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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에 위인전> 벧엘과 단에 세운 금송아지/장지원

노파 2025. 7. 23. 00:02

 

<성경 속에 위인전> 벧엘과 단에 세운 금송아지

장지원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¹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느엘²을 건축하고

그의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³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⁴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⁵에 두고

하나는 단⁶에 둔지라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⁷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⁸ 경배함이더라

그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⁹

제사장을 삼고

여덟째 달¹⁰ 곧 그 달 열다섯째 날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제단에 올라가되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여

그가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그가 지은 산당의 제사장을 벧엘에서 세웠더라

그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¹¹ 달 곧 여덟째 달 열다섯째 날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정하고

벧엘에 쌓은 제단에 올라가서 분향하였더라

 

<노트> 구약성서 열왕기상 12장 25-33절은 왕이 된 여로보암은 세 가지 악한 정책을 실시하였다. ①벧엘과 단에 두 금송아지를 세우고 섬기게 함. ②레위 지파가 아닌 사람을 제사장에 임명 함. ③절기의 달을 7월에서 8월로 옮김. 이 정책은 북방 왕국과 남방 유다를 이간 하는 정책으로 하나님의 율법에 어긋나는 일로 큰 징벌을 받게 된다. 북방 민족은 한결같이 여로보암의 악한 정책에 순응하게 된다.

세겜¹: 이 도성은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에 처음 들어갔던 때로부터 족장 시대의 역사에 자주 언급된다(창 12:6; 33:18; 35:4; 37:12, 13). 가나안을 정복했을 당시 그곳은 도피성이 되었고(수 20:7; 21:21), 여호수아가 죽기 바로 전에 언약을 새롭게 하기 위하여 모든 지파를 불러모은 장소도 바로 여기였다(수 24:1~25). 아비멜렉이 스스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을 때 세겜에 도읍지를 정하였고(삿 9:1~20), 그 도성이 그를 배반하자 그곳을 헐고 소금을 뿌렸다(삿 9:22~45). 이제 그 도성은 재건되어 여로보암의 도읍지가 되었다.

부느엘²: 야곱이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여 본 후에 명명한 요단 동편에 있던 곳이다(창 32:30, 31). 기드온 때에는 부느엘에 망대가 하나 있었는데, 그가 그것을 헐었다(삿 8:8, 9, 17). 여로보암은 이 성읍을 재건하여 전초 기지로 사용하였다. 그 성읍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는 숙곳 동편 6.5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얍복 강변의 툴룰 엣-다바브(Tulul ed-dabab)이다.

돌아가서³: 여로보암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여호와께 드리는 경배가 강력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고 계속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저들의 형제 유다와 함께 하나님께 경배하였더라면 백성들의 마음은 다시 하나가 되어왕국은 다시 통일되었을 것이다. 그러한 결과는 틀림없이 모든 백성들에게 다 유익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여로보암이 첫째로 여기는 관심사가 아니었다.

금송아지⁴: 이것은 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 심판을 자초했던 바로 그 예배(출 32:1~35)의 재생이었다. 이스라엘은 이렇게 여호와를 거절함으로써 파멸로 끝장날 수밖에 없는 길에 들어선 것이다. 인간이 금송아지를 섬기기 위하여 하늘과 땅을 지으신 창조주를 저버릴 때 오는 불행은 피할 길이 없다.

벧엘⁵: 이스라엘의 남쪽 변경에 있던 성읍. 벧엘이라는 지명의 뜻은 “하나님의 집”이고, 야곱이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갈 때(창 28:11~22)와 돌아올 때(창 35:8~15) 하나님이 야곱에게 나타났던 꿈을 기념하여 그가 붙인 이름이다. 벨엘은 유다와 경쟁이 되는 전(殿)을 세우기에 적합한 장소로 생각되었을 것이다.

단⁶: 사사 시대의 상당한 기간 동안 이미 성전 터였던 북방 변경의 성읍(삿 18:30, 31).

죄가 되었으니⁷: 백성들에게 죄 지을 빌미가 되었다는 말이다. 죄의 광범위한 영향력을 고려해 볼 때 여로보암에게 두려운 책임이 지워졌다.

그 하나에게⁸: 70인역의 후기 필사본 중에는 “단”이라는 말 뒤에, “그리고 벧엘에 있는 다른 하나에게”라는 구절이 추가되어 있다. 그러나 원문을 있는 그대로 취하여 처음에는 백성들이 대부분 단에 있는 성전에만 갔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보통 백성으로⁹: 레위 사람들은 이런 우상의 제단에서 제사장 직무를 행하는 것을 거절하였다. 저들은 성직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유다와 예루살렘으로 갔다(대하 11:13~16; 선지자와 왕, 101). 도덕적 표준이 가장 낮은 사람들만 “산당들과 마귀들과 그가 만든 송아지들을 섬기”는(대하 11:15) 제사장 노릇을 하겠다고 했다. 그 결과 백성들의 도덕적 표준은 계속하여 점점 낮아졌다.

팔월¹⁰: 이것은 7월에 예루살렘에서 열렸던 장막절에 맞대응하기 위해 만든 절기였다. 겉보기에는 옛 종교의 몇몇 형태와 같았지만 많은 점에서 이 새 종교는 여호와를 섬기는 일과는 정면으로 배치되었다. 왜 이스라엘의 절기가 유다의 절기보다 한 달이나 뒤에 있어야 했는지 질문이 제기되었다. 이 시점에서 이스라엘과 유다 사이에 단절이 생겼을 것이고, 따라서 새 정부 수립을 경축하려는 목적으로 전 국민이 모이는 절기를 즉시 제정했을 것이다.

저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¹¹: 여로보암은 왕의 직무뿐 아니라 제사장 직분까지 자기가 맡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을 제쳐두고 자신이 마음대로 택한 새 제사장들을 구별한 후에, 자신이 창안한 비합법적인 제사장 직분의 수장 역을 떠맡음으로써 그 절차를 매듭지었을 것이다. 벧엘은 “왕의 성소요 왕의 궁”이라 일컬어진다(암 7:13). 이것은 벧엘에 있는 “성소“가 왕이 종교적인 일을 주관하는 특별한 전이었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국사(國事)를 맡아보는 왕궁이 있었음을 가리킬 것이다. 세겜은 정식 수도로, 평상시 왕궁이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왕이 벧엘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할 때는 거기 있는 궁전에서 재판을 열었을 것이다.

 

2025.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