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 속에 위인전> 엘리사와 수넴 여인
장지원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¹에 이르렀더니
거기 한 귀한 여인²이
저를 간권하여³ 음식을 먹게 한고로
엘리사가 그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리로 들어갔더라
여인이 그 남편에게 이르되
항상 우리에게로 지나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
우리가
저를 위하여 작은 방⁴을 담 위에 짓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진설하사이다
저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 유하리이다 하였더라
하루는 엘리사가 거기 이르러 그 방에 들어가서 누웠더니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이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⁵ 곧 부르매
여인이 그 앞에 선지라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너는 저에게 이르라
네가 이같이 우리를 위하여 생각이 주밀하도다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⁶
왕에게나 군대장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⁷
여인이 가로되
나는 내 백성 중에⁸ 거하나이다 하니라
엘리사가 가로되 그
러면 저를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할꼬⁹
게하시가 대답하되
참으로 이 여인은 아들이 없고¹⁰
그 남편은 늙었나이다¹¹
가로되 다시 부르라 부르매
여인이 문에 서니라¹²
엘리사가 가로되
돌이 되면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¹³
여인이 가로되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¹⁴ 하니라
여인이 과연 잉태하여 돌이¹⁵ 돌아오매
엘리사의 말한 대로 아들을 낳았더라
그 아이가 저으기 자라매
하루는 곡식 베는 자에게 나가서
그 아비에게 이르렀더니
그 아비에게 이르되
내 머리야¹⁶ 내 머리야 하는지라
그 아비가 사환에게 명하여
그 어미에게로 데려가라 하매
곧 어미에게로 데려갔더니
낮까지 어미의 무릎에 앉았다가 죽은지라¹⁷
그 어미가 올라가서
아들을 하나님의 사람의 침상 위에 두고 문을 닫고 나와서
그 남편을 불러 이르되
청컨대 한 사환과 한 나귀를 내게로 보내소서¹⁸
내가 하나님의 사람에게¹⁹ 달려갔다가 돌아오리이다
그 남편이 가로되
초하루도 아니요 안식일도 아니어늘²⁰
그대가 오늘날 어찌하여
저에게 나아가고자 하느뇨
여인이 가로되
평안이니이다²¹
이에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몰아 앞으로 나아가라
내가 말하지 아니하거든 나의 달려가기를 천천하게 하지 말라²² 하고
드디어 갈멜 산으로 가서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하나님의 사람이
멀리서 저를 보고²³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저기 수넴 여인이 있도다
너는 달려가서 저를 맞아²⁴ 이르기를
너는 평안하냐 네 남편이 평안하냐 아이가 평안하냐 하라 하였더니
여인이 대답하되 평안하다²⁵ 하고
산에 이르러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그 발을²⁶ 안은지라
게하시가 가까이 와서
저를 물리치고자²⁷ 하매
하나님의 사람이 가로되 가만 두라
그 중심에 괴로움이 있다²⁸마는
여호와께서 내게 숨기시고²⁹ 이르지 아니하셨도다
여인이 가로되
내가 내 주께 아들을 구하더이까³⁰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이까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이르되
네 허리를 묶고³¹
내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라³²
사람을 만나거든 인사하지 말며³³ 사람이 네게 인사할지라도 대답하지 말고
내 지팡이를
그 아이 얼굴에 놓으라
아이의 어미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리이다³⁴
엘리사가 이에 일어나
여인을 좇아가니라
게하시가 저희의 앞서 가서 지팡이를 그 아이의 얼굴에 놓았으나 소리도 없고 듣는 모양도 없는지라³⁵
돌아와서 엘리사를 맞아 가로되
아이가 깨지 아니하였나이다³⁶
엘리사가 집에 들어가 보니
아이가 죽었는데
자기의 침상에 눕혔는지라
들어가서는 문을 닫으니 두 사람뿐이라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고³⁷
아이의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 입에, 자기 눈을 그 눈에, 자기 손을 그 손에 대고 그 몸에 엎드리니 ³⁸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
엘리사가 내려서 집 안에서 한번 이리 저리 다니고 다시 아이 위에 올라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하고 눈을 뜨는지라
엘리사가
게하시를 불러서
저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하니 곧 부르매
여인이 들어가니
엘리사가 가로되
네 아들을 취하라³⁹
여인이 들어가서
엘리사의 발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고⁴⁰
아들을 안고 나가니라
<노트> 엘리사는 사역 초기에 왕이나 귀족들을 자주 만나 신앙적인 충고를 했던 것 같다. 그는 갈멜 산과 이스르엘 사이를 자주 왕래하였다. 그 길목에 수넴 성이 있었는ㄷ, 이 성에 사는 한 귀부인이 엘리사를 매우 공손하게 환대하였다. 엘리사는 자기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섬겨 주던 이 여인에게 아들이 없음을 알고, 아들을 갖게 될 것이라고 축복해 주었다. 그 당시 아들이 없다는 것은 여인의 큰 수치였다. 이 여인은 하나님의 사람을 환대함으로써 이 수치를 면하게 되었다.
수넴¹ 이스르엘 골짜기에 있는 성읍으로, 길보아산 북서쪽 약 8킬로미터 지점이며, 당시 엘리사의 거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25절) 갈멜산에서 약 26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엘리사가 나라 이곳 저곳을 순회하던 중 자주 이 마을(현재는 소넴)을 지나갔다.
한 귀한 여인²: 부유한 여인(참조 삼상 25:2; 삼하 19:32) 또는 고위층 여인.
저를 간권하여³: 엘리사에게 이 안락한 집의 친절함이 베풀어졌다. 하나님의 사람들도 그들의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음식과 거처가 필요하며, 그리스도인 교제와 우정의 축복에 감사한다. 하나님의 신실한 종의 삶은 그가 섬기는 사람들에게 받는 친절한 호의로 기쁘고 유쾌해지곤 한다.
작은 방⁴: 부는 종종 그 소유주를 자기 중심적으로 만들어 타인의 필요와 갈망을 잊게 한다. 그러나 분명 수넴의 이 고상한 여인의 경우는 달랐다. 그녀는 귀부인이었으나 동정심을 잃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자신의 필요를 적절히 공급받자 다른 사람들과도 자신의 소유를 나누었다. 그녀는 자기 식구들을 돌보는 책임도 있었지만, 가정의 의무들 때문에 엘리사와 다른 사람들의 필요와 안위를 잊어버리지 않았다. 엘리사는 여행하다가 수넴 마을에 도착하면 쉼과 편안함이 깃든 유쾌한 시간을 갖기를 고대하곤 했다. 따뜻한 환대는 이 땅의 자녀들에게 하늘의 평화와 교제를 조금이나마 맛보도록 돕는다.
이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⁵: 수넴 여인은 엘리사에게 친절했으며 그는 그녀에게 친절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베푼 호의에 그가 무엇으로 보답할 것인가? 그녀는 물질적으로는 부족하지 않았다. 그러나 엘리사는 그녀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었다. 고귀한 마음은 호의를 받 보답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어떻게 하랴⁶: 이것은 시험하는 질문이었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그녀의 마음에 있는 것을 정확히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순수하게 선지자이기에 그를 대접했는가 아니면 어떤 보상을 받기 위해 은밀한 욕망을 품었는가?
왕에게…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⁷: 엘리사는 자신이 궁정과 국가의 최고 권세자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엘리사가 수넴 여인을 위해 왕의 도움을 얻을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
내 백성 중에⁸: 그녀의 대답은 그녀가 완전히 만족하고 있다는 생각을 드러낸다. 그녀는 백성들과 평화롭게 지내고 있었으며 이웃과 다툼도 없고 친구들과 화해해야 할 문제도 없었다. 평화롭고 행복한 공동체였고, 왕이나 왕의 사신들이 더 행복한 삶을 위해 해 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무엇을 하여야 할꼬⁹: 이미 온전히 행복하고 이 세상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해 준다는 것은 그다지 쉽진 않지만, 엘리사는 그녀에게 봉사할 것을 찾기 위해 계속 노력을 기울였다.
이 여인은 아들이 없고¹⁰: 모든 히브리 여인에게 명백한 불행과 치욕으로 간주되었다(참조 창 30:23; 신 7:13, 14; 삼상 1:6, 7, 11; 시 128:3, 4; 눅 1:25).
그 남편은 늙었나이다¹¹: 자녀를 몹시 갖고 싶었겠지만 그녀는 남편이 늙었기 때문에 더 이상 어떤 희망도 없다고 믿었다.
문에 서니라¹²: 그녀가 엘리사의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 적절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중함과 예의로 이렇게 했을 것이다.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¹³ 사람에게 불가능해도 하나님께는 불가능하지 않다. 그녀가 아들을 원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녀를 위해 가능하게 할 수 있으셨다. 그 해 안에 아들이 있을 것이라고 한 엘리사의 약속은 그녀의 절실한 소망을 훨씬 초월하는 것이었다.
속이지 마옵소서¹⁴: 즉 실현될 수 없는 희망을 내 앞에 둠으로 나를 속이지 마옵소서. 자식을 약속받았을 때 아브라함(창 17:17)과 사라(창 18:12)와 사가랴(눅 1:20)가 쉽게 믿지 않은 것과 비교하라.
돌이¹⁵: 참 선지자는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거짓 예언을 하지 않는다. 엘리사가 약속한 대로 되었다.
내 머리야¹⁶: 일사병의 일종일 것이다. 추수는 연중 가장 더운 계절에 하는 힘겨운 노동이었다.
죽은지라¹⁷: 슬픔과 기쁨, 눈물과 웃음, 삶과 죽음은 죄악 세상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여정에서 별개의 것이 아니다. 수넴 여인의 아들은 가정에 기쁨을 주었지만 가슴에 고통을 가져오는 매개도 되었다. 수넴 여인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그를 얻었지만, 지금 죽음이 그를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내게로 보내소서¹⁸: 이때는 바쁜 추수철이어서 이 큰 집안의 사람과 짐승이 모두 들판에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짐승 한 마리와 몰이꾼을 급히 사용하겠다고 요청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¹⁹: 충실한 아내인 이 여인은 자기가 하려는 여행과 속히 돌아올 계획이라는 사실을 남편에게 알렸지만, 여행의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녀가 이미 죽은 아들을 일으키도록 선지자에게 요청하려는 의도를 남편에게 알렸다면, 그는 부질없는 여정이라 생각하여 그녀의 목적을 단념시키려 했을 것이다. 그것은 믿음의 문제였고, 따라서 그녀가 그 문제를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만 두려 한 것 같다.
초하루도 아니요 안식일도 아니어늘²⁰: 둘 다 성일(聖日)로, 제사와 성회가 있는 경우이다(대하 2:4; 사 1:13; 호 2:11; 암 8:5). 분명 이런 날에는 통상적으로 사람들이 경배나 종교적 교육과 교화를 목적으로 모였을 것이다. 초하루나 안식일이라면 선지자에게 향하는 그녀의 여행이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겠지만, 이 경우에는 남편이 그녀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평안이니이다²¹: 믿음과 소망에 찬 대답이었다. 아이는 죽었지만 그녀는 슬픔과 좌절의 길로 가지 않았다. 하나님의 사람이 애당초 하나님께 간구하여 그 아이를 주시도록 했다면, 그를 회복시킬 능력도 있을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가 있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손에 그것을 맡길 때 평안이라는 완전한 보증을 얻을 것이다. 하나님의 응답이 언제나 우리가 원하는 그것이 아니더라도 평안을 지니고 그분의 뜻에 겸손하게 순종하며 엎드릴 수 있다.
천천하게 하지 말라²²: 그녀가 아무리 불편할지라도, 종에게 가능한 가장 빠른 속도로 가라고 재촉했다. 짐승을 타고 약 26킬로미터의 거리를 가는 것이 그다지 쉽지 않았겠지만, 그녀의 생각은 되도록 빨리 엘리사에게 도착하는 것뿐이었다.
저를 보고²³: 선지자의 집은 아마도 높은 곳에 있어서, 계곡 아래 대부분 지역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엘리사가 멀리서 오고 있는 그녀를 알아보았다.
저를 맞아²⁴: 엘리사는 즉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았으며, 그녀가 그에게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종을 보내 그녀를 맞이하고 가능하면 그녀가 온 이유를 알아보도록 했다.
평안하다²⁵: 다시 한 번 그녀의 대답은 “평안”이었다. 그녀는 마음의 부담을 선지자의 종이 아닌 오직 선지자에게만 드러낼 것이었다.
그 발을²⁶: 성경은 끈질기게 요청할 경우에 하는 이 같은 행동에 대한 많은 실례를 기록한다(마 18:29; 막 7:25; 눅 8:41; 요 11:32 등).
저를 물리치고자²⁷: 무감각한 종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여 그녀를 완강하게 물리치려 했다.
그 중심에 괴로움이 있다²⁸: 엘리사는 즉시 여인의 심중에 채워진 감당할 수 없는 어떤 슬픔을 알아차렸고, 그의 온화한 동정심이 그녀에게 동했다. 사랑과 긍휼로 가득한 하나님의 진실한 자녀의 마음은 무거운 짐을 지닌 모든 사람을 향해 동정심으로 동할 것이며, 주님처럼 그들에게 쉼을 주려고 노력할 것이다. 참 사랑은 자비와 친절이며, 궁지에 처한 사람들의 호소에 반응한다.
내게 숨기시고²⁹: 때때로 여호와께서는 특정한 사람의 상황을 당신의 종들에게 드러내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시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 모든 것을 다 아는 선지자는 없다. 계시는 오직 하나님의 뜻과 조화되게 주어진다. 선지자가 특정 문제와 관련된 사실을 다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가 여호와의 참 선지자가 아니라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선지자들도 사람이며, 그들의 지식과 판단도 다른 사람들처럼 제한적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특별한 계시와 지혜를 주실 때만 그들의 기별은 독특한 권위를 지닌다. 이와 같은 경우처럼 선지자가 모든 사실을 다 알아야 한다는 생각은 부적절하다.
내가…아들을 구하더이까.³⁰: 여기서 여인이 선지자를 질책하는 것이 아니라 심중의 비통함을 토로하고 있다. 그녀가 먼저 아이를 구하지 않았고, 아이는 선지자가 한 약속의 결과였다. 그러나 이렇게 아이를 얻었으나 이제 그녀에게서 취해갔다. 그녀는 여러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던 것은, 엘리사가 지금 그녀가 지닌 슬픔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말은 쓰라린 슬픔을 드러낸다. 그녀는 자신이 요구하지도 않았던 아들이 죽었다는 것을 알았고, 따라서 슬픔은 아들에 대한 사랑을 전혀 알지 못했을 때보다도 훨씬 컸다.
네 허리를 묶고³¹: 엘리사는, 그 여인이 황급한 여행으로 힘이 소진하여 되돌아가는 길이 훨씬 더 어렵고 힘겨울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몸소 여행하는 것을 회피한 것은 아니지만, 아이가 죽었다는 것을 알자 즉시 종에게 행동 방법을 지시하여 급파했다.
내 지팡이를…들고 가라³²: 이 지팡이는 엘리사의 선지자 직분을 상징했으며, 모세의 지팡이처럼(출 4:17; 출 17:5, 9; 민 20:8, 9) 하나님의 능력의 징표로, 그것을 지니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할 것이었다.
인사하지 말며³³: 종에게 무뚝뚝하고 무례하게 행하라는 것이 아니라, 노상에서 시간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동방에서 인사는 길고 의례적이며, 예의를 갖추려면 시간이 걸린다.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리이다³⁴: 여인은 엘리사의 종보다 엘리사를 더 신뢰했다. 그녀는 엘리사의 기도와 사역의 능력을 알았으며, 그를 전적으로 신임했다. 여호와께서는 엘리사의 한 마디 간청으로 아이를 회복시킬 수 있으셨으나 선지자의 지팡이와 종을 존중하기로 선택하여 아이를 소생시키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비탄에 빠진 여인은 엘리사를 여호와께서 당신의 능력을 보여 주실 기별자로 의지했고,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그녀의 믿음을 존중하여 그녀의 소원에 맞게 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셨다.
소리도 없고 듣는 모양도 없는지라³⁵: 이 말은 게하시가 소년에게 엘리사의 지팡이를 놓은 것을 하나님이 영예롭게 해 주시기를 기대했음을 암시한다. 생명이 소생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그 여인이 여호와께서 엘리사의 지팡이와 그의 종 게하시라는 대리자를 통해 응답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더라면, 응답이 그 방법으로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여호와께서 당신의 놀라운 능력을 이루실 통로로 게하시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막는 어떤 약점이 그의 삶에 있었을 것이다. 여호와께서 어떤 방법으로 일하거나 일하지 않기로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깨지 아니하였나이다³⁶: 이 말은 단순히 그 아이가 잠들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소년은 낮에 어미의 무릎에서 죽었고(20절), 32절에서 그가 죽었다고 선포되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죽음은 자는 것으로 여겨진다(신 31:16; 왕상 2:10; 단 12:2; 요 11:11~14; 행 13:36).
기도하고³⁷: 믿음으로 열렬히 기도하여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였다(히 11:35).
아이의 위에 올라 엎드려³⁸: 아이의 생명을 되돌아오게 하는 데 엘리야가 이런 방법을 사용한 이유가 무엇인지는 나와 있지 않다. 그가 하나님께 지시를 받아 이 방법을 사용했거나 아니면 엘리야의 행동을 모방했을 것이다(왕상 17:21). 기도가 다른 수단의 사용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선지자의 몸이 죽은 아이의 몸에 온기를 전달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아이를 소생시킨 것은 아니다. 소년이 죽음에서 돌아온 것은 처음에 생명을 부여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였다. 이것은 기적이었으며, 하나님만 실행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여호와께서 이 죽은 아이를 다시 소생시킨 것처럼, 재림 때에도 무덤 속에서 잠자고 있는 당신의 모든 신실한 자녀들을 일으킬 것이다(사 26:19; 요 5:28, 29; 고전 15:52; 살전 4:16; 계 1:18).
네 아들을 취하라³⁹: 아이의 생명이 돌아왔을 때, 어머니를 불러 아들을 취하라고 했다. 엘리야가 과부의 아들을 죽음에서 일으켰을 때 어머니에게 그를 넘겨주었고(왕상 17:23), 예수님도 마찬가지로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렸을 때 어머니에게 돌려주었다(눅 7:15). 예수님의 마음은 자녀를 잃고 울고 있는 모든 어머니에게 동하며, 그분이 부활의 기쁜 날 무덤 속에 잠자고 있는 자녀들의 생명을 소생시켜 천사들이 그들을 어머니의 손에 안겨줄 것이다(각 시대의 대쟁투, 645).
절하고⁴⁰: 어머니의 말은 나와 있지 않다. 그녀는 너무도 감사하여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깊이 감사하여 그녀는 선지자의 발 앞에 엎드려,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죽은 아이의 생명을 소생시켜 준 것에 대해 어머니로서 감사한 마음을 쏟았다. 그녀가 하나님과 그분의 선지자에게 나타낸 믿음은 헛되지 않았다.
202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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