쁨과 평화를 지닌 채 여호와의 새 회심자로서 이스라엘을 떠나는 아름다운 장면을 이제 막 언급했다. 그러나 장면이 “게하시가”라는 말과 함께 갑자기 바뀐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행복과 평화를 주실 때 사단은 문제를 끌어들이려 한다. 그는 모든 교향곡에 불협화음을 끼워 넣으려 한다. 여기서 선지자의 사환은 자신을 원수의 손에 들린 도구가 되도록 허용하여 이토록 아름답게 그려진 그림을 거의 망치고 있다.
나아만에게 면하여 주고²: 이 말은 게하시의 생각과 심령을 드러낸다. 그는 나아만을 하나님의 새로운 회심자가 아니라 원수의 땅에서 온 군인으로 생각했다. 아람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약탈했다. 그렇다면 왜 이스라엘 사람이 그들 중 한 사람을 살려 두어야 하는가? 게하시는 그의 주인 엘리사를 나아만이 주기를 원했던 선물을 거절한 나약하고 단순한 사람으로 생각했다.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³: 여기 이 말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음을 충분히 알면서도 자신이 하나님의 사역에 일조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려는 사람이 내뱉은 불경스런 맹세이다. 탐욕에 눈먼 게하시는 자신이 행하지도 않은 봉사에 대한 대가를, 엘리사가 아무것도 받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 그 사람에게 취하려 하고 있다.
내려서⁴: 이는 존경을 나타내는 동방의 표현이다. 게하시는 엘리사의 종에 불과했고, 따라서 나아만은 그에게 불필요한 호의를 나타낼 의무가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그의 가슴속에서 감사하는 마음이 강하게 일었음을 가리킨다. 나아만은 그의 천성적 교만과 악의를 극복했고, 따라서 이제 이스라엘과 싸워 승리했던 아람의 군대장관인 그가 히브리 선지자의 종과 자신을 동등하게 취급하는 표로 병거에서 내린다.
평안이냐⁵: 나아만은 게하시가 달려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선지자에게 어떤 불행이 임했거나 어떤 재난이 발생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 주인께서 나를 보내시며⁶: 게하시는 이제 거짓말로 자신의 탐욕을 은폐하려고 했다. 엘리사가 종의 욕심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다. 이타적인 선지자의 덕망 있는 이름이 그의 비열한 종의 욕심으로 오염되었다. 악은 항상 더 많고 큰 악의 길로 인도하기 때문에, 한 가지 죄가 한 가지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는 드물다.
두 소년⁷: 게하시는 자신의 탐욕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아, 궁핍한 두 소년을 염려해 주는 친구 역할까지 하려 했다. 과연 나아만이 은 열 달란트 중 하나와 의복 열 벌 중 두 벌로 그들을 돕는 일에 관심이 없었겠는가?
에브라임 산지에서부터⁸: 에브라임 고지대에는 적어도 두 개의 선지자 학교, 벧엘과 길갈이 있었다(참조 2:1 주석).
바라건대⁹: 문자적으로 “제발” 혹은 “기꺼이”, 한 달란트 말고 두 달란트를 받으라는 뜻이다. 나아만은 감지덕지하여 게하시가 요구한 것의 두 배를 주고, 선지자의 집으로 짐을 지고 갈 두 종들도 보냈을 것이다.
언덕에¹⁰: 히브리어 오펠(‘opel), “구릉”(丘陵) 혹은 “언덕.” 언덕 위에 있는 망대, 집, 요새, 전망대 등과 같은 구조물을 가리키기도 한다. 엘리사의 집은 사마리아에 있었고, 아마도 멀리서 다가오는 사람을 알아 볼 수 있는 고지대에 있었을 것이다(참조 6:30~32). 그러나 이때 은 두 달란트를 가지고 돌아온 게하시는 주인이 바라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기 언급된 이 언덕은, 엘리사의 집과 게하시가 나아만을 따라잡은 위치 사이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따라서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곳에서 나아만의 종들을 돌려보내고, 게하시가 보물을 받아 집에 숨겼다.
아무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¹¹: 게하시는 주인의 책망을 막기 위해 이제 또 다른 거짓말에 호소했다. 또다시 죄는 죄로 인도하고, 한 가지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로 이어진다. 죄악의 꼬리는 끝이 없다. 기만의 과정에 착수한 자는 기만을 덮기 위해 불가피하게 또 다른 기만에 골몰하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내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¹²: 여호와께서는 엘리사에게, 정확하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어떻게 게하시가 나아만을 쫓아갔는지, 어떻게 그가 나아만에게 거짓말을 하여 갈망하던 선물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는지, 그것을 어떻게 숨겼는지 보여 주셨다. 사람이 자신의 동료는 속일 수 있지만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다. 악한 행실은 인간의 눈에는 가려질 수 있어도, 여호와의 눈에는 모두 보인다(참조 히 4:13).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¹³: 사환의 마음을 찌르는 엘리사의 말은 얼마나 통렬한 질책인가!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었다. 아람의 군대장관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새로 발견한 신앙으로 기뻐했다. 하나님은 그분의 종들에게 은혜를 베푸셨고, 하늘은 땅과 매우 가까워졌다. 베푸신 놀라운 축복을 인해 게하시의 마음은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로 고양되어야 했다. 그는 나아만이 얼마나 좋은 인상을 받았는지, 아람 장관이 이스라엘의 신앙만이 사람을 이타적이고 정직하며 친절하게 만드는, 세상에서 유일한 참 종교라는 믿음을 어떻게 갖게 되었는지 생각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대신 그는 자신과 자신의 유익만을 생각했다.
엘리사의 질책은 그의 종 게하시뿐 아니라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에서 게하시가 가졌던 것과 동일한 정신을 나타내는 자들에게도 주어진다. 우리 시대에도 하나님은 매우 가까이 계시며 여러 지역에서 놀라운 은혜의 기적을 행하신다. 도처에서 죄인들이 회심하고 감사와 승리의 노래가 하나님께 상달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탐욕의 영이 퍼지고 있다. 그들은 자신을 섬기는 일에 열심이다. 사람을 구원하는 일에 사용해야 할 은을 축적하며 숨기고 있다.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다보시고,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을 때인가?”라고 질문한다.
감람원¹⁴: 게하시는 돈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선지자는 그의 종이 구입하려던 것들을 열거했을 것이다.
네게 들어¹⁵: 아람 사람 나아만에게 큰 축복의 날이 되었고, 히브리 사람 하나님의 선지자의 종에게는 지독한 저주의 날이 되었다. 나아만은 화평 중에 자기 길로 갔으며, 그의 마음은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소망 때문에 기뻤다. 게하시는 자신의 죄의 결과를 무덤으로 지고 갔다. 그는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 저주받고 동포에게는 경멸받는 문둥병자로 남아, 하나님 나라의 보물보다는 이 세상의 보물을 먼저 구하는 탐욕의 어리석음과 삶의 헛됨에 대한, 모든 시대를 위한 실물교훈이 되었다. 엘리사와 교제하는 세월 동안, 게하시는 이타적인 헌신과 사랑의 삶에 기쁨과 만족이 있다는 교훈을 배울 기회가 있었다. 그가 암처럼 인간의 영혼을 먹어들어 가는 세상 보물에는 집착했으나 하늘의 선물은 걷어찼다. 그는 하나님을 위한 사역에 종사하는 동안 자기부인의 정신을 계발하지 않고, 이기적인 사람이 되고 물질적 이익에 관심을 갖도록 자신을 내버려두었다. 그는 인간의 영혼이 아니라 은에, 의의 옷이 아니라 베옷에 관심을 두었다.
영원토록¹⁶: 게하시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모든 시대를 통해 지속될 저주를 그의 후손들에게 발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여호와께서는 친절하고 자비로우셔서 어느 누구에게도 불공평하거나 불필요한 고통을 주지 않으신다. 게하시에게 두려운 심판이 초래된 것은 그의 탐욕 때문이었다. 그 심판 때문에 그의 자녀들도 어쩔 수 없이 고통받게 될 것이다. 질병과 그 영향은 종종 무죄한 후손에게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게하시가 문둥병자가 되었기 때문에 후손들이 자자손손 문둥병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여기 사용된 히브리어 르올람(le‘olam)이 반드시 중단 없음 곧 영원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올람(‘olam)이라는 단어가 하나님께 적용될 때는 끝이 없는 것을 의미하며, 사람의 생명에 적용될 때는 단지 인간의 삶의 끝에 한정된다. 출 21:6에서 종은 “영영히” 그 상전을 섬겨야 했다. 이스라엘은 그 땅에 체류하는 이방인 중에서 “영원한 종”을 삼아야 했다(레 25:46). 다윗이 죽은 직후, 밧세바는 왕 앞에 엎드려 “내 주 다윗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라고 말했다(왕상 1:31). 그리고 또한 느헤미야도 아닥사스다 왕에게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라고 말했다(느 2:3). 여호와의 진노의 날에 지상의 연기가 “끊임없이” 떠오를 것이라 묘사되었다(사 34:10). 요나가 자신이 고래 뱃속에 떨어진 것을 묘사하면서,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다고 말했다(욘 2:6). 르올람이라는 표현은 “세대가 지속되는 것”을 의미하며, 포함된 시간의 길이는 그 표현과 관련된 특정한 개념에서 추론해 내야 한다(참조 출 12:14; 21:6 주석).
눈같이 되었더라¹⁷: 이 표현은 다른 곳에서 문둥병이 갑작스럽게 발병하는 것과 관련하여 사용된다(참조 출 4:6; 민 12:10).
2025.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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