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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에 위인전> 이스라엘의 반란/장지원

노파 2025. 7. 22. 00:02

 

<성경 속에 위인전> 이스라엘의 반란

장지원

 

 

르호보암¹이 세겜²으로 갔으니

이는 온 이스라엘이

그를 왕으로 삼고자 하여 세겜에 이르렀음이더라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전에 솔로몬 왕의 얼굴을 피하여 애굽으로 도망하여 있었더니

이제 그 소문을 듣고 여전히 애굽에 있는 중에

무리가 사람을 보내

그를 불렀더라³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와서

르호보암에게 말하여 이르되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⁴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르호보암이 대답하되

갔다가 삼 일 후에⁵

다시 내게로 오라 하매

백성이 가니라

 

르호보암 왕이

그의 아버지 솔로몬의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노인들⁶과 의논하여 이르되

너희는 어떻게 충고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 만일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⁷ 하나

왕이

노인들이 자문하는 것을 버리고⁸

자기 앞에 모셔 있는 자기와 함께 자라난

어린 사람들과 의논하여⁹ 이르되

너희는 어떻게 자문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냐

백성이

내게 말하기를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메운 멍에를 가볍게 하라 하였느니라

함께 자라난 소년들이

왕께 아뢰어 이르되

이 백성들이 왕께 아뢰기를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우리를 위하여 가볍게 하라 하였은즉

왕은 대답하기를¹⁰

내 새끼 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으니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¹¹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리라 하소서

 

삼 일 만에 여로보암과 모든 백성이 르호보암에게 나아왔으니

이는 왕이 명령하여 이르기를

삼 일 만에 내게로 다시 오라 하였음이라

왕이 포학한 말로¹²

백성에게 대답할새

노인의 자문을 버리고

어린 사람들의 자문을 따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는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니라

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여호와께로¹³ 말미암아 난 것이라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심이더라

 

온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말을

왕이 듣지 아니함을 보고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¹⁴ 있느냐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너희의 장막으로¹⁵ 돌아가라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¹⁶ 하고

이스라엘이 그 장막으로 돌아가니라

그러나 유다 성읍들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는¹⁷

르호보암이 그들의 왕이 되었더라

르호보암 왕이

역꾼의 감독 아도람¹⁸을 보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쳐죽인지라¹⁹

르호보암 왕이 급히 수레에 올라²⁰ 예루살렘으로 도망하였더라

이에 이스라엘이

다윗의 집을 배반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더라

온 이스라엘²²이

여로보암이 돌아왔다 함을 듣고²¹

사람을 보내

그를 공회로 청하여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으니

유다 지파 외에는

다윗의 집을 따르는 자가 없으니라

 

르호보암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다 온 족속과 베냐민 지파를 모으니 택한 용사가 십팔만 명이라²⁴

이스라엘²³ 족속과 싸워 나라를 회복하여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에게 돌리려 하더니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솔로몬의 아들 유다 왕 르호보암과 유다와 베냐민 온 족속과 또 그 남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

너희 형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지 말고²⁵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

이 일이 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하셨다 하라 하신지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돌아갔더라

 

<노트> 구약성서 열왕기상 12장1-24절은 르호보암이 41세에 왕위에 오르자, 북쪽 10지파 동맹은 세겜에서 르호보암에게 협상을 요구했다. 이때 10지파 동맹의 대표자는 여로보암이었다. 협상 내용은 과중한 세금과 무역을 감소시켜달라는 것이었다. 솔로몬은 그의 통치 말년에 타락하게 되자,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하여 백성들을 혹사시켰음이 명백하다.

르호보암¹: 솔로몬 통치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한 비교적 자세한 묘사가 12, 13, 14장을 통하여 내내 계속된다. 역대기의 기록은 솔로몬의 우상숭배와 그의 대적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 빼버리고 르호보암 이야기의 첫 부분을 열왕기에 나오는 것과 거의 같은 말로 기록하고 있다(대하 10:1~19; 11:1~4; 참조 왕상 12:1~24).

세겜²: 대관식 장소로 세겜을 택한 이유는 에브라임과 북쪽 지파들의 충성심을 얻어내려는 심산(心算) 때문이었을 것이다. 세겜은 팔레스타인의 중심부로서, 여호수아가 백성의 총회를 열었던 곳(수 8:30~35) 곧 그리심산과 에발산 사이에 있었다. 그곳은 요셉이 묻힌 묘 곁에 있었고(수 24:32), 가까이에 야곱의 우물이 있었다(창 33:19; 37:12; 요 4:5, 6; 참조 수 24:32).

저를 불렀더라³: 대하 10:2, 3의 기록은 여로보암이 애굽이 아니라 에브라임에서 부름을 받았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여로보암은 이미 애굽에서 돌아와 있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여로보암은 자타가 공인하는 지도자였다. 군주에게 불만을 토로할 만한 정당한 사유가 있었고, 따라서 이런 기회에 문제를 여로보암에게 제시하여 상소 절차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매우 지당했을 것이다.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⁴: 불평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솔로몬이 그 거대한 공공 건축사업을 위해 요구한 무거운 세금과 강제 노역 때문에 백성들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에브라임에서 강제 노역의 감독관이었던 여로보암은 필시 많은 사람의 불평을 들었을 것이며, 왕실의 다른 신하보다도 당시에 널리 유포되어 있던 불만에 대하여 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짐을 가볍게 해 달라는 요구는 정당했고, 따라서 백성들의 불평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법적인 문제일 뿐 아니라 신중을 기할 문제였을 것이다.

삼 일 후에⁵: 제3일에 곧 모레(12절).

노인들⁶: 솔로몬의 모사들은 백성들의 심정을 잘 알고, 어떤 정책을 펴야 할지 좋은 안(案)을 내놓을 만한 위치에 있었을 것이다. 이들은 꼭 나이만 많다기보다는 경험도 풍부한 신하들이었다.

종이 되어⁷: 왕이 된 자의 일차적 임무는 백성들을 섬기는 일이지 다스리는 것만이 아니다. 만약 백성들이 통치자의 첫 번째 관심사가 저들의 관심사임을 안다면 백성들의 마음은 통치자의 마음과 하나가 될 것이며 백성들은 기꺼이 그의 신하가 되고자 할 것이다. 그리스도가 세상에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마 20:28) 함이었다.

노인의 교도하는 것을 버리고⁸: 나이가 들면 경험이 많아지고 지혜도 증가하는 법이다. 나이도 경험도 다 어린 사람들이 노인들의 권고를 무시하는 곳에는 어리석은 자들의 권고가 판을 치는 법이다.

소년들과⁹: 노인들뿐 아니라 청년들과도 의논하는 것은 지극히 타당한 일이지만, 청년들의 눈은 경험이 많고 연만한 자들의 눈에 보이는 것을 보지 못하는 수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왕은 대답하기를¹⁰: 르호보암의 젊은 친구들이 준 권고는 지혜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성급하고 오만방자한 권고였다. 이 권고에는 백성들을 섬기라고 임명한 왕의 자애로운 배려는 나타나 있지 않고, 명확하게 드러난 백성들의 뜻을 무시하고 지배하려는 결심만 나타나 있다. 또한 그것은 지나치게 거친 말로 표현되었고 어려운 사태를 진정시키기보다는 사태를 악화시키는 말들이었다. 그 젊은이들은 고집을 원기 왕성한 것으로, 자만을 지혜로 오해하였다. 그들은 시대의 징조들을 읽지 못했으며, 따라서 저들의 권면은 반역이 불가피하게 했다.

전갈¹¹: 날카로운 갈고리와 바늘 끝이 달려 있어 때리면 심한 통증을 유발하는 채찍을 나타내는 비유적 표현으로 생각된다.

포학한 말로¹²: 물론 이렇게 한 목적은 힘을 과시하는 것이었으나 실상 그것은 약함과 어리석음을 드러낼 뿐이었다. 친절한 말은 친절하고 관대한 마음에서 나오며, 따라서 순종에 이르게 하고 행복과 평화의 길로 인도한다. 거친 말은 소인배에게서 나오는 것이며 격정을 자극하고 원통한 마음을 품게 하여 소란과 폭동을 초래한다.

여호와께로¹³: 왕과 함께 자라난 소년들이 왕께 진언한 권고가 하나님의 권고였다거나 왕의 답변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은 자비의 하나님이요, 지혜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왕의 말은 냉혹하고 어리석은 자의 말이었다. 하나님은 자비와 동정의 마음을 갖게 하는 분이지, 분노나 원한의 감정을 품게 하는 분이 아니다. 그러나 여호와는 저들의 고집스런 행위로 말미암은 열매를 거두게 하심으로 사람을 심판한다. 솔로몬의 죄는 물론 르호보암의 지각없고 경솔한 행동은 모두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모두 죄이며 하나님이 아닌 다른 근원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는 지혜로써 죄로 죄를 벌하고 어리석음으로 어리석음을 징계하는 길을 허락하셨다. 일반적으로 여호와는 인간의 정욕이나 분노, 교만이나 괴팍한 행위 및 오만함 등의 결과를 제거하기 위해 이적을 행하지는 않는다. 개인의 구원과 관련하여 말하자면,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 의지를 손상하지 않고, 거룩하지 못한 악인들의 악행에 억지로 영향을 끼치지 않고 개인이나 국가의 행로를 현명하게 인도하여 당신의 뜻을 이룬다. 그렇게 하여 인간의 분노를 당신을 찬양하는 쪽으로 돌린다.

다윗과 무슨 관계가¹⁴: 이 말은 지파 간에 질시와 적개심이 있음을 나타낸다. 에브라임은 유다에 일제히 반대하고 나섰고, 북쪽 지파 사람들은 남쪽 사람들과 상관없이 자기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였다. 세바도 다윗을 반역할 때 이와 비슷한 말을 사용하였다(삼하 20:1).

너희의 장막으로¹⁵: 이것은 전쟁을 부추기는 말이 아니고, 르호보암을 인정하지 말고 모두 각 지파와 가정으로 돌아가라는 외침이었다.

이제 너는 네 집이나 돌아보라¹⁶: 이것은 다윗 왕가(王家)에 대한 뿌리 깊은 혐오감의 표현이었다. 다윗의 집은 이제 자기 집안 일이나 돌보고 자기 지파 일이나 살필 일이지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의 일에는 관여하지 말라는 뜻이다. 유다 지파와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행할 것이며 이제 후로는 유다 지파의 간섭을 묵인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이스라엘 자손에게는¹⁷: 이 구절에는 이중적인 의미가 들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로, 유다의 경내에 유다 지파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음을 나타낸다. 유다와 함께 기업을 분배받은 베냐민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많은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후에 북방 왕국을 버리고 유다와 예루살렘에 합류하였다(대하 11:12~17). 둘째로, 이제부터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일차적으로 남방 유다와 대치하는 북방 왕국을 뜻하는 말이기는 하지만, “이스라엘 자손”이라는 구절을 사용한 것은 독자들에게 참 이스라엘 자손은 유다에서도 발견될 것이며, 따라서 이 자랑스런 이름을 북방 왕국만 지닐 권한이 없다는 점을 상기시키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아도니람¹⁸: 4:6; 5:14에 의하면, 아도니람(아도람이라는 이름의 확대 형태)은 감역관이었다. 아도람은 강제 노역으로 인한 불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르호보암은 그가 이 문제에 타협점을 찾는 데 적임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백성들은 강제 노역의 공사 감독자인 이 사람을 보자 분노가 폭발하여 아도람은 죽음으로 몰고 갔다.

돌로 쳐죽인지라¹⁹: 고대에는 폭도들이 분노를 터뜨려 사람을 죽일 때 대개 이렇게 죽였다. 애굽에서 모세는 애굽인들이 분노하여 일어나서 “우리를 돌로 치지 아니하리이까”(출 8:26)라고 말하였다. 훗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돌질할 지경에 이를 만큼 분노하였다(출 17:4). 다윗도 격분한 무리가 그를 돌로 쳐죽일 위험에 직면한 적이 있었다(삼상 30:6).

[그의] 수레에 올라²⁰: 당시로는 수레가 가장 빠른 교통 수단이었다. 길이 잘 보수되어 팔레스타인의 많은 지역에서 병거를 이용할 수 있었다.

여로보암의 돌아왔다 함을 듣고²¹: 이 말은 열 지파가 반역한 이후에 비로소 여로보암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3절을 보면 르호보암에게 백성의 대표자를 보낼 때 이미 그가 그들의 우두머리로 행동하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70인역 필사본 가운데 하나를 지지하여, 3절과 12절에서 여로보암이라는 이름을 빼 버리고 20절에서 그가 처음 등장하는 것처럼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히브리 성경을 따라, 1절의 “온 이스라엘”은 여러 다른 지파의 대표자들을 의미하는 말로 이해하고, 20절의 “온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 각기 장막으로 돌아갈 때(16절) 대표자들에게 여로보암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은 나라를 뜻하는 말로 이해하는 것이 더 낫다.

반역의 소식은 곧 왕국 안에 두루 전해졌다. 반란에 착수한 후 교활하게도 여로보암은 추가 조치를 취하지 않고 백성들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큰 군중이 모여 여로보암을 왕으로 추대했다.

온 이스라엘²²: 이 구절은 북쪽의 열 지파가 자신들만이 참 이스라엘이라고 주장함을 나타내는 것 같다.

베냐민²³: 베냐민 지파는 이전에 유다 지파보다는 에브라임 지파와 더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었다. 다윗과 베냐민 사람 사울 간의 오랜 대립(삼상 9:1), 요압과 아브넬 간의 전쟁, 다윗의 종들과 베냐민 사람들 간에 있었던 전쟁(삼하 2:2, 12~31; 3:1~27), 베냐민 사람 세바가 다윗을 대항하여 일어섰던 일 등은 유다에 대한 베냐민의 반감을 나타낸다. 그러나 두 지파 사이의 경계선(수 15:8; 18:16)인 예루살렘에 수도를 정한 것은 이런 관계에 변화를 가져오는 데 도움을 주어, 그 후로 베냐민의 운명은 유다의 운명과 하나가 되었다.

십팔만이라²⁴: 다윗이 인구 조사를 실시했을 때 유다의 인구는 500,000명이었다(삼하 24:9). 얼마 후 아비야는 400,000명의 군사를 모집할 수 있었다(대하 13:3).

(하나님의 사람: 이 용어는 모세를 가리킬 때 사용되었지만(신 33:1; 수 14:6) 역대기를 포함하여 초기나 후기의 성경에는 불과 몇 번 밖에 사용되지 않았으나 열왕기의 기자가 즐겨 사용하는 표현이다. 스마야는 르호보암의 치세에 유다 최고의 선지자였다(대하 12:5~8, 15).)

너희는 올라가지 말라²⁵: 일반적으로 내전(內戰)은 가장 치명적인 전쟁이며, 그 상처의 치료 또한 가장 힘들다. 서로를 죽이라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에 인도한 것이 아니다. 저들이 서로 적대하는 두 나라로 나뉘어 지내도록 계획하지도 않았다. 여호와는 분리해 나간 열 지파에게 복을 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르호보암이 선언한 포악한 통치 정책을 시인할 수도 없었다. 열 지파를 잃은 것은 르호보암에게 내린 심판이었다. 이런 마당에 군대의 힘으로 열 지파를 르호보암의 치하로 되돌려 놓으려는 운동을 여호와가 축복할 수 없었다. 오히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두 왕국의 역사가 전개되면서 여호와가 한 왕국은 정죄하고 다른 한 왕국에는 심판을 내린 것의 정당함이 입증되도록 작정하였다. 흔히 시샘이 많은 사람들은 양편에 손해를 끼칠 수 있는 어려운 문제를 성급하게 해결하려 한다. 그러한 사람들은 본 절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깊이 생각해 보면 좋을 것이다.

 

2025.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