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 속에 위인전>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침
장지원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¹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저는 큰 용사²나 문둥병자더라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³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작은 계집아이 하나를 사로잡으매⁴
저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⁵
그 주모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⁶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⁷
나아만이 들어가서⁸
그 주인에게 고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계집아이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
아람 왕이 가로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⁹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¹⁰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 문둥병을 고쳐주소서¹¹ 하였더라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내가 어찌 하나님이관대¹² 능히 사람을 죽이며 살릴 수 있으랴
저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 보내어 그 문둥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로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¹³ 알라 하니라
하나님의 사람¹⁴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어 가로되
왕이 어찌하여¹⁵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저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¹⁶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¹⁷ 문에 서니
엘리사가 사자를 저에게 보내어 가로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¹⁸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¹⁹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 강 아마나와 바르발²⁰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이켜 분한 모양으로 떠나니
그 종들이²¹ 나아와서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²²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²⁴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
나아만이 모든 종자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²⁵
그 앞에 서서 가로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²⁶
청컨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가로되 나의 섬기는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받지 아니하리라²⁷
나아만이 받으라 강권하되
저가 고사한지라
나아만이 가로되
그러면 청컨대 노새 두 바리에 실을 흙²⁸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든지 다른 제든지 다른 신에게는²⁹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오직 한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당에 들어가 거기서 숭배하며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너는 평안히 가라³⁰
저가 엘리사를 떠나 조금 진행하니라
<노트> 구약성서 열왕기하 5장은 이방 사람 나아만이 문둥병을 고침받게 되는 이저의 발단부분이다. 나아만이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에 대하여 알게된 것은 작은 계집 종의 지혜로운 충고 때문이었다. 엘리사는 그 당시 자기 주위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병을 고쳐 주거나 불쌍한 자들을 돕는 일들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나아만¹: 아람은 종종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였지만, 이때는 분명 평화의 시기였다. 얼마 전에 아합은 벤하닷과의 싸움에서 죽임을 당했다(왕상 22:34~37). 이스라엘 왕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지만, 이 사건은 아합의 아들 요람의 치세에 일어난 것으로 생각된다. 기사는 나라들의 뒤바뀌는 운명을 드러내며, 당시의 국제 관계와 관습의 흥미로운 모습을 보여 준다.
큰 용사²: 나아만은 아람의 중요 인사였다. 그는 아람이 승리를 쟁취하는 데 기여하여 존경과 명성을 얻었지만, 문둥병자가 되는 불행을 겪었다. 하지만 그가 겪고 있는 무서운 질병으로 심각한 장애가 있었지만 아람의 군대장관의 지위를 유지했다.
떼를 지어³: 주로 약탈을 목적으로 자행되는 습격떼의 국경 침입이 잦았다.
사로잡으매⁴: 전쟁은 잔인하다. 어린 소녀가 자기 집에서 잡혀가, 지금은 위로나 소망도 없이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처럼 적군의 땅에 있다. 그녀에게 인생은 좋은 것이 거의 없는 듯 보였으며, 만일 그녀가 스스로 자신의 생각들을 자신과 자신의 불행한 처지에 맞추었다면 비통하고 침울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방 땅일지라도 하나님은 그녀가 할 수 있는 봉사를 준비해 두셨다.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⁵: 사로잡힌 소녀는 종의 인생을 살고 있었으며, 이스라엘을 굴복시킨 군대장관의 집에서 수종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일에 신실했음에 틀림없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가 중요한 관리의 집에 고용되지 않았을 것이다.
선지자 앞에⁶: 비록 포로였지만, 소녀는 고국과 하나님을 잊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을 포로로 잡고 강제 노역을 시키는 사람들을 향해 사악한 생각을 품지 않았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충만하여, 그녀의 마음은 병든 주인과 그의 아내를 향한 동정심이 일었다. 그녀에게 불행을 안겨주었기 때문에 나아만이 벌을 받아야 한다고 바라는 대신에, 그가 잘되기를 소망했고, 혹독한 질병에서 회복되기를 희망했다. 소녀는 고국에서 행한 엘리사의 놀라운 사역들을 기억하면서, 그 선지자가 나아만의 문둥병을 낫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 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 하나님이 행한 일, 이방 백성을 위해서도 행할 수 있다고 믿었다.
저가…고치리이다⁷: 문둥병은 불치의 병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히브리 소녀는 부모에게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다고 배웠다. 그녀의 부모는 책임을 잘 이행했고, 그 결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땅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이런 놀라운 간증이 나타났다. 이스라엘의 신실한 부모가 여호와를 사랑하고 신뢰하도록 자녀를 양육했기 때문에 나아만은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능력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나아만이 들어가서⁸: 즉 나아만은 그의 주군인 아람 왕에게 가서 포로 소녀가 말한 것을 전달했다. 소녀는 하나님을 믿는 자신의 믿음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으나, 나아만은 소녀의 믿음을 보고 믿었으며 아람 왕 앞에서 그녀의 간증을 전했다. 이로 인해 벤하닷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능력의 하나님이며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배워야 했다. 그는 전투에서 이스라엘 군대를 무찔렀으며, 따라서 아람의 신들이 여호와보다 더 강하다고 믿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인간의 능력과 아람 신들의 능력을 초월하여 역사한다는 사실을 배워야했다. 하늘의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간증은 그분을 온전히 확신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간증이다.
내가…보내리라⁹: 어린 소녀의 간증이 아람의 군대장관에게 확신을 불러일으켰을 뿐 아니라 아람 왕의 마음속에도 어느 정도 믿음을 생기게 했다. 믿음이 믿음을 낳고 사랑이 사랑을 낳는다. 믿음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 땅에서 저 땅으로 나아가 마침내 지구를 두를 때까지 뻗어 나아가는 원(圓)이다. 오직 영원한 곳에서만 포로 소녀가 이방 땅에서 여주인 앞에서 행한, 이스라엘 하나님에 대한 확신의 간증이 낳은 결과를 평가할 수 있다. 왕들은 왕들과 상대했으며, 따라서 벳하닷은 나아만에 대한 봉사를 요청할 때 엘리사와 직접 상대하기보다는 이스라엘 왕을 통해 접촉하려고 생각했다. 편지를 쓰는 것은 당시 관례였고, 그와 같은 많은 편지 필사본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은 십 달란트¹⁰: 나아만은 대가 없이 치료를 요구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선지자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선지자에게 상당한 보상을 제공할 만한 보물을 가지고 갔다. 그는 여호와께서 자신을 고쳐주실 것이며 보상으로 은이나 금을 바라시지도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또한 나아만은 엘리사가 세속적 이익을 바라는 정신이 아니라 그가 행하는 선을 위해 하나님과 동료들을 섬긴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당시에는 화폐가 주조되지 않아 무게로 결정되는 금과 은의 막대나 고리가 통용되었다. 은 한 달란트는 약 35킬로그램이었다. 6,000개의 금 조각이 아니고, 무게가 6,000세겔인 금이나 금 두 달란트였다. 나아만이 이처럼 많은 보물을 가지고 갔다는 사실은 그가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 사태의 심각성과 낫고자 하는 열망의 간절함을 보여 준다.
고쳐주소서¹¹: 아람 왕은 분명히 그런 기적을 행할 수 있는 명성을 지닌 선지자라면 국가의 관리와 왕의 명령 아래 있는 종교 계급의 일원일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어찌 하나님이관대¹²: 문둥병자는 살아있는 송장으로 간주되었다. 이스라엘 왕은 이는 하나님만이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며, 따라서 사람이 이런 질병에 걸린 어떤 사람을 회복시키도록 여호와의 손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음을 믿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그의 믿음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시비하려 함인 줄¹³: 이스라엘 왕은 벤하닷의 요청을 하나님의 기이한 능력을 드러내기 위한 기회로 이해하지 않고 상황의 어두운 부분만을 바라보았다. 그는 아람 왕의 편지가 좋은 신의에서 쓰여진 것이 아니라 싸움거리를 찾기 위한 핑계라고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그는 벤하닷이 전쟁을 위한 기회로 사용하기 위해, 응하기에 불가능한 요청을 의도적으로 보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요람은 여호와나 그분의 선지자 엘리사를 생각하기보다, 오로지 그 상황을 처리하기에 무능력한 자신만을 생각했다(참조 1절 주석).
하나님의 사람¹⁴: 요람의 궁전에 나아만이 도착했다는 소식이 어떻게 엘리사에게 전해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람 장관의 믿음을 보상하기 위해 사건을 인도하고 계셨다.
어찌하여¹⁵: 요람이 재난으로 여긴 것을 엘리사는 기회로 간주했다. 이스라엘 왕이 완수할 수 없었던 것을, 선지자는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기꺼이 착수할 것이었다. 왕이 절망으로 가득 차있는 동안, 선지자는 소망으로 앞을 내다보았다. 힘들고 곤혹스러운 때에 이 땅의 연약한 자녀들을 사랑과 자비로 내려다보시는 하늘의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면 도움이 된다.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요람은 두려워했지만, 엘리사는 아람 군대장관의 방문을 환영했다. 왕은 나아만을 위한 어떤 격려의 기별과 소망의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엘리사는 나아만이 육체의 치료와 영혼의 회복을 찾기 위해 자신에게 오도록 요청했다. 선지자는 나아만이 이스라엘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에 친숙하게 되어, 그분 안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소망에 관한 위로의 기별을 가지고 그의 백성에게 돌아가기를 간절히 원했다.
말들과¹⁶: 나아만의 수행원들은 말을 탔지만, 나아만 자신은 병거에 탔다.
엘리사의 집¹⁷: 분명 초라한 거처일 것이다. 이곳이 왕궁은 아니지만, 그 집에서 나아만은 왕궁에서 제공할 수 없는 특별한 것을 발견할 것이었다. 소박한 시골집 대문은 나아만에게 생명과 소망의 문이 될 것이었다.
요단강에…씻으라¹⁸: 나아만에게 한 지시는 소경에게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요 9:7)는 예수의 명령을 떠올리게 한다. 두 사례 모두 명령은 받아들이는 자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주어졌다. 치료는 오직 온전한 순종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요단강물은 나아만에게 치료와 생명의 물이 되어야 했다.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는 데 지혜가 있다.
내 생각에는¹⁹: 나아만은 자신의 생각이 있었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생각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문둥병을 고칠 수 있다는 사람에 대해 듣고서 즉시 그것이 정확히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고 이루어질지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그는 자기의 계획을 세워, 하나님께서 그 계획에 따라 행하시길 기대했다. 그러나 여호와의 행동 방식에 대해 사람이 지니는 선입견은 자주 어긋난다. 우리가 섭리의 길을 지레짐작할 때 실망할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홍해를 통과하는 길로 이스라엘을 인도해 내시기로 선택했지만 그것이 인간의 생각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 마구간에서 태어나 구유가 요람이 되도록 했지만 그것이 세상의 위대하고 능력 있는 자의 생각에는 맞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궁핍한 사람들의 종으로서 그들 중에 살도록 하셨지만, 그것은 오실 메시야에 대한 유대인의 생각과 조화되지는 않았다. 구원받고 여호와의 길로 행하려는 사람은 하나님의 생각이 사람의 생각보다 훨씬 높고 좋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아마나와 바르발²⁰: 사람의 안목에 분명히 이 강들은 이스라엘의 모든 강보다 좋았다. 다메섹 강은 깨끗했고 장미 같은 꽃들이 만발한 곳이었다. 자기 나라의 생명을 주는 강들과 비교해 볼 때, 나아만에게 요단강은 작고 기대에 어긋나는 개천이었다. 그러나 그의 문둥병이 낫기를 원했다면, 그가 목욕할 곳은 아마나가 아니라 요단강이었다. 아마나는 아 4:8의 아마나와 동일하다고 생각되며, 그 수원(水源)이 되는 산을 따라 이름이 붙여졌다. 그것은 다메섹의 중요한 강이었다. 바르발은 다메섹의 남쪽 강으로 생각되며, 헤르몬산 고지에서 발원하였다.
그 종들이²¹: 종종 종이 주인보다, 신하가 왕보다 지혜로운 것으로 판명된다. 나아만은 자기 종들의 말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생명과 회복의 방법을 발견할 것이었다.
큰 일²²: 나아만은 지체 높은 사람이었고 따라서 큰 일을 해야 했다. 그는 오만하여, 요단강에서 씻는 것은 비참한 경험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선함에 대해 하나님께 시험받고 있는 중이었다. 오직 여호와의 지시에 온전히 순종해야만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들 수 있는 희망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교만한 마음을 굴복시켜야 했으며, 완고하고 이기적인 의지를 극복해야 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아람 숲들의 우상보다 더 능력 있는 분으로 인정하고, 엘리사의 지시를 자신의 생각과 욕망보다 우선으로 여겨야 했다.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²⁴: 나아만은 축복을 얻으려는 희망을 갖기 전에, 엘리사를 하나님의 사람과 하늘의 대변자로 인정하는 자리에 자신을 두어야 했다. 만일 그가 선지자의 말에서 빛을 보지 못했다면 치료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선지자의 지시에 따라 행했을 때, 문둥병은 씻겨졌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실 때, 언제나 자신의 의견은 내려놓고 여호와의 기별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렇게 할 때만 우리는 하나님의 길에서 행하며 그분의 축복에 참여할 수 있다.
나아만이…도로 와서²⁵: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보답하기 위해 돌아와 감사를 표했다. 이렇게 하여 그는 자신의 길에서 멀리 벗어났지만 헛되지 않은 여정이었다. 나아만은 그의 모든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보다 하나님의 자녀가 지녀야 할 진정한 정신과 더 조화됨을 보여 주었다. 세월이 흘러 구주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 엘리사의 시대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병자들이 있었지만 “그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다(눅 4:27)는 사실을 언급하셨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임재와 축복을 감사하지 않았다. 이방 나라의 군대장관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한 사람들에게는 찾아 볼 수 없는 믿음과 감사를 나타냈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축복에 감사하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계시며 은혜를 베푸신다.
내가 이제…아나이다²⁶: 나아만은 히브리 소녀의 간증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들었지만, 이제 그는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통해 그분을 알게 되었다. 믿음은 앎이 되었다. 이제 그의 간증에는, 그가 하나님께 이런 경이로운 축복을 받지 않았다면 갖지 못했을 확신이 있었다. 그는 이제 이스라엘 밖에는 신들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람과 이웃 나라들에서 섬기는 신들은 고작 사람의 손으로 만든 우상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천지의 창조주시며, 인간에게 생명과 소망을 주신 여호와이시다. 만일 하나님의 모든 자녀가 포로 된 히브리 소녀처럼 하나님을 신실히 증거했다면, 지상의 모든 백성이 창조주의 놀라운 사랑과 돌보심을 알았을 것이요, 많은 사람이 그분께 찬양과 감사를 돌렸을 것이다.
내가 받지 아니하리라²⁷: 여호와의 선지자는 이득과 보상을 목적으로 봉사하지 않는다. 나아만에게 이르러 온 새로운 생명과 그의 마음속에서 솟아오르는 믿음을 통해, 엘리사는 보상을 받았다. 일꾼은 마땅히 품삯을 받아야 하고, 또 하나님께 축복을 받은 사람은 그분께 감사의 제물을 드리지만, 이런 상황 아래서는 엘리사가 제공된 선물을 거절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하나님의 참 선지자가 자기 만족을 목적으로 행했다거나 하나님의 축복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느낌을 나아만에게 남겨서는 안 되었다.
노새 두 바리에 실을 흙²⁸: 나아만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흙 위에서 경배해야 하는 신으로 생각했다. 그 당시에 나라마다 각기 두드러진 신이 있었고, 많은 성읍들에는 자신들의 지역 신이 있었다. 나아만이 이스라엘 밖에는 하나님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했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어떤 특별한 방법으로 이스라엘 땅과 결부돼 있다는 관점을 완전히 떨쳐버리지는 못했고, 따라서 그는 자신의 나라에서도 이스라엘의 흙 위에서 그 하나님을 섬기려고 했다.
다른 신에게는²⁹: 하나님을 알게 되었을 때, 나아만은 그분께 마음을 드렸으며 젊어서부터 알아온 아람 신들을 경배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모든 지역마다 나아만처럼 진실하고 신실한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려고 그분의 백성들의 신실한 증언을 듣고 거룩한 삶을 보고자 고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호와께서…사유하시기를: 나아만이 하나님을 섬기기로 작정했지만 우상숭배에 빠져있는 자신의 나라에서는 그것이 쉽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아람 왕은 여전히 림몬 신을 섬겼으며, 그 예배에서 나아만은 왕을 수행했을 것이다. 나아만은 이후로 오직 여호와만 섬길 것이라는 결심을 굳게 하였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지상 왕을 섬기는 일에서 등돌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왕이 림몬에게 예배할 때, 그는 나아만의 팔에 기댈 것이다(참조 7:2, 17). 나아만은 이방신에게 경배하는 것으로 이해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는 여호와께 마음을 드렸기 때문에 림몬도 섬기면서 그의 신앙을 타협할 의도가 없었고 또한 그렇게 한다는 말이 엘리사에게 들리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그는 예민한 양심을 지닌 사람이었고, 따라서 이스라엘을 떠나기 전에 자신이 따라야 할 원칙을 분명히 하고자 했다.)
평안히 가라³⁰: 이 말을 나아만이 작별하면서 한 요청을 승인하거나 거절하는 표현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는 의심이나 쉼 없는 불확실성이 아닌 평안 중에 떠나야 했다. 하나님은 그에게 은혜를 베풀었으며, 그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경배 속에서 행복과 평안을 찾아야 했다. 나아만은 갓 회심한 신자로 양심이 살아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새로 발견한 믿음에 매달린다면 그의 능력과 지혜가 자라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새 신자를 한 걸음씩 인도하며, 어떤 문제에 개선이 필요한 적절한 시기를 아신다. 이것은 영혼 구원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늘 염두에 두어야 할 원칙이다. 엘리사는 이때가 특정한 행동에 급진적인 변화를 요구할 적절한 순간이 아님을 알았다. 그는 예리한 영적 통찰력을 지닌 사람이었고, 따라서 나아만을 대처할 때 재치 있고 신중하게 행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나아만을 보내면서 질책하지 않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한 고별사에 포함된 것(요 14:27)과 비슷한 평화의 기별을 주었다.
202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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