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 속에 위인전> 선지 생도들을 위해 이적을 행한 엘리사
장지원
엘리사가 다시 길갈에¹ 이르니
그 땅에 흉년이 들었는데²
선지자의 생도가 엘리사의 앞에 앉은지라³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큰 솥을 걸고⁴ 선지자의 생도들을 위하여 국을 끓이라 하매
한 사람이 채소를 캐러 들에 나가서⁵ 야등덩굴⁶을 만나 그것에서 들외를 따서 옷자락에 채워가지고 돌아와서 썰어 국 끓이는 솥에 넣되
저희는 무엇인지 알지 못한지라⁷
이에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였더니
무리가 국을 먹다가 외쳐 가로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솥에 사망의 독이 있나이다⁸ 하고 능히 먹지 못하는지라
엘리사가 가로되
그러면 가루를 가져오라⁹ 하여 솥에 던지고 가로되
퍼다가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하매 이에 솥 가운데 해독이 없어지니라
한 사람이 바알살리사¹⁰에서부터 와서
처음 익은 식물¹¹ 곧 보리떡¹² 이십과 또 자루에 담은 채소¹³를
하나님의 사람에게 드린지라
저가 가로되
무리에게 주어¹⁴ 먹게 하라
그 사환¹⁵이 가로되
어찜이니이까 이것을 일백 명에게 베풀겠나이까 하나
엘리사는 또 가로되
무리에게 주어 먹게 하라
여호와의 말씀이 무리가 먹고 남으리라 하셨느니라
저가 드디어 무리 앞에 베풀었더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¹⁶ 다 먹고 남았더라
<노트>엘리사는 선지 생도들을 위해 독이 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바꾸는 이적을 행하였다. 이때 엘리사가 사용한 가루 자체가 효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가루는 성령의 역사를 일으키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을 뿐이다.
길갈에¹: 참조 2:1 주석. 엘리야는 젊은이들이 동료에게 봉사의 삶을 살 준비를 갖출 수 있는 이 중요한 훈련 기관들에 관심을 보임으로 여호와의 사역을 확립하는 데 많은 일을 했다. 엘리사도 이 학교들에 계속 관심을 가졌다. 종종 그는 필요한 격려와 권면을 주기 위해 그들을 방문했다.
흉년이 들었는데²: 고대 팔레스타인에서 흉년은 흔히 있었고, 많은 고통과 심지어는 죽음도 초래했다(참조 창 12:10 주석).
엘리사의 앞에 앉은지라³: 영적인 교훈을 듣는 경우일 것이다. 마리아가 예수의 발치에 앉았던 것처럼, 이 생도들도 엘리사 앞에 앉아 하나님의 교훈을 배웠다. 이는 귀중한 시간으로 여겨졌을 것이며, 성령이 임재하여 생도들의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확신의 교훈들을 심어주었다. 그들은 매일의 양식보다 영에 속한 것들에 더 감사하라고 배웠다.
큰 솥을 걸고⁴: 영적인 양식이 중요하지만, 육체도 음식이 필요하다. 엘리사는 그 땅을 황폐시키고 있는 기근의 영향으로 야윈 학생들의 모습을 보았을 때 동정심이 일었다. 엘리사는 그들의 영적인 복지뿐 아니라 현실적인 필요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는 모든 사람을 먹일 수 있는 큰 솥을 걸라고 명했다.
들에 나가서⁵: 선지자 학교는 모두 시골 공동체에 자리잡고 있어서 학생들은 식량을 자급하고 농사짓는 훈련을 받을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부조와 선지자, 593; 선지자와 왕, 230). 식량이 부족하여 선지자 학교의 학생들은 분명히 식량을 찾아 들로 나가야 했을 것이다.
야등 덩굴⁶: 여기 언급된 식물의 정확한 형태는 분명하게 확인되지 않는다. 이것이 달걀 모양의 쓴 들외 혹은 호리병박을 가리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을 먹으면 고통과 격렬한 설사를 일으킨다. 생도들은 이 들외를 질 높은 음식인 보통 오이(민 11:5)로 여겼을 것이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연녹색의 작은 잎과 참외 같은 열매가 달린 콜로신쓰(colocynth)라는 덩굴 식물이 발견되는데 치명적인 결과를 줄 수 있다. 70인역과 불가타역에는 이것이 “콜로신쓰”라고 되어 있다.
무엇인지 알지 못한지라.⁷:선지자라는 사실만으로 모든 지식이 주어지거나 모든 치료와 예방을 활용하는 일에서 면제되는 것도 아니다. 이 생도는 자신 앞에 있는 채소의 성질을 모르고 독을 모았으며 그의 노동의 열매를 먹은 모든 사람의 생명을 위태롭게 했다.
사망의 독이 있나이다⁸: 쓴맛 때문에 음식에 독이 있다는 사실이 즉시 드러났다. 그것은 솥 안에 있는 온전한 다른 채소와 섞였겠지만, 호리병박은 솥 전체에 독을 퍼뜨렸다. 죄는 사망의 독이다. 그것의 영향은 퍼진다. 그것은 천태만상으로 날마다 우리 앞에 놓여있어 우리를 고통과 비애로 이끈다. 도처에서 찾을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죄와 오류를 멀리하는 것이 유일한 안전책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결과는 분명 사망일 것이다.
가루를 가져오라⁹: 이 가루가 독초를 위한 천연 해독제인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이것은 오염된 여리고의 샘물에 던진 소금(2:20~22)과 동일한 의미를 지녔을 것이다. 가루는 해가 없었고, 그것을 먹는 사람들에게 생명과 건강을 주는 원료였다. 그것은 선지자의 손에 있을 때 사망의 원인인 죄의 영향을 중화시키는 생명의 표징이 되었다. 여기에 영적인 교훈이 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망의 정죄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떡이다. 죄인이 아무리 오랫동안 사망의 악한 열매를 많이 먹었다 해도, 복음에는 치료와 회복의 능력이 있다. 성령은 죄로 인해 생긴 모든 악을 원상태로 회복할 능력이 있다. 하나님께는 온갖 종류의 죄악에 대한 해독제가 있다. 그리스도는 살려는 의지를 가진 모든 사람을 위한 영원한 생명의 원천이다(요 6:27, 33, 35).
바알살리사¹⁰: 이 성읍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는 정보가 충분하지 않다. 살리사(Shalisha)와 동일한 지역일 것이다(참조 삼상 9:14 주석).
처음 익은 식물¹¹: 모세의 율법에 따라, 추수한 모든 첫 열매는 하나님께 드려야 했으며, 제사장에게 가져와야 했다(민 18:12, 13; 신 18:4). 이 경우에는 여호와를 신실하게 예배하는 자가 그의 첫 열매를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에게 가져왔다. 레위 제사장은 이보다 훨씬 전에 북방 왕국에서 사라졌으며(대하 11:13, 14), 따라서 이스라엘의 경건한 사람들은 선지자들을 여호와의 대표자로 인식하여 율법에 따라 제사장에게 드려야 할 제물을 선지자들에게 가져왔을 것이다.
보리떡¹²: 팔레스타인에서 보리는 보통 동물 사료로 사용했다. 밀보다는 못하게 여겨졌지만 과자와 빵으로 만들어(삿 7:13; 요 6:9) 사람들이 먹기도 했다.
채소¹³: 히브리어 카르멜(karmel), “열매.” 곡물 또는 밭작물의 일종일 것이다. 제임스왕역(KJV)에 “husk”(껍질)로 번역되었고 난외주에 “보따리” 혹은 “의복”으로 되어 있는 이 히브리어는 성경 다른 곳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자루”(개역한글판) 혹은 “가방”을 뜻한다고 제안한다.
무리에게 주어¹⁴: 심지어 선지자나 그와 함께한 사람들에게 이때는 궁핍한 때였다. 백성들은 배고팠고 음식은 부족했다. 엘리사는 자신과 자신의 이익을 생각할 수 있었지만, 백성들의 필요를 생각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도 제자들과 함께 광야에 계실 때,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마 14:14).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무리를 돌려보내 스스로 음식을 사먹도록 하려 했지만, 예수께서는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다(마 14:16).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지치고 궁핍한 무리들을 볼 때,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사환¹⁵: 히브리어 므샤레트(mes∨aret), “종.” 그러나 흔히 “종”에 해당하는 에베드(‘ebed)라는 단어가 나타내는 것보다 높은 지위이다. 이와 같이 여호수아는 모세의 므샤레트라 불리고(출 24:13), 천사들은 므샤레팀(mes∨ahretim) 곧 “사역자들”이라 불린다(시 104:4).
이 사환은 첫 열매들을 인간의 안목으로 바라보았지만, 엘리사는 동일한 음식 선물을 믿음과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사환에게 내린 선지자의 명령은 어리석고 성취할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어떻게 작은 보리떡 20개와 적은 곡식으로 배고픈 사람 100명을 만족케 할 것인가?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도 예수께서 보리떡 5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로 무리를 먹이려 하실 때 비슷한 심정으로 질문하였다.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요 6:9). 자신들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편에서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무수한 사람들이 오늘도 여전히 배고프다.
같이¹⁶: 엘리사는 영감을 받아 말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하는 선지자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하나님께는 무한한 능력이 있다. 그분의 자원은 모든 사람의 필요를 채울 수 있다. 그분의 손에 접촉되면 아무리 약소한 양식이라도 늘어날 수 있다. 이 몇 개 안 되는 빵 덩어리가 참석한 모든 사람의 필요를 충분히 채울 만큼 늘어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능력 때문이었다. 익명의 농부가 자신의 첫 열매들을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로 엘리사에게 가져왔다. 여호와께서 그 예물을 가납하셔서 그것 위에 당신의 축복을 얹으셨다.
이처럼 오늘날에도 여호와께서 우리의 예물을 받아 축복하신다. 할 일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든지,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신과 자신의 부족함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과 모두를 위해 공급하시는 그분의 풍부함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들의 손에 있는 것이 궁핍한 자들의 필요를 만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하면 채우고 남을 것이다.
하늘은 많은 사람이 믿는 것보다 지상과 가깝다. 하나님은 항상 이 땅에 사는 당신의 궁핍한 자녀들에게 관심을 두시며, 그들의 필요를 공급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하나님의 능력이 궁핍한 자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역사하지 못할 지역이나 백성은 아무데도 없다. 모든 농작물은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와 그분의 풍부한 사랑으로 인한 기적임을 증거한다. 하나님은 언제나 일하시며, 지상의 연약한 자녀들의 필요를 돌아보신다. 그분의 사랑과 능력이 오늘날에는 엘리사 시대만큼 현저하게 나타나지 않는 듯 보이지만, 우리의 눈이 열릴 수만 있다면 하나님께서 여전히 임재하시며 여전히 사랑과 자비로 지상의 궁핍한 자녀들을 돌보고 계심을 지금보다 훨씬 더 자주 분명하게 이해할 것이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신실한 자녀들이 여호와께 예물을 가져올 때, 그분의 능력과 축복으로 그들의 미약한 자원이 여러 배로 불어나 무수한 사람들의 현세적 및 영적 필요를 채울 수 있다. 오늘날 세상에 필요한 것은 선지자 엘리사가 지녔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믿음과 영적 통찰력, 용기와 긍휼, 능력과 영성이다.
202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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