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에 위인전> 블레셋을 물리친 다윗
장지원
이스라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았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¹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을 찾으러 다 올라오매
다윗이 듣고 요새로² 나가니라
블레셋 사람들이 이미 이르러 르바임 골짜기³에 가득한지라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⁴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되
올라가라 내가 반드시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⁵ 하신지라
다윗이 바알브라심⁶에 이르러
거기서 그들을 치고 다윗이 말하되
여호와께서 물을 흩음 같이
내 앞에서 내 대적을 흩으셨다 하므로
그 곳 이름을 바알브라심이라 부르니라
거기서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우상⁷을 버렸으므로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치우니라⁸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⁹ 올라와서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한지라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니¹⁰ 이르시되
올라가지 말고¹¹ 그들 뒤로 돌아서¹² 뽕나무 수풀¹³ 맞은편에서 그들을 기습하되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¹⁴ 소리가 들리거든 곧 공격하라¹⁵
그 때에 여호와가 너보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
이에 다윗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행하여¹⁶
블레셋 사람을 쳐서 게바에서¹⁷ 게셀¹⁸까지 이르니라
<노트> 구약 성서 사무엘하 5장 17-25절은 다윗이 유다 왕으로 있는 동안, 블레셋은 그의 통치를 그대로 버려두었었다. 그러나 그가 온 이스라엘 왕으로 강력히 신임을 받게 되자, 왕권을 약화하기 위하여 두 차례나 침공해 왔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볼 수 있는 르바임골짜기까지 깊숙이 쳐들어왔지만,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패배하였다. 그로 인하여 다윗 왕권은 블레셋에게 강하게 비추어졌을 것이다.
블레셋 사람이 듣고¹: 통치 초기에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과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블레셋 사람들은 사울에게 쫓겨 망명생활을 하던 다윗에게 호의를 베풀었고, 그가 유다의 왕이 되자 사울 집에 대항하는 동맹관계를 원하였다. 그들은 분열된 히브리 민족을 능가하는 세력을 보유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느꼈다. 하지만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여부스 점령을 성공하고 두로의 히람과 동맹을 이루자, 블레셋 사람들은 확장되는 다윗의 힘을 두려워한 나머지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일으켜 새 왕의 권세를 억제하기로 작정하였다.
요해처²: 히브리어 므추다(mes.udah), “요새.” 이와 동일한 히브리어 단어가 7절에 사용되는데, 마찬가지로 요새를 의미하는 것이 분명하다(참조 부조와 선지자, 703 704).
르바임 골짜기³: 이 말이 수 15:8에는 “거인들의 골짜기”(제임스왕역(KJV))로 번역되어 있다. 이곳은 예루살렘 남서쪽까지 뻗어 있는 비옥한 골짜기여서 대규모 야영에도 충분한 장소가 되었다.
내가…올라가리이까⁴: 즉 싸우러 나아가리이까? 블레셋 사람들이 골짜기에 있었기 때문에(참조 삿 1:1; 12:3; 삼상 7:7), 문자적으로 “올라”간다는 말이 아니다.
단정코…붙이리라⁵: 히브리어에는 “단정코”라는 부사가 없지만 구문상 동사를 강조하여 번역할 필요가 있다.
바알브라심⁶: 문자적으로 “파쇄(破碎)의 주” 혹은 “침입의 주.” 블레셋 사람들을 습격한 다윗은 그들의 군대를 흩어 자기 앞에서 파멸시켰다.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이스라엘 군대는 물이 댐을 뚫고 나오듯이 대적의 방어선을 뚫었다. 여기서 그곳을 바알브라심이라고 명명한 때는 승리한 이후일 것이다.
우상⁷: 히브리어 아차브(‘as.ab). 평행 구절인 대상 14:12에는 엘로힘(’elohim) 즉 “신들”(개역한글판에는 “우상”이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로 기록되어 있다. 블레셋 사람들은 전투를 감행하였을 때 신들의 형상을 가져오므로 승리를 보증받기를 기대하였다. 그들이 신들을 버려두고 도주했다는 사실로 보아 갑작스럽게 패주했음을 알 수 있다.
치우니라⁸: (제임스왕역(KJV)에는 “불태우니라”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문자적으로 “치우니라.” 하지만 대상 14:12을 보면 이 말을 제임스왕역(KJV)의 번역처럼 이해해야 적합하다는 것이 명백해진다.
다시⁹: 패배로 인해 블레셋 사람들은 오히려 더욱 분투하도록 자극받았다. 그들은 더 큰 군대를 소집하여 승리를 얻으려고 작심하고 다윗과 대항하러 왔다.
여호와께 묻자온대¹⁰: 참조 19절. 다윗은 앞선 승리로 자신만만해 하거나 뽐내지 않았다. 하나님의 인도를 묻는 것은 이미 그의 습관이었다.
올라가지 말고¹¹: 다윗이 여호와께 “올라가라”고 지시받은 19절을 참조하라. 적군은 동일한 전투지를 다시 찾아왔기 때문에 다윗이 이전과 동일한 공격법을 동원할 것이라고 예상했음이 분명하다. 이번에는 그들이 정면 습격에 대비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다윗에게 정면을 공격하지 말라고 지시하셨다.
돌아서¹²: 즉 “그들의 후방으로 돌아서”(개정표준역(RSV)). 적군 주변으로 우회하여 예상치 못한 곳에서 공격함으로 다윗은 승리를 얻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 승리를 주시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일하신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한 자에게 단지 가만히 서서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고 지시하신 적도 종종 있었다(참조 출 14:13, 14; 왕하 19:7, 32, 35). 하나님께서 인간의 노력을 지시하고 그것에 축복하심으로 구원이 임한 때도 있었다. 하나님께 탄원한 후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모든 힘을 기울이는 사람에게는 믿음이 부족하다는 표가 나타나지 않는다.
뽕나무 수풀¹³: 식물학적 명칭은 확실하지 않다. “발삼나무”(balsam)로 기록된 역본도 있다(참조 개정표준역(RSV)).
걸음 걷는¹⁴: 히브리어 츠아다(s.e‘adah), 문자적으로 “진군하는.” 그 소리는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고 하늘의 군대가 앞서 진군할 것이라는 거룩한 신호가 될 것이었다. 남성형 츠아드(s.e‘ad)가 하나님의 군대가 진군하는 것을 표현한 삿 5:4; 시 68:7에 쓰였다.
동작하라¹⁵: 우리도 여호와의 사역에서 맡은 역할을 다해야 한다. 여호와께서 지시하시지 않은 이상, 멍하니 앉아 여호와께서 행하시도록 기대하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들은 패배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다윗과 그 백성이 분투하면 그분이 앞장서서 블레셋 군대를 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의 약속은 그때나 지금이나 조건적이다. 우리가 맡은 임무를 수행할 때 하나님께서도 그분의 임무를 행하실 것이다.
다윗이…행하여¹⁶: 다윗의 성공 비결은 간단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정확히 행하는 것이었다. 사람이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 위에 두면 패배를 자초하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명령한 이유를 항상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언제나 그럴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할 일은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뿐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지시에 복종하였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대승을 거두었다.
게바에서¹⁷: 70인역에는 “기브온”이라고 되어 있다. 평행 구절인 대상 14:16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게바는 오늘날의 제바(Jeba‘)로서, 예루살렘에서 동북쪽으로 대략 9.6킬로미터 지점이며, 기브온 즉 엣-지브(ej-Jib)는 같은 거리만큼 서북쪽으로 떨어져 있다. 의미상 기브온이 분명한데, 이는 그곳이 르바임 골짜기에서 게셀까지 이르는 퇴각로에 있기 때문이다.
게셀¹⁸: 아얄론 골짜기가 내려다 보이며 기브온 서쪽 24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요새. 현재 텔 제제르(Tell Jezer)로 불리는 이곳이 발굴되어 풍부한 고고학적 증거가 쏟아져 나왔다. 예루살렘, 헤브론, 야무스, 라기스, 에글론의 왕들이 기브온을 공격했을 당시, 여호수아는 그들을 추격하여 벧호론 비탈까지 이르렀고 태양이 머무른 아얄론 골짜기에서 괄목할 만한 승리를 거두었다(수 10:1~14). 이것은 당시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을 패주시킬 때 거쳐갔던 노정과 확실히 같은데, 이는 기브온에서 게셀에 이르는 길이 아얄론 골짜기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에서 서북쪽으로 도주했다는 것은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 주변으로 “돌아서” 남쪽에서 공격하여 북쪽으로 몰아 기브온까지 그리고 거기서 게셀 쪽으로 추격하였다는 사실로 확증된다. 평행 기사에는 이 전투가 다윗이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오다가 실패했던 사건(대상 13:5~14)과 성공했던 사건(대상 14:8~17) 사이에 놓여 있다. 하지만 역대기에는 히람이 다윗의 집을 짓도록 도운 사건과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자녀에 대한 기록도 법궤를 가져오다가 실패했던 사건과 성공했던 사건 사이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하여 사무엘하와 역대상에 기록된 사건들의 순서가 언제나 동일하지는 않다는 점을 주목하게 된다. 관련된 연대의 정확한 세부 사항이 무엇인지 결정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사건의 순서가 사건 자체와 거기서 얻는 영적인 교훈보다는 중요하지 않음은 분명하다. 사무엘하의 순서대로 기록된 부조와 선지자, 703 704,을 참조하라.
202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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