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에 위인전> 다윗의 유언
장지원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¹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²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³ 대장부가 되고⁴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⁵
그 길로 행하여⁶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⁷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⁸
여호와께서 내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자손들이
그들의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확실히 이루게 하시리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내게 행한 일 곧 이스라엘 군대의 두 사령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예델의 아들 아마사에게 행한 일을 네가 알거니와
그가
그들을 죽여
태평 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전쟁의 피를 자기의 허리에 띤 띠와 발에 신은 신에 묻혔으니
네 지혜대로 행하여⁹
그의 백발이 평안히 스올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마땅히 길르앗 바르실래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어¹⁰
그들이 네 상에서 먹는 자 중에 참여하게 하라
내가 네 형 압살롬의 낯을 피하여 도망할 때에
그들이 내게 나왔느니라
바후림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¹¹가
너와 함께 있나니
그는
내가 마하나임으로 갈 때에 악독한 말로 나를 저주하였느니라
그러나 그가 요단에 내려와서
나를 영접하므로
내가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여 이르기를
내가 칼로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였노라
그러나 그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지어다
너는 지혜 있는 사람이므로
그에게 행할 일을 알지니
그의 백발이 피 가운데 스올에 내려가게 하라
다윗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워¹²
다윗 성에 장사되니¹³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사십 년이라
헤브론에서 칠 년¹⁴ 동안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다스렸더라
솔로몬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왕위에 앉으니
그의 나라가 심히 견고하니라¹⁵
<노트> 구약성서 열왕기상 2장 1-12절은 다윗이 임종이 가까워 오자 새로운 왕 솔로몬에게 왕으로서 지켜야 할 훈계와 지시를 유언으로 남겼다. 이 유언의 전반부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순종하는 내용이며, 후반부는 몇몇 특정한 사람들에게 행할 일을 지시하고 있다. 다윗은 특별히 요압이 하나님과 왕의 공무를 무시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항상 경계하라고 지시했으며, 바실래와 시므이에 대해서는 그들의 행위대로 대접하라고 부탁하였다.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¹: 1장과 마찬가지로 2장도 자세하고 생동감 넘치는 필치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역대기에서는 아도니야의 모반 이야기를 생략하는 대신, “솔로몬으로 다시 왕을 삼”기(대상 29:22) 위해 “이스라엘의 모든 방백과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 “왕을 섬기는 반장들”, “천부장들과 백부장들” 그리고 각계의 지도자가 모두 모인 큰 회집(대상 23:1, 2; 28, 29)에 대한 기사를 싣는다. 사울(삼상 11:14, 15)과 다윗(삼하 5:1~3)도 두 번 왕으로 구별되었고, 따라서 솔로몬도 같은 경우에 해당했다. 첫 번째 기름부음을 받을 때는 급박한 상황에 떠밀려 임시변통으로 치른 행사가 되어 공고도 급하게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인근에 있는 소수의 사람만 참석했다. 따라서 전국의 대표자들 앞에서 보란듯이 합당한 위엄을 갖춘 제2의 대관식을 행하는 것이 마땅했다.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²: 이 표현은 여호수아가 임종이 가까웠을 때(수 23:14) 한 말을 떠올리게 한다. 죽음에는 편벽이 없다. 지상의 위대한 영웅들도 비천한 사람들과 자리를 같이 하여 다 함께 같은 무덤으로 내려간다. 세상의 명예는 단지 한 순간일 뿐이고, 죽음이 다스리는 곳에서 왕들의 영광도 사라지고 만다.
힘써³: 다윗의 생각은 자신이 아니라 아들에게 있었고,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있었다. 그는 자애로운 아버지로, 군인으로, 애국자로 말했으며, 무엇보다도 매사에 자신을 왕으로 나타내내 보인 한 사람으로 말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한 것처럼(신 31:7), 여호와께서 친히 여호수아에게 한 것처럼(수 1:7) 다윗은 솔로몬에게 지도자의 책임을 행사할 때 담대 하라고 권고했다.
대장부가 되고⁴: 솔로몬은 청년이지만 이제 왕이 되었고, 특히 그렇기 때문에 힘써 대장부가 되어야 했다. 그는 자신과 백성을 온전히 통제하고 독직(瀆職)과 부패를 이기는 대장부가 되어야 하였다. 그는 자신의 이익보다는, 섬기도록 위탁된 백성과 자신이 대표하는 하나님의 유익을 먼저 구해야 했다.
명을 지켜⁵: 다윗이 솔로몬에게 준 권고는 신앙적인 성격이 짙었다. 솔로몬은 먼저 하나님께 신실해야 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이었고, 따라서 솔로몬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저들을 다스려야 했다. 솔로몬에게 남긴 다윗의 유언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한 말이라기보다는 신정 국가 이스라엘의 수장(首長)이 하나님의 임명을 받아 왕위에 오른 자신의 후계자에게 주는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다윗의 권고를 살펴보아야 한다.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여호와의 나라 위에 앉”아야(대상 28:5) 했다. 나라를 인수했을 때 그는 ``여호와께서 주신 위에 앉“은(대상 28:5) 것이다. 이스라엘의 왕은 여호와였고, 따라서 그 나라의 인간 통치자는 하늘 왕의 종이요 대표자였다.
그 길로 행하여⁶: 왕은 자신의 최상의 유익을 위해서뿐 아니라 백성들의 귀감으로 서기 위해 하나님의 길을 알고 그 길로 행해야 했다. 하나님의 길은 의와 평강의 길이며, 그 길은 그에게 축복과 번영을 가져다줄 것이었다.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지키라⁷: 여기서 “법률”은 율법의 조항들을 말한다.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계명”을 주신 다음, 추가적인 규정들을 정하여 특정 경우에 정확히 어떤 순종이 요구되는지를 분명히 했다. 이런 세부적인 법률과 율례와 증거들은 모세의 율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는 도덕적인 요구들은 물론 의식법(儀式法), 국법, 건강법 등도 포함된다.
형통할지라⁸: 하나님의 모든 법은 사람의 유익을 위해 주어졌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행복하고 번영하는 것을 보고자 하기 때문에 저들을 율법 아래 두셨다. 그분이 율례와 법도를 주신 것은 당신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함이 아니라 땅에 있는 자녀들에게 번영과 행복을 보장하기 위함이었다. 하늘의 법과 조화롭게 행할 때 심령의 기쁨과 평화와 만족, 육신의 건강, 생명의 충만을 얻을 것이었다. 그런 율법에 불순종하면 수고와 슬픔과 질병 그리고 환난과 고통과 죽음이 있을 뿐이다. 이런 원칙은 이스라엘의 초기 역사를 보면 아주 분명해진다. 선지자들이 시종일관 끊임없이 지적한 것이기도 했다.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라”(사 1:18, 19; 참조 렘 7:5~7). 결국 이스라엘이 멸망했을 때, 여호와의 율법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음이 분명해졌다(왕하 17:7~20).
(확실히 이루게 하시리라: 하나님은 이 약속을 처음에 나단 선지자를 통해 다윗에게 주셨고(삼하 7:11~17), 후에 다윗에게 직접 준 것으로 보인다(시 89:3, 4). 다윗의 집과 그의 나라가 영원히 서리라는 약속이었다. 다윗의 자손들에게 이 약속은 하나님의 율법에 계속 순종한다는 조건 아래 성취될 것이었다(시 132:12). 다윗이 이 조건들을 상기시킨 것은 솔로몬 편에서 보여 주어야 할 계속적인 충성과 순종을 격려하기 위함이었다.)
네 지혜대로 행하여⁹: 요압은 아브넬을 죽였다(삼하 3:27~30). 그때 다윗은 그 죄에 대해서 자신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고, “여호와는 악행한 자에게 그 악한 대로 갚으실지로다”(삼하 3:31~39)라고 선언했다. 요압은 다윗이 자기를 대신하여 아마샤를 임명하자 그도 죽였다(삼하 19:13; 20:8~10). 이 두 사람의 죽음은 모세의 법에 따라 반드시 복수해야 했었다. 이 일이 당시에 다윗에게 위탁되어 있었지만, 요압이 헷 사람 우리야의 죽음과 관련된 다윗의 약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윗은 그를 징계할 만한 입장이 아니었다. 그러나 법의 명령에 따르면, 요압이 범한 것과 같은 죄악들을 처벌하지 않고 지나쳐서는 안 되었다. 그러므로 다윗은 지금 자신이 단죄한 요압에게 여러 해 동안 고되고 힘든 봉사를 받아왔던 한 개인으로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정(神政) 체제의 왕으로서, 요압에게 아무것도 빚지지 않은 사람의 깨끗한 손으로 그를 응징하라고 지시했다. 더더욱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이를테면, 다윗이 여기서 분명하게 언급하진 않았지만 그의 명백한 지시를 거스르고 압살롬을 죽인 것(삼하 18:14, 15)과 아도니야를 지지한 최근의 반역 등과 같은 행동(왕하 1:7)에 대해 요압에게 죄가 있었고, 그로 인해 솔로몬의 심기가 이미 불편해 있었다.
은총을 베풀어¹⁰: 흥미 있는 대조는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 도망갈 때(삼하 19:31~39) 바실래가 베푼 환대에 대한 다윗의 추억이다. 왕의 식탁에서 먹는다는 것은 왕실 재정에서 부양받는다는 뜻이다(삼하 9:7; 왕상 18:19; 느 5:17). 바실래에게는 김함이라는 아들이 있었다(삼하 19:37). 예레미야가 “베들레헴 근처에 있는 게롯김함”(렘 41:17)이라고 언급한 것은 다윗이 특별히 자신의 땅 가운데서 바실래의 아들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을 나타낸다고 생각하는 자들도 있다.
시므이¹¹: 다윗에게 그처럼 반역적인 행동을 한 이 사람은 그 같은 격동기에 솔로몬에게 위험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다윗이…누워 자서¹²: 다윗의 죽음에 관한 기사는 매우 간단하다. 역대기의 기록은 단지 “저가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다가 죽”었다(대하 29:28)고 덧붙일 뿐이다.
장사되니¹³: 틀림없이 다윗의 궁전(삼하 5:9) 근처에 있었던 왕실의 땅 시온산에 장사되었을 것이다. 느헤미야가 언급한 “다윗의 묘실”(느 3:16)은 다윗의 후계자들의 무덤들로, 성전 남쪽에 있었을 것이다(겔 43:7~9). 그것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예루살렘의 땅 아래 있는 바위에 팠을 것이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소장된 보물들을 찾기 위해 히르카누스(Hyrcanus)뿐만 아니라 후에는 헤롯도 그 무덤을 샅샅이 파헤쳤다고 한다(Antiquities vii. 15. 3; xvi. 7. 1). 그 묘실은 신약 시대까지만 해도 있었지만 지금은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 이른바 “왕들의 무덤”은 한때 유다 왕들의 왕릉으로 생각되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AD 1세기에 속한다.
칠 년¹⁴: 더 정확하게는 “칠 년 육 개월”(삼하 5:5; 대상 3:4).
심히 견고하니라¹⁵: 46절과 비교해 보라. 아도니야와 요압과 시므이의 죽음을 언급하고 아비아달을 파직한 일을 말한 후 46절에 “이에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서 견고하여지니라”고 진술되어 있다. 솔로몬 통치의 초기 얼마간 그 젊은 왕의 보좌를 위협하는 불만과 불안의 요소들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솔로몬은 이 불만과 반역 세력들을 단호하고 기민하게 처리하였다. 그 결과 나라는 그의 통치 아래 견고히 섰다.
2025.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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