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 속에 위인전> 여호람의 모압 정벌2
장지원
모압 모든 사람이
왕들이 올라와서 자기를 치려한다 함을 듣고¹
갑옷 입을 만한 자로부터² 그 이상이 다 모여 그 경계에 섰더라
아침에 모압 사람이 일찍이 일어나서 해가 물에 비취므로 맞은편 물이 붉어 피와 같음을 보고
가로되 이는 피라 필연 저 왕들이 싸워³ 서로 죽인 것이로다
모압 사람들아 이제 노략하러 가자⁴ 하고
이스라엘 진에 이르니
이스라엘 사람이 일어나 모압 사람을 쳐서⁵
그 앞에서 도망하게 하고
그 지경에 들어가며 모압 사람을 치고
그 성읍을 쳐서 헐고⁶ 각기 돌을⁷ 던져 모든 좋은 밭에 가득하게 하고
모든 샘을 메우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길하라셋⁸의 돌들은 남기고 물맷군⁹이 두루 다니며 치니라
모압 왕이 전세가 극렬하여 당하기 어려움¹⁰을 보고
칼 찬 군사 칠백을 거느리고
충돌하여 지나서¹¹
에돔 왕에게로 가고자 하되 능히 못하고
이에 자기 위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취하여
성 위에서¹² 번제를 드린지라¹³
이스라엘에게 크게 통분함¹⁴이 임하매
저희가 떠나¹⁵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더라
<노트> 모압 군대가 착각을 일으켜 스스로 방어진을 풀고 경솔한 작전으로, 이스라엘 연합군은 쉽게 모압을 정벌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압의 수도인 길하레셋만은 점령하지 못한다. 멸망의 위기를 당한 모압 왕은 자기 아들을 산 제물로 바치는 잔인하고 극악한 짓을 자행함으로써, 이스라엘 연합군의 퇴각은 불신앙적인 행위였다.
모압…사람이…듣고¹: 기자는 시점을 거슬러 올라가, 왕들이 오고 있다는 말이 모압 사람들에게 전해지자 그들이 전쟁을 위해 어떻게 모였는지를 말한다.
갑옷 입을 만한 자로부터²: 즉 최고 연소자로부터 최고 연장자까지 싸울 수 있는 모든 남자. 칼을 쓸 수 있는 사람을 모두 징집하였다.
필연 저 왕들이 싸워³: 팔레스타인 백성들 사이의 우호 관계가 항상 확고하지는 않았고, 동맹이 오래 지속되지도 않았다. 각기 다른 종족들 사이의 동맹 관계는 자기들끼리 사이가 틀어져 서로 등을 돌릴 수도 있었다. 유다와 이스라엘과 에돔 사이에 시샘이 존재했던 점에 비추어, 모압에게는 자신들을 공격하기 위해 올라 온 세 왕이 서로에게 등을 돌린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모압 사람들아…노략하러 가자⁴: 모압 사람들은 그들의 적군들이 서로를 완전히 파멸시켰다고 믿고는 약탈하기 위해 돌진했다. 그들은 더 이상 훈련된 군대가 아니었고, 오직 죽은 자들을 약탈하려는 생각밖에 없는, 제멋대로 날뛰는 오합지졸이었다.
모압 사람을 쳐서⁵: 전쟁에 대한 준비가 없던 모압 사람들은 적군 앞에서 손쉬운 먹이가 되었다. 동맹군들은 조금의 저항도 받지 않고 그들 앞에 활짝 열린 모압 온 땅을 파죽지세로 밀어붙였다.
그 성읍을 쳐서 헐고⁶: 이 기록은 모압의 광범위하고 굴욕적인 패배를 묘사한다. 성벽으로 방비한 성읍들조차도 승승장구하는 침입자들 앞에 버틸 수 없었다.
각기 돌을⁷: 땅을 경작하기 위한 준비작업으로, 먼저 돌을 치우는 일이 필요하다. 침략자들은 치워낸 돌을 밭으로 내던졌으며, 각기 지주들에게 그들의 밭을 치우는 힘든 작업을 맡겼다.
길하레셋⁸: 길하레셋(사 16:11), 길헤레스(렘 48:31, 36), 아마도 “모압 길(Kir)”(사 15:1)과 동일한 곳으로 생각된다. 오늘날 그곳 이름은 엘-케락(el-Kerak)이다. 이 성읍은 모압의 중요한 요새로, 사해 남부의 동편 고지대의 전략적 위치에 자리잡고 있어서 홍해로 이어지는 무역로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곳은 사방이 깊고 협착한 계곡으로 둘러싸인 가파른 언덕 꼭대기에 세워져, 성읍보다 더 높이 치솟은 주변의 산들이 마치 병풍처럼 에워쌌다. 그 요새는 사실상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다. 십자군 시대에 그곳은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으며, 십자군은 그곳을 점령하기 위해 대대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이 요새는 현존하는 같은 종류의 고대 건축물 중 가장 크며, 오늘날도 여전히 사용된다.
물맷군이 두루 다니며⁹: 물맷군들은 분명 성읍을 둘러싼 산 위에 자리를 잡고, 거기서 성읍으로 돌을 던졌을 것이다.
당하기 어려움¹⁰: 이렇게 훌륭한 요새에 있었지만 메사는 전쟁이 자신에게 불리함을 알아차렸다.
충돌하여 지나서¹¹: 돌격대를 이용하여 성읍을 빠져 나와 에돔 왕이 주둔해 있는 곳으로 가려고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성 위에서¹²: 아마도 포위한 자들이 모두 보는 가운데, 그들에게 공포를 불어넣으려는 속셈이었을 것이다. 분명히 모압 사람들은 그모스가 거절할 수 없는 이 희생제물을 바침으로써, 공격자들에게 미신적 공포를 이용하려고 했을 것이다.
드린지라¹³: 법적 상속자를 이교 제물로 드린 것은 틀림없이 국가 신 그모스를 달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참조 5절 주석). 이 희생을 드림으로 그모스의 은혜와 공격자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도움을 얻고자 했다. 인신(人身) 제사는 팔레스타인 종교의 가증스러운 행위 중 하나였다.
통분함¹⁴: 히브리어 케체프(qes.ep).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참조 민 1:53; 18:5; 수 9:20; 22:20; 대상 27:24; 대하 19:10; 24:18 등). 하지만 여기서는 이스라엘 측의 어떤 특별한 죄악이 언급되지 않은 점으로 보아 그렇게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케체프와 어근이 같은 동사 카차프(qas.ap)는 인간의 분노를 가리키는 데 쓰이기도 한다(창 40:2; 출 16:20; 삼상 29:4; 왕하 5:11; 에 1:12, 18). 이스라엘에게 대한 통분함의 정확한 성격이 무엇인지는 묘사되지 않으며, 그들에게 통분함을 어떻게 나타냈는지 자세한 방법도 드러나지 않는다. 포위를 푼 것이 방어자들의 저항이 거세져서인지, 그들의 왕이 드린 극단적인 제사 때문인지 아니면 통분함을 다른 어떤 방법으로 나타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70인역에는 메타멜로스(metamelos) 곧 “후회함”이라고 되어 있다.
저희가 떠나¹⁵: 포위자들은 그 성읍을 탈취하려는 노력을 그만두고 왕과 수비대들을 남겨 둔 채 완전한 목적을 달성하지 않고 그들의 땅으로 돌아갔으나 상당히 큰 승리를 보상받았다.
3장에 대한 추가적 설명: 이스라엘 역사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문서 중 하나는 BC 9세기경의 것인 유명한 모압 돌(Moabite Stone)에 있는 메사 왕의 명각이다. 모압 돌의 사진과 그것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보려면 제1권, 134, 135을 참조하라. 아래 번역에 나타나는 문단은 원래 명각에는 없지만 편의를 위해 구분했다. [ ] 안의 단어는 명각의 의미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첨가했다. 줄임표(…)는 명각에서 끊긴 부분을 가리키며, 문맥으로도 본문이 무엇인지 단서를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물음표가 들어 있는 괄호(?) 앞에 있는 단어들은 문맥에 비추어 구절의 끊긴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첨가된 것이다.
모압 돌(Moabite Stone).
“나는 그모스[케모쉬]의 아들 메사…디본 사람 모압 왕이다. 내 아버지는 30년 이상 모압을 치리하였으며, 나는 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나는 코르카에 그모스를 위한 산당을 마련하였다.…왜냐하면 그가 나를 모든 왕들에게서 구원해 주고, 또 나로 하여금 나의 모든 원수들을 이기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모스가 자기 땅에 진노를 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왕 오므리가 모압을 오랫동안 지배하였다. 그의 아들이 아버지의 대를 이었으며, 그도 ‘내가 모압을 지배하리라’고 말했다. 나의 임기 중에 그가 그렇게(?) 말했으나, 나는 그와 그의 집안을 무찔렀으며, 이스라엘은 영원히 멸망하였다. 전에는 오므리가 메드바 땅을 차지하여, 그와 그의 아들의 임기 절반인 40년간을 [이스라엘]이 그곳에 머물렀으나, 내 시대에는 그모스가 그곳에 머물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바알-므온을 건설하여, 그곳에 저수지를 두었으며, 키르야탄[키르야타임]도 건설하였다. 가드 사람들이 아타롯 땅에 오래 거하였는데, 아타롯은 이스라엘 왕이 자신을 위하여 만들었지만, 나는 그 성읍과 싸워 이겼으며, 그모스와 모압을 위하여 술 취한 듯 그 성읍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쳤다. 그곳에서 나는 그들의 우두머리 오렐을 그리옷에 있는 그모스 앞으로 끌고 갔으며, 샤론과 마하라트의 주민들을 그 성읍에 정착시켰다.
그리고 그모스는 나에게 ‘가서 이스라엘에게서 느보를 취하라’고 명하셨으며, 나는 야간에 가서 새벽부터 정오가 될 때까지 싸웠고, 드디어 성읍을 탈취하여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 곧 장정 7,000명과 소년들(?), 여인들, 소녀들(?) 그리고 여종들까지 모두 아쉬타르달-그모스에게 예물로 바쳤다. 나는 그곳에서 야훼[여호와]의 기명들을(?) 취하여 그모스 앞에 끌고 왔다. 이스라엘의 왕은 나와 싸우는 동안 야하스 성읍을 건설하여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나 그모스가 그를 내 앞에서 쫓아내 버렸고 그리고(?) 나는 모압의 용사 200명과 우두머리들을 모두 거느리고 올라가 야하스를 쳐서 디본에 예속시켰다.
나는 코르하(Qorchah), 나무 벽 그리고 성벽을 건설하고, 또한 성문을 세우고 망대를 세우고 궁전을 세우고 성읍 안에 저수지도 만들었다. 전에는 코르하 성읍 내에 물 저장소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모든 주민에게 말하였다. ‘각 사람은 자기 집에 물 저장소를 만들어라.’ 그러고는 이스라엘의 포로들과 함께 코르하를 위해 목재를 다듬었다.
나는 아로엘을 건설하고, 아르논 골짜기에 대로를 냈다. 나는 벧-바못이 파괴되었었기 때문에 그곳을 건설했다. 나는 황폐된 베체르를 디본 사람 50명과 함께(?) 세웠는데, 디본 사람은 순종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 땅에 예속시킨 100여 개의 성읍을 다스렸다. 그리고 나는 메드바와 벧-디블라덴과 벧-바알-므온 등을 세웠고, 그 땅의 양들을 위해(?) 그곳에 양 우리를(?) 두었다.…그러나 그모스가 나에게 ‘가서 하우로넨과 싸우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나는 내려가, 그것을(?) 취하고(?) 내 임기 중에 그모스가 거기 거했다(?)….
202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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